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혁(컬링)

 

[image]
'''이름'''
김수혁(Kim Soohyuk)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84년 5월 5일(39세), 경상북도 의성군
'''학력'''
의성중학교
의성고등학교
경북과학대학교 경찰경호행정과
'''종목'''
컬링[image]
'''소속팀'''
경상북도체육회
'''병역'''
병역특례[1]
1. 소개
2. 선수 경력
3. 수상 기록
4. 기타


1. 소개


대한민국의 남자 컬링 선수다.

2. 선수 경력


중학교 시절인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이 중계됐을 때 규칙도 모르는 컬링 경기를 1시간이나 보면서 컬링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나가노 올림픽이 끝나고 몇 달 후 아버지의 지인인 김경두의 권유로 또래 친구들과 함께 컬링을 시작했다.
2004년에 고교 후배인 김창민, 박종덕 등과 함께 한국 주니어 컬링 사상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주니어선수권에 출전했다. 그동안 즐기자는 마음으로 해왔던 컬링이었지만, 이 때 4위를 하면서 컬링을 본업으로 삼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하였다.
이후 경북도청 컬링팀 선수로 활동하다 2000년대 중반 스킵 이동건과 함께 돌연 부산으로 둥지를 옮겼다. 부산에는 실업팀이 없어 국가대표가 되지 않는 한 사실상 급여가 없는 셈인데,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2018년 경북체육회 컬링팀 지도부 폭로 사건 때 이동건이 밝힌 바로는 당시 김경두의 선수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이동건과 박종덕, 부산에서 한 팀이 된 남윤호와 함께 강원도청 컬링팀에 스카우트됐다. 2010-2011 시즌 후 이동건이 은퇴하면서 강원도청의 스킵을 맡게 됐고, 2013 한국선수권 때부터 4년 연속 한국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강원도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국가대표가 되리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막상 평창 올림픽 대표팀을 뽑는 2017 한국선수권에서는 경북체육회에 국가대표를 내주고 말았다.
하필이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첫 동계올림픽이면서 소속팀인 강원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었기에 그만큼 중요한 순간에서 국가대표를 내줘 한동안 방황했지만, 이재호의 권유로 다시 마음을 잡고 이재호가 감독으로 있는 서울시청으로 이적했다. 최소 띠동갑인 어린 선수를 이끌며 2018 한국선수권에서 우승하며 다시 국가대표를 꿰찼다. 비록 세계선수권에서 13위로 꼴찌를 기록했지만,[2] 세계남자컬링선수권에서 스포츠맨십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선수에게 수여되는 콜리 캠벨 메모리얼 상을 수상했다.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이다.
2020년 말 경북체육회로 이적했는데,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고향팀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한다. 경북체육회 소속으로 활동하는 건 2021년부터인데, 고교 후배이면서 오랜 기간 라이벌 관계였던 김창민과는 2005년 주니어 국가대표팀 이후로 무려 16년만에 한솥밥을 먹게 됐다.

3. 수상 기록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3 아오모리
단체전
동메달
2017 삿포로
단체전
아시아태평양선수권
금메달
2002 퀸즈타운
단체전
금메달
2015 알마티
단체전
은메달
2010 의성
단체전
동메달
2013 상하이
단체전
동메달
2014 카루이자와
단체전
동메달
2016 의성
단체전
동메달
2018 강릉
단체전
유니버시아드
동메달
2003 타르비시오
단체전
주니어 아시아-태평양선수권
금메달
2005 토코로
단체전

4. 기타


  • 한국 컬링 1.5세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청의 다른 팀원과 나이 차가 10살이 넘어서 다른 팀원들은 김수혁을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장난삼아 놀린다고 한다.
  • 주니어 시절을 포함해 한국 컬링 국가대표로서 최다 대회 출장 및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갖고 있다.
  • 투구시 항상 스테빌라이저[3]를 사용한다. 스테빌라이저는 투구시 균형을 잡기 쉽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개인차가 있겠지만 오히려 균형을 잡는데 스테빌라이저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전문 선수 중에서 스테빌라이저를 항상 쓰는 경우는 드물다.
[1] 2003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하면서 병역특례를 받았다. 현역 남자 컬링 실업팀 선수 중 유일한 병역특례자이다.[2] 한국 남자 컬링팀은 세계선수권에서 2018년 경북체육회의 4위를 빼면 최다 승리가 2승일 정도로 줄곧 하위권이었다.[3] 왼손에 잡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