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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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에도 시대
2.3. 패전 이후
3. 조직
3.1. 경비경찰과 공안경찰
5. 활동
5.1. 수사권
5.2. 무장
5.3. 제복
5.4. 전화번호
5.5. 황궁호위관
5.6. 자위대와의 알력
6. 기타사항
6.1. 갤러리
6.2. 야쿠자 대처
7. 문제점
7.1. 반말
7.2. 불심검문
8. 미디어에서
8.2. 경찰이 나오는 작품
8.3. 가상의 경찰
9. 관련 문서


1. 개요


日本の警察, Law enforcement in Japan
문자 그대로 현재 일본국의 치안유지 조직인 일명 민주 경찰을 말한다. 일본제국 경찰과는 전혀 별개의 조직으로 제국경찰이 해체된 후 미군정이 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찰은 일본 경찰법 2조 1항에 근거한다.
육상자위대의 전신이었던 경찰예비대는 법적 근거가 다르나 어느 정도 폭동진압경찰로서의 성격을 갖췄다. 기능에 따라 범죄 예방과 치안 유지를 담당하는 '행정경찰', 이미 발생한 범죄 등을 수사하는 '사법경찰'로 구분한다. 그 외에도 보안 관련 문제를 담당하는 '공안경찰'과 특별사태에 대비하는 '경비경찰' 등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이들은 일반적인 경찰과는 좀 분리하여 본다.
일본 제국 시절에 조선인중국인들을 비롯한 식민지 백성들을 탄압하고 박해를 일삼았던 일본제국 경찰, 일명 '''왜경'''과는 사실상 다른 조직이라 봐도 된다. 계보로는 계속 이어 오지만, 일본군이 패전한 직후에 일본 본토를 접수한 GHQ법률조직인력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물갈이를 실행했는데, 일본 제국의 보통경찰내무성을 폐지하면서 시정촌 공안위원회의 자치경찰을 창설했으며, 예전의 경찰 소방대에서 분리독립한 일본 소방청이 미국식으로 구급 업무도 담당했다.
특별고등경찰 및 각 경찰서의 고등계도 폐지했지만, 야쿠자사이비 종교극우파적군파같은 공산주의 무장조직이 발호하면서 그들을 감시하는 공안경찰을 설치했다. 공안경찰은 미국의 FBI 같은 특수수사 기관인 셈이며 여기서 방첩, 외사, 정재계 사정조사 등을 전담한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일본 경찰은 일본 제국의 경찰조직과 전혀 다른 조직으로 봐도 무방하다. 경찰용 장비들도 당연히 바뀌었다.
특별사법경찰이 일본에도 존재한다. 일본 내에서 특사경으로 분류되는 기관들에 대해서는 특별사법경찰관리 문서 참고.

2. 역사



2.1. 에도 시대


한국의 경찰이 포졸 등이 활동했던 포도청에 근거한 것처럼 일본도 에도 시대봉행소(奉行所) 같은 기관이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패권을 잡고 에도 막부를 열자 전쟁이 없어졌다. 따라서 하급 사무라이들은 실직자 신세를 면하기 힘들었다. 그 때문에 실직대책을 겸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1]
직책
에도 전체 인원
역할
신분
요리키
50
검찰 겸 판사
중급 무사
도신
200
경찰 간부
하급 무사
고요키키
3,000
탐정, 경찰보조원
평민
요리키(与力)라 불리는 말을 타는 것이 허용된 중급 무사가 에도 전체에 약 50여명 있었다. 이들은 경찰 실무자가 아니라 검찰 및 판사 역할을 하는 관료였다. 요리키의 앞에 끌려나온 시점에서 죄인은 유죄가 확정된 셈이었고 거기에 필요한 조사는 모두 도신이 행했다.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은 도신(同心[2])이라고 불리는 하급 무사 계급이 있었다. 에도의 도신들은 원래는 도쿠가와 집안을 섬기는 직참[3]의 하급무사 아시가루 계급 출신이었다. 이후 1603년 도쿠가와 막부가 설립될 때, 도쿠가와 집안의 아시가루 계급을 모두 도신으로 통칭했다.
도신은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결같은 마음(同心)'으로 도쿠가와 집안을 섬긴다는 뜻이다. 같은 도쿠가와 막부의 직참이었지만, 하타모토가 아닌 그 아래 계급인 고케닌(御家人)이라는 세습제 신분이었다. 이들 중에 에도의 치안을 담당하던 도신을 '마와리가타 도신(廻り方同心)'이라 불렀다. 도신은 실제로 서민과 부대끼며 활동한다는 점이나 경찰업무를 담당한다는 점 때문에 평민들에게는 꽤 인기 있었고 그런 강력한 권한이 더불어져서 부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도신은 원래 유래가 유래인 만큼 세습제였으나 표면적으로는 신규채용의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도신은 소수의 인원으로 에도의 치안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상당한 재량권이 주어져서 조사부터 체포까지 단독으로 정할 수 있었다. 용의자를 무죄로 풀어주는 것도 유죄로 만드는 것도 도신에게 달려있었다.
에도를 남과 북으로 갈라 요리키는 각 25명, 도신은 각 100명, 총 200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경찰업무 담당자인 마와리가타 도신은 다 합쳐도 고작 30명도 안 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사적으로 고요키키(御用聞き)라는 평민 신분 수하를 고용해서 부렸다. 이들은 사설 탐정이자 정보원 역할을 했다. 그리고 고요키키도 개인 수하를 한두 명 정도 고용했다.
고요키키는 범죄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담당하다 보니 원래 범죄자 출신으로 이제는 손을 씻고 개심한 사람이 많았다. 요즘도 경찰이 범죄자를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신분상 평민이라 사무라이처럼 카타나를 차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서 짓테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 일본 시대극 드라마와 영화에서 싸울 때 검이 아닌 품에서 짓테를 꺼내는 사람을 보면 고요키키라고 보면 된다.
고요키키는 사실상 에도의 치안유지를 담당한 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정식으로 막부를 섬기는 막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녹을 먹지는 못했고 따라서 도신이 성과급을 지급하거나 식사와 잘 곳을 제공하는 등 뒤를 돌봐주었다. 다만 도신은 엄연한 사무라이지만 계급은 낮았기 때문에 사실 막부에서 나오는 급료는 적었으나 다이묘나 상인계급이 좀 잘 봐달라는 의미에서 찔러 주는 돈이 많았기 때문에 고요키키를 고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그래봐야 한계는 있었기 때문에 고요키키는 그것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힘들어 부인이 미용실, 식당을 하든가 하는 다른 부업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고요키키는 에도에서는 자기가 모시는 도신을 위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체포에도 동행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정식으로 고요키키를 고용해서 운용했으나 한 편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정보제공역으로 그치기만 했다.
에도 시대 내내 막부의 관리들은 에도의 치안을 고작 요리키 50명, 도신 200명, 고요키키 3000명으로는 어림도 없음을 잘 알았다. 다만 이들은 하급이라고는 해도 사무라이인 데다가 세습이니 함부로 늘릴 수도 없었고, 에도 막부의 재정은 대를 거듭할 수록 악화되어 증원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에도의 인구는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막부에서도 자위를 위해 민간이 와키자시 정도로 무장하는 것은 허용했다.[4] 다만 역시 재정적인 문제로 경찰인력을 늘린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취하지는 못한 탓에 에도의 치안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고요키키는 에도에서는 비속어로 오캇비키(岡っ引)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는 경찰을 짭새라고 부르는 듯한 뉘앙스였다. 그러나 사극에서 고증을 따진답시고 남발과 오용을 거듭하다가 정식 호칭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에도에서는 오캇비키라고 불렸지만 지방에서는 메아카시(目明し) 등의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에도 막부 말기(막말)에는 혼란한 사회 상황에서, 존황양이파에 의한 테러가 발발하자, 쇼군 경호를 위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뽑은 로우시쿠미(신센구미)나, 수도였던 교토의 치안을 담당하는 미마와리구미처럼 강력한 권한과 대테러 수행능력을 지닌 특수한 치안 담당조직이 생겨나기도 했다.

