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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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약을 받는 죄인[1]
1. 개요
2. 상세
3. 제조
4. 효능, 효과
5. 집행
6. 일화
7. 사약을 받은 인물
7.1. 실존 인물
7.2. 가상 인물
8. 비유적 의미
9. 동인적 의미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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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賜藥[2]
조선시대에 흔하게(다른 의미로) 사용된 약의 일종이지만, 사람을 치유하는 일반적인 약과는 달리 이 약은 '''사람을 죽이는 약'''이다.
그것도 임금이 직접 하사한 것으로, 다른 문명권에서 흔히 암살 같은 뒤 구린 방식으로 사람을 죽일 때나 사용한 독약을 중앙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집행하는 사형에 쓴 드문 사례이다.[3]

2. 상세


조선의 법전 중 형법은 따로 제정하지 않고 명나라 법전인 대명률에 준하여 시행하였는데, 여기서는 오형중 가장 무거운 형벌인 사형의 등급을 목을 졸라 죽이는 교형(교수형) < 목을 잘라 죽이는 참형(참수형) 순으로 구별해 두었다. 원래 능지처참이나 거열형과 마찬가지로 사약은 법전에는 명시하지 않은 특수한 유형의 사형 방식이다.
참수나 교수로 죽이면 싸고 빠르게 끝날 것을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약을 달여 죽인 이유는, 참수나 교수는 공개된 장소에서 구경꾼들이 보는 앞에서 죽는 것인데다 그것도 과거의 공개처형은 먼저 죄인의 양 귀에 화살을 꽂은 후 죄인의 웃통을 까거나 아예 다 벗긴 후에 조리돌림 시키거나 형장에 며칠씩 묶어서 세워둔 뒤에 집행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심지어 안죽을 정도로 장형을 집행한 후에 시행하기도 했기에 모욕과 고통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했다.그 때문에 본인뿐만 아니라 가문에게도 치욕적인 반면 사약을 마시는 건 조정의 입회인들만 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창피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약으로 죽는 것은 시체가 온전하게 보존되는 형벌이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즉 '''머리카락도 부모가 준 것이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강하던 유교 국가에서 목을 베거나 사지가 뜯기는 식으로 죽임을 당하면 인간답게 죽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참혹한 시체 훼손이 가해지는 참형이나 거열형 등은 사형 집행 후에 시체가 토막나 팔도에 나눠지는 꼴을 당하는데 [4] '''사약을 받은 이들의 자손은 그 시신을 정당하게 수습하여 매장하고 자손봉사(제사)를 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양반사회에서 제사의 비중을 생각해 본다면 이만큼 사형수의 여건을 보장해주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약을 통한 죽음은 대체로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었거나 다소 억울한 면이 있는 죄인에게 내려졌다. 나름대로 최선의 기지를 발휘하여 고을을 다스리려 하였으나 불의의 사고를 막지 못해 큰 인명 피해를 야기한 벼슬아치라든지,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역모죄에 간접적으로 가담한 가문의 먼 일원이라든지 하는 식. 당연히 역모에 직접 가담했다면 사약은 고사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는 게 보통이었다. 당시의 사상적 요소를 빼고 보더라도 일반적으로 3번쯤 쳐야 겨우 목이 떨어지는 참수형[5]은 굳이 거열이나 능지형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끔찍하게'''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심지어 꼭 사약을 먹고 죽어야 했던 것은 아니고, 본인이 싫거나 독을 먹어도 죽지 않는 경우엔 죽는 방법을 본인이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약과 함께 목을 맬 수 있는 광목이나 비단을 같이 가지고 갔으며 본인이 소지한 칼이나 독으로 자결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서 이 형벌의 정식 명칭이 '''사사(賜死)''', 즉 죽음을 명령한다는 뜻인 것. 사실 이쯤 되면 '''사형'''이라기보다는 '''자결 명령'''에 가깝다. 이런 케이스의 대표주자가 연산군 시대에 처형된 전 영의정 윤필상과 폐비 윤씨를 사사한 이세좌로, 윤필상은 연산군이 자신을 죽일 것을 예감하고 미리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연산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스스로 술에 비상을 타서 마셨다. 그런데 독이 변질되어 효과가 없어진 건지 뭔지 아무리 기다려도 안 죽는 바람에, 결국 목을 매 죽었다. 이세좌는 그냥 민가에 들어가서 목을 맸다.
이 때문에 사약은 받는 사람도 거의 저항을 하지 않으며 사약을 내려준 왕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고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판결에 다소 억울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점까지 고려를 해서 왕이 사약으로 성의를 내려준 것이기 때문. 또한 이미 사약까지 내려진 판에 결백을 계속 주장해 봤자 어차피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극균은 갑자사화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죽었다가 분노한 연산군에게 부관참시당하고 일가친척 역시 8촌까지 연좌당해서 변방으로 처박혔다.[6]
오히려 이런 사약을 역으로 거부했다는 민담이 단종으로 전해진다. 단종의 사인은 정사인 세조실록에는 세조가 의도치 않았던 개인의 자살로, 기타 야사나 민담에는 사약이나 사약을 거부한 타살로 기록되어 있다. 단종이 정통이라고 보면 부당하게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게 정당한 왕위 계승자였던 단종이 사약을 얌전히 받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니 단종이 부당하게 내려온 사약을 거부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죄를 지어 처형은 하지만 옛날 사람들 기준으로 명예를 지켜준다는 의미가 있다는 점은 옆나라 일본할복과 비슷하다. 당대의 사형방법 중 신체훼손도 제일 적었다는 것[7]도 공통점.

