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제일고등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Jeju Jeil High School
濟州第一高等學校
'''
[image]

<colbgcolor=#1e7596> '''교훈'''
자주(自主), 창조(創造), 협동(協同)
'''개교'''
1955년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남학교
'''운영 형태'''
공립
'''교장'''
문홍철
'''교감'''
강재철
'''학생 수'''
1331명
2019년 11월 16일 기준
'''교원 수'''
84명
2019년 11월 16일 기준
'''캐릭터'''
청룡
'''관할 교육청'''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진군길 22 (노형동)
'''홈페이지'''

'''학교알리미'''

1. 개요
2. 역사
2.1. 학교 연혁
3. 학교상징
3.1. 교육의 기본방향
3.5. 교색
3.6. 교가
3.7. 응원가
4. 교통
5. 특징
5.1. 주요 행사
6. 사건 사고
7.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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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위치한 남자 일반계 공립 고등학교이다. 제주도민들이 줄여부르는 말은 '일고', '제일고', '제주일고' 등이 있다. (e.g. "너 어느 고등학교 다니니?" "일고요")

2. 역사


1955년 9학급으로 개교했다. 개교 당시의 학교 위치는 제주시 광양사거리 부근(현 제주삼성초등학교 부지)이었다. 교가에 '광양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광양 교정시기 끝물에 학력고사 전국수석인 원희룡 현 제주지사가 이 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에 현 학교 위치인 노형동 교정으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른다. 2020년 1월 17일에 63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60회 졸업생을 배출한 2017년 2월에는 원희룡도 왔다.

2.1. 학교 연혁



3. 학교상징



3.1. 교육의 기본방향


'''교훈'''
자주(自主), 창조(創造), 협동(協同)
'''교육목표'''
기본이 바로 선 창의적인 세계시민 육성
'''경영목표'''
꿈과 끼! 열정이 살아 숨 쉬는 학교

3.2. 교표


[image]
  • 일고(一高)를 중심으로 1955년 개교년도와 개척, 단결, 승리의 제일정신을 의미하는 3개의 선
  • 청룡을 보여주는 외곽의 선을 통해 하나의 상징으로 구현

3.3. 교목


[image]
  • 소나무과의 상록침엽 교목
    • 높은 이상과 고고한 절개
    • 불의를 멀리하는 정의로움
    • 세한삼우(歲寒三友) 중 하나

3.4. 교화


[image]
  • 차나무과의 상록 교화
    • 붉은 꽃 : 젊음의 이상과 정열
    • 꽃말 : 신중, 허세부리지 않음

3.5. 교색


[image]
  • 미래를 지향하는 일고인의 희망과 진취적인 기상
    • (PANTONE314U C=100, M=0, Y=9, K=30)

3.6. 교가



1절

늘 푸른 대양과 한라의 정기어린

광활한 광양벌에 일어선 전당

진리로 향한마음 갈고 닦으며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을 펴자

그 이름도 빛나다

제주제일고

우리의 그함성이

온누리에 퍼져라

2절

질긴돌 캐내고 모진바람 이겨낸

불굴의 그 역사가 다져진 이곳

민족의 새영광을 이뤄내려고

가슴을 활짝펴고 힘써 배우자

그 기개도 장하다

제주제일고

우리의 발걸음이

지축까지 울려라

원곡
신입생들은 교가를 외워두자. 전통훈련과 백호기훈련때 2절까지 안외우면 바로 얼차려다. 학생회가 직접 바로 와서 웅얼거리는지 제대로 부르는지 확인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외울 것.

3.7. 응원가


차돌이를 제외한 모든 응원가는 반드시 2번 부른다.
또한 각 노래의 취소선은 구령자대사이다.
차돌가

'''차온필울폭승싸그 차온필울폭승싸그 필필얍'''[5]

차돌같이 단결했다 육탄의 왕자

온세상의 용감함을 떨쳐 일으켜

필승하는 우리 선수 질줄 모르니

울려라 진군의 나팔

폭풍같이 달려 나가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리세

싸우면은 이겨내는 우리 선수야

그 이름 빛나도다.

