감택

 


闞澤
(? ~ 243년)
1. 개요
2. 정사
3. 연의
4. 미디어 믹스


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이다. 는 덕윤(德潤)으로 회계군 산음현 출신이다.
정사와 연의에서 '''일치하는 행적이 하나도 없는''' 인물이다. 양쪽의 활동 시기가 사실상 아예 다르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2. 정사


태평어람에 주석으로 달린 회계선현전에 따르면 오의 시중 감택은 자가 덕윤이다. 어미의 뱃속에 여덟 달 있었으며, 우는 소리가 바깥으로 떨쳤다.
원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학문을 좋아해도 돈이 없어 다른 사람의 책을 대필[1]하는 일로 학비를 벌고 이때 대필하면서 그 책을 아예 암기하기도 했다. 그런 생계형 덕업일치를 기초로 자기 논문을 발표하고 역법과 천문에도 통달하여 유명해지자 손권에게 효렴으로 추천되어 전당현의 장, 침현의 현령으로 승진한다.
219년에 손권이 조조에게 표기장군 남창후로 임명되자 중앙으로 초빙되어 서조연에 오른다. 220년 조비가 즉위하였다. 손권은 자신의 능력이 조비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걱정했는데, 이에 감택은 그의 자에 의거해 말하기를, "불(不)과 십(十)으로 비(丕)자를 이루어져 있으니, 이것은 곧 그의 운명입니다."라며 10년 안에 그가 죽을 것을 예견했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7년 후 조비는 40살이 되던 해에 사망하였다.
229년에 손권이 스스로 황제를 칭하자 감택은 상서가 되었다. 이에 촉나라는 오나라에 장봉이라는 촉나라 사신을 오나라에 보내었다. 회담에서 장봉이 감택을 조롱하고 면박을 주었는데, 감택은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하였다. 이에 설종이 대신 나서서 적극적으로 감택을 변호하였다. 가화 연간(232년~238년)에 감택은 중서령에 임명되었고 시중을 겸하게 되었다. 239년에 온갖 악행을 저지른 여일이 잡혔다. 모두가 잔인한 형벌을 내림이 마땅하다고 강하게 주장하였으나 감택과 고옹만이 법에 따라 여일을 처벌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42년에 감택은 태자태부에 임명되었고 중서령을 겸하게 되었다. 그는 《예기》의 문장과 주석서들의 내용을 쉽게 풀고 간략하게 줄여 기술한 책을 제작하여 손화손패를 가르쳤으며, 예기에 의거하여 왕자들을 예우하기 위한 의식을 제정하였다.
조정에서는 유가의 경전에 대해 의문점이 생기면 모두 감택을 찾아가 그의 의견을 구했을 정도로 감택은 유학에 관해서 깊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때문에 그는 도향후에 봉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택은 늘 겸손하였고 진실하였다. 그는 사람간에 신분의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사람들을 대등하게 예로써 대하였고 타인에 대한 흉이나 약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더불어 감택은 학문이 깊어 보이는 외모를 지닌 사람은 아니었지만 견문이 한없이 넓어 《건상역주》라는 역서를 저술하였다. 다른 사람을 자로 재듯 따지고 비판하기를 즐겨하였던 우번 마저 감택의 능력을 인정하였는데, 우번은 감택을 촉의 양웅에 비유하며 매우 뛰어난 인재라고 평하였을 정도다. 감택은 243년에 죽었는데, 그의 부고를 접한 손권은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며칠간 식음을 전폐했다고 한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적벽대전에서 주유황개의 고육계를 곧바로 간파해냈다. 하여 곧바로 황개를 병문안 가서 사실을 확인하고, 이어서 황개로부터 항복하겠다는 편지를 조조에게 전해달라는 역할을 맡는다.
이후 어부로 변장해서[2] 조조에게 일부러 잡혔고, 그 때 황개의 편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조조는 "항복하겠다는 글에 항복하는 날짜와 위치가 안 적혀 있다."며 감택의 목을 치라고 하고, 이에 감택은 일단 웃음으로 허세를 부리고 조조를 "무식한 놈, 이대로 싸우면 주유한테 잡히겠다."고 정신없이 깐 뒤에 "애초에 항복이라는 게 남들 모르게 하는 건데 섣불리 날짜 정했다가 변이 생겨서 이쪽은 행동하는데 저쪽에서 행동하지 않으면 큰일 아냐."라며 조조가 그의 말을 믿게 했다. 이때 타이밍 좋게 채중채화의 황개가 주유에게 곤장을 맞았다는 밀서가 도착한 덕분에[3] 더욱 조조가 믿게 되었다.
