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스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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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3년에 데뷔한 걸그룹이다. 우리나라 걸그룹으로서는 최초로 정식 음반을 냈으며[1] 최초로 미국에 진출한 걸그룹이기도 하다. 음악적 성향은 재즈 특히 당시 유행했던 스윙재즈가 메인이었고, 락앤롤, 일반 팝송, 컨트리 뮤직, 국악 등 다양했다. 세대 구분을 하자면 대한민국 재즈 0세대이며 대한민국 걸그룹 0세대이다.
2. 멤버
3. 활동
우리나라 최초의 걸그룹인 저고리 시스터즈의 멤버였던 이난영이 그의 딸들인 김숙자, 김애자와 조카 김민자(이봉룡의 딸)를 모아 김시스터즈로 데뷔시켰다. 1953년에 미8군 부대에서 첫 공연을 하며 데뷔했다. 태어날 당시 부터 부친인 김해송은 월북 후 실종 상태였다.
이후 1959년에 우리나라 걸그룹 최초로 미국에 진출하게 된다. 이들은 당시 미국의 최고 TV 쇼 '에드 설리번 쇼'에 '''22번'''이나 출연했다.[2]
1970년 5월 한국으로 귀국해 공연을 펼쳤고, 한국과 미국을 돌아다니다가 1975년에 공식적으로 활동을 종료하게 된다.
4. 무대 영상
김시스터즈의 무대는 4분 40초부터 나온다. 참고로 썸네일 가운데의 여인은 김시스터즈가 아니라 가수 송민도 여사다.
5. 루머
5.1. 김시스터즈가 빌보드 Hot100 7위에 올랐다?
김시스터즈의 곡 "Charlie Brown"이 빌보드 싱글 차트 7위까지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일부 언론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떠도는데, 김시스터즈가 빌보드지에 실렸던 것과 별개로 싱글 차트 순위권에 들었다는 것은 거짓이다.
Charlie Brown은 더 코스터즈라는 그룹이 1959년 발표한 곡인데, 김시스터즈가 이 곡을 커버해서 음반을 취입한 것까지는 확인이 되나, 빌보드 핫100 7위 이야기는 한국어 웹사이트 또는 한국 언론의 영문판에서나 찾을 수 있다. 만약 김시스터즈가 핫100 7위에 오른 것이 사실이라면 1962년 당시의 빌보드 싱글 차트가 발굴되든지, 아니면 미국측 웹사이트에서도 한 번은 거론될 만 한데도, 아무런 출처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김시스터즈는 빌보드지에 몇 번 실린 적#, #은 있으나 정작 김시스터즈가 7위에 올랐다는 그 싱글 차트만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최규성이라는 평론가가 자신의 저서 <대중가요 LP가이드북>에서 김시스터즈가 빌보드 핫100 7위에 올랐다는 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후일 발표한 <걸그룹의 조상들>이라는 저서에서는 "차트를 확인해본 결과 김시스터즈가 빌보드 핫100 차트에 오른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정정한 바 있다. 한편 김시스터즈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 영화 <다방의 푸른 꿈>을 감독한 김대현 감독 역시 영화 제작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면서 김시스터즈가 빌보드 차트 순위에 올랐다는 것이 잘못된 내용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씨네21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밝힌 바 있다. 이를 볼 때 김시스터즈의 빌보드 핫100 7위설은 거짓임이 확실하고, 싱글 차트 진입 자체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동아일보, 문화일보, KBS 등 온갖 제도권 언론에서 이 설을 그대로 보도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를 확대재생산할 기미가 보이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6. 여담
- 멤버들의 영문 이름이 우리의 예상과는 약간 다르게 표기되었다.[3]
- 숙자는 Sukja나 Sookja일 것 같지만 Sue(수)라고 표기되었다.
- 애자는 Aeja일 것 같지만 Aija(아이자, 에이자)라고 표기되었다.
- 민자는 Minja일 것 같지만 Mia(미아)라고 표기되었다.
- 이렇게 표기한 것은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멤버들의 이름을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약간 고친 것으로 보인다.
- 20여 개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 미국 활동 당시 주급이 무려 1만 5000달러였고, 라스베가스의 고액 세금 납부 순위 4위에 오르기도 했다.
- 숙자와 애자의 어머니인 이난영은 저고리 시스터즈의 멤버로 활동한 적 있다.
- 음악적 재능은 그들의 아버지 김해송, 이봉룡과 이난영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집안 전체가 '뮤직 패밀리' 였던 셈이다. 이난영 여사는 자식들과 조카들을 엄격히 연습시켜 김시스터즈와 김보이즈로 데뷔시켰다. 또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데이트도 거절하는 등 김시스터즈 멤버들이 음악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 데뷔를 준비 할 때 어머니 이난영 여사가 장터에서 해적판 미국 레코드들을 구해왔는데 'Ole Buttermilk sky' 링크, 'Candy and Cake'링크 등 스윙재즈 재즈스탠다드로 주로 연습했다고 한다. 그들의 음반을 들어보면 상당수가 음악 성향이 스윙재즈이고 락앤롤, 팝송 성향의 곡들 위주의 음반과 영상들이 남아 있다.
- 김시스터즈가 미국에서 성공한 이후, 이난영 여사와 김보이스가 미국에 가서 협연까지 했으며, 윤복희, 김치캣츠, 패티김 등의 수많은 후배 여가수들이 미국에 진출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한미관계가 나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끊겼고, 2009년에야 원더걸스의 미국진출 시도로 재개된다.
- 2017년 김대현 감독의 관련 다큐멘터리 '다방의 푸른꿈, Try to Remember'가 제작되었다.
- 2015년 TVN에서 김시스터즈를 다룬 드라마 '위대한 이야기.1화 이난영과 김시스터즈 위대한 이야기'를 방영했다.
- 현재 김숙자는 라스베가스에서 거주 중이며, 김민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재즈 연주자인 남편과 결혼해 살고 있으며, 김애자는 1987년 라스베가스 메모리얼 병원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