특이하게도 이 차돌가는 부르기에 앞서서 각 구절의 가장 앞글자들을 따서 먼저 두 번 선창한다.
뱃노래

파도치는 물결소리

단잠을 깨우니 어기여차

들려오는 노 소리 처량도 하구나 어기여차

에야노 야노오야 어기여차

에야노 야노오 어기여차

뱃노래 가잔다

젊은 그대

거치른 벌판으로 달려가자

으쌰라 으쌰 으쌰라 으쌰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

으쌰라 으쌰 으쌰라 으쌰

보석보다 찬란한 무지개가

살고있는 저 언덕넘어

내일의 희망이 우리를 부른다

젊은 그대 잠깨어 오라 아아

젊은 그대 잠깨어 오라 아아

아 아 사랑스런 젊은 그대

아 아 태양같은 젊은 그대

젊은 그대 젊은 그대

Victory

빠 빠 빠빠빠 빠 빠빠 빠 빠빠 빠빠빠빠빠빠빠빠빠빠

빠빠빠 빠 빠빠빠 빠빠 빠빠빠 빠빠빠 빠 빠빠빠

빠빠 바바바 빠빠 바바바 빠빠 바바바 바바바 바바바

빠빠 바바바 빠빠 바바바 빠빠 바바바 바바바 바바바

도전과 맞서 싸운 우리에게

이제와 남은 건 승리뿐

그 누구도 일고 막을수는 없다

얖을 향해 뛰어가는거야

승리향해 달려가는 우리일고

이제와 남은건 도전뿐

힘이 들더라도 승리위한 환호

모두 소리 높여 외쳐보자

To the victory

빠바 빠빠빠 빠빠빠 바

To the victory

빠바 빠빠빠 빠빠빠 바 빠빠빠

응원가 중에서 동작이 극악을 자랑하는 응원가는 뱃노래. 손을 땅에 박고 무릎을 꿇었다가 무릎을 펴면서 크게 노젓는 시늉을 하는 동작인데, 이렇게 글로만 봐서는 모른다. 거기다가 노래까지 불러야 하니, 엄청나게 힘들다. 동작을 쉽게 할 목적으로 허리 반동으로 동작을 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처음엔 수월할지는 몰라도 나중에는 진짜 허리 나간다. 절대 허리 뒤로 젖히지 말자. 그리고 부르기 가장 힘든 응원가는 Victory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응원가중 '청룡가'의 입지가 거의 없다시피 되었다.전통교육 때도 청룡가는 하지 않고,백호기 때도 거의 하지 않는다.
참고로 제주일고의 독특한 응원단인 "용가리"는 원희룡 현 제주지사가 학생시절 주도하여 만들어졌다. 다른학교와 차별되는 독자적인 응원도구를 만들어보자란 생각에 때마침 받은 장학금 전액을 사용하여 제작하였다고. 당시 용가리의 입 속에 에프킬라를 달아 불도 뿜게 하였으나 낡아 교체하면서 불을 뿜는 기능은 없앤 대신 연막을 뿜게 만들었다.[1]
이후 맥이 끊어졌던 백호기가 2015년 부활하여 일고를 포함한 여러 제주도내 여러 고등학교가 참여하였으나, 역시 휴식기간이 있었던 탓인지 예전보다는 백호기 응원의 볼거리가 상당부분 약해졌다는 평이 많다. 일고도 상기한 용가리 응원과 여러 색의 티셔츠를 이용한 카드 섹션을 하지 못하고 다른 형태의 응원으로 대체한 바 있다.
용가리의 뒤를 이은 응원단은 "히어로"가 있다. 히어로는 백호기 때 가장 앞에서 응원한다. 응원가 '차돌이'를 할 때 군무를 춘다. 그리고 '차돌가'를 할 때 깃발을 들고 휘저으며 박자를 맞춘다.


4. 교통


제주제일고등학교
240, 311, 312, 320, 360, '''365''', 415, 3001(심야), 3003(심야), 3005(심야)
교통편은 제법 괜찮은 편이다. 아니, 제주시내 일반고 중에서는 가장 편하다. 일단 학교 가까운 곳에 정류장이 두 군데(제주제일고등학교[2], 으뜸마을[3]) 존재하고, 대다수의 버스의 종점인 한라대가 바로 근처에 있어서 여차하면 종점에서 타도 된다.[4] 일고 주변은 교통 체증이 심하지 않은 편이기도 하고... 다만, 남녕고 앞을 지나는 노형로와 노형 오거리는 퇴근시간에 지옥이 펼쳐지기도 한다. 한편, 야자 때문에 밤늦게 마치는 학생은 한라대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물론, 셔틀 버스 크기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기 때문에 매일 이용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주변이 주택단지여서 그냥 걸어다니는 학생도 많을 것이다.

