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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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열린 선무도 세미나)
불교금강영관(佛敎金剛靈觀). 불교 수행법의 일종으로 일반적으로 불교 무술로 많이 알려져 있다.
불가 무술로 흔히 선무도(禪武道)로 알려져 있다. 선무도 대금강문은 금강영관의 여러 유파 중 하나이며 본원은 경주시 골굴사에 있다. 참고로 그 안에는 선무도 대학도 있다. 선무도가 주로 알려진 이유는 무도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친숙한 것과 적운스님 계통이 방송을 많이 탔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이른은 창시자이자 큰 스승인 양익스님은 불교금강영관이라고 칭했다.
선무도 https://www.sunmudo.org
양익 스님(兩翼, 1934-2006)[1] 이 창안한 무술로, 원래 이름은 '불교금강영관' 이라 하여 신체적인 武외에 정신적인 참선과 수련도 겸하는 '관법수행'의 일종이라 다른 무술들의 사고와는 체계를 약간 달리한다. 대외적으로는 1971년부터 부산시 범어사 청련암에서 전수하기 시작하였다.
양익 스님은 어릴 때부터 젊은 시절까지 태권도를 했는데, 몸의 탄력이 매우 좋아서 솟구치는 발길질을 매우 잘 했고 그런 기술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당시 태권도 도장이던 청도관에서 '허 사범'이라며 유명했다고. 명동의 깡패들도 겁을 먹을 만큼 유명했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에 재학 중 사시 2차시험 준비를 하러 산에서 공부하다가, 동산 스님을 만나 출가하여 범어사에서 1962년(29세)에 사미계를 받고, 64년(31세)에 비구계를 받았다. 출가한 후 무술적으로 자신이 쓰던 기법과 불가 밀교의 수행방법을 결합하여 '불교금강영관'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법을 만들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워낙 무술 쪽으로 쏠려[2] 무술로 더 퍼졌지만, 원래는 불교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보아야 한다.
양익 스님 제자는 승려제자와 속가제자가 존재한다. 승려제자로는 원욱 스님ㆍ적운 스님ㆍ법찬 스님ㆍ안도 스님ㆍ광원 스님 외 20여 명이 있고, 속가제자로는 최종열 법사 외 20여 명이 있다. 제자 중 원욱스님이 1기로서 제일 선배다. 지금은 양익 스님이 좌탈원적했고 제자들이 제각각 독립적으로 불교금강영관을 전수한다. 원욱 스님은 선관무, 적운 스님은 선무도, 법찬 스님과 광원 스님은 관선무, 안도 스님은 불무도, 재가제자이며 '산사에서 무예를 배우다' 저자인 최종열 법사는 부산에서 불교금강영관 계승회(금강영관최종열무예원) 단체를 발족하여 알리지만, 명칭만 다를 뿐 수련체계는 똑같다.
삼국시대부터 전해진 전통무술 운운하지만 역사적으로 역사적으로 양익 스님이 창시한 현대무술이 분명하다. 관선무란 명칭은 양익 큰스님이 상좌 광원 스님이 교본을 출판할 때 직접 불교금강영관을 '관선무'라고 해야 한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창시자 양익 스님은 2006년 5월 6일, 범어사에서 앉은 채로 입적했다. 향년 73세(만 71세), 법랍[3] 43세[4]
무술로서도 막강하다고 하는데 1970~80년대에 수련하던 다른 무술의 사범들도 선무도 계통 수련을 한 스님들이나 그 아래 법사들이 강하다고 평하므로, 링 위에서가 아니라 정말 그 시절 실전에서 강했던 듯하다.
선무도 계통 수련방법이 몸 전체를 조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요가나 다름없는 체조들과 느리게 하면서도 몸 전체의 근력을 강화시키는 형들을 하는데, 이 형들을 반복하다 보면 근력과 근지구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실전 떡밥은 의외로 '불가에서는 싸움이 잦았던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병철 저서 ≪고수를 찾아서≫에도 불가의 스님이었던 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절에서 기거하던 주먹패들이 주지스님이나 다른 스님들에게 행패를 부리자 무력으로 제압해버린 무용담이 있다.
당시에는 사회의 주먹패거리들이 경찰의 단속이나 라이벌 조직과의 마찰을 피해서 불가의 자비심을 이용해 절을 찾아들어 숨어드는 경우가 왕왕 있었던 모양인데, 자비심에 기대어 찾아온 자들을 무작정 적대시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깡패가 절에 들어온다고 하루 아침에 얌전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을 통제할 강력한 무력이 필요했기에 건장한 일부 스님들이 무술적으로 단련을 받았던 듯하다. 절은 산 속에 있어서 안 그래도 부족했던 경찰력이 미치기 어려웠고, 당하는 쪽도 떳떳하지 못한 주먹패다 보니 실전이 일어나기 좋은 무법지대가 형성된 것. [5]
굉장히 느리게, 부드럽게 전개되는 각각의 형[6] 들은 신체를 조화롭게 만든다. 불가나 선가에서 내려오던 체조들은 '선요가'라고 칭한다. 신체적 조화를 이루는 경우가 많아 신체조화가 이루어지니 몸과 정신 자체가 강해지는 그런 구조. 물론 전문적으로 무술가로 키우는 경우도 있는데, 버티면 슈퍼맨, 못 버티면 병신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련이 혹독하다고 한다.
