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회세자

 



'''명종조 조선 왕세자
순회세자 | 順懷世子'''

'''작호'''
왕세자
'''시호'''
순회(順懷)
'''본관'''
전주(全州)
''''''
곤령(崐齡) → 부(暊)
'''부왕'''
조선 명종
'''모후'''
인순왕후 심씨(仁順王后 沈氏)
'''부인'''
공회빈 윤씨(恭懷嬪 尹氏)
'''자녀'''
없음
'''묘소'''
순창원(順昌園)
'''재위
기간
'''
'''조선 왕세자'''
'''음력'''
1557년 8월 17일# ~ 1563년 9월 20일
'''양력'''
1557년 9월 9일 ~ 1563년 10월 6일
(6년 27일 / 2,219일)
'''생몰 기간'''
'''음력'''
1551년 5월 28일 ~ 1563년 9월 20일
'''양력'''
1551년 7월 1일 ~ 1563년 10월 6일
(12년 3개월 5일 / 4,481일)
1. 소개
2.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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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순회세자(順懷世子)'''
조선 명종인순왕후 심씨의 외아들이며, 건국이래 160여년 동안 이어져온 태조 이성계의 마지막 '적통'이다
1555년 세자에 책봉되고 황대임의 딸을 세자빈으로 결정했으나, 황씨가 맹장염으로 추정되는 심한 복통을 호소하여 가례를 1년 동안 미루게 되자 후궁인 양제로 강등시키고,[1] 윤옥의 딸[2]세자빈을 바꾸어 가례를 올렸으나, 세자는 얼마 되지 않아 1563년, 만 12살에 요절하고 만다.[4] 시호는 순회이며, 1603년 신주가 만들어졌다. 묘는 서오릉에 있는 순창원으로, 2006년 도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2. 가계


부인
공회빈 윤씨(윤옥의 딸)
양제 황씨(황대임의 딸)

[1] 본인 입장에선 미래의 왕후가 될 세자빈에서 팔자에도 없던 후궁이 되어버렸으니 원통할 만하지만, 애초에 아버지의 배경으로 지병을 숨기고 간택에 참여한 것인 데다가 무사히 가례를 올렸다 해도 가례를 1년이나 미룰 정도로 허약한 몸이라 후손을 낳았을지도 불명하다.[2] 공회빈 윤씨 문서 참고.[3] 창빈 안씨 소생[4] 그리고 이 때문에 초기 조선 왕조 직계는 단절되어, 명종은 이복형 덕흥대원군[3]의 셋째아들인 조카 하성군에게 보위를 물려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