5. 특징


오랜 예전부터 제주도내 인문계 고등학교로 자리해왔다는 점에서 오현고등학교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4년제 종합대학교가 오랫동안 제주대학교 하나밖에 없었던 지역 특성상, 제주도 사회에서의 학연은 전적으로 고등학교 중심이었고 그 한가운데 이 일고와 오고가 있었다. 지금도 제주도 내에서 잘 나가는 4~50대 이상 기성세대들은 이 두 학교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때문에 두 학교 간의 라이벌 의식도 꽤 치열한 편. 일종의 일고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어서 일고 교장, 교감은 일고 출신들이 암묵적으로 맡는 것이 관례이다. 일고 출신 교사들의 가장 큰 명예가 일고 교장으로 퇴임하는 것일 정도.
단순히 제주도 내에서만 잘 나간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알아주는 명문고였다. 서울대학교 합격자를 한 해 4~50명씩 배출하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아웃풋을 보여줬다. 원희룡을 배출한 것도 이 무렵. 고교 평준화 정책 시행 이후 조금씩 쇠락해가기 시작했고 현재는 다른 제주시내 일반계 고등학교와 큰 차이가 없는 평범한 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도 제주시내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선 가장 인기가 높은 학교 중 하나이다. 첫 번째 이유는 일단 그래도 아직까지 많은 제주도 학부모들이 일고를 명문고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 두 번째 이유이자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학교의 위치'''이다, 제주시에서 가장 인구성장률이 높고 가장 부촌으로 손꼽히는 노형동 한가운데에 학교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 사실 80년대에 학교를 노형동으로 이전할 때까지만 해도 이 동네는 진짜 아무것도 없는, 학교 주변이 온통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외진 동네였다. 도청 인근이 먼저 개발되기 시작해서 한라병원과 남녕고 주변도 허허벌판[5]인 상태였는데 그보다 더 외진 곳에 있는 일고야 말할 것도 없었다. 1990년대 후반이 되어도 노형동 주민센터와 수목원 사이에는 한라대, 탐라도서관, 일고, 제주고(당시 제주농업고등학교)와 민가 몇 채 외에는 전부 소나무밭으로 아무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사방이 소나무뿐이었다. 1999년 무렵에 학교 주변이 택지개발지구로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학교 주변 경관이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뀌었다. 정문앞 2차선 도로가 원래 1100도로였다. 그 건너편은 전부 소나무밭이었고.[6] 택지개발이 이루어지며 학교들 때문에 도로확장이 어렵자 지금 위치로 옮겨 넓힌 것이다.[7] 택지개발의 영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 학교부지 일부를 제공하긴 했다. 대신 학교 마크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기증[8]받았는데 당시 학생들 사이에선 평이 매우 나빴다.[9]
현재는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보면 주변이 온통 아파트 등 주택단지고, 도시 계획도 반듯한 도로로 짜여진 것을 볼 수 있다. 경쟁 고등학교인 오현고나 주변도 최근들어 개발이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일고 주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 덕분에 공립학교여서 다른 사립학교들과 달리 우수한 중3학생 스카우트를 할 수 없는 약점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다.
상술한 것처럼 탐라도서관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학교를 일찍 마쳤는데 정 공부를 더하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애용하자. 야간에는 셔틀 버스도 운행한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일고와 탐라도서관 사이에 도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도 당연히(...) 소나무밭이 있었다. 학생들이 많이 다니다보니 자연히 샛길이 나 있었는데 해가 지면 너무 어두워 길을 잃을 정도였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다만 여기저기 출몰하는 담뱃불만 따라가면 되기는 했었다. 야자시간에 땡땡이친 학생들(주로 3학년)이 탐라도서관 가는 샛길에 숨어 담배피고 있었던 것. 재학생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명칭은 탐라의 불빛(...)이었다 지금도 탐라도서관과 일고 사이에 소나무가 조금 심어져 있는데 일부러 심은 게 아니라 도로를 내면서 베지 않고 내버려둔 것이다.
교복은 검은색에 흰색이 섞인 정장 스타일의 교복(동복)을 입는다. 신발은 검은색 계통 구두, 단화, 운동화가 권장사항이다. 지금 교복이 채택된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변경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봐도 그다지 촌스럽지 않은 편이라 학생들의 거부감이 덜한 편이다. 다만 문제는 셋 이상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면 왠지 각목이나 쇠파이프 하나씩 쥐어주고 싶어지는 비주얼이 된다는거(...) 짧은 스포츠머리(18mm)가 기본이라 더욱 그렇다.
2018년기준 62기 학생회가 출마하면서 두발 규정과 신발 규정이 사실상 풀렸다.

