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총 금제 허리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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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대한민국 국보 제88호'''
'''금관총 금제 허리띠'''
金冠塚 金製 銙帶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장신구
'''수량/면적'''
1식(式)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신라시대(5세기)
1. 개요
2. 내용
3. 금관총 금제 허리띠 도난 사건
4. 바깥고리
5. 국보 제88호


1. 개요


金冠塚 金製銙帶.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 금관총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신라에서 만들어진 금허리띠.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88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길이 109.0㎝.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과 셋트로 1921년에 금관총에서 출토된 유물로, 제작 연대는 동일하게 5세기경(서기 400년대)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금관총에서는 장신구류, 꾸미개류, 말갖춤류, 무기류, 용기류 등의 신라시대 유물들이 약 4만여 점이나 출토되었는데 그 중 금관총 금관과 함께 가장 유명한 유물이다. 이 금제 허리띠는 무덤 주인의 허리 부근에서 발견되었고 그 옆에는 금동제와 은제 허리띠가 함께 있었다.
이보다 백년 앞서 4세기(서기 300년대) 초에 만들어진 경북 영주 금동제 허리띠와 비교하여, 금관총 금제 허리띠는 300~400년대 한반도의 금 세공기술 및 허리띠 양식에 대한 연구에서 귀중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과 거의 비슷한 허리띠꾸미개 장신구가 백제 웅진시기 왕족무덤인 공주 송산리 4호분에서도 출토되어, 5세기 후반 신라와 백제 간에 교류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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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총 금제 허리띠의 황금곡옥 장식 부분.

3. 금관총 금제 허리띠 도난 사건


우리나라 국보 4대 도난 사건 중에서도 가장 먼저 일어난 영구 미제사건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재 도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학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문화재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통용된다.
1927년 11월 10일 밤, 국립경주박물관에 도둑이 침입해 유물 진열실의 자물쇠를 부수고 현재 가치로 100억원이 족히 넘는, 금관총에서 출토된 이 금제 허리띠를 비롯한 반지, 팔찌 등 수백여점을 몽땅 훔쳐 달아났다. 이는 2020년 기준으로 역대 ‘도난품 단가’로는 가장 비싼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범인은 금관총 금관 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교과서에 나올만큼 역사적으로 소중한 유물들이 통째로 사라졌는데 범인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자 애가 탄 경찰은 일부러 "천 수 백년 전에 만들어진 금세공품은 아무리 녹인다고 해도 요즘의 금과 달라서 금방 알아볼 수 있다"라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또한 당시에는 무덤에서 나온 물건을 집안에 가져 오면 귀신의 저주로 인해 몸에 변고가 생긴다는 믿음이 확고할 때라 "앓는 집이나 변고가 있는 집을 경찰이 특히 주목하고 있다"라는 유언비어도 함께 퍼뜨렸다. 경주시는 범인에 대하여 당시로서는 거금인 현상금 1천만원을 내걸기까지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역사상 도난 문화재에 대한 최초의 거액 현상금이었다.
다음해인 1928년 5월 20일 새벽 5시에 경주 시내에서 재래식 변소를 치던 노인이 경찰서장 관사 대문 앞에서 이상한 보따리를 발견했는데 이 금제 허리띠를 비롯한 도난 유물들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도난당한 유물 중 금반지와 순금 장식 몇 개는 보따리 안에 들어있지 않았고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범인 역시 잡지 못하여 끝내 영구 미제사건이 되었다.
이렇게 금관총 금제 허리띠가 돌아왔으나 도난 과정에서 복구할 수 없는 파손이 발생했다. 요패계식(腰佩繫飾) 가운데서 섭자형과 투조협형의 2개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현재 투조과형(透彫銙形)이 달렸던 요패는 금사슬뿐이며, 섭자형이 달렸던 요패도 이배연조형만 남아 있다.
이후 1956년에도 범인들이 금관총 유물들을 노렸는데, 이때는 1927년 당시 천우신조로 도난의 손길을 피했던 금관총 금관이 도난당해 전 국민이 경악했다. 다행히 범인들이 훔쳐간 금관총 금관은 진품이 아닌 전시용 모조품이라고 당국이 알리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이때도 범인은 잡지 못해 영구 미제가 되었다.

4. 바깥고리



5. 국보 제88호


과대는 직물로 된 띠의 표면에 사각형의 금속판을 붙여 만든 허리띠를 말하며, 요패는 허리띠에 늘어뜨린 장식품을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허리띠에 옥(玉)같은 장식품과 작은칼, 약상자, 숫돌, 부싯돌, 족집게 등 일상도구를 매달았는데, 이를 관복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나 신라에서는 관직이나 신분에 따라 재료, 색, 수를 달리하여 그 등급을 상징하였다.

경북 경주시 노서동 소재 금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제 과대 및 요패는 과대길이 109㎝, 요패길이 54.4㎝이다. 과대는 39개의 순금제 판으로 이루어져 있고, 양끝에 허리띠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인 교구를 달았으며, 과판에는 금실을 이용하여 원형장식을 달았다. 과대에 늘어뜨린 장식인 요패는 17줄로 길게 늘어뜨리고 끝에 여러 가지 장식물을 달았다. 장식물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지만, 크고 긴 것을 가장자리에 달았다.

금관총 과대 및 요패는 무늬를 뚫어서 조각한 수법이 매우 정교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