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봉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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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고재봉.
1. 개요
2.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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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뉴스 제 443호-살인귀 `고재봉` 체포
고재봉 대대장 일가족 도끼 살인 사건 나무위키와는 상반된 사건일지가 수록되어있다
1963년 10월 19일, 강원도 인제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 피해자와 범인이 모두 군 관련 인물이었다. 병-간부 사이의 불화가 극단에 달해 벌어진 사건으로, 일종의 프래깅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고재봉은 공관병으로 박병희 중령의 관사에서 지냈는데, 박병희 중령의 가족은 고재봉을 머슴처럼 부려먹었다. 장작을 패게 하고, 물을 길어오게 하는 등 말 그대로 조선시대 머슴이나 할 법한 일을 시키고,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은 대대장 관사의 공관병이었던 고재봉 상병이 박병희 중령의 관사에서 여러가지 일을 끝낸 후 서재에서 나오다가, 부엌에 고기 한 근이 신문지에 싸여있는 것을 보고 훔쳐 들고 나왔는데, 이것이 가정부에게 발각된 것이다. 가정부가 그를 보고 소리를 질렀고, 고재봉은 자신 옆에 있던 도끼로 이걸 알리면 죽이겠다며 가정부를 위협하였다. 그러나 가정부는 이를 그대로 박병희 중령에게 알렸고, 박병희 중령은 그 동안 관사에서 사라진 물건들도 전부 고재봉 상병이 훔쳤다고 간주했고, 절도죄를 사유로 육군교도소에서 징역 7개월을 살게 만들었다.
고재봉은 이 사건으로 박병희에게 복수하겠다며 이를 갈았고, 출소하자 박병희가 있던 관사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그 사이에 박병희는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고 그 자리에는 신임 대대장 이득주 중령 일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를 미처 몰랐던 고재봉은 엉뚱한 이득주와 그의 부인인 교사 김재옥[1] 등의 일가족 5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만다.[2] 이후 고재봉은 귀금속 등을 훔쳐 서울로 도주했지만 시내에서 땅콩을 팔던 상인의 신고로 검거되었고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목사 안국선의 전도로 옥중에서 회심하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자신이 좀 더 일찍 예수를 알았더라면 사람을 죽이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형 선고 다음 해인 1964년 3월 10일 경기도 부천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찬송가를 부르며 죽었다고 한다.[3]

2. 여담


당시 유명한 사건이라 언론에 많이 보도되어서인지 30년 가까이 지나서 어느 중학교 교감선생이 퇴임식 때 "도끼 그만둡니다."라고 말한 실제 사례가 있다. 그 선생 이름이 바로 고재봉이라서 이 사건의 도끼와 얽혀 학교에서 별명이 도끼선생이었다고.
고재봉에 대하여 다룬 박삼중 스님의 책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나에겐 죄가 되어 죽습니다> 에서 이 사건을 자세히 다뤘다. 책에 따르면 고재봉은 60년대 당시 후진국이던 시절 가난하게 자라와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온 식구가 멸문당했을 박 중령은 이 사건에 기겁하고 마음고생하다가 결국 오래 가지 못하고 예편해 군직에서 물러났다는 후일담도 나왔다.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 갑질 사건 당시, 일부 언론들이 이 사건을 다시 보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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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전쟁 초기 동락리 전투에서 열세였던 국군에게 북한군의 동향을 알려주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당시 소위였던 이득주와 연이 닿아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2] 가족은 총 6명이었으나 큰아들은 당시 친척집에 있어서 참변을 면하였다.[3] 이후 안국선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간증집으로 엮어 책(《전도하는 사람들》)으로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