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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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나라의 26대 군주. 노양공의 아들. 노소공, 희야의 동생. 이 당시 공자가 노나라에서 벼슬을 했고,[1] 계손씨는 양호에게 권력을 일시적으로 빼앗겼다.[2]
2. 치세
노정공 5년(기원전 505년), 계평자가 죽자 그 틈을 노린 양호(陽虎)가 그 아들인 계환자를 가두었으나 권력을 양호 자신에게 남겨준다는 약조를 받아내고 풀어주었다.
노정공 7년(기원전 503년), 제나라가 노나라를 쳐서 운땅을 빼앗았고,[3] 노나라의 양호로 하여금 자신의 읍으로 삼고 정치에 간여하게 했는데, 이것은 노나라를 혼란하게 하려는 제나라의 술책이었다.
노정공 8년(기원전 502년), 양호는 삼환의 적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대신 자기를 따를 듯한 서자들을 세워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하려 했다. 그러나 계환자가 계책을 써서 빠져나갔고, 그것을 삼환에게 누설해서 양호를 치니 양호는 양관으로 달아났다.
노정공 9년(기원전 501년), 삼환씨가 힘을 합해 양호가 있는 양관을 치니 양호는 제나라로 갔다가 그 뒤 진(晉)나라로 가서 몸을 의탁했다.
노정공 10년(기원전 500년), 노정공은 공자(孔子)를 대동해 노나라의 협곡에서 회맹했다. 이 때 제강공이 내(萊)나라 출신의 악공들에게 음란한 연주를 하게 하자[4] 공자는 의분을 참지 못하고 그들을 죽여 노나라의 위시긴을 세워 대사구가 되었다. 공자가 공자가 국정을 돌보니 나라의 치안이 안정되고, 효도를 다하며, 가정이 안정되었다. 그리하여 노나라는 강성해졌다.
노정공 12년(기원전 498년), 노정공은 자로를 시켜 삼환의 도성을 무너뜨리고 그 무기를 거두었다. 그러나 맹손씨 만이 거절해 맹손씨를 토벌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계환자가 제나라가 보낸 예쁜 무희들을 받아들여 그들 때문에 국정을 돌보지 않자 공자는 떠났다.[5]
노정공 15년(기원전 495년), 노정공이 죽고 태자 희장(姬將)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노애공이다.
[1] 이때 공자가 사도를 거쳐, 범죄자 체포와 처벌을 쉽게 말해 치안을 담당한 사구 벼슬을 한다.[2] 이것은 계평자가 죽은 틈을 노린 것이므로 그 아들 계환자가 나중에 때가 되어 삼환과 함께 그를 몰아낸다.[3] 아마 노소공이 죽고 다시 노나라로 간 것으로 보인다.[4] 그 내용은 바로 노환공의 아내인 문강이 제양공과 놀아난 것을 나타낸 것이다.[5] 제경공이 노나라가 강성해지는 것을 두려워해 계환자에게 미녀를 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