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타 리사
1. 개요
AKB48의 초기 팀A 멤버 출신 그라비아 모델.
캐치프레이즈는 '핑크가 정말 좋아! 렛츠 고 댄스! 나리타 리사입니다'(초기), '베이비페이스 나리타 리사입니다'(A3rd), '왠지 올해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꿈은 크게, 가슴도 크게, 고2 17살 나리타 리사입니다'(히마와리 2nd). 실제로 가슴이 큰 편인데 본인도 절박해져서인지 필사적으로 어필한 듯. AKB에서는 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AKB를 떠난 후 큰 가슴을 무기로 그라비아에서 활동했다.
2. AKB48에서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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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AKB48 시어터(당시는 아키하바라48 극장) 개관 기자회견 사진. 앞줄 멤버를 보자면 이타노, 다카하시, 코지마, 나리타, 오오시마, 마에다, 마스야마 순이다. 별 의미는 없지만 나리타가 센터였다.
사실 나리타는 1기생으로 구성된 초기 팀A에서 푸시 멤버였다. 당시 팀A는 연장자인 아유치루가 85년생이었고 대부분의 멤버가 80년대 후반생이었다. 90년대생이라고는 마에다 아츠코, 이타노 토모미, 다카하시 미나미, 나리타 리사, 미네기시 미나미, 히라지마 나츠미, 마스야마 카야노[1] 가 전부였다. 당시 푸시는 88~91라인에 집중되었는데 여기에 91년생인 나리타도 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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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정은 2번째 인디즈 싱글 スカート、ひらり의 7인 가창 멤버로 들어간 것. 팀A 20명이 전부 녹음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그 중 무대 전면에 나와 솔로 파트를 부르는 것은 7명 뿐이었고 나머지 13명은 무대 뒤편에서 병풍처럼 춤을 추는 것이 고작이었다. 실질적으로는 7명 선발이라고 봐도 좋은데 이 7명이 원조 '스카히라 7'. 이타노 토모미, 오오시마 마이, 코지마 하루나, 다카하시 미나미, 마에다 아츠코, 나카니시 리나, 나리타 리사인데 나리타 빼고는 뚜렷하게 존재감을 부각하고 나간 멤버들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인기는 얻지 못했고, 会いたかった 공연부터는 푸시가 슬슬 시노다 마리코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선발 멤버 제도가 도입된 메이저 데뷔 싱글 会いたかった의 선발 멤버에 발탁되었으나, 그게 끝이었다. 이후에는 싱글 선발은 桜の花びらたち2008가 끝이었고, 히마와리조 공연에서도 2군으로 밀려났다. 히마와리조 공연에서는 마에다 아츠코의 스탠바이로 넣은 것을 보면 운영에서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던 것 같으나……, 음방에는 와타나베 마유가 대타를 서는 일이 많았고 결국 A4th 세트리스트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졸업을 발표, 2008년 11월 23일, 1기생 오오에 토모미, 코마타니 히토미, 토지마 하나, 나카니시 리나 등과 함께 단체로 졸업을 하게 된다.
AKB48에서 푸시의 허망함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 이후의 활동
AKB를 졸업한 후에는 그라비아 아이돌로 2014년까지 활동했다.
AV 배우 모리시타 쿠루미의 자전소설을 영화화한 '모든 것은 벗는 것으로 시작됐다'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일부 언론에서 다소 헷갈리게 보도를 했는데 나리타 본인이 AV 배우가 된 것이 아니라 AV 배우가 주인공인 영화에 AV 배우역으로 출연한 것이다. 일단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기는 했고 이런 장면(후방주의)도 나오기는 하지만...
그리고 다이어트를 어필했는데 실제로 2012년 말 한 화장품 회사의 다이어트 식품 모델로 활동하던 당시의 영상을 보면, 10kg를 감량했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많이 찐 것이 보인다.
4. 대인관계
아이돌링!!! 출신으로 버라계 아이돌인 키쿠치 아미와는 고등학교 동급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