2.2. 일본제국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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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의 경찰관. 세이난 전쟁에 참전한 경찰관들.
그 당시 경찰은 일본군(신식 군대)의 별동대로 간주되어 서남전쟁발도대(칼싸움 부대)로 같이 참전한 적도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 도쿠가와 막부를 접수하면서 창설한 보통경찰이다. 메이지 4년(1871년) 메이지 신정부의 참의였던 사이고 다카모리가 부하 장수였던 동향의 사츠마 번 출신의 카와지 토시요시에게 수도인 도쿄의 치안을 맡긴다. 신정부는 사족(사무라이 계급) 3천 명을 고용했고, 이때 치안을 담당하는 이들을 라소츠(순사문서 참고)라고 불렀다.
이윽고 일본 경찰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는 그는 서양 경찰(특히 프랑스) 제도를 참고로 해서 메이지 7년(1874년)에 도쿄의 치안유지를 위해 경시청을 창설했다. 이 때 조직한 경찰은 훗날 사이고 다카모리가 일으킨 사족의 반란 서남전쟁에서 일본 메이지 정부군 소속으로 사이고 타카모리가 이끄는 사츠마 출신 사무라이들과 칼싸움 대결하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일본제국 경찰, 고등경찰과 특별고등경찰 문서 참고 바람.

2.3. 패전 이후


2차대전 패전 후 주일미군이 일본을 점령하고 일본제국 경찰일본군과 함께 해산조치 대상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GHQ가 기존의 보통경찰[5]을 모두 폐지하고 시정촌 공안위원회의 자치경찰을 새로 창설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국처럼 순경부터 시작하여 승진하는 인사체계를 확립하지 못했고, 커리어조라 불리는 고시 합격자 간부후보생 출신들이 일본 경찰을 끌고 나가게 된다.

3.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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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건물은 도쿄도의 경찰인 경시청 본부이다. 사진 왼쪽 건물이 국가공안위원회와 일본 경찰청이 입주한 정부합동청사 건물이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자치경찰제로 이뤄지고 있지만 국가경찰 조직으로 내각부의 외국(外局)으로 일본 경찰청이 설치되어 있다. 정확히는 내각이 직접 관할하는게 아닌 국가공안위원회[6]라는 조직이 중간에 설치되어 있고 그 하부 기관으로 경찰청이 놓인다.
경찰청과 별도로 지방자치경찰로 도도부현에 경찰본부가 설치되어 있다.
수도인 도쿄도의 경찰은 도쿄도 경찰본부가 아니라 '''경시청'''으로 일컫어 진다. 수도경찰을 특별 분류한 유래는 일본이 메이지유신 직후에 서유럽의 제도 및 문화를 흉내낼때 영국프랑스 제3공화국독일 제2제국의 경찰제도를 모방하면서 런던광역경찰청[7]에서 따온 것이며 특히 영국 영향이 아주 강했다.
일본의 경찰제도는 국가경찰로 국가공안위원회↔경찰청↔관구경찰국으로 이어지며, 관구경찰국은 도호쿠(東北), 간토(関東), 주부(中部), 긴키(近機), 주고쿠(中国), 시코쿠(四国), 규슈(九州)가 7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해당 지역의 자치경찰을 감찰하며 광역사건의 조정 및 연락을 맡는다.
그리고 경시청홋카이도 경찰본부는 경찰청이 직접 감독한다.
지방자치경찰은 지방공안위원회[8]↔도도부현경찰본부[9]로 이어지며 지방공안위원회는 도도부현경찰본부장을 임명하는 권한이 있다. 단, 수도인 도쿄는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경시청의 수장인 경시총감은 국가공안위원회가 직접 임명하고 도쿄도공안위원회가 승인하는 형태이다.
일본의 경우 무늬만 자치경찰이라는 평가가 많은 이유가 이런 구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구조적으로 2021년 7월 1일부터 본격 도입되는 한국의 자치경찰제와 상당히 많이 닮아있다.
국가경찰인 경찰청은 경시청에 대한 업무 관리 감독권과 조정권을 갖고 있으며 경시청이 수사하는 중요 사건은 경찰청 형사국을 통해 장관에게 보고된다. 경찰청에는 직접 수사 기능이 없고 지휘 기능만 있다.
애초에 경시청을 비롯한 지방 경찰의 수뇌부도 대부분 지방 경찰 출신이 아닌 경찰청 출신 경찰관료들이고 경찰청에서 추천하면 지방공안위원회에서 임명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경찰 제도라고 봐도 무방하다.