사실 2017년 입학한 당시 63회 신입생이 두발규제와 신발 등을 문제삼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신청을 넣어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그 여파로 두발규제가 풀리게 되었고 검은색 신발만을 신어야하는 규정 또한 사라졌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신청을 시작으로 학생회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대자보를 작성해 붙이고 인권단체를 조직해 인권운동을 하고있다고 전해진다.(...?)
2019년에는 그 학생이 3학년이 되어 압력을 줄 선배도 사라져 과감한 행보가 터질것이라고 62기 사이에서 말이 예측이 난무했다. 실제로 2018년 수능이 끝나고 학교를 한번에 뒤집을 수 있게 준비중인 모습을 몇명이 보았다고 한다.
실제로 이후 그 학생을 주도로 하여 일고 안에서 폭력적, 반인권적 문화를 개혁하자는 세력이 만들어졌다. 63회 학생이 대부분인 소수세력이였지만 영향력은 상당한 편이였다. (64회도 몇명 있었다.) 학생회가 학생들을 폭력한 사례나 특정 교사(김읍읍)의 체벌, 차별 행동, 백호기 문제 같은 일고의 문제를 완화시킨 면이 있다. 그러나 수능 이후 아무도 그 선배들의 행방을 모른다는게 아쉬움. 아마 재수하지 않았을까.
63회 소수세력은 주도적인 3명과 그 지지자들로 구성되었다. 3명을 칭하는 용어는 보통 '인권충' 전통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서 생긴 부정적인 호칭이다.
소수세력은 2019년 전성기를 맞았다. 2017년과 2018년 지속된 의견의 개진으로 예상외 많은 학생들이 적극적이진 않아도 소극적으로는 동조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사실 학교 안에서 큰소리를 내는 부류는 주로 학생회와 그들을 빽으로 삼는 친구들과 후배들이라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모두 소수세력의 주장을 부정하진 않았다. 이런 분위기와 특히 아래 등장하는 인물들이 3학년이 되며 선배들이 사라지고 동시에 소수세력의 지지층 대부분인 학생들 역시 3학년이 되면서 기대가 높아졌다.
Y : 한마디로 정리 가능한 사람. 위에 나온 63회 미x놈이 이 사람이다. 학교에선 파랑색 체육복 상의 위에 마이를 입고 항상 졸린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일이 있으면 눈빛이 되게 무서워진다. 학교 안에서만이 아니고 제주도 전체에서 학생인권 관련해서는 권위가 있는 편이라 뉴스에서도 몇번 볼수 있었다. 신기했던 점은 학교 교문만 나서면 외모가 상승하는 능력이 있다. 학교 안에서는 그냥...아마 맨 정신에 옷도 신경써서 입어서 그런거같다. 소수세력의 리더? 느낌 말이 좋아서 리더지 선생이나 학생들이 욕하는걸 들어보면 전부 다 이 사람 욕이다. 사실상 방패랑 같은 역할.
S : 무섭다. 진짜 싸움 잘하게 생겼다. 64회 안에서는 소수세력 선배들 3명을 보고 맘에 안들면 대려가서 다구리칠거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도 그럴만한게 앞에 Y와 아래 K ,이 사람 모두 키와 덩치 모두 큰 편이라 충분히 오해할만 하다. 나도 쫄았었다. 맨 처음에는 Y에게 밀려 인지도가 없었지만 2019년 말 쯤에는 모르는 선생님이 없을 정도였다. 2019년 학생회 사태 뉴스 보도의 주역.
K: 소수세력 중에서 가장 조용했던 사람. RPG게임의 법사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될거같다. 처음 S와 같이 학교에 일단 욕부터 박고보는(선생이든 학생이든..)+교장도 있었다.)Y의 광기를 컨트롤할 수 있는 몇없는 인물였지만 이후 S도 답답했던지 Y랑 어깨를 나란히했었다.그래서 K혼자 말리느라 힘들었을것. 브레인을 담당하는거 같다.
+2020년 1학년 교실에 방문했었다. 소문으로는 3명 중에서 유일하게 현역으로 대학 갔다는데 3명 중 1명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라 확실치않음
학교 문화의 개혁을 지지하는 진보진영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일이 있었다. 예로 선거제도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는 게시물이 교내 1,2,3층에 붙었다. 실제 효과는 미비했지만 선거를 앞둔 시점이여서 특히 64기 학생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그런 반면 선거제도는 바꾸기가 어려워 그냥 유지하고 학생회중 폭력을 한 학생회들을 탄핵하자는 의견도 나왔었다.