몸에 좋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방편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수행법. 다른 기수련 뭐 이런 것들이 애초에 남보다 우월한 무슨 특이공능을 바라고 시작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그런 욕심에 되지도 않을 호흡수련으로 괴력난신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불가의 참선은 애초에 자신을 잊고 내면으로 가는 탐험, 욕심을 버리는 쪽에 초점을 맞추기에 불가의 참선은 제일 부작용이 없기로 유명하다. 또 도인체조들이나 각 승형은 몸의 균형을 생각하며 수련이 되기 때문에 몸과 정신 양쪽에 있어서 선무도 계열 수련이 매우 좋음은 확실한 사실이다. 단기 지도자 연수와 같은 폐해가 없기에 지도자의 수준이 상향평준화[7] 되었음도 장점.
2015년 6월 7일 역사저널 그날 77화에서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잠시 소개되기도 했다. 승려들이 평소 전통무술을 단련하여 왔기 때문에 전투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선무도를 소개한다.
최근에는 외국인 수련생들도 많이 찾는다. 불교 전파 차원에서 행하는 템플 스테이(Temple Stay)의 일환으로 외국인들이 선무도를 체험하고 가기도 하는데, 단순히 체험 차원에서 끝내지 않고 수련을 위해 골굴사에 남는 외국인들도 더러 있다.
영화 달마야 놀자의 등장인물 청명 스님이 무술 관선무의 달인으로 나온다. 달마야 놀자는 광원스님이 관선무 지도와 시나리오를 검토 수정 하였다. 달마야 놀자에 광원스님의 역할이 컸다.
영화 신장개업에선 김승우가 분한 주인공 왕사장이 연고 없는 인육제공처를 찾다 스님을 잡으려 하는데 되려 관선무로 개처럼 두들겨 맞는다.
(프랑스에서 열린 선무도 세미나)
1. 개요
불교금강영관(佛敎金剛靈觀). 불교 수행법의 일종으로 일반적으로 불교 무술로 많이 알려져 있다.
불가 무술로 흔히 선무도(禪武道)로 알려져 있다. 선무도 대금강문은 금강영관의 여러 유파 중 하나이며 본원은 경주시 골굴사에 있다. 참고로 그 안에는 선무도 대학도 있다. 선무도가 주로 알려진 이유는 무도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친숙한 것과 적운스님 계통이 방송을 많이 탔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이른은 창시자이자 큰 스승인 양익스님은 불교금강영관이라고 칭했다.
선무도 https://www.sunmudo.org
2. 역사
양익 스님(兩翼, 1934-2006)[1] 이 창안한 무술로, 원래 이름은 '불교금강영관' 이라 하여 신체적인 武외에 정신적인 참선과 수련도 겸하는 '관법수행'의 일종이라 다른 무술들의 사고와는 체계를 약간 달리한다. 대외적으로는 1971년부터 부산시 범어사 청련암에서 전수하기 시작하였다.
양익 스님은 어릴 때부터 젊은 시절까지 태권도를 했는데, 몸의 탄력이 매우 좋아서 솟구치는 발길질을 매우 잘 했고 그런 기술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당시 태권도 도장이던 청도관에서 '허 사범'이라며 유명했다고. 명동의 깡패들도 겁을 먹을 만큼 유명했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에 재학 중 사시 2차시험 준비를 하러 산에서 공부하다가, 동산 스님을 만나 출가하여 범어사에서 1962년(29세)에 사미계를 받고, 64년(31세)에 비구계를 받았다. 출가한 후 무술적으로 자신이 쓰던 기법과 불가 밀교의 수행방법을 결합하여 '불교금강영관'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법을 만들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워낙 무술 쪽으로 쏠려[2] 무술로 더 퍼졌지만, 원래는 불교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보아야 한다.
양익 스님 제자는 승려제자와 속가제자가 존재한다. 승려제자로는 원욱 스님ㆍ적운 스님ㆍ법찬 스님ㆍ안도 스님ㆍ광원 스님 외 20여 명이 있고, 속가제자로는 최종열 법사 외 20여 명이 있다. 제자 중 원욱스님이 1기로서 제일 선배다. 지금은 양익 스님이 좌탈원적했고 제자들이 제각각 독립적으로 불교금강영관을 전수한다. 원욱 스님은 선관무, 적운 스님은 선무도, 법찬 스님과 광원 스님은 관선무, 안도 스님은 불무도, 재가제자이며 '산사에서 무예를 배우다' 저자인 최종열 법사는 부산에서 불교금강영관 계승회(금강영관최종열무예원) 단체를 발족하여 알리지만, 명칭만 다를 뿐 수련체계는 똑같다.
