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애사
端宗哀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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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장편 역사 소설.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총 217회에 걸쳐 연재한 근대 소설로 조선의 6대 왕 단종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소설의 내용은 사악한 한명회와 수양대군의 음모에 희생된 단종의 눈물 겨운 생애를 예리한 필체로 애틋하게 그려낸 것으로 저술 당시 큰 인기를 끌어 이광수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한명회와 신숙주, 권람 등이 세운 더러운 계책으로 수많은 소설의 주연들과 충의지사들이 죽음을 당하고 단종은 노산군이 되어 영월로 귀양을 가게 된다. 단종을 끌고 가던 왕방연은 청령포에서 하루 종일 운 후 단종을 가두고 떠나기 전날 간장을 끊는 마음으로 시조를 읊는다. 이후 사약을 가지고 왔으나 단종에게 주지 않고 울고만 있는데 공생이 활줄로 단종을 목 졸라 죽이게 되고 단종을 죽인 후 문을 나서다 피를 토하며 죽게 된다.
한명회, 신숙주 등의 악랄한 모습과 수양대군의 냉혹하고 비정한 모습, 더러운 조선의 상황 속에서 고결하고 슬프게 막을 내린 단종의 생애 등을 잘 그려낸 수작이다.
다른 유명 역사소설처럼, 소설의 내용이 실제 역사로 잘못 알려진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육신 사건이 터진 직후 신숙주의 아내가 남편을 크게 꾸짖고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실제론 신숙주의 아내는 사육신 사건이 터지기 몇 달 전에 병으로 사망했다. 이광수의 창작은 아니고 박종화의 단편소설인 <목 매이는 여인>에서 나왔던 부분을 차용한 것.
이광수는 1940년대에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세조대왕>을 쓴다. 내용은 사실상 <단종애사>에서 이어지는데, 세조는 피를 통해서 등극했고, 이로 인해서 개인적 고뇌를 겪었으나, 백성들은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평가하는 내용이다. 단종애사에서 냉혹하고 잔인한 인물로 그려지던 세조가 단종을 귀양 보낸 이후로는 점점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준다. 사육신의 복위 시도 자체를 모르고 있던 단종[1] 을 귀양까지 보낼 필요가 있냐고 고민하기도 하고, 결국 귀양을 보내지만 궁녀와 내시들이 귀양 간 단종을 수발들기 위해 따라간 것을 알고도 모른척 해 준다. 후반으로 가면 내가 왕만 아니었어도 불쌍한 조카를 따뜻하게 대했을 것이라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세조 본인은 단종을 죽이지는 않으려 했는데 신하들의 등쌀에 못 이겨 사약을 내렸다는 묘사까지 등장한다. 후속편을 염두하고 그렇게 저술한 것인지는 불명.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형국을 단종, 일본을 세조에 빗대었다는 해석도 있고, <단종애사>에서 <세조대왕>으로 변하는 것은 이광수의 변절을 상징한다는 식의 해석도 존재했다. 그런데 이광수가 민족적 경륜이나 민족개조론을 쓰면서 변절한 시기가 <단종애사>를 쓰기 전인 1920년대 초중반이라는 점에서 좀 애매하다. 저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민족적 경륜을 쓸 때는 '자치론이 진짜로 현실성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식이 되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시기를 다루는 소설이 또 하나 있는데, 김동인의 소설 <대수양>이다. 이 소설은 계유정난을 일으키는 시기의 수양대군을 대놓고 영웅으로 그린다.
단종애사, 세조대왕, 대수양을 보면 단종과 세조, 그리고 계유정난을 바라보는 대중적인 시각 3가지가 모두 나온다. 역으로 말하자면 당시에 대한 대중의 역사적 인식이 일제시대 소설가들의 창작에서 별로 나아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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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장편 역사 소설.
2. 내용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총 217회에 걸쳐 연재한 근대 소설로 조선의 6대 왕 단종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소설의 내용은 사악한 한명회와 수양대군의 음모에 희생된 단종의 눈물 겨운 생애를 예리한 필체로 애틋하게 그려낸 것으로 저술 당시 큰 인기를 끌어 이광수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한명회와 신숙주, 권람 등이 세운 더러운 계책으로 수많은 소설의 주연들과 충의지사들이 죽음을 당하고 단종은 노산군이 되어 영월로 귀양을 가게 된다. 단종을 끌고 가던 왕방연은 청령포에서 하루 종일 운 후 단종을 가두고 떠나기 전날 간장을 끊는 마음으로 시조를 읊는다. 이후 사약을 가지고 왔으나 단종에게 주지 않고 울고만 있는데 공생이 활줄로 단종을 목 졸라 죽이게 되고 단종을 죽인 후 문을 나서다 피를 토하며 죽게 된다.
한명회, 신숙주 등의 악랄한 모습과 수양대군의 냉혹하고 비정한 모습, 더러운 조선의 상황 속에서 고결하고 슬프게 막을 내린 단종의 생애 등을 잘 그려낸 수작이다.
다른 유명 역사소설처럼, 소설의 내용이 실제 역사로 잘못 알려진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육신 사건이 터진 직후 신숙주의 아내가 남편을 크게 꾸짖고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실제론 신숙주의 아내는 사육신 사건이 터지기 몇 달 전에 병으로 사망했다. 이광수의 창작은 아니고 박종화의 단편소설인 <목 매이는 여인>에서 나왔던 부분을 차용한 것.
3. 후속편
이광수는 1940년대에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세조대왕>을 쓴다. 내용은 사실상 <단종애사>에서 이어지는데, 세조는 피를 통해서 등극했고, 이로 인해서 개인적 고뇌를 겪었으나, 백성들은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평가하는 내용이다. 단종애사에서 냉혹하고 잔인한 인물로 그려지던 세조가 단종을 귀양 보낸 이후로는 점점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준다. 사육신의 복위 시도 자체를 모르고 있던 단종[1] 을 귀양까지 보낼 필요가 있냐고 고민하기도 하고, 결국 귀양을 보내지만 궁녀와 내시들이 귀양 간 단종을 수발들기 위해 따라간 것을 알고도 모른척 해 준다. 후반으로 가면 내가 왕만 아니었어도 불쌍한 조카를 따뜻하게 대했을 것이라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세조 본인은 단종을 죽이지는 않으려 했는데 신하들의 등쌀에 못 이겨 사약을 내렸다는 묘사까지 등장한다. 후속편을 염두하고 그렇게 저술한 것인지는 불명.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형국을 단종, 일본을 세조에 빗대었다는 해석도 있고, <단종애사>에서 <세조대왕>으로 변하는 것은 이광수의 변절을 상징한다는 식의 해석도 존재했다. 그런데 이광수가 민족적 경륜이나 민족개조론을 쓰면서 변절한 시기가 <단종애사>를 쓰기 전인 1920년대 초중반이라는 점에서 좀 애매하다. 저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민족적 경륜을 쓸 때는 '자치론이 진짜로 현실성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식이 되기 때문이다.
4. 여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시기를 다루는 소설이 또 하나 있는데, 김동인의 소설 <대수양>이다. 이 소설은 계유정난을 일으키는 시기의 수양대군을 대놓고 영웅으로 그린다.
단종애사, 세조대왕, 대수양을 보면 단종과 세조, 그리고 계유정난을 바라보는 대중적인 시각 3가지가 모두 나온다. 역으로 말하자면 당시에 대한 대중의 역사적 인식이 일제시대 소설가들의 창작에서 별로 나아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