아래 3명과 학생회 사이가 무척이나 안좋았는데 특히 Y의 경우는 학생회끼리 세대를 교체하는 과정에서도 사이가 안좋았다. 동기들이 다 보는 장소에서 학생회는 Y에게 욕설과 모욕을 했다. 작성자가 직접 목격한일은 체육관에서 차돌가를 부르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때 Y는 차돌가를 부르지 않았고 학생회와 그 친구들은 전교생 앞에서 Y에게 욕설을 했던 적이있다. 또 보통 각반의 학생회들과 그 친구들이 대놓고 아래 3인에 대해서 뒷담화하는건 일상이였다. 이렇게보면 아래 소수세력이 학생회들에게 괴롭힘당하는 불쌍하게 보일수있지만 사실은 그러지 않았다. 학생회와 Y의 사이가 되돌아갈수없을 정도로 나빠지게 되었던 이유중 가장큰 이유는 항상 크게 학생회에게 <선물>을 준것에있는데 그 선물은 아래나온 뉴스보도와 같은 큰일이였다. 그리고 다소 급진적인 Y의 성격때문에 학생회에 관한 수위높은 비판을 하는일이 많았다. 작성자가 기억하는건 "선거때는 열심히 하겠다고 그러지만 뱃지를 다는 순간 학생들을 열심히 갈구는 학교의 개들", "학교에 붙어서 꼬리흔드는 폭력집단" 등등이 있었다. 이런말들을 누가 있든 없든 상관 안하고 말하는 Y의 성격땨문에 많은학생들이 들을수있었다. 저거는 상당히 완화시킨 표현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욕설을 섞고 과격한 표현도 많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k와s가 가만히 있었던건 아니다. k는 잘 모르겠는데 s는 꽤 수위높은 욕들을 많이 했다. 단지 Y의 수위가 매우 높았어서 가려졌을 뿐..

작성자는 아래 3명 중 한사람과 매우 친하지도 안친하지도 않은 중간에 있던 한 졸업생이다.학교에서 저들에게 동조한적도 없고 학생회를 칭찬하지도 않았다. 단지 관심이 많았을뿐. 그래도 확실한건 아래 3명이 일고역사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들을 주도해서 했다는 것이다.
단화도 많이 신지만 운동화가 더 편하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운동화를 많이 신는다. 단화의 경우에는 이마트표도 자주 신는 편이나, 광주약국 쪽 바이네르 아울렛에서 구두나 단화를 사서 신는 학생도 많다.
명찰이 따로 없는 대신, 이름을 박아놨다. 그 전에 2000년 무렵까지는 교복에 명찰을 다는 형태로 '''제주도내에서 유일하게''' 한자 명찰을 사용했다. 대신 못 읽고 서로 이름을 묻고 다니는 촌극이 벌어지긴 했다. 한자를 읽을 줄 아는 학생이 있으면 치켜세워주는 훈훈한 광경도 있었지만 읽을 줄 아는 학생이 드물어 보기 힘들었다. 학년 구분은 43회는 무슨 색, 44회는 무슨 색 하는 식으로 구분하며, 파란색, 노란색, 흰색으로 구분했다. 한자를 읽지 못하는 학생이 많자 한자명찰을 유지하는 의미가 없다고 하여 한글명찰로 바꾸었는데, 문제는 기업 명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명찰 가운데 증명사진을 집어넣은 것이다. 한창 사춘기인 학생들이라 입학할 무렵의 앳된 사진을 달고 다니자니 손발이 오그라든다며 대부분 명찰을 안 달고 다니기 시작했고, 결국 몇 년이 지나 교복에 이름이 박아넣는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
교실 쪽에는 높은 담장이 있는데, 수능 및 원서접수 시즌만 되면 온갖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닌다. 담장을 넘으면 원하는 대학 or 서울 사대문 안으로 갈 수 있다는 루머가 퍼지기 때문. 어디까지나 루머이기에 딱히 추천하지는 않지만, 고등학생의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도 좋다.
공립이라 많은 교사들이 제주일고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학생들도 말썽부리기엔 껄끄러워 일정한 선에서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그 선만 넘지 않으면 교사도 비교적 자유롭게 봐주는 편. 교사에 의한 체벌은 1990년대 후반엔 거의 찾아볼 수 없게된 상태였다. "고등학생 씩이나 돼서 빠따가 뭐냐? 애도 아니고 쪽팔리게."라는 것이 이유.

