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무라 에이이치

 




'''자유민주당 5대 부총재
니시무라 에이이치
西村英一 | Nishimura Eiichi
'''
<colbgcolor=#3CA324><colcolor=#FFFFFF> '''출생'''
1897년 8월 28일
오이타현 히가시쿠니사키군 히메시마촌
'''사망'''
1987년 9월 15일 (향년 90세)
'''학력'''
도호쿠제국대학 (전기공학 / 학사)
'''가족'''
손녀 니시무라 아쓰코
'''정당'''

'''의원 선수'''
'''11''' (중)
'''의원 대수'''
24, 25, 26, 28, 29, 30, 31, 32, 33, 34, 35 (중)
'''약력'''
교통부 철도총국 전기국장
구 오이타현 제2구 중의원
후생노동대신
건설대신
행정관리청 장관
국토청 장관
1. 개요
2. 생애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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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젊었을 적 선거 유세를 하는 니시무라 에이이치 부총재'''
일본의 정치인. 구 오이타현 제2구[1] 중의원 의원, 9, 10대 자유민주당 부총재, 사토 에이사쿠 내각의 27, 28, 32대 건설대신,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의 초대 국토청 장관, 후생노동성 대신을 지냈다. 자민당에서 니시무라 부총재가 속했던 정치 계파는 다나카 가쿠에이파였고, 다나카파의 회장도 되었다.

2. 생애


1897년 8월 28일, 오이타현 히가시쿠니사키군 히메시마무라촌에서 태어났다. 오이타현립 오이타 중학교, 세이다이시치 고등학교를 거쳐 1924년에 도호쿠제국대학(현 도호쿠대학) 공학부 전기공학과를 졸업, 철도부에 입성한다. 그곳에서 사토 에이사쿠를 알게 되었다. 그 후, 교통통신부를 거쳐 교통부 철도총국 전기국장이 된다.
1949년, 제2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요시다 시게루가 이끄는 민주자유당 공천을 받아 초선한다.[2] 이후 자유민주당에 참여해 1962년, 제2차 이케다 개조 내각의 후생노동대신으로 입각하고 제3차 사토 개조 내각에서 건설대신을 지냈다. 1974년, 다나카 내각의 초대 국토청 장관에 취임한다. 록히드 사건 때는 다나카파 회장이 되어 다나카파를 유지했다.
1979년, 자민당 9대 부총재에 취임했다. 1980년 제3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가 급사해 니시무라는 자민당 총재 대행으로 중의원 의원 총선거 운동을 수행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니시무라는 낙선해 총재가 되지 못했으며, 이후 스즈키 젠코가 자민당 총재가 된다. 1983년 9월 정계에서 은퇴한다.
1987년 9월 15일, 향년 90세로 사망했다.

3. 기타


  •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정치권에 그렇게 청렴한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3] 
  • 정치인들 대다수가 법학부를 졸업했으나 니시무라는 정치에 별 관련 없는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는 점, 가족 중 정치인이 없이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선거를 했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능력이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1] 현재는 오이타현 제2구오이타현 제3구로 나뉘어져 있다.[2] 당시 당선된 동기들은 이케다 하야토, 아소 다카기치, 오부치 미쓰헤이 등이 있었다.[3] 처음 각료로 입각하였을때 궁중에서 열리는 인증식에 입고갈 연미복이 없어 빌려야했다는 일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