3. 제조


제조는 내의원에서 담당했으나 제조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기에 성분을 확실하게 밝혀주는 문헌 기록이 없는 터라 현재까지도 정확한 제조법은 전해진 게 없다고 한다. 즉, 전해지는 현존 한의약서 중에서 사약을 다루는 서적은 없다. 한의학 서적은 널리 유통되는 것이 많고 금서로 지정될 이유도 없어서 오래된 서적도 어지간한 책은 다 전해지고 있다고 무방하다.
게다가 사약이란 것이 한순간에만 존재한 게 아니라 계속해서 전해지다보니 지역별로 사약에 들어간다는 성분에 대해 주장들이 다르며 기본적으로 주장되는 주성분은 '''독이 있는 나무'''에서 추출한 독 정도이다.
다만 예로부터 사약을 먹으면 온 몸에 열이 나서 죽는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열을 내는 성질을 가진 부자#s-9 계열의 약재 (초오, 초두)를 넣었을 거라 추측하는 일이 많다. 부자는 투구꽃에서 추출하는 약이며 지금도 한의학에서 매우 흔하게 쓰이는 약이다. 아마도 가장 많이 쓰이는 약재 50가지를 꼽는다면 부자는 꼭 들어갈 것이다. 영화 <서편제>에서 유봉이 의붓딸 송화에게 소리에 한을 실어야 한다면서 먹여 눈을 멀게 한 약이 바로 부자탕.[8] 소설 <동의보감>(이은성 저)에도 부자를 약이라며 멋대로 달여 어머니에게 먹였다가 눈이 멀자 허준에게 따지러 온 사람 이야기가 있다. [9]
사약이라는 것이 사라진 21세기에 와서도 부자는 지정된 가공업체에서 수치하여 의료기관에서만 사용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 약물이다. 다만, 소설 동의보감이 쓸데없이 부자에 대한 공포를 왜곡 확산한 것은 사실이다. 한의사들은 사실 부자보다는 부작용이 많은 '반하' 쓰기를 훨씬 어려워한다. 법제한 반하도 상용 한약재다.
물론 오늘날 사용하는 부자는 포부자라고 하여 독성을 많이 제거한 것이고 중국 논문에 의하면 3시간 이상 달이면 독성이 거의 사라진다고 한다. [10]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의학 일을 하는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1년에 꼭 한두 명은 생부자를 몰래 구해서 달여먹고는 죽어서 부검 받으러 온다고 한다. 영화 황후화에서도 오래 달여 먹으면 사람을 미치게 하는 극약이라고 나온다. 그 외 인삼[11], 의 알[12] 등을 넣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초오나 초두 등의 맹독성 부자 계열 약물도 치사율이 생각보다 높지는 않다. 높게 봐도 50%.
예외적으로 성종폐비 윤씨를 사사할 때 이세좌가 비소화합물인 비상(砒霜)을 가져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수은을 넣었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 또 맹독버섯 중 하나인 화경버섯[13]을 달여서 재료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그 외에는 천남성이라는 풀[14], 짐독, 생금[15], 초오(草烏), 협죽도 등을 넣었다고 추정한다.
물론 위에서 말한 대로 정확한 제조 방법은 기밀로 유지되어 전해지지 않으니 추측들일 뿐이다. 야사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보면 실제 조제법은 한가지로 국한되지 않고 만드는 사람의 재량에 따라서 여러가지 방법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담이지만 하이포션처럼 독이 없는 그냥 약들을 마구잡이로 섞어도 독과 비슷한 작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야사에서는 웅담이나 녹용 같은 고급 한약재를 이용해서 사약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간혹 사약에 독 성분 같은 건 없고 일반적인 한약을 데워서 준 것이며, 약재의 화학적 성분의 흡수 속도가 빨라 부작용으로 사망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데워서 먹는 보약은 다 사약이라는 이야기가 되며, 7~80년대 수험생들의 부모들이 총명탕을 달여서 자식들을 숙청했다는 말이 된다.
사실 한약재만으로 사람 잡는 독극물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비상(비소)나 수은은 확실히 즉효성 독약이고, 법제[16]하지 않은 부자, 초오, 천오두, 천남성 등등 또한 즉효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되며 다량 혹은 법제되지 않은 행인, 마황, 반하, 파두 등도 위험한 약재로 꼽힌다. 다만 개체 특이성이라고 해야 할지, 사람에 따라 각각의 약재에 대한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남이 끓이던 거 맛만 조금 봤다가 응급실로 실려오는 사람도 있고 곰국 솥으로 한 솥 거하게 끓여 먹고도 멀쩡한 사람도 있다. 이게 또 먹고 죽은 사람은 '나 이거 먹고 죽었으니 절대 먹지 마시오.'라고 말도 못 하는데, 멀쩡한 사람은 그거 먹어도 괜찮던데? 하고 소문을 내다 보니 산 사람이 죽는 사람을 계속 만드는 것이다.