근처에 초, 중, 고가 띄엄띄엄 몰려있기 때문에 주변에 피시방을 찾기 힘들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10] 피시방이 보이더라도 다른 학교 학생이 차지하고 있을 경우도 많다. 한라대 방향으로 쭉 나간다면 몇개 보이기는 하지만, 규모가 작은 곳도 많기 때문에 피시방 경쟁을 해야 한다. 아예 그랜드호텔 쪽이나 연동으로 나가야할 판.[11] 수능 시험장의 경우에는 (신제주, 애월/한림권역 학생 한정) 남녕고가 걸렸을 때가 가장 좋다. 학생 대부분이 학교 근처에 거주하고, 교통편도 좋으며 일단 학교에서 제일 가깝기 때문이다. 오현고나 대기고(...)가 걸린 경우에는 묵념.[12]
아주 가끔이지만 제주외고에서 체력장 등의 이유로 학교 운동장을 사용하기 위해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 거의 유일하게 학교에서 여학생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겨울철에는 학교 앞 롯데마트 사거리라든가 심한 경우 노형 오거리에서도 눈보라가 치는 것을 구경할 수 있는 때도 있다. 과학고나 외고처럼 산 속에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만 올라가면 수목원이 보일 정도로 산입구에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 부근이 거의 공터형태이기 때문이다. 삼다도의 바람, 바람맞이 사면, 공터의 삼박자로 따뜻한 남쪽 섬이라는 환상을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한 눈보라를 볼 수 있다. --눈이 많이 온다 싶으면 가까운데 사는 학생들만 단체로 지각한다. 휴교될 줄 알고 느긋하게 늦잠자다 선생님의 전화받고 분노한 엄마의 불꽃 등짝스매싱을 두드려 맞고 등교하는게 표준사양. 멀리 살수록 오히려 일찍 등교한다.
여담으로 입학하면 '일베'라는 용어를 자주 듣게 되는데, '일고 베스트'라고 하는 축구/농구 잘하는 애들 모임이다. 착각하지 말자.
성적 우수자의 경우에는 '일맥반'에 가입할 수 있다. 공립 학교여서 그런지 특별히 대단한 혜택은 없고, 교문 들어가서 왼쪽에 있는 자습실을 야자 시간에 이용하는 정도이다. 현 3학년(61기)은 일맥반이 아닌 심화반이 존재하며 (기준은 문과 내신 3.0, 이과 내신 3.5로 꽤 널널한 편이며 형식상으로 존재하고 일맥반과 달리 혜택은 0에 수렴한다) 타 학년인 경우, 일맥반 학생만 다른 장소에서 자습하는 것과 달리 61기 심화반 학생은 일맥 도서관 자습실을 야자 시간에 사용하지 않고 모두 각 학년 교실에서 공부한다. 2017년부터 3학년은 4층에서 자습해야 하며 복도를 지나갈 때 그 웅장한 규모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61기가 1학년이었을 당시 심화반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는데,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특정 선생님의 의견으로 61기부터 폐지되었다. 2017년 63회가 1학년일 당시에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위지학'이라는 것이 생겼는데, 신청을 하면 성적 등을 토대로 선발된다.

