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독립운동가)

 


[image]
성명
김경(金慶)

산남(山南)·창암(蒼巖)
본관
수안 김씨
생몰
1888년 1월 28일~1966년 7월 15일
출생지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면 서편리
사망지
미국 뉴욕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경은 1888년 1월 28일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면 서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4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로스앤젤레스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몇 년간 거주하다가 1910년 박용만이 네브라스카주 헤이스팅스에 설립한 소년병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낮에는 농장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나무 총을 가지고 훈련을 수행했다. 1912년경 건축학을 공부하기 위해 시카고로 이주했으며, 1917년 어느 정도 돈을 모으자 이를 발판삼아 식당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운타운에 3백 석의 카프테리아를 오픈했다. 그리고 로렌스, 디버시 등에서 모두 5개의 식당을 소유할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1930년 무렵엔 워싱턴 카페테리아에서만 13만 달러에 달하는 수입을 벌었고 고용인은 40명에 달했다.
김경은 사업을 성공시켜서 벌어들인 돈을 토대로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한 투자를 실시했다. 1910년 대한인국민회에 가담한 그는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미주 지역 한인사회의 결집을 도모하면서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1920년대 말 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임시정부가 재정상 매우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다는 편지를 받고, 시카고에 있는 동포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는 한편 자금모집에 앞장섰다. 그리하여 그는 공동회(共同會)에서 모은 미화 200달러를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1934년 8월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재무부 주미제6행서(駐美第6行署) 재무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재미교포로부터 징수되는 인구세(人口稅)와 애국의연금(愛國義捐金)을 임시정부의 군자금으로 송금하는 등 지속적으로 임시정부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1934년경 강영대가 경영하던 로렌스 카페테리아가 파산 위기를 맞자 인수해줬으며, 그해 8월 28일 한장호, 강영승, 나재원, 최능익과 함께 강영소의 장례식을 집행했다.
한편, 그는 193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진열관을 차렸다가 큰 손실을 보았다. 이후 1938년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여생을 조용히 보내다 1966년 7월 15일에 뉴욕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김경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