이에 감택은 황개에게 연락을 전한다는 명목으로 다시 동오로 되돌아왔고, 이후엔 감녕의 영채에 가서 채중과 채화를 속인 뒤에 감녕도 항복한다는 밀서를 전하게 했다.[4] 그리고 황개, 감택, 감녕 등 '''3명이나''' 연달아 항복하자 이에 의구심을 느껴 장간이 다시 동오로 오는 계기를 만든다.
이후 관우의 원수를 갚으러 유비가 침공하자 육손을 추천한다. 장소와 고옹 등이 말렸지만, 감택은 이때 "내 일가족을 걸고 그가 꼭 필요한 인재임을 증명하겠습니다!"라고 하여 육손이 채용될 수 있게 했다.[5]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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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 10
삼국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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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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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4 일러스트
삼국지 시리즈에선 전형적인 책사+내정 요원으로, 통솔력, 무력은 바닥이고 지력, 정치력은 80대이다. 몇몇 시리즈에서는 자신이 지은 《건상역주》를 가지고 등장한다. 말빨로 조조를 농락한 연의 내용을 구현하여 후기작들에서는 설전에 관련된 특기를 가지고 나오기도 한다.
적벽대전 때의 낚시꾼 코스프레를 하고 조조 진영을 찾아가는 장면 때문에 4탄과 12탄에서 삿갓을 쓴 일러스트로 나온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4/무력 50/지력 86/정치력 86으로 B급 문관이다. 투함, 혼란, 매도, 고무를 가지고 있다. 내정과 전투 양면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장수이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4/무력 48/지력 83/정치력 88/매력 73에 논파, 도발 등을 보유하여 설전에서 좋다. 감택의 저서 건상역주를 들고 나오는데 건상역주는 삼국지 10에선 지력을 1 올려준다. 전쟁사 모드 적벽대전 편에서 역사대로 조조를 설득하러 가는데 이때 플레이어가 조조일 때 설전으로 감택을 이기면 오히려 연합군을 역관광보낼 수 있다. 그런데 능력치, 특기 차이가 나다보니 조조로 감택 바르기가 상당히 쉽다. 물론 반론이 없으면 감택이 도발로 조조을 발라버리는 경우도 있다. 특기는 상업, 유인, 혼란, 천문, 항변, 반박, 논파, 도발, 명사, 간첩. 총 10개다.
삼국지 11에서는 '논객'이라는 특기가 있는데, 자세한 것은 논객 참고. 성격이 대담이라서 안 그래도 지력도 높고 화술도 다 가지고 있고 해서 설전 최강이다. 등지, 제갈근은 이 사람보다 지력은 높지만 성격이 냉정이라서 감택이 더 우수하다. PK에서는 논객 특기가 크게 약화되어서 안습하지만 감택의 능력치가 좋기 때문에 나름대로 쓸 만하다. 여담으로 일러스트가 콧수염과 턱수염을 동시에 기르고 있다.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3/무력 49/지력 83/정치력 86으로 여전히 좋고 전법은 지력상승으로 좀 잉여하지만, 감택의 진정한 힘은 특기에 있다. 상재, 경작, 명사, 수집, 인맥, 변설, 군사 라는 내정 관련 특기는 전부 다 갖고 있는 인물이다. 능력치가 90 이상인 장수도 이렇게 특기가 다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시장, 농원, 구인소, 외교관 그 어디에서도 제몫 이상을 해주며 보유 지책도 점량, 망기, 위보, 원망으로 참군으로나 비책발동에도 정말 좋은 장수로 전투 빼고는 다 해 먹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일러스트를 보면 범용한 얼굴에다 어부로 변장해 있는 모습이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농업 7, 문화 3, 설파 7, 교섭 6, 언변 7, 수영 3. 중신특성은 원정보좌이고 전수특기는 농업으로 전법은 위보교란. 전작과는 달리 상업 특기가 없어서 아쉽다. PK로 한다면 상업 특기를 추가해주고 전수특기는 언변으로 바꿔주자. 적벽대전 무렵 조조와 설전을 벌인 일을 생각하면 언변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지 14에서는 일러스트가 다시 11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경되었는데 자세히 보면 두 손을 펼치고 있으며 능력치는 통솔 43, 무력 49, 지력 83, 정치 86, 매력 73이다. 개성은 안목, 논객, 학자, 소욕, 주의는 예교, 정책은 종횡술 Lv 4, 진형은 안행, 정란, 투석, 전법은 업화, 도발, 치료, 정란, 구축, 친애무장은 손화, 육손, 정고, 조달, 황개, 혐오무장은 없다.