3.1. 경비경찰과 공안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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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경찰(警備警察)은 공공의 안녕과 시위 및 폭동진압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전적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경찰에서는 그 범위가 넓다.
일본 경비경찰 안에는 공안경찰도 포함되고 경찰청 본청도 경비국 안에 경비경찰과 공안경찰이 조직내에 합쳐져 있지만 사실 임무가 좀 특화돼서 따로 볼 때가 많다.
사실 공안경찰의 역할은 경시청을 제외하면 나머지 지방자치경찰의 경찰본부에서도 경비부 안에 포함되어 있다.
경비경찰의 경찰기동대 부대라고 할수 있는 경비대는 지방경찰의 경비부 내에 편제되어 있다.
대한민국 경찰특공대가 상설중대와 별개로 취급되는 것과 달리 일본 경찰의 특수급습부대는 총 8개 지역에 배치된 기동대 산하의 대테러부대로 취급되고 있으며 이들은 일본 전역에서 발생하는 테러 대응 업무를 모두 담당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홍콩 경찰의 SDU가 기동경찰 PTU소속인 것과 같은 구조다.
물론 이 8개 부대만으로는 이들이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기에 초등조치를 담당할 목적으로 각 지역 기동대 산하에는 총기대책부대라는 부대가 별도로 조직되어 운영 중이다.
이들의 집회시위 관련 전술경험은 대한민국 경찰청 기동부대들과 엇비슷한 수준이다.1960년대 일본에서 있었던 전공투화염병과 쇠파이프 등이 동원되는 등 과거 대한민국의 폭력시위와 상당히 유사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들 기동대원들도 기본적으로 화염병과 투석에 대한 대응 노하우가 어느정도 잡혀있기 때문이다.
공안경찰(公安警察)은 공안(public safety)을 담당하는 곳으로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경비경찰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경시청에서는 별도로 공안부가 분리되어 있으며 나머지 지방자치경찰의 경찰본부에서는 경비부 공안과에 배속된다. 한국의 정보경찰과 비슷하다.
패전 후 GHQ가 일본의 고등경찰제도를 폐지하면서 그 인적자원과 운용 노하우를 공안에 그대로 배속했다.
주요 표적은 극좌단체, 조총련, 시민활동가[10], 네오나치 내진 우익단체, 야쿠자, 옴진리교 같은 사이비종교 등이다.
치요다(チヨダ), 현재는 제로라고 불리는 일본 경찰청 경비국 경비기획과 소속 특수반이 있다. 정식명칭도 불명으로 일본의 매스미디어에서 여러 번 묘사되지만 조직의 정확한 실태는 밝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수사비 등 예산도 비공개다.
이곳의 지휘관은 '숨은 이사관(ウラ理事官)'이라고 하는데 조직도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하지만 현실은 캐리어 관료가 갑자기 불명이 되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에 알음알이로 다 알게 되는 편이다. 물론 발설하면 안된다.
대테러 활동 등은 외사과(外事課)에서 담당한다.
공안경찰은 그 활동비가 국고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에 의거하여 경찰청 경비국이 전국의 공안경찰을 직접 지휘한다. 때문에 공안경찰은 경찰청의 지시를 우선하며 소속 경찰본부장의 명령은 무시한다.
취소선 드립할 게 아니라 진짜로 당연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자는 같은데 중국은 경찰 자체를 공안부라 칭하며 타국의 내무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고 일본의 공안경찰은 한국의 경찰청 정보국과 보안국이 합쳐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애초 공안이라는 한자가 공공의 안전을 지킨단 뜻에서 같다.

4. 계급




5. 활동



5.1. 수사권


일본 형사소송법 상 일본 경찰은 1차적 수사기관이고 검찰은 2차적/보충적 수사기관이며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규정되어 있음에도 양자는 협력 관계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을 지배하게 된 GHQ의 목표는 중앙으로 집중된 일본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었으며 이런 목적 하에 자치경찰제를 도입했다.
동시에 GHQ는 중앙행정기관인 검찰이 전쟁 이전처럼 자치경찰의 수사를 포괄적으로 지휘하게 되면 일본의 민주화 달성은 요원하다고 보고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경찰을 1차적 수사기관으로, 검찰을 2차적, 보충적 수사기관으로 규정했다.[11]
일반 형사 사건은 1차적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해 송치하면 검찰은 보충수사를 한 후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식으로 끝난다.
다만 살인 등 중요 강력범죄나 뇌물 사건, 대형 경제 사건 등은 사건 초기부터 검찰이 경찰의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수사 방침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1)기소권자인 검사는 공판 유지가 가능한가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기에 경찰이 검사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아예 기소가 불가능하며 2)뇌물 사건이나 복잡한 경제 사건 수사엔 법률전문가인 검사의 조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기한 사건들의 경우 수사 착수나 영장 청구 전에 경찰이 검사의 동의를 받아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2]
이런 시스템을 일본 경찰에선 '''경찰은 제조업자, 검찰관은 판매업자, 재판관은 소비자'''라는 비유로 설명한다.
일본에서도 도쿄지검 특수부로 대표되는 검찰의 특별수사부/특별형사부에서 부패범죄와 중요 경제범죄 등을 직접 수사하므로 검찰, 경찰, 정치권, 대중 모두 이런 사건은 특수부의 영역이라고 인식한다.[13]
이 때문에 도쿄, 오사카, 나고야 같은 대도시에선 검찰이 정관계 비리 및 경제범죄 수사를 주도하고 경찰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사건을 수사하는 게 보통이다. 경찰이 정관계 비리를 겨냥한 수사를 벌이면 '왜 특수부가 나서지 않았지?' 하는 식의 기사가 올라올 정도. 심지어 2014년, 경시청 수사2과는 개청 이후 처음으로 뇌물 적발 0건(!)이라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반대로 지방에선 검찰의 수사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직접 수사를 자제하는 편이며 대신 경찰이 검사의 지시와 조언을 받으면서 수사를 진행하는 식의 공조수사가 활발히 이뤄진다. 2015년엔 후쿠오카 현경과 후쿠오카 지검이 협력해 지역 최대 규모의 폭력조직을 쓸어버리기도 했다.
일본 경찰은 기본적으로 자치경찰제라 관할 도도부현 이외 지역에서는 수사를 할 수 없다. 단 사이버범죄는 이런 제한이 없다.