삼국시대부터 전해진 전통무술 운운하지만 역사적으로 역사적으로 양익 스님이 창시한 현대무술이 분명하다. 관선무란 명칭은 양익 큰스님이 상좌 광원 스님이 교본을 출판할 때 직접 불교금강영관을 '관선무'라고 해야 한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창시자 양익 스님은 2006년 5월 6일, 범어사에서 앉은 채로 입적했다. 향년 73세(만 71세), 법랍[3] 43세[4]
3. 실전
무술로서도 막강하다고 하는데 1970~80년대에 수련하던 다른 무술의 사범들도 선무도 계통 수련을 한 스님들이나 그 아래 법사들이 강하다고 평하므로, 링 위에서가 아니라 정말 그 시절 실전에서 강했던 듯하다.
선무도 계통 수련방법이 몸 전체를 조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요가나 다름없는 체조들과 느리게 하면서도 몸 전체의 근력을 강화시키는 형들을 하는데, 이 형들을 반복하다 보면 근력과 근지구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실전 떡밥은 의외로 '불가에서는 싸움이 잦았던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병철 저서 ≪고수를 찾아서≫에도 불가의 스님이었던 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절에서 기거하던 주먹패들이 주지스님이나 다른 스님들에게 행패를 부리자 무력으로 제압해버린 무용담이 있다.
당시에는 사회의 주먹패거리들이 경찰의 단속이나 라이벌 조직과의 마찰을 피해서 불가의 자비심을 이용해 절을 찾아들어 숨어드는 경우가 왕왕 있었던 모양인데, 자비심에 기대어 찾아온 자들을 무작정 적대시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깡패가 절에 들어온다고 하루 아침에 얌전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을 통제할 강력한 무력이 필요했기에 건장한 일부 스님들이 무술적으로 단련을 받았던 듯하다. 절은 산 속에 있어서 안 그래도 부족했던 경찰력이 미치기 어려웠고, 당하는 쪽도 떳떳하지 못한 주먹패다 보니 실전이 일어나기 좋은 무법지대가 형성된 것. [5]
4. 양생
굉장히 느리게, 부드럽게 전개되는 각각의 형[6] 들은 신체를 조화롭게 만든다. 불가나 선가에서 내려오던 체조들은 '선요가'라고 칭한다. 신체적 조화를 이루는 경우가 많아 신체조화가 이루어지니 몸과 정신 자체가 강해지는 그런 구조. 물론 전문적으로 무술가로 키우는 경우도 있는데, 버티면 슈퍼맨, 못 버티면 병신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련이 혹독하다고 한다.
몸에 좋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방편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수행법. 다른 기수련 뭐 이런 것들이 애초에 남보다 우월한 무슨 특이공능을 바라고 시작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그런 욕심에 되지도 않을 호흡수련으로 괴력난신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불가의 참선은 애초에 자신을 잊고 내면으로 가는 탐험, 욕심을 버리는 쪽에 초점을 맞추기에 불가의 참선은 제일 부작용이 없기로 유명하다. 또 도인체조들이나 각 승형은 몸의 균형을 생각하며 수련이 되기 때문에 몸과 정신 양쪽에 있어서 선무도 계열 수련이 매우 좋음은 확실한 사실이다. 단기 지도자 연수와 같은 폐해가 없기에 지도자의 수준이 상향평준화[7] 되었음도 장점.
5. 기타
2015년 6월 7일 역사저널 그날 77화에서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잠시 소개되기도 했다. 승려들이 평소 전통무술을 단련하여 왔기 때문에 전투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선무도를 소개한다.
최근에는 외국인 수련생들도 많이 찾는다. 불교 전파 차원에서 행하는 템플 스테이(Temple Stay)의 일환으로 외국인들이 선무도를 체험하고 가기도 하는데, 단순히 체험 차원에서 끝내지 않고 수련을 위해 골굴사에 남는 외국인들도 더러 있다.
영화 달마야 놀자의 등장인물 청명 스님이 무술 관선무의 달인으로 나온다. 달마야 놀자는 광원스님이 관선무 지도와 시나리오를 검토 수정 하였다. 달마야 놀자에 광원스님의 역할이 컸다.
영화 신장개업에선 김승우가 분한 주인공 왕사장이 연고 없는 인육제공처를 찾다 스님을 잡으려 하는데 되려 관선무로 개처럼 두들겨 맞는다.
[1] 속명은 허남익, 강원도 홍천군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만나 귀의, 1964년에 동산 스님을 계사로 하여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승려가 된 뒤 1971년에 '금강영관'을 창시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쳤다.[2] 또한 시대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도 있다.[3] 승려가 비구계를 받은 해를 1년으로 삼아 헤아리는 나이.[4] 조계종에서 펴낸 자료에는 법랍이 45세라고 하는데, 이는 사미계를 받은 해로부터 따진 것이다. 원래 법랍은 비구계를 받은 해로부터 따지며, 이에 따라 헤아리면 양익 스님의 법랍은 43세가 맞다.[5] 달마야 놀자 자체는 조폭 코미디 영화지만, 주먹패가 절에 숨어드는 상황 자체는 드물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6] X승형이라고 칭한다 1승형ㆍ2승형ㆍ3승형[7] 현재 계신 법사님들의 수준이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