삼국전투기에선 X-MEN비스트로 등장. 그래서인지 인물 설명도 생긴 건 짐승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손권 진영에서 한결같은 상식인 포지션을 맡은 캐릭터다. 적벽 전투 (8)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며 선행 등장.
적벽 전투 편에서는 황개의 (거짓) 투항을 전달하는 사자로서 조조에게 찾아갔다. 조조와 대면하면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쫄았다는 티를 대놓고 내서 조조에게 의심을 사지만, 조조가 너무 아마추어스러워서 오히려 솔직해 보인다고 알아서 넘어간 덕분에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다. 이후 조조가 항복을 승인하며 약속을 잡자고 하자, 약속을 미리 잡으면 너무 위험하니 자신들 쪽에서 적당한 날짜를 통보하겠다고 했다.
유수구 전투 편에서는 조조군이 남하한다는 소식을 손권에게 전달했으며, 조조군의 대략적인 규모를 손권에게 전했다.
삼국전투기에서 제갈근이 병사하는 낙곡 전투(1)에사 고옹이 뭔가 험한 꼴 당하기 전에 탈출하는 기분 안 들어요?라는 대사를 하는데 반준, 제갈근, 감택에게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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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도 등장하여 어부의 패기를 보여준다. 다만 2차 창작으로 조조를 감택이 설득하는 장면을 감택이 계속 설득했는데 조조가 이놈의 목을 쳐라로 초지일관하게 바꿔버린 짤방도 있다.
화봉요원에서는 농가 출신으로 역법을 깊이 꺠우쳐 수경부에서 천문을 가르쳤고 제갈량이 그에게 천문을 배웠다고 한다. 수경부가 문 닫은 후로는 손가에 초청받았고 사람됨이 완고해 적벽대전에 가까운 시기에 장소와 화목하게 지내지 못해 홧김에 자리에서 물러나 산천에 은둔했다고 한다.
감택은 적벽에서 전투가 벌어지려던 차에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가후가 마은(馬恩), 정초(程超) 등을 첩자로 보내 감택을 등용하기 위해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해서 감택은 조조군에 들어간다. 감택이 은둔한 것은 이 때 조조의 의심을 풀고 잠입하기 위해 한 행동이었으며, 주유의 지시를 받고 마은, 정초를 감시하는 육원(陸原)에게 조조의 의심을 뚫고 잠입에 성공해 조조군의 출병 시점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전하라고 한다.
그러나 조조 측에서 손권 측의 계략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화공에도 대비한데다가 손권 측이 공격할 때 감택은 교수형으로 그 시체가 나무에 걸린 상태로 물 위에 조조군이 방치되어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것을 마신(馬信)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였는데, 사실은 그 시체는 사마의의 사주를 받아 좌자가 만든 가짜였고 육손이 전투 중에 마신에게 그 시체를 버리게 했다. 감택은 감옥에 교수형을 받기 전에 사마의가 풀려나게 해주면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1] 돈 받고 이름 걸어준 채 책 대신 써주는 게 아니라,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책을 쓰는 방법인 필사를 말한다.[2] 김홍신 평역판에 의하면 평상시 장강에는 어부들이 많았는데, 제갈량노숙이 수채에서 화살을 도둑질해 간 이후로 비상경계가 내려져서 거동이 의심스러우면 바로 잡아갔다고 한다.[3] 단, 채중채화는 연의에서만 나오는 가상인물이다.[4] 황개가 고육계로서 주유에게 벌을 받았을 때, 감녕은 이를 말렸다가 억울하게 맞고 쫓겨났다.[5] 어째 손권이 촉을 변호할 때 "짐의 가족을 걸고 촉이 배신하지 않았음을 보증한다."고 말한 걸 오마쥬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