5.2. 무장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진 군도단검, 남부식 권총을 소지했으나 현재는 경찰도 패용이 사라지고 호신용 2단봉과 리볼버 권총을 휴대한다.[14]
군도는 민주 경찰 시대에 목제 곤봉으로 교체되었으며, '''1994년'''까지 동일 모델을 사용하였다.[15] 이 물건은 손잡이 부분을 나타내주는 부분에는 끈이 달려있으며, 이는 벨트에 껴서 고정시키거나, 손에 묶어 사용중에 떨어뜨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당시 미국 경찰의 톤파와 한국 경찰의 곤봉 등에 비교했을 때 효율성이 떨어졌다.
현재는 개당 단가가 한화 35만원 정도인 호신용 2단봉(つば付き2段式65型警棒)으로 바뀌었다. 현재(2020년 기준) 한국 경찰에게 납품되고 있는 호신용 경찰봉은 펼칠 때에는 쎄게 휘둘르고 접을 때는 바닥에 내리쳐 직접 부딪혀서 접는 방법에 반해 일본 경찰에게 납품되고 있는 경찰봉(일명 65형 2단식 경봉)은 가장 윗부분을 돌려서 펼치고 접을 때는 버튼을 눌러 접는 형식이다. 특수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고 설계 자체가 2단봉이라 한국 경찰에 보급되는 3단 호신봉보다 내구성이 강한 것으로 사료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외근 경찰관은 가스 분사기테이저건(Taser x26)을 일절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경찰 장구의 다양성으로서는 한국 경찰 쪽이 우수하다. 그리고 일본 경찰의 2단봉은 내구성은 더 좋다쳐도 휘둘려 펼치는 식이 아니기 때문에 신속성은 떨어진다고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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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 경찰 해체 후 인원을 이어받은 민주 경찰은 미군일본군을 해체시키면서 일본 육군에서 압류한 남부 권총을 지급받아 사용하기도 했지만 바로 몇년 후에 미국에서 사용하던 콜트 리볼버를 지급받았다. 1960년미네베아 뉴 남부 M60의 초기형 몇년뒤에는 그의 후기형 모델을 지급받아 사용했다. 현재는 스미스 앤드 웨슨의 M360J 사쿠라 모델로 대체되는 추세인듯 하다.
황궁호위관들의 경우 궁성 방어라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는지라 32구경 SIG P230[16]를 휴대하며 시큐리티 폴리스는 USP글록 17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제국 경찰 시절때부터 1994년까지의 일본 경찰 특징 중 하나는 견장술이 권총 피탈 방지끈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왼쪽 어깨에 착용하는데, 이 견장술의 유무로 경찰의 권총 무장 확인이 한 눈에 가능하다는 단점도 있고 불편하기까지 하여 결국 1994년에 폐지된다. 이 견장술은 홍콩 경찰도 갖고 있었다.

5.3. 제복


모든사진들은 왼쪽부터 1960~1970년대, 1970~1990년대, 1990년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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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동복 계열
1994년까진 정복이자 기동복으로 사용했다. 신형 제복의 등장당시 있었던 갈등은 정복은 멋있지만 불편했고, 활동복은 편하지만 못생기기 짝이 없었다.[17] 결국 실용성등을 따져서 2000년대부턴 정복은 행사때나, 경찰 본부 간부들만 사용하며, 그외에는 활동복을 사용한다. 1994년까진 샘 브라운 벨트를 사용하지만, 불편하다는 이유로 1994년 신 경찰제복엔 벨트 자체를 폐지한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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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복 계열
1994년까진 연회색과 청회색 계열의 제복이었다. 딱딱하고 친근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밝은 남색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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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복이다. 1994년까진 회색계열의 제복이였으며, 1960년대 제복은 연한 회색이다.[19] 마찬가지로 친근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밝은 하늘색으로 바뀌었다.

5.4. 전화번호


긴급 신고 전화번호는 110이다.[20] 긴급하지 않은 단순민원은 #9110번. 참고로 한국 경찰의 긴급 신고 전화번호는 112이고 단순민원은 182이다.
일본의 지역 경찰서마다 번호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110을 누르면 자신이 살고있는 현경 본부에 전화가 간다. 정말 급한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이 살고있는 시경의 전화를 외워두는것도 좋다. 대부분 (지역번호) -0110이다.

5.5. 황궁호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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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宮護衛官. 경찰청 소속의 별도 경찰로 고쿄황족을 호위하는 경찰을 말한다. 이들은 특별사법경찰로 경찰관은 아니다. 정원은 920명 수준인데 이는 법률에 명시된 최대 인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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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사연이 있는데 일본군제2차 세계 대전 패전으로 항복할 무렵에 근위기병대 등의 일부 군사조직을 황실 경비 등을 이유로 남겨두어 일본군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차후를 도모하려고 수작을 부리려고 하였으나 이것을 당연히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던 당시 GHQ 책임자 더글러스 맥아더는 황실 호위 업무를 경찰에 이관시켰다. 그 때문에 군대가 근위대를 맡는 다른 입헌군주국과 달리 일본 황궁 근위대는 경찰이 맡는다.
이들의 소속은 일본 경찰청 소속 황궁 경찰 본부[21]로 되어 있으나 경찰 수첩에는 소속부서를 왕궁 경찰 본부로 표기되는 게 아니라 일본 경찰청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들 호위관의 계급은 일본 경찰 계급에 황궁자를 붙이는 것 정도이며 이들의 평시 장비 수준은 일본 경찰에 준하도록 되어 있어서[22] 이들 소속으로 경찰차,오토바이 등이 배속되어 있다. 이들은 법률적으로 고쿄와 다른 중요 황족 거주지 등에서의 화재 진압 임무도 부여되어서 각 호위서 마다에는 소방차가 있고 매년 이러한 소방차를 이용한 화재 진압 훈련을 하고 있다. 참고로 이들 대원들은 어디까지나 황궁을 경비하고 천황황족의 외곽 호위를 담당하는 임무를 하는 인원일 뿐 근접 경호[23]를 담당하는 건 시위관이라고 해서 황궁 호위관들 중에서 선발한 다음 차도나 궁실 예절, 승마술, 스키[24] 등을 철저하게 익히게 한, 그야말로 정예 중에 정예인 사람들을 뽑은 근접 경호 요원들이 따로 있다고 한다.
참고로 천황의 생일이나 새해 그리고 새로운 천황 등극시 일반 국민들 앞에 황족들이 나와서 인사하는 일반 참하 때 참하가 이루어지는 고쿄 조화전 발코니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은 황궁 경찰들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대원들을 뽑아서 세운다. 황궁 경찰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근무를 서는 걸 근접 경호요원들 다음으로 상당한 영광으로 여긴다고 한다.
물론 이들 인원들만으로는 황족 경호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본 경시청 경비부 산하에 경위과를 세워서 부족한 황족의 경비 임무를 부담시키고 있다. 참고로 황족의 약혼자나 결혼으로 강하[25]공주[26]에 대한 경호 임무도 경위과 3계 담당.[27]

