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시집
1. 개요
蘭雪軒詩集. 조선 중기의 여류문인 허난설헌의 작품들을 모아 1608년에 간행한 시문집. 현재 강릉시 오죽헌 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조선 선조 41년인 1608년에 허난설헌의 작품들을 모아 편찬한 시문집으로, 원래 시가에 있던 허난설헌의 작품들은 그녀가 사망할 때 남긴 유언에 따라 모두 소각되었으나 훗날 동생 허균이 친정에 보관되어 있던 작품들을 찾아내어 편찬할 수 있었던 것이다.
1500년대 후반 허난설헌이 지었던 오언고시 15수, 칠언고시 8수, 오언율시 8수, 칠언율시 13수, 오언절구 24수, 칠언절구 142수 등 약 210여수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몽유광상산시서(夢遊廣桑山詩序),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 등의 산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외에 문집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작품으로 지봉유설에 독서강사(讀書江舍)와 채련곡(采蓮曲) 2수, 동양여시선에 빈녀음(貧女吟) 1수, 고금가곡에 봉선화가(鳳仙花歌) 1수 등이 남아 전하고 있다.
3. 주요 작품
3.1. 광한전백옥루상량문
난설헌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산문으로 허난설헌이 8살에 지은 것이다. 명문으로 유명하며 조선의 수많은 선비들에게 허난설헌이 신동으로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3.2. 유선사
허난설헌의 대표 칠언절구시. 87수의 연작시(連作詩)로 무려 2,436자에 이르는 선시어(仙詩語)로 묘사된 대작이다.
4. 표절 논란
허난설헌은 당대 동아시아 세계의 최고 여류시인 중 한명으로 조선을 넘어 중국과 일본에서도 그 위명이 대단하였다. 난설헌시집이 출간되자 중국대륙은 열광에 빠졌고 "난설헌의 시는 하늘에서 떨어진 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다"<열조시집>, "당나라 대표시인 이태백을 뒤로 물러나게 한다"<고금야사> 등의 극찬이 쏟아지게 된다.
그러다 당대 명나라의 기녀 출신 여류시인인 유여시(1616~1664)에 의해 처음 표절 논란이 제기되게 된다. 유여시는 서문에서 "대명의 문사들이 오랑캐 여인의 솜씨에 놀라 표절 여부조차 가리지도 않고 열광하고 있는 한심한 작태를 비판한다"고 일갈하며 조목조목 허난설헌의 시들이 당나라 시인들의 시구를 표절한 것임을 증명했다.
이에 조선에서도 난리가 나게 된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허난설헌의 시 210여수는 2~3편 정도를 제외하곤 모두 위작이며, 백옥루상량문 같은 작품들도 모두 위작이다"라고 밝혔고, 홍만종은 시화총림에서 "허난설헌은 중국인의 글을 산 채로 집어삼켰다"라고 표현했다.
반면 여전히 허난설헌을 옹호하던 이들은 과거 서거정이 동인시화에서 말했던 "옛 시를 많이 읽으면 마치 자기의 시처럼 생각되는 게 있으니 무작정 표절이라 욕할 순 없다"라는 글을 인용하며 그건 너무 가혹한 평가라 주장하였다.
어찌되었건 이후로도 허난설헌의 인기는 대단하여 조선 숙종 25년인 1695년에는 청나라 황제 강희제가 직접 "최대한 조선 고금의 시문들을 얻어오되, 다른건 몰라도 동문선과 난설헌집, 그리고 최치원, 김생, 안평대군의 필적은 무조건 가져오라"는 특명을 내리기도 했고, 일본에서도 난설헌집 동래부(東萊府) 중간본이 처음 유출된 후 제발 난설헌시집을 좀더 보내달라고 사정하다 결국 분다이야(文台屋次郎)에서 아예 직접 판목을 만들어 난설헌시집을 찍어내게 된다.
5. 기타
한국고전종합DB에서 난설헌시집 원문을 열람할 수 있다. 난설헌시집(蘭雪軒詩集)
6. 바깥고리
7.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난설헌시집』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시인 허난설헌(1563∼1589)이 남긴 210여수의 작품을 모은 시문집으로, 이를 동생인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허난설헌의 본명은 초희(楚姬)이며, 난설헌은 호이다. 아버지인 허엽과 형제인 허성, 허봉, 허균은 ‘초당오문장(楚堂五文章)’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문장가의 가문이었다.
선조 22년(1589) 허균이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숨진 누이 허난설헌이 남긴 원고 모아 『난설헌고』를 편집하여 오언고시 15수, 칠언고시 8수, 오언율시 8수, 칠언율시 13수, 오언절구 24수, 칠언절구 142수를 싣고 부록으로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과 「한정일첩」, 「몽유광상시서」와 「오언고시」1수를 실었다.
책의 간행기록이 없어서 언제 발간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허균의 발문으로 보아 선조 41년(1608)에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