5.1. 주요 행사


3월 초중순 쯤 전통 이어가기 교육이 있다. 대개 3일동안 실시하는데,이 때 관리/지도하는 학생회 선배를 잘 만나야 한다.성격 안 좋은 학생회 임원이 자기 반 담당이라면,그 즉시 'ㅈ됐다'라고 생각해도 괜찮다.이 때는 성격 좋은 임원들도 응원가 제창과 동작의 통일을 위해 소리를 빽빽 지르는만큼,3일동안 선배들이 군대 조교로 보인다.
엎드려서 일어날 때는 왼발부터, 일어날때 발에맞춰 제!일! 을 외쳐야 되고, 대답은 악이다. 뱃노래할 때는 가운데는 피해야 하며, 빅토리, 젊은그대를 할 때는 발바닥이 아플테니 조금씩 쉬기를... 그리고 1학년이라면 앞에 2학년들이 있는데 눈 마주치면 뻘쭘하겠지만
팁을 주자면 노래는 웬만해서 다 외워 가는 것이 낫다. 또한 젊은 그대와 빅토리의 시작 박자, 끝나는 박자를 완벽히 숙지해야 하며 (혼자 틀린 경우 굉장한 눈치를 볼 수도 있다) 젊은그대 같은 경우, 젊은-그대(대와 박수를 동시에 치고 차렷자세), 빅토리 같은 경우 빠 빠빠빠빠에서 마지막 빠와 동시에 차렷자세를 하면 된다. 뱃노래 간격, 차돌가 간격 또한 빠르게 이해해야 한다. 뱃노래 간격 같은 경우는 기준 선 기준으로 두 칸 떨어진 사람을 중심으로 뭉쳐야 하는데, 한 줄을 문자로 나타내고 x를 기준, 나머지 사람을 o라고 하였을 때, o o o O o x o O o o o 에서 큰 O를 기준으로 모여야 함을 의미한다. 즉, oooOo x oOooo 이렇게 빠르게 모여야 한다.
아무리 전통교육 때의 3학년 선배가 무섭다고 하더라도 무서워 보일 뿐, 실제로는 전부 착한 선배이다.
미리 목캔디나 호올스를 왕창 사 두는 것이 좋다.아무래도 목이 쉬어야 정상일 정도로 노래를 부르는 만큼 당일의 교육이 끝나면 목캔디가 절실해지는 법인데,이 때 반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면 인상이 좋아진다.학생회장 또는 학생회 선거에 나가는 2학년의 경우 1학년에게 목캔디를 나누어주어 어드밴티지를 얻을 수 있다.
학교 축제인 일맥제가 격년으로 열린다. 그리고 일맥제가 열리지 않는 해에는 동아리제가 열린다.
축구부가 있기 때문에 백호기 축구대회에 참여하고 응원전도 펼친다.
충무공 탄신일 즈음 '원보훈련'을 한다. 원거리 도보 훈련이라서 원보훈련. 말 그대로 엄청난 거리를 걷는 것으로, 제주도판 국토순례 내지 행군이라고 보면 된다. 극기훈련으로 1967년부터 시작하였는데 6회 무렵에 충무공 탄신일로 시기를 변경하였다. 오래된 행사인 만큼 당일치기에서 1박2일로 바뀌었다가 다시 당일로 바뀌는 식으로 걷는 코스나 거리가 여러번 바뀌었다. 학년별로 다른 루트를 가기는 하지만, 한라산을 넘어서 서귀포시를 향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최근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간은 1박 2일로 80km 가까이 걸었다고 한다. 어린 학생에게 가혹한 일정이기에 선생님도 특별히 신경을 쓰며, 힘든 학생은 차에 탈 수도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눈치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준비물로는 발에 잘 맞고 장거리 걷기에 적합한 신발은 필수고, 물, 음료는 무거울 수도 있지만 넉넉하게 가져가야 좋다. 갈증 해소에 도움이 되는 오미자차와 오이도 추천한다. 또 의외로 입맛없을 때가 많은데 많이 먹어두지 않으면 아주 후회하게 된다. 한라산 정상에 올라가는 루트(3학년)인 경우에는 혹시 모르니 돈도 챙겨가서 라면이나 물을 사먹는 것도 좋다.학생 중 1명(학년장)은 제일고 깃발을 들면서 앞장서게 되는데, 이게 꽤 무거워서 어깨에 천을 묶어 깃발과 고정시킨다. 반 깃발도 있는데 주로 반장, 부반장이 든다. 하지만 걷다보면 아무나 들고 걷고있어 담당이 정해졌다 보긴 힘들다. 참고로 우천시에도 강행한다. 2019년에는 미세먼지가 심해 위치를 바꾸었다.
버스타면 놀려댄다[13].

6. 사건 사고


제주KBS 7시 뉴스에 전통교육 관련 내용을 다룬 뉴스가 올라왔다.
전국구 9시 뉴스에서도 다루어졌다. https://youtu.be/qf5TY4WsxmM
https://youtu.be/CwYP12FKTnM
이 역시 위에 기술된 63회 소수세력이 주도해서 이루어진 보도다.
유튜브 댓글을 보다보면 아마 소수세력 중 하나가 상황을 설명하는 글이 있는데 그걸 보면 소수세력이 원하던 건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의 개선이지 백호기 응원의 폐지가 아니였던거 같다. 하도 욕을 먹으니 답답한듯 싶다. 마지막 대댓글에서 두발규제를 바꾸겠다고 했을때 자신을 욕했던 모두가 머리기르고 있다는 말에서 빡침을 느낄 수 있다.
아래는 그 전문