5.6. 자위대와의 알력


원래는 경찰예비대로 출범한 자위대는 경찰의 급료체계를 따른다.
한국군이나 미군, 중국군 등 정규군들과 달리 준장이나 대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경시감경시총감이라는 경찰 계급을 장성급 계급으로 바꾸며 장보(將補)와 장(將)으로 바꾼 탓이었다.[28]
그나마 막료장 때문에 4성장군은 존재하지만 1성장군인 준장은 아직도 없다. 한국군과는 달리 여단장소장인 장보가 보임되고 사단장중장인 장이 보임되는 상황이다.
둘 사이는 그들의 조상격인 일본제국 경찰일본군 때 부터 좋지 않았다.
5.15 사건, 오사카 고스톱 사건 등 여러 문제가 있기도 하였으나, 2.26 사건로 둘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다.
2.26 사건 때 반란군의 목표 중 하나가 도쿄 경시청 무력화였으며, 정치인 호위병력들이나 쿠데타에 대항하던 경찰들은 이 때 대거 학살 수준으로 사살당했다.
심지어 일본제국 패망 하루전날인 궁성사건 당시에도 반란 세력인 근위대에게 무장해제 당하는 등 동네북처럼 다뤄졌다.
패망 직후 미군정 당시 경찰의 권리가 강해지자,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패잔병을 구타하는 사례도 있었으며, 자위대 특히 육상자위대의 형성과정에서 경찰예비대엔 내무성 출신의 관료들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내무 군벌이라 불렸고 일본군에서 흡수된 간부 자원들과 알력을 빚었다. 특히 합동막료회의의장을 10년이나 지낸 하야시 게이조(林敬三)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1970년대소련군미그기가 일본 내 미군기지로 귀순할 땐 경찰이 자위대가 진입 못 하게 막는 바람에 자위대는 밖에서 구경만 하기도 했다. 물론 이때는 미군 헌병들이 먼저 진입을 통제하기는 했으나 경찰이 자국군인 자위대 대신 남의 나라 군대인 미군과 더 협조했는데 자위대에 한방 맥인(...) 셈이었다.

6. 기타사항


진정한 자치경찰제인가 자치경찰제인 무늬를 가진 국가경찰제인가? 답은 어느쪽도 아니다. 일본 경찰제도의 특징은 국가경찰제와 자치경찰제를 적절하게 혼합하였다는것이다. 2차세계대전 이전에 유럽의 대륙법계 경찰제도인 중앙집권적 경찰제도를 수용하여 정착시켜 왔으나 그 후 패전국으로서 미군정 하에 미국식 경찰제도를 가미한 지방경찰제도가 미미하게 나마 혼합되어 이른바 '절충형 경찰제'로 자리잡아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찰제도는 상부가 국가경찰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하부에서는 자치경찰제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데 상부의 국가경찰관들이 실질적으로 하부의 지방경찰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어 실질적으로는 국가경찰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본의 부분적 자치경찰제도는 어디까지나 민주성에 바탕을 두고 지방자치의 이념에 기초한 자치경찰제도의 기본 틀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일본 경찰의 경우 경찰사무의 성격이 자치사무와 국가사무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낸 채로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신들의 지방경찰인 도도부현 경찰이 국가경찰인 경시청의 지휘 감독을 받도록 하는 독특한 시스템도 정착시켜 놓았다. 다시 말하여 원칙적으로는 도도부현 자치경찰에게 일괄적으로 소위 단체 위임하여 처리하도록 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국가차원의 공안, 전국적 이해가 걸린 사무, 기술적으로 전국적인 통일을 요하는 사항 등 매우 중요한 사건은 국가경찰관이 관여하도록 정하고 운용해 나가고 있다.(일본 경찰법 제 5조 참고) 이러한 특성들로 인하여 일본이 현재 운용하고 있는 경찰제도가 자치경찰제도인지 자치경찰제도의 모양을 하고 있는 실질적 국가경찰제도인지 따지는 논쟁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허나 분명한 것은 일본의 경찰제도의 상부는 소수일지라도 전부 국가경찰관이며, 국민들과 가장 밀접하면서 수 많은 경찰사무를 처리하는 하부집단은 도도부현의 자치경찰관이라는것이다.
일본에는 일본 경찰을 비하하는 '''국영 폭력단(国営暴力団)'''이라는 말이 있다. 심지어 일본 경찰 내에서도 자조적으로 본인들을 국영 폭력단이라고 부르는 듯(...). # 아카이브 [29]
그나마 '국영 폭력단' 은 점잖은 축에 속하는(?) 비하 단어다. 일반적으로 범죄자들 사이에선 사츠(サツ, 즉 짭새)라는 비하어가 더 많이 대중적으로 쓰이기 때문.
정확히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국영 폭력단이라는 단어가 쓰였는지는 불명이다.
다만 일본의 배우 겸 가수인 이시다 잇세이가 11살 무렵에 어머니와 함께 시코쿠 이카타 발전소의 출력실험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했을 때 경찰기동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다고 밝혔던 적이 있었고 # 잡지 기자 겸 평론가인 이노우에 죠가 블로그에서 해당 사건을 언급하며 '국영 폭력단'이라는 단어에 대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다. #
해당 글에서 이노우에가 "사실은 기동대가 국영 폭력단이라고 비난받기 시작한 것은 이때쯤부터였다.(実は、機動隊が「国営暴力団」と非難を込めて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のは、ちょうとこの時期だった。)"라고 한 것으로 보아, 국영 폭력단이라는 단어는 대략 1980년대 중후반부터 쓰인 듯하다.
처음에는 국영 폭력단이라는 단어가 일본 경찰기동대 폭동진압 경찰들을 비하하는 의미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일본 경찰 자체를 비하하는 의미로 확장된 듯하며 이는 홍콩 경찰을 비하하는 흑경 즉 흑사회+경찰과도 같은 말이다.
1990년대 캄보디아에 일본이 UN 평화유지 활동(PKO) 목적으로 자위대를 파견했을 때 일본 경찰 소속 경찰관들도 문민경찰관 신분으로 75명 가량이 파견되었는데 #, 이 때 일본 정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수시로 총알이 날아드는 지역에 경찰들을 파견하면서 "분쟁 지역으로 파견 가는 건 아니다" 라며 총도 안 주고 그냥 보내는 초특급 병크를 터트렸다.'''
권총조차 안 주고 기껏해봐야 방탄조끼만 들려 주고 말았는데 그나마도 소총탄을 막을 수 있는 레벨도 아니고 총기가 흔하지 않은 일본에서 경찰일할 때나 적합할 그냥 권총탄만 간신히 막을 정도의 일본 경찰 내수용 방탄조끼(...) 였기에 이 때 파견된 일본 경찰들은 아예 방탄모부터 소총까지 현지조달(...)해야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현지 무장세력에 의해 순직하는 경찰관도 나왔고 이 순직한 경관의 어머니는 훗날 아베 신조 내각의 개헌 시도에 반대하는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당연히 멀쩡하게 경찰일 잘 하던 아들이 전쟁터에 총이랑 방탄장구도 제대로 안주고 파견보낼 정도로 관료주의에 꽉 막힌 일본 정부놈들 때문에 시체로 돌아왔으니 당연히 반대할 만 하다. 분단국가로 경찰이 군대처럼 K-2로 무장하곤 하는 한국에서 보면 어이없는 일일 뿐이다. [30]

