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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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現 축구 스카우터이자 울산 현대의 원 클럽 플레이어.
2. 경력
2.1. 선수 경력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2005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여 프로 무대에 입문하였다.
울산에서 2005 K리그 우승, 2006년에는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A3 챔피언스컵 우승, 2007년에는 리그컵 우승을 이끌었다. 2009 시즌이 끝난 후, 군 문제를 해결하고자 상주 상무에 입대하였고, 2011년 시즌 중, 군 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하여 2011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12년에는 팀이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2016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한 김영삼은 11월 2일 열린 제주와의 시즌 마지막 리그 경기에서 후반 42분 교체 출전하며 선수 생활 마지막 경기를 치렀으며, 동시에 울산에서의 K리그 및 리그컵 통산 200경기 출전을 달성하였다. 김영삼은 이 경기를 끝으로 12년 간 이어온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으며, 2003년 정정수의 은퇴 이후 13년 만에 울산의 원클럽맨으로 은퇴하는 선수가 되었다.
2.2. 지도자 경력
은퇴 이후 울산의 유소년 스카우트로 선임되었다.
2020시즌을 앞두고 울산에서 맺은 인연으로 김호곤 단장과 김도균 감독이 있는 수원 FC의 수석코치로서 프로 지도자 생활에 첫 발을 내딛는다.
3.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에는 울산의 싸움닭 역할을 자처하며, 왕성한 활동량과 스피드를 보여주며 울산의 중원 장악에 힘을 보태었던바 있다.
하지만 군복무 이후 김영삼의 위치는 애매해져 버렸다.
김호곤 감독은 김영삼을 중앙 미드필더 보다는 사이드 풀백으로 기용하길 원하나, 김영삼 선수의 수비력 부족이 자주 도마에 오르고있다. 다행히 13시즌 들어 수비 센스가 개선되면서 팀의 상황에 맞추어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않고 활약했다.
4. 여담
-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진 것과[1] 달리 축구인 김영삼은 경제적으로도 뛰어난 투자 능력을 갖췄다고 한다. 신인 때부터 펀드에 조금씩 투자한 김영삼은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인한 주가 하락 때도 전혀 손해를 보지 않을 정도로 투자의 귀재라고 하며, 펀드 열풍이 불 때는 주변에 조언을 해줄 만큼 경제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 ‘울산의 워렌 버핏’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그의 방에는 재테크 관련 책이 빼곡히 쌓여 있을 만큼 그는 늘 경제와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1] 항목 보면 알겠지만 경제적으로 유능하진 않았지만 크게 무능한 대통령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