안녕하세요. 63회 졸업생입니다. 당시 투표를 진행했던 이유는 2019년 학기 초 저와 몇 친구들이 백호기 강제 참여와 전통교육의 과정 중 인권침해 사안을 문제삼아 교장선생님과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항의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희는 백호기 응원에 대한 찬/반이 아닌 전통교육 문화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하였고 이로 야기되는 백호기 강제동원의 위법성과 인권침해요소에 관해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당시 학생부장선생님과 기타 선생님들은 학생회 정/부회장 선거를 진행할때 이에 관한 투표를 진행한다 하였고 저희는 이를 백호기 응원 참여 자율화에 대한 투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투표 당일이 오자 백호기 응원에 동의/부동의 의 형식으로 투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백호기 중 발생한 사안으로 학생회가 후배 학생을 폭행하는 일이 발생하였고 이를 다시 학생부장에게 항의하자 "학생회가 사과는 것은 백기투항과 같다" 라며 사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습니다. 학생부장 본인은 학생회와 피해 학생의 관계를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폭행을 정당화하는 언사를 계속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전통교육과 기타 전통들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어째서 일고를 왔는가 물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신청을 통하여 학교의 두발규제와 신발규제가 풀리게 되었고 적어도 2018년 입학하는 64회, 2019년 입학했던 65회는 소위 일빡이라 불리던 머리형태가 아닌 저마다의 머리를 유지하고 입학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64, 65회 후배님들 중 일고의 전통이 너무 좋고 학교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하시는 후배님들이 계시겠지만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긴 머리와 신고있는 검은 색이 아닌 신발, 폭행을 일삼는 학생부장의 교체는 앞선 선배들의 노력의 산물이였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7.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5] 차돌가를 부르기 앞서서 선창하는 부분인데, 딱 보면 알겠지만 각 구의 첫글자를 따서 만들었다.[1] 연막으로 바뀌었다 해도 위험한 것은 여전하고, 무거워서 다치기 쉬운지라 안전문제 때문에 용가리 단원은 선배가 빡세게 군기잡는 것이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편이다. 똥군기라고 마냥 욕하기도 뭐한 케이스.[2] 240번, 311번, 312번, 320번, 360번, 365번, 415번, 3001번(심야), 3003번(심야), 3005번(심야)이 정차한다.[3] 311번, 312번, 325번, 326번, 436번, 437번, 440번이 정차한다.[4] 270번, 320번, 331번, 336번, 365번, 451번, 452번, 471번, 472번, 473번이 정차한다.[5] 신제주 지역이 발전하며 남녕고 재단이 보유하고 있던 땅을 팔아 돈 꽤나 만졌다. 이후에도 학교부지를 팔고 이전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사장이 건설사 회장에게 뒷돈을 받았다가 걸려 브로커까지 셋 다 항소심에서 징역형 받은게 2015년의 일이다. 다만 연동의 땅값이 계속 오르는 추세여서 학교 이전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6] 그 때문에 아침에 버스에서 졸다가 학교를 착각해서 잘못내린 학생들을 잡아뒀다 데려다주는 것이 학생주임 선생님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주변은 죄다 소나무밭이라 경관이 비슷한데다 졸다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니 다 온줄 알고 같이 내리는 것이다. 잠이 덜깬 상태니 자기 혼자만 다른 교복을 입은 것조차 인식을 못하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고, 일찍 등교한 경우엔 교실까지 들어가서 자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버스 노선상 일고에서 먼저 내리기 때문에 농고생이 착각해서 먼저 내리는 경우가 많고 일고생이 농고까지 가는 경우는 적었지만 없는건 아니었다.[7] 아예 영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정문 앞 도로가 체육관 근처에서 꺾인게 그 때문. 제주고등학교 정문 앞에도 예전 도로가 일부 남아 있어 지도를 보면 예전 도로가 어디로 지나갔는지 알 수 있다.[8] 부지제공 뿐만 아니라 공사중 불편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있었다. 장마철에 학교 주변이 죄다 라스푸티챠 수준으로 변했다. 교복바지가 언제 황색으로 바뀌었냐는 질문도 종종 받은건 덤.[9] 기증 전에 토지공사측에서 랜드마크니 서울대 정문이니 온갖 드립을 날려대서 기대치를 한껏 높여버린 탓도 있다. 결과는 보다시비. 색마저 빨간색이라 쪽팔려서 학교 못다니겠단 소리까지 나왔다. 발로 디자인해도 저것보단 낫겠단 소리는 당연히 나왔고.[10] 그보다 일고 빼면 주변에 피시방이 있는 고등학교 자체가 드물다. 피시방은 학교 건너편에 있는 샹떼, 블루클럽 옆의 시즌, 샹떼 밑의 컨셉 피시방이 일고 대다수가 가는 피시방이다. 좋은 사양과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해피로를 이용하도록.[11] 피시방이 처음 생길 무렵엔 게임 하다 or 게임 하는거 구경하는데 뒤에서 웬 아저씨에게 "재밌냐? 너 1학년이지? 적당히 놀다 늦기 전에 들어가라." 라는 말을 듣고 '이상한 아저씨네. 1학년인건 어떻게 알고?'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땡땡이친 2학년 잡으러 온 교사였단 일이 연례행사처럼 수 년간 있었다. [12] 참고로 오현고와 남녕고는 인문계, 대기고와 일고는 자연계 학생들이 응시했다. 제주고등학교는 직탐선택학생들이 주로 응시한다.[13] 이 용어는 원보훈련에 참가하지 않는 학생에게만 해당된 용어고 관악부한테는 사용하지 않고 버스를 타는 원보훈련 참가 학생을 나타내게 되었다. 관악부도 원보훈련 못지 않게 체력소모가 심한 걸 알기에 주변 친구들도 뭐라고 하지 힘들다. 그러니 관악부 친구들과 중도에 힘들어 버스에 올라탄 친구들에게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