6.1.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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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기마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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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교통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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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白バイ)를 탄 경찰관.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한국은 중앙 입찰제로 구입한다.)경찰차량을 지역 경찰별로 구입을 하는데, 이 때문에 지역마다 경찰차량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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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차 중 하나. 각각 시나가와, 요코하마 소속.
모두 토요타 크라운이다. 맨 마지막 차량(크라운 컴포트)는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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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차시에 경광등이 올라가 뒤에 오는 차량에게 경고할 수 있다. 이는 한국 경찰의 쏘나타 경찰차도 마찬가지.


가장 최근에 나온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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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크라운. 최근엔 신형 크라운이나 마크X등을 도입하기도 한다.


내부는 이렇다. 이 차도 역시 크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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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알리온 복면 패트카(覆面パトカー). 형사차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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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구 소속 RX-8 고속 순찰차(高速隊パトカー). 아다치 자체가 폭주족이 유명하다보니 아예 급이 높은 차량을 투입한듯. 해당 차량은 고속도로도 순찰을 돌기 때문에 헬멧을 쓰고 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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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웨건 R 미니순찰차(ミニパ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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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루 레거시 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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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루 레거시

프리우스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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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다 C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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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스카이라인과 닛산 티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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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 위장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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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VFR1000 시로바이(白バイ). 주로 교통 단속 업무에 활용하는 오토바이의 명칭[31]. 정식명칭은 아니며 하얀색으로 도색된 데에서 유래된 별칭이다.
정식명칭은 "교통단속용 자동이륜차(交通取締用自動二輪車)" 또는 "교통지도단속용 자동이륜차(交通指導取締用自動二輪車)".
특이할 사항으로는 회전식 경광등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것. LED가 보편화 된 이후 지속적으로 회전식 경광등을 사용하는 나라는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최근에는 LED로도 꽤 바뀌었지만 아직 회전식 경광등이 대세다.

6.2. 야쿠자 대처


일본의 90년대까지 야쿠자는 일반인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폭력단대처법[32]이 등장한 이후, 대표적으로 야마구치구미 같은 경시청에서 등록한 지정폭력단의 관리를 시작으로 철저히 제재를 가하고 있다. 야쿠자 문서에도 쓰여 있으나 야쿠자 조직원이 자신이 야쿠자임을 밝히는 것만으로 폭대법 처벌대상에 들어간다. 야쿠자들이 양지에서 날뛰지 못하게 억누르고 제압하는 것이 경찰의 역할이기에 정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이런 폭력단 전문인 강력계 형사들을 마루보(マルボウ)라 부른다.
야쿠자간의 항쟁이 일어날 경우에는 경찰은 치안관리를 위해 인원증강과 순찰강화를 실시한다. 그리고 평시에도 야쿠자 관련 사건이 접수되면 1차적으로 지역시경이 출동하여 제압하고, 이것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현경단위로 출동해 제압하는데, 전경처럼 진압방패와 곤봉을 든 기동경찰들이 몰려와 제압한다. 대부분의 야쿠자들은 이 정도 선에서 해결된다.
그리고 폭대법의 일환으로 신고자에 대한 보복을 막기 위해 신고자의 신변 보호를 철저하게 해준다. 제아무리 야쿠자라고 해도 일반인을 건드리면 조직 내에서도 문제가 생길 뿐더러 사회적 다시 도마 위에 오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진짜 야쿠자들은 일반인들에게 시비 걸려도 무시하고 지나간다. 만약 먼저 자신이 야쿠자임을 밝힌다? 휴대폰 꺼내서 신고하자. 순식간에 경찰 차량 몇대가 현장에 도착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한구레의 경우 야쿠자와 생리가 다른 경우가 많아 제대로 대처를 못하는 모양이다.