4. 효능, 효과


그야말로 '''죽여주는''' 효능의 약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으나, 사약의 정확한 성분이 밝혀지지 않고 추측만 가능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떤 효능으로 '''죽여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제조법이 제각기 달랐다고는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와 같이 많은 양을 복용하고도 사망에 이르지 않는 사례들이 한둘이 아닌 것을 보면 바로 즉사하게 만드는 극약계열보다는 서서히 죽게 만드는 형태의 약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 때문에 신체를 참하는 극형만큼은 아니더라도 사약을 마신 죄인은 고열과 작열감, 구토와 어지러움 등 상당히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다가 죽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약을 거듭 먹고도 죽지 않아 다른 방법으로 숨을 거두게 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조광조도 사약을 몇 사발이나 마셨는데도 죽지 않았고, 송시열 [17]또한 다섯 사발 분량(관련 기록은 아래에 후술)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는 위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사약의 주재료로 알려진 부자, 비상 등은 한방에서 병을 고치는 약재로도 쓰였기 때문.[18] 야사에 따르면 조선의 임형수라는 인물은 무려 사약 '''16사발'''이나 마시고도 안 죽었다고 한다. 개인의 신체조건에 따라 체질이 맞는 사람도 있는게 당연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겐 암만 먹여봐야 그냥 보약일 뿐이다.(...)
사극 창작물에서는 바깥에서 먹고 바로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지만, 이는 시각적 표현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연출이다.[19] 대개는 바깥에서 먹은 다음 사약의 효과를 빠르게 하기 위해 군불을 지핀 방에서 앉아 있으면 약 기운이 서서히 돌다가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죄인이 사약을 마시게 한 다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문에 못을 박았으며 불을 지필 때도 단순히 바닥이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가 아니라 '''아낌없이 듬뿍듬뿍''' 불을 때웠다. 약효를 더 좋게 해서 빠르게 보내려는 뜻이지만, 죄수는 고통스럽게 뒹굴면서 숨졌다고 한다. 그 기간도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한나절 동안이라고 한다. 만약에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죽는다면 그 때는 교수형으로 대체한다.
또한 사극에서 흔히 보이는 것처럼 사약을 마시고 피를 토하며 죽는 것은 어디까지나 연출이다. 대표적인 예로 연산군의 모친인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을 때, 이후 연산군이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두면서 토했다는 피 묻은 적삼을 움켜쥐고 갑자사화를 일으켰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이 피 묻은 적삼은 야사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조선왕조실록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사약을 받으면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둔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다.
체내에서 출혈이 발생하려면 혈관벽을 파괴하는 강력한 출혈성 독이 필요한데, 이런 독은 자연계에서는 들이나 합성할 수 있지 한약재 같은 생약들을 달이는 것만으로는 쉽게 만들 수 없다. 임금 입장에서도 굳이 피바다를 만들고 싶다면 그냥 참형을 시행하면 그만이지 굳이 모양새 좋게 죽이려고 만드는 사약으로 어떻게 해볼 필요가 없다. 또한 각혈은 사사형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인 신체 온건보전과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이기 때문에, 그만큼 한이 맺혔다, 고통스럽다는 것을 연출하는 장면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이 옳다.사극에서 지겹도록 사용하는 연출이다보니 실제 역사를 제대로 파고들지 않으면 대부분은 사약=피 토하며 사망이라고 믿는다.

