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시 가문

 

1. 개요
2. 역사
3. 목록
4. 기타


1. 개요


Gracie family
브라질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시작된 격투기 가문.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창시하고 전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적인 종합격투기가 이 가문의 주짓수 홍보를 위한 세계구급 도장깨기 행보에 인해 생겼다고 할 수 있을 정도.

2. 역사


주짓수의 기본 뿌리는 유도로서, 강도관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의 초대 제자였던 마에다 미츠요가 브라질에서 가르친 것이 시초다.
브라질에 정착한 마에다 미츠요는 제자들을 길렀는데 그 중 한 명이 주짓수의 창시자 '''카를로스 그레이시'''이다. 카를로스의 아버지 가스타우 그레이시는 브라질의 지역 유지로 마에다의 브라질 정착에 도움을 주었고, 보답으로 마에다는 아들 카를로스에게 약 3년간 유술을 가르친다. 카를로스와 형제들이(다른 형제들은 마에다를 직접 만난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장을 열어 문하생들을 가르치며 주짓수가 시작되었다.
주짓수 역사에서 카를로스만큼 중요한 인물이 바로 엘리오 그레이시이다. 카를로스의 동생인 엘리오는 카를로스에게 주짓수를 가르쳐주길 요청했지만, 카를로스는 몸이 왜소하고 허약한 엘리오에게 무술은 맞지 않다며 거부했다. 하지만 엘리오는 도장을 엿보며 어깨너머로 주짓수를 익혔으며 자신에게 맞게 기술들을 변형 / 창조했다. 그리고 카를로스가 도장을 비웠을 때 엘리오가 몰래 사범으로 교육을 진행했고, 수강생들에게 평가가 좋았다(...) 결국 카를로스는 엘리오가 주짓수를 배우는 것을 허락한다. 나중에 카를로스가 사업에 집중하느라 도장 운영엔 손을 땐 뒤엔 도장을 맡기도 했다.
그 후 엘리오는 마에다 미츠요를 흉내내어 브라질 내의 여러 무술 강자들에게 도전하고, 유도가와 레슬러를 포함한 상대 대부분을 꺾으며 좋은 실력을 보여준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승리만 있던건 아니다. 무승부가 섞여 있었고 승리도 압도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이 때까지 공식적 패배는 없고 다수의 유도가들을 이긴것은 사실.
이때 유도계 1인자 기무라 마사히코가 1951년 상파울로 신문사의 초청으로 가토, 야마구치등과 브라질에 들어와 있었다. 이에 가토를 비롯한 유도가들을 꺽은(카토를 기절시키기까지 했다.) 엘리오와 기무라의 대결이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초반에 완력 차이에 밀려 메쳐졌고 10분여만에 엘리오는 팔이 부러지고 세컨측의 타월 투척으로 기무라가 승리했다.[1]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를 살펴보자면 일단 룰은 유도룰이 아니고 타격 금지에 한쪽이 항복할 때까지 싸우는 룰이었다. 그런데 기무라는 기존에는 그냥 유도가로 알려졌지만, 입문은 일본 유술인 타케우치류로 했고 그 뒤에 고등전문학교에서 수련했다. 또한 프로유도라고 해서 좀 더 실전적인 유도를 추구했는데 여기 룰이 꺽기 조르기를 포함해서 한쪽이 항복해야 이기는 룰이었다. 룰 자체도 기무라에게도 익숙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기무라는 물구나무 서서 도장을 몇 바퀴나 돌거나 손가락 힘으로 동전을 반으로 접을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였고, 엘리오는 워낙 작고 말라서 형들이 '''너는 무술하지 마라'''라고 하는걸 '''오로지 기술로 극복'''하여 파이터가 된 사람이다. 둘의 몸무게 차이는 20kg 였다.
결과적으로 룰도 서로 익숙하고 기술적으로 차이가 없고 힘은 기무라가 훨씬 강했던 것. 기무라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이 싸움은 당시 브라질 전체에 굉장한 관심을 모았으며[2] 이를 통하여 엘리오는 브라질에서는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도장과 유파를 만들게 되었고 아들 호리온에 의해 그레이시 주짓수 상표 등록을 하게 되어 오직 엘리오의 유파만이 그레이시 주짓수라는 상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이후에 법적인 조정을 거쳐 다른 유파들도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상표로서의 그레이시 주짓수의 시작이다.
그 후 호리온과 힉슨 그레이시가 주축이 되어 카를로스의 장남인 칼슨과 연동하여 자기들 도장깨기 모음집인 그레이시 액션 비디오를 미국에 발매하여 크게 인기를 끌었으며, UFC 대회를 개최한 뒤 세계적인 강자들을 모아 자기들 중에서 딱 보기에 가장 약해 보이는 호이스 그레이시를 출전시켜 UFC 대회를 우승하게 하는 등의 눈에 띄는 방식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호이스 그레이시힉슨 그레이시의 전설 때문에 지명도가 급격히 상승하여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엘리오가 창시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최대 다수파는 카를로스 계열'''이며, 엘리오 유파의 규모는 그저 그랬다. 또한 호리온이 그레이시 상표를 독점했기 때문에 지금도 주짓수계에서 두고두고 까이고 있다. 엘리오가 위대한 무술가이며 가드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발리투도에 나간 공로자인 것은 논쟁의 여지 없는 사실이나, 주짓수의 창시자는 아니다.

3. 목록


후손이 굉장히 많아서 주요인물/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사람들 위주로 정리한다.

4. 기타


사쿠라바 카즈시가 전성기 때 많은 그레이시들을 꺾어서 "그레이시 헌터"라고 불리기도 했다.

[1] 경기중에 우세하게 된 기무라는 엘리오에게 '무리하지 마라' 는 등의 말을 했지만, 엘리오가 끈질기게 버티자 어쩔 수 없이 나중에 기무라로 불리게 되는 '팔 얽어 비틀기'의 한 종류를 걸어 팔을 부려트린다.[2] 관객만 20000명에 심지어 브라질 대통령까지 경기를 보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