7. 문제점



7.1. 반말


최근에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일본 경찰은 일본 자국민에게조차 반말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33] 출동상황이 아닌 일반 상황에조차 젊은 성인이나 여성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일본에서도 이에 대해 불만이 매우 많다.
하물며 외국인에게는 더 차별을 하는 경향이 있었고, 최근 들어서는 더욱 심해졌다.[34] 실제로 당하면 기가 찰 노릇인데, 처음에는 존댓말을 하면서 친절하게 굴다가 외국인신분증, 여권 등으로 외국인이라고 확인하면 갑자기 반말을 하면서 범죄자 취급을 한다. 특히 일본인과 시비가 붙었을 때 경찰이 잘잘못 안 가리고 일본인 편을 들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이 많이 생긴다.
이럴 경우 '''"왜 반말을 하느냐? 일본 경찰은 외국인한테 반말을 하는 게 기본 메뉴얼이냐?"'''라고 말하면 오히려 어버버 거리면서 당황한다. 이래도 대화에 큰 변화가 없다면 '''"대사관, 영사관에 연락하겠다. 당신 소속과 계급 성명, 그리고 상관이 누군지 말하라!"'''라고 강하게 나가는 방법이 있다. 보통 일본 경찰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어가 안 되니 공권력으로 밀어 붙일려고 하는 것이니 일본어를 안다면 이렇게 대응을 하면 된다. 일본어를 잘 못한다면 왜 나한테 반말을 하는지를 최대한 어필하고 대사관, 영사관에 연락하겠다고만 말해주면 최소한의 대처는 된다.
하지만 말싸움을 벌이기 전에 '''과연 외국에서 경찰과 말싸움을 벌이는 일이 자신에게 유리한 일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본 사회가 외국인 반감이 적지 않은 편이고, 한국인은 무비자 혜택이 있어서[35] 체감이 전혀 안되지만 실제로는 미국, 영국 다음으로 입국심사에 까다로운 나라라 '''외국인 신분으로 경찰서를 가면 좋을 게 단 하나도 없다.''' 아무리 일본어가 능숙하다고 해도 외국인이라는 불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매우매우 높다. 제일 좋은 것은 '''경찰과 싸울 만할 일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것이다.''' 다만 상술한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연락하는 것은 자신의 일본어 실력을 떠나서 현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의를 하지 말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찰과 말싸움에서 문제가 심각해지지 않는 이상 그냥 현장에서 끝난다. 이런 사소한 일로 항의했다고 입국심사 및 재류심사에서 결격사유로 간주하기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일본어가 익숙한 사람들은 오히려 경찰이 이렇게 반말을 찍찍 갈겨도 되냐? 외국인이라서 지금 그런 거냐? 하고 맞받아친다.
예외로 후쿠오카 시 경찰들은 한국인들에게도 대우가 좋은데, 이는 후쿠오카 쪽이 아주 오래 전부터 한국과 교류가 있어서 한국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냥 최대한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행동하고, 너무 튀지만 않으면 어지간해선 경찰과 싸우거나 대면할 일이 없다. 오히려 경찰에게 도움받을 일이 훨씬 많다. 특히 밤 늦은 시각에 귀가하면 불심검문보다 얼른 집에 들어가라고 걱정하는가 하면, 재류카드 보여주면서 여기 산다고 하면 집까지 같이 가주기도 한다.

7.2. 불심검문


일본에 가면 상당히 빈번한 불심검문에 놀라게 되는데 한국 경찰들이 불심검문에서는 상당히 친절한 편이라는 것을 제대로 실감하게 된다. 특히 자전거 등록 확인이 상당히 빈번한데 인상이 단정하지 못하고 튀는 스타일이면 자주 해대는데 심할 경우엔 하루에 몇 번씩 당한다. 또한 야간에 동네를 돌아다니다 순찰하는 경찰과 마주할 경우 경찰로부터 여기서 뭐 하냐는 검문을 받기도 한다. 이는 과거부터 가출청소년 문제 때문이라고.
이 경우 신분증을 안 가지고 다니다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산책 나왔다가 이거 가지고 실랑이를 당하게 되면 상당히 짜증난다. 산책이나 편의점에서 간단한 거 사러 나와서 신분증을 꼬박꼬박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실제로 당하면 항의하지말고 그냥 해달라는거 순순히 들어주면 갈 길 간다. 애초에 일본 경찰은 생각보다 권력이 약한 집단인 데다가 파출소 소속은 직접 벌금이나 징계를 부과할 권력도 없다. 특히 가장 강력한 신분증인 일본 운전면허증을 보여준다면 바로 갈 길 간다. 결국 훈계에서만 끝나긴 하지만 그러다 본청(경시청)이나 경찰본부 직속이라도 오면 답 없으니 그냥 해달라는 거 해주자. 그리고 일본에 여행을 간 관광객 입장이라면 평소에 돌아다닐 때도 무조건 여권을 챙겨서 나가는 것이 좋다. 여권은 해외에서 가장 간단하게 자기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이니 꼭 들고 나가자.

8. 미디어에서


일본에서 탐정물이 워낙에 인기가 있기 때문에 그와 관계되기 쉬운 경찰도 뻔질나게 등장한다. 다만 주인공 보정을 받지 못하는 대부분 경찰들은 항상 상황 끝나면 달려와서 뒷정리만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매체도 있지만.
실제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따와서 그런지 대체로 경찰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 거기다 윗 문단에서도 서술했지만 일본 경찰은 시민들에게 반말 쓰는 습관이 남아있어서[36] 이미지가 나쁜 편인데 미디어에서도 이런 점이 종종 반영된다. 자국 경찰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 미국 드라마와는 대조적인 특징.

8.1. 엔자이


일본 사법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엔자이는 사실 일본 경찰에도 책임이 있다.
성추행 사건에서도 논란이 되는 부분인데 일본 경찰에서도 성추행에 대해선 피해자의 증언에 우위를 두고 피의자가 성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것에 크게 비중을 두고 수사한다. 문제는 이를 반박하는 증거들이 나옴에도 그렇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타카 버스 사건이 있다.

8.2. 경찰이 나오는 작품



8.3. 가상의 경찰


오니야마 도쿠사부로, 쿠로사키 긴코, 시로이 모모
사토 미와코, 타카기 와타루, [37], , 메구레 쥬조, 시라토리 닌자부로, 치바 형사, 마츠모토 키요나가, 유미나가, 미야모토 유미, 미이케 나에코
  • 오사카부 경찰본부
  • 군마현 경찰본부
  • 시즈오카현 경찰본부
  • 가나가와현 경찰본부
  • 나가노 경찰본부
  • 공안
후루야 레이, [38]
히바나, 에코[39]
아트, 가스케

