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독립운동가)

 


1. 평양직할시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희
2. 제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희


1. 평양직할시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희


성명
김경희(金慶喜)
이명
김경희(金敬姬, 金敬喜)
생몰
1888년 ~ 1919년 9월 19일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부 신양동
사망지
평안남도 평양부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김경희는 1888년생이며 평안남도 평양부 신양동 출신이다. 그녀는 1913년경 평양 숭의여학교[1] 교사로 근무하면서 비밀결사 송죽회(松竹會)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송죽회는 숭의여학교 출신과 교사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여성비밀결사로서 점조직에 의한 절대 비밀을 유지해 갔다. 이들 송죽회 회원들은 전국 각처의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학생들의 항일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녀는 배일혐의로 1916년 일제에 의해 면직당하였다. 이후 그녀는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독립의식 고취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그녀는 평양에서 기독교회 여성들을 주도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아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담한 그녀는 군자금 모집을 위해 1919년 7월에 비밀리에 귀국하여 평양에서 비밀결사 부인회(婦人會)를 조직하고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부인회는 회원의 규모가 8백여 명에 이를 정도로 조직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렇듯 부인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던 중 그녀는 병을 얻어 1919년 9월 19일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경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제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희


성명
김경희(金慶熙)
본관
김해 김씨
생몰
1896년 11월 30일 ~ 1952년 8월 3일
출생지
전라남도 제주목 신좌면 조천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2]
사망지
제주도 북제주군
추서
대통령표창
김경희는 1896년 11월 30일 전라남도 제주군 신좌면(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1일 제주도 신좌면 조천리에서 김시범(金時範)·김시은(金時殷)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여 기를 세우고 100여 명의 군중과 공동으로 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북제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2년 8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김경희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현재는 서울에 있다.[2]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