5. 집행


먹기 전에 임금을 향해 '''무조건''' 4번 절을 해야 한다. 그것도 약을 주셔서 고맙다는 최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개요란에서 설명했다시피 임금이 죄인에게 예의를 갖추어 죽음을 하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죄인에게 사약을 몇 잔이나 먹이고, 온돌방에 불을 때워도 '''죄인이 죽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라고해도 복어독같은 맹독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런 맹독도 아무때나 마음대로 구할수있는것은 아니기에 수급문제가 있기도 하고, 꼭 맹독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죽을 정도의 독만 있으면 아무거나 써도 무방했기 때문에 맹독만을 고집할 이유도 없었다. 또한 독이 있는 약재와 버섯이라고 해도 계절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기때문에 그것까지 감안해서 약을 잘 만들어서 들고 가도 사람마다 체질이 달라 독이 제대로 안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거기다 더운 여름날 먼 길을 행차해 사약을 가져가도 도중에 변질되어 약효가 사라질 수도 있고...
이렇게 사약을 먹고도 죽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당시엔 사약을 넉넉히 챙겨가는 일이 많았다. 당연하겠지만 유배지 같은 곳은 교통이 불편한데[20] 가지고 온 사약이 다 떨어지면 경우에 따라서 사약을 다시 만들어 올 때까지 죄인을 살려주어야 하며, 안 그래도 가기 힘든 유배지를 왕복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준비해둔 모든 사약을 먹은 후에도 안 죽는다고 살려주는 것 같은 일은 없다. 그럴 때는 차선책으로 스스로 목을 매고 죽으라고 끈을 같이 가져오기도 했고, 금부도사의 명령에 나졸이 갖고 있는 의 시위를 풀어서 목을 매서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단종의 죽음에 대한 야사가 좋은 예. 하지만 보통 이렇게 죽이는 것은 급박한 경우가 아니면 지체가 낮은 사람에 한하기 때문에, 지체 높은 사형수의 경우는 다음 사약이 당도할 때까지 목숨이 연장되는 경우가 있었으며 이 경우에는 본인이 알아서 목 매달아 죽어준다.[21] 폐비 윤씨 사사에 관여 했다는 이유로 죽은 이세좌가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관대하다고 해도 어쨌거나 죽는 건 죽는 것이기에 죄인이 죽기 싫어서 순순히 사약을 먹으려고 하지 않을 경우가 있는데, 이러면 보통 사극에서 나오는 것처럼 문짝을 뜯어다가 죄인 위에 씌워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억지로 입을 벌려서 강제로 먹인다. 금부도사 휘하에 힘쓰는 군졸들이 많이 붙는 또 하나의 이유.