9. 관련 문서



[1] 이 때 전업에 실패한 많은 하급 사무라이들이 고향에 돌아가 은거하거나 사관을 꿈꾸며 각지를 방랑하는 로닌이 되었다. 고장의 지식인으로서 서당 또는 의료원을 운영하거나 무술을 갈고 닦아 무도가로 이름을 남긴 긍정적인 사례도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은 도적이나 꼴에 사무라이 랍시고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 폭력배가 되었고, 또는 갑작스러운 실직에 절망에 빠져 정줄 놓고 마을의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다.[2] 정확한 발음은 도~신, 도우신. 도가 장음이다[3] 직속 신하를 말한다[4] 칼이 비싸고 거추장스럽기도 하니 보통 사람들까지 차고 다녔던 것은 아닌 듯하지만, 도박꾼이나 양아치들은 위협을 받는 일이 많고 치안이 악화되는 밤길을 다니기도 했기 때문에 많이 차고 다녔다. 자기들의 뿌리가 에도시대 도박꾼 등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야쿠자들은 자기네가 칼을 들고 다니는 것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우긴다. 물론 과거부터 폭력조직이야 있었지만, 현재의 야쿠자라고 할 만한 조직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에야 생겨났으니 어디까지나 역사를 빌려온 견강부회. 실제로는 그저 싸움을 할 때 날붙이로 사람을 잡기 위하여 들고 다니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도 러시아나 북한, 중국 등에서 권총을 밀수입하고 일본이 법률을 정비하여 폭력단에 가중처벌을 하도록 하자 실제로 들고 다니거나 사용하는 예는 매우 감소했다.[5] 내무성의 경보국과 특별고등경찰도도부현청의 경찰부와 경시청[6] 한국으로 치면 국가경찰위원회[7] 스코틀랜드 야드라 불리는 기관 맞다.[8] 한국으로 치면 자치경찰위원회[9] 한국으로 치면 시·도경찰청[10] 특히 과격 환경운동가들이 종종 감시를 받는다.[11] 당초 미군정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영미식의 제도를 도입하려 했으나 검찰과 경찰 모두, 그 중에서도 특히 검사를 개무시하고 검사에게 누명 씌워 계엄사령관을 개무시하고 총살한 후 법무부 장관까지 들이박은 경찰이 매우 개혁에 비협조적이었기에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을 병렬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그쳤다.[12] 물론 경찰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검사의 지휘를 거부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면 검사가 기소를 안 해준다(...) 때문에 대부분은 검찰의 지시를 따르거나 최대한 설득하는 편.[13] 법률상에도 국세국, 증권거래등감시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가 적발한 재정경제범죄는 검찰에 고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14] 물론 순찰대 등 일반 경찰에 한해서다. SAT경찰특공대경찰기동대는 중무장을 한다. 이들은 M-16 자동소총글록 자동권총을 보유한다.[15] 이게 왜 문제냐면, 일본국유철도의 공안대는 1970~80년대에 이미 삼단봉을 휴대하고 있었다는 것 이다.[16] PPK와 유사하게 생겼다.[17] 이는 신형 춘추복 또한 마찬가지다.[18] 대신 정복 아랫주머니 밑에 권총집이나, 곤봉집, 무전기 거치대 등을 고정할 수 있도록 구멍을 길게 만들었다.[19] 일본국 건국 당시에는 베이지색이었다[20] 현지에서는 "햐쿠토오방(110番 (ひゃくとおばん))"이라 읽는다.[21] 해당 본부 휘하에는 음악대, 호위부, 경비부, 호위서 4곳, 황궁경찰학교 등이 소속되어 있다. 이 중 경비 2과의 경우에는 특별 경비대라는 이름의 경찰기동대도 배속되어 있다. 참고로 이 50명의 특별 경비대원들은 평시에는 일반 호위관들과 다를 바 없이 활동하면서 종종 시설 경비 업무와 의장 업무를 본다고 한다.[22] 복장에는 일반 경찰과 구별할 수 있는 악세사리 등을 달리하는 데 이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잘 안 띄는 부분이라서 일본인들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그나마 구별할 수 있는 건 호루라기끈 색상이 짙은 붉은 색을 하고 있으면 이 사람이 황궁호위관이라고 한다.[23] 이들 호위관 사이에서는 이런 업무를 두고 경위 업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호 업무는 덴노, 황족 이하의 황실 인사들의 신변경호를 의미한다고 한다.[24] 스키를 배우게 하는 이유는, 동계 요양시 황족들은 스키를 주로 타기 때문이다. 그러한 황족들을 경호하기 위해서는 이들도 스키를 수준급으로 타야 할 필요가 있다.[25] 신적강하. 황족의 신분을 잃고 평민이 됨.[26] 과거 쇼와 덴노의 3녀 다카쓰카사 가즈코와 5녀 시마즈 타카코가, 결혼 후에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가즈코는 강도를 당했고, 타카코는 납치 미수 사건을 당했다. 그래서 시집가서 평민이 된 공주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하여, 내정외황족(內廷外皇族) 즉,결혼으로 평민이 된 내친왕들에 대해서도 일본 경찰이 경호를 하도록 규정을 바꾸었다.[27] 단 황족의 약혼자가 도쿄도 외에 거주할 경우 현지 경찰이 경호를 담당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28] 또 자위대라는 조직 자체가 정식 군대가 아닌 준군사조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질적으로 군대라고는 하나 명목상으로는 어찌됐든 군대가 아니기 때문.[29] 번역하자면 예전에 어렸을 때 경찰 방송들 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폭력단 상대하는 경찰관들은 폭력단 같은 외관이 아니면 일 못하겠지" 라고 했었다는 썰을 푸는 한 트위터 유저의 글에, 다른 트위터 유저가 "제가 아는 지인 중에도 형사 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 사람도 엄한 인상이었음. 'TV에 나오는 걸 보고 있으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안 간다(TVに写ってるの見たらどっちがどっちかわからんやん = 어느 쪽이 경찰이고 어느 쪽이 야쿠자인지 얼굴만 보면 구분이 안 간다)' 라고 했더니 그분이 '국영 폭력단이니까 (헷갈려도) 어쩔 수 없지(国営暴力団やからなぁ)' 라고 했었음. 진짜 그 말대로구나 싶었음." 이라고 하는 내용(...). [30] 출처 : "어느 문민경찰관의 죽음 ~ 캄보디아 PKO 23년만의 고백(ある文民警察官の死 ~カンボジアPKO 23年目の告白~)". (해당 방송의 캡쳐본) [31] 한국에서 치면 "싸이카"이다.[32] 한국의 폭처법에 해당한다.[33] 특히 형사들이 범인 집에 처들어갈 때. 처음에는 와타시, 아나타처럼 친절한 표현을 쓰다가 범인임이 확인되면 순식간에 호칭이 오레, 오마에로 돌변하면서 고압적인 태도로 쏘아붙인다.[34] 2020년 1월 9일 기준으로 외국인이 당하는 차별이 카를로스 곤 구속 사건에서 부유층조차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났다.[35] 그런데 이것마저도 최근 아베 신조 총리가 무기한 정지시켰다...[36] 다만 이런 습관은 범죄피해자를 비롯한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상대할 때에는 비교적 잘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밤길에 불심검문을 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한참 젊은 경관이 중년의 시민에게 반말로 까칠하게 심문하기도 한다.[37] 폭탄 해체 도중 순직[38] 검은조직 잠입 중 사망, 위 서술한 모로후시 타카아키의 동생이다[39] SAT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