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람
1. 소개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정경(正卿)이고 호 소한당(所閑堂)이고[1] 시호는 익평(翼平)이다. 신숙주, 한명회, 정인지와 함께 세조의 쿠데타 성공에 기여한 주요 인물.
2. 생애
남이와 신수근[2] 은 그의 사위들이다. 신수근은 권람의 2녀와, 남이는 권람의 6녀와 결혼했다.
원래는 개국공신 권근의 손자이자 세종과 정인지를 가르친 대학자 권우의 조카 손자였지만 아버지 권제가 술과 여자에 빠져 어머니와 형제들을 구타하자 이를 말리다가 본인도 폭행을 당했으며[3][4] 어머니를 버리자 가출하여 방랑하였다.
그뒤 한명회를 만나 같이 전국 유람을 하다가 권람은 과거를 봐서 장원 급제하고 한명회는 또 과거에서 떨어져 음서로 들어갔다.
(그의 아버지인 권제도 장원급제자 출신이다.) 사실 이 장원 급제는 문제가 있는데, 본래 권람의 성적은 4위였으나, 1위를 한 김의정이 수군[5] 의 아들이라 집안이 변변치 않다는 이유로 당시 왕인 문종의 명으로 4위인 권람을 장원으로 올려 준 것. 참고로 이 때 2위였다가 3위로 억울하게 강등당한 사람은 이시애의 난 때 살해당한 강효문.
수양대군을 만나고 그 뒤로 한명회를 추천하여 함께 쿠데타를 모의하게 된다. 계유정난이 성공한 후에는 1등 정난 공신에 오른다. 그 후 세조가 즉위하자 벼슬이 우찬성과 좌찬성,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세조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고, 활을 잘 쏘고 문장에도 뛰어났으나 치부가 심해 여러 번 탄핵을 받았다. 세조 말년에 병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결국 1465년 병으로 죽었다.
여담으로 사육신 사건 때 처형된 김문기의 며느리가 권람 덕택에 사실상 노비 신세를 면했다. 왜냐면 김문기의 며느리 영금은 '''권람의 오촌 조카였기 때문.''' 사육신 집안의 다른 여성들처럼 영금 역시 노비가 되었으나 이를 본 권람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노비로 하사받았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권람의 노비가 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따지고 보면 당숙의 빽으로 풀려나 보호받은 셈이다.
권람의 딸이 남이와 결혼할 때의 이야기가 설화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은 남이 문서 참조. 일반 민중들의 남이에 대한 생각이 반영된 이야기이다.
3. 대중매체
조선왕조 오백년에서는 성우 박일이 연기했다.
KBS-2 드라마 한명회에서는 김기섭이 연기했다.
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김갑수가 연기하였다. 이 사극에서 임종 직전에 신숙주에게 '''한명회를 조심하게. 그놈은 천하를 몇번이고 뒤집을 놈일세.'''라고 경고한다.
4. 관련 문서
[1] 그의 사위 신수근도 호가 소한당이다.[2] 연산군의 부인 폐비 신씨의 오빠이자, 중종의 첫 부인 단경왕후의 아버지.[3] 가문의 흑역사라 권씨의 후손들은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는 바람에...[4] 여담으로 권람의 아버지 권제는 실록에서 '''머리는 좋은데 가장으로서의 노릇을 똑바로 못해서 세상 사람들이 안좋게 본다'''고 대차게 까였다. 저래 봬도 판서 벼슬까지 지냈으나 어지간히 안좋은 쪽으로 유명했던 모양이다.[5] 조선 시대의 수군은 칠반천역(七般賤役)의 하나로 꼽힐 만큼 천한 계급으로 대우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