6. 일화


사약 몇 사발 정도로 죽지 않은 경우가 꽤 많다. 때문에 약은 상기했듯 '''절대 일인분만 가져가지 않는다'''. 한 잔을 마시고도 멀쩡한 경우가 워낙 많아 여분을 챙긴 것. 하지만 그보다는 그냥 '''활줄을 풀어 목을 졸라 죽이곤 했다'''. 어쨌든 시신은 온전하니까. 다만 송시열처럼 한 정파의 영수였던 사람이나 여타 영향력 있던 인물들은 '''감히 활줄로 목을 조르지 못해''' 애를 먹였다.
  • 단종은 사사 대신 교살당한 것으로 기록된 첫 번째 인물이다. 다만 세조 당시에는 단종을 사사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숙종실록에서야 비로소 '사약을 가져간 금부도사 왕방연이 말을 못 잇고 있자 영월 관아의 공생이 활줄을 풀어 목졸라 죽였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 위에도 나온 일화지만 연산군 시절의 영의정 윤필상은 비상을 타먹고도 죽지 않아서 목을 맸다. 중종 대의 권신이었던 이항 역시 사약을 먹고도 죽지 않아서 교살했다.중종실록 28년 6월 10일자
  • 중종~명종 때의 문신 임형수는 강단 있는 선비로서 윤원형의 집요한 미움을 사 을사사화 때 파직&귀양을 간 이후,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유배지에서 사사되었다. 그런데 《유분록》에 의하면 큰 사발에 을 가득 탄 사약을 16사발을 먹고도 죽지 않아 2사발을 더 마셨고, 그래도 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항처럼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한다.# 이두호의 만화 《임꺽정》에서 이 장면을 잘 묘사하는데, 호걸이었던 임형수는 금부도사와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22] 목을 조를 때조차 목침(나무베개)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배포를 뽐내었다고 한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혀를 길게 빼며 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살고 있던 귀양처 집의 벽에 구멍을 뚫고 밧줄을 집어 넣으면 자신이 들어가 스스로 목에 밧줄을 걸 테니 그 줄을 당겨 목졸라 죽여 달라고 한다. 금부도사도 그 부탁을 들어 주어 '당기시오'라는 임형수의 말을 신호로 병사 2~3명이 죽어라 밧줄을 당겼는데, 한참 후에 들어가 보니 밧줄에 걸린 건 임형수의 목이 아니라 목침이었다. 그는 벙찐 표정의 금부도사 일행을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그 다음엔 장난 안 치고 고분고분하게 최후를 맞았다.
  • 숙종 때의 송시열 또한 사약을 먹고도 죽지 않아 입에 상처를 내고 거기에 사약을 넣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평소 송시열은 오줌으로 건강을 유지했는데(요료법), 그게 부작용을 일으켜 몸에 독소가 쌓이자 정적이었던 남인의 영수 허목에게 아들을 보내 처방을 부탁했는데 허목은 "약은 무슨... 비상이나 한숟갈 먹으라지." 하고는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분개한 아들이 돌아와 허목이 한 얘기를 전하니 송시열이 비상을 가져오라고 하자. 딱 봐도 '정적이 독극물을 처방해줬다'는 점 때문에 주위에서 모두 말렸는데도 송시열은 "허목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비상을 먹었고 어째선지 병이 나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비상이 잘 받는 체질이었던 모양.[23] 이 이야기처럼 사약에도 내성(?)이 있는지 송시열이 사약 두 사발을 먹고도 끄떡않자 서인의 거두이자 당대 정국의 중심이었고 주변을 송시열의 문인들이 둘러싸고 있었던지라 차마 목을 매서 죽일 수는 없었던 금부도사가[24] "대감, 제발 죽어주십시오."라고 애원했다. 결국 입에 상처를 내고 사약 3사발을 연속으로 마시고 나서야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 야사에 의하면 장희빈은 사약을 마시고도 죽기는커녕 표독스럽게 눈을 치켜 뜨고 숙종을 노려보자 경악한 숙종이 "한 그릇 더 부어라!"라고 명령하여 자그마치 세 그릇을 입에 붓고 나서야 최후를 맞았다고 하는데, 실록에는 관련 얘기가 없다. 사실이라면 사관이 기록하지 않을 리 없다. 노론 계열 사관에게 남인계인 장희빈의 이런 행적은 남인을 공격하는 데 좋은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 김혜수가 장희빈으로 출연한 사극 <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이 사약을 먹으려 하지 않자 문짝으로 몸을 누르고 들이 부어 먹이는 장면이 있었다. # 짤방으로 좀 알려진 사진 이 때 조연 배우들이 꽤나 고생했다고 한다. 김혜수가 마구 몸부림을 치며 사약을 거부하는 연기를 실감나게 하는데,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로 몸을 단련했는지라 힘이 상당히 좋아서 조연들 또한 억지로 몸을 붙잡으며 먹이는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 김혜수 이전의 장희빈 시리즈에서도 저런 식으로 사약을 먹이는 장면이 나오며 야사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긴 하나 정사에는 없다. 2010년에 방영한 동이의 장희빈(이소연)은 이런 것 없이 품위 있게 원샷.
  • [25]
  • 의외로 사사 장면의 고증이 잘 된 쪽은 다른 고증은 죄다 안드로메다로 날려먹은 JTBC <꽃들의 전쟁> 45회 민회빈 강씨의 사사 장면이다. 강빈이 방 안에서 사약을 받고, 사약 한 사발을 다 마셨음에도 피만 토할 뿐 숨이 끊어지지 않아 고통스러워한다. 강빈의 외당숙인 송준길[26]이 사약을 더 가져오라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다 금부도사의 멱살을 잡을 정도.[27] 결국 정황상 수 시간이 지나서야 숨이 끊어진 것 같은 묘사[28]가 등장한다.
  • 맹꽁이 서당》에 나오는 일화에서는 경종신임사화(신임옥사)로 사약을 받고 죽은 조태채(1660~1722)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조태채의 하인 홍동석은 본래 형조의 서리(하급 공무원으로 글재주가 있는 천민들이 권세가의 도움으로 더러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였다. 어느 날 죄인 누구를 유배 보낸다는 조서를 쓰라고 해 확인해보니 자신의 상전인 조태채가 아닌가. 하인된 몸으로 상전을 배신할 수 없어 붓을 집어던지고 절대 못 쓴다 강력 거부하자 열받은 소론 대신 둘에게 두들겨 맞고 반병신돼 서리직에서 내쫓겼다. 동석은 처자식까지 두고 진도까지 가는 조태채를 충실히 모셨다.
그 뒤 조태채에게 결국 사약이 내려지고, 아들인 조관빈은 부랴부랴 부친과 만나고자 출발했지만 금부도사가 먼저 도착한 뒤였다. 동석은 마지막으로 부자 상봉할 시간을 달라고 간청했음에도 금부도사가 거절하자 결국 사약을 뒤엎어버렸다. 왕이 내린 사약을 뒤엎으면 대역죄에 해당하여 당연히 금부도사 일행은 동석을 실컷 두들겨팼지만, 금부도사와 수행원들도 어명을 제대로 완수 못한 죄로 극형을 면치못해 할 수 없이 이들은 진도로 가는 바닷길이 험해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사약을 물에 빠뜨렸다고 거짓으로 보고해,[29] 새 사약이 오는 며칠 사이 부자가 상봉할 수 있었다. 조태채는 아들에게 홍동석을 형제처럼 대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고, 조관빈은 유언대로 하인을 면천시켜주고 형제처럼 대하며 자주 왕래하고 챙겨주었으며, 조태채의 제사 때도 꼭 참석시켰다.
항아리 하나 분량을 다 쏟았을지는 좀 의문이긴 하지만 , 그걸 떠나서 이런 일화가 전해지는 것은 조태채가 노론 4대신에 포함될 정도의 거물이라서 그렇다. 그게 아니었다면 당연히 활줄 크리였을 것이고 그 머슴은 오히려 조태채 집안 사람들에게 네가 섣부르게 나섰다가 사약 먹고 죽을 것을 목 졸려 죽었다면서 맞아 죽었거나, 왕명에 대한 직접적인 반항이기 때문에 목이 달아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결국 일화가 전해진 걸 보면 누가 불었다는 소리인데, 과연 누가 어떻게 했을지...[30]
촬영 소품으로 사약이 사용되는 경우는 이전에는 몸에 좋으라고 홍삼즙같은걸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탕약의 경우 얼룩이 지워지지 않기때문에 대부분 김빠진 콜라를 사용한다고 한다.

