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조 그레이시
Renzo Gracie
종합격투기 관련 인물
1. 전적
- 무승부 : 쇼지 아키라
1999년에는 RINGS 킹 오브 킹스 토너먼트에 참가하여 모리스 스미스를 누르고 블럭 우승을 차지하지만 2000년 2월 본선에서 만난 타무라 키요시에게 패배했다. 8월에는 PRIDE 10에서 '그레이시 헌터' 사쿠라바 카즈시를 요격하기 위해 나섰지만 오히려 기무라에 걸려 서브미션으로 패배하는 굴욕을 당했고, 2001년 3월의 PRIDE 13에서는 댄 핸더슨의 폭탄에 걸려[1] 떡실신을 당했다.[2]
2002년 6월 PRIDE 21에서는 소극적인 아웃파이팅을 펼치는 슌고를 상대로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한 채 패하고 말았다. 오야마는 그라운드 게임을 피하면서 노골적으로 헨조를 도발했고 헨조도 오야마에게 침을 뱉으며(...) 응수, 그레이시 가문과 U-계열 프로레슬링간의 대립에 한층 불을 지폈다.[3] 2003년 10월에는 PRIDE 무사도에서 카를로스 뉴턴에게 패했고, 2005년 7월에는 K-1 하와이 대회에서는 BJ 펜을 상대로 초반 의외의 선전을 보였으나 타격에서 말리고 체력이 고갈된 끝에 아쉽게 졌다.
2006년 9월 미국의 IFL에서는 팻 밀레티치와 노인정 매치를 벌여 1라운드 길로틴 승을 따냈고, 12월에는 카를로스 뉴턴을 상대로 리밴지에 성공했다. 2007년 2월에는 Elite XC에서 프랭크 샴락과 대결했으나 샴락이 4점 니킥으로 실격패하는 바람에 승리를 챙겼다.
2010년 4월 UFC 123에서 맷 휴즈와 대결했으나 휴즈에게 타격으로 털리며 KO패를 당하고 만다.
원FC에서 콘도 유키를 서브미션으로 잡고 오랜만에 승리를 하였다. 8년 만의 승리.
2. 파이팅 스타일
그레이시 바하의 칼슨 그레이시 주니어 휘하에서 BJJ 블랙 벨트를 땄다. 검은띠 6단으로 그라운드 테크닉이 훌륭하고 레슬링이나 타격도 나쁘지 않아 90년대 ~ 0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균형이 잡힌 파이터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MMA 테크닉이 발전하고 선수들의 기량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점점 설자리를 잃게 되었고, 전성기를 훌쩍 넘긴 지금은 그냥 고급 떡밥.
3. 기타
MMA에서의 헨조는 본인의 활약보다는 뛰어난 후진을 양성했다는 것에 그 의의를 둘 수 있겠다. 맷 세라, 히카르도 알메이다, 호저 그레이시, 로이 넬슨 등의 선수들을 배출했고, 조르주 생 피에르, 크리스 와이드먼 등의 선수들도 그의 캠프를 거쳐갔으며, 아랍 에미리트의 왕자인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햔을 가르치기도 했다.[4] 쾌활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의 명 트레이너로 이름이 높으며(다만 다혈질에 승부욕이 강하기 때문에 행실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도 흔하다) IFL에서는 역시 희대의 명 트레이너인 팻 밀레티치와 트레이너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헨조의 도장은 하체 관절기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은 혁신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헨조 그레이시 본인의 업적이라기보다는 헨조의 직속 제자인 유명 코치 존 다나허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5] 존 다나허는 헨조 그레이시 아카데미에서 주짓수를 시작하여 아직까지 헨조 도장에 적을 두고 있는 사범으로, 본인은 선수 경력이 전혀 없지만 체계적이고 디테일한 하체 공격 시스템을 연구해내고 이를 바탕으로 소위 '다나허 데스 스쿼드'라 불리는 에디 커밍스, 게리 토논, 고든 라이언을 단시간 내에 세계챔피언 수준으로 지도해내어 유명세에 오른 인물이다. 기존 IBJJF 위주 주짓수 규칙체계에서 하체 관절기는 패스가 실패했을 때나 서로 다리가 엉켜 넘어졌을 때에 임기응변적으로 들어갈 때나 쓰는 사파 기술 취급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존 다나허의 하체 공격 시스템은 이런 하체 공격 기술들을 기존 주짓수 체계의 상체 공격 체계처럼 하체를 서로 얽어메어 포지션을 만들고 이를 유지하며 그 결과 서브미션을 얻어내는 기술체계로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하체 공격 시스템'은 힐훅(무릎 비틀어 꺾기 기술) 등 하체 기술에 제약이 없는 ADCC 등의 국제대회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였으며, 헨조 그레이시/존 다나허의 제자인 고든 라이언이 '노기 최강자'로 우뚝 서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존 다나허 개인의 혁신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역시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헨조 그레이시 아카데미 분위기가 크게 한몫을 하였다는 것이 존 다나허 본인의 증언이다. 헨조 그레이시는 제자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말아라 라는 식의 간섭을 하지 않았고, 무슨 기술을 어떻게 연습하든 간에 대체로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존 다나허와 그 직속 제자들이 주류 주짓수계에서 천대받던 하체 관절기를 연구하고 다듬어 단순 '하체 관절기'가 아닌 '하체 공격 시스템'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이 그레이시 주짓수의 힉슨 그레이시, 호이스 그레이시 등이 어딘가 비밀스러워 보이는 것과는 달리 헨조 그레이시 아카데미는 매우 개방적이고 언론에게도 우호적인지라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다. 제자들에게도 인망이 높아 BJJ와 MMA에 걸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주짓수 그랜드 마스터인 홉슨 그레이시의 차남으로 하이안 그레이시의 형, 일설에 의하면 하이안의 고삐를 채울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비토 벨포트와는 사촌간이다.
2012년 9월 8일 뉴욕 10번가에서 자신을 따라오던 불량배 2명을 가볍게 제압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량배를 목격하고부터 제압하기까지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트위터 중계를 했다... #
꽤나 동안인데 목소리도 좀 하이톤이다.
[1] 태클을 시도하는 헨조의 머리를 잡았는데 이게 '''턱 쪽에 명중했다''' 언어로는 설명하기 힘드니 직접 영상을 보시길 바란다. 굉장히 특이한 넉 아웃 장면이다.[2] 이는 그레이시 일족이 메이저 대회에서 기록한 첫 KO패다...[3] 이후 오야마는 PRIDE 22에서 하이안 그레이시의 암바에 팔이 부러지는 수모를 겪는다.[4] ADCC 창설자인 셰이크 타흐눈 빈 자예드 알 나햔의 형제.[5] 다만 하체 관절기의 패러다임을 바꾼 업적은 존 다나허 혼자만 이룩한 것이 아니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짓수 선수 라클란 자일스와 그 제자 크레이그 존스가 기여한 바 역시 대단히 크다. 다만 그 디테일함이나 종합적인 면에서 존 다나허의 시스템에는 약간 모자란 감이 있다. 크레이그 존스는 미국으로 건너와 존 다나허와 함께 훈련하며 두 하체 공격 시스템을 종합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