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정씨(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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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인종의 후궁. 송강 정철의 누나다.
2. 생애
1533년(중종 15) 당시 세자였던 인종이 만 20세가 되도록 후사가 없었다. 이에 중종이 우려하여 후궁을 간택하면서, 정씨가 양제(良娣)[1] 로 책봉되었다. 누나가 궁중에 들어간 인연으로 막내동생인 정철은 경원대군과 절친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중종은 1536년에도 세자를 위해 양제를 간택하지만, 정씨는 물론이고 인종의 후궁 중 누구도 자식을 낳지 못했다.
1544년(중종 39) 정씨의 나이 25세 때, 동궁에 불이 났는데 정씨만이 홀로 동궁으로 달려가 세자가 아끼는 서책들을 구한 적이 있었다. 또한, 궁궐 안에 요기(妖氣)가 있어 검은 기운이 지나가자 세자가 창문을 닫고 싶으나 시킬 이가 없었는데, 정씨만이 홀로 놀라지 않고 문을 닫았다고 한다. 당시 30세의 인종도 무서워하는 상황에서 그녀 혼자만이 당황하지 않고 나섰다고 하니 무척이나 기가 센 여자였을 것이다.
인종이 즉위하자 내명부 종2품 숙의에 올랐다. 한편 딸이 세자의 후궁으로 들어간 덕분에 아버지와 형제들은 벼슬을 얻게되고[2] , 막내 여동생은 계림군 이유[3] 와 혼인한다. 그러나 인종은 즉위 9개월만에 후사도 없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정씨는 과부가 된 것도 모자라서 을사사화에 휘말린다. 그녀의 아버지를 비롯해 어린 정철까지 유배를 가고, 여동생의 남편 계림군은 처형당하는 비극까지 겪게 된다.
1551년(명종 6년) 명종이 순회세자를 낳은 것을 기념하여 그녀의 아버지 정유침, 형제인 정철과 정소를 유배지에서 풀어 주었고, 정씨의 품계도 정2품 소의로 올려주었다. 뒷날 그녀의 친정 일가는 조부의 묘소가 있는 전라남도 담양으로 이주한다.
1566년(명종 21) 47세의 나이로 인달방 사저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