7. 사약을 받은 인물


※ 받았지만 마시지 않고 산 사람은 ★ 표시.

7.1. 실존 인물




7.2. 가상 인물


  • 닥터 진 - 이하응
  • 렛츠고 시간탐험대 - 장동민[32]★,김주호[33],조세호[34]
  • 구름이 피워낸 꽃 - 자양[35]

8. 비유적 의미


비유적으로 사약에 의해 죽는 느낌이 들 정도로 끔찍한 쓴맛을 가진 것을 이르기도 한다. 스트레이트로 먹는 에스프레소더치 커피라든가, 이와 비슷한 쓴맛을 지닌 고삼차 같은 것이 그 예[36].

9. 동인적 의미


마이너의 진화형으로 '''정말 같이 덕질해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수준의 작품이나 캐릭터, 커플링을 말한다.'''
작품의 경우 명작이긴 한데 너무 옛날 작품이라 요즘 세대들은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거나, 극단적인 그로테스크나 고어, 현시창 등 취향타는 요소를 함유하고 있거나, 보통 동인적으로 팔만한 요소가 없는 작품인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캐릭터의 경우 사약 작품의 등장인물이면 자동으로 이에 해당하며 인기 많은 작품이라도 비중이 엑스트라 수준으로 없는 캐릭터에 어쩌다 꽂힌 경우, 악당인데 매력적인 인기 악당이 아니라 잠깐 나오고 마는 악당 혹은 팬덤 내에서 두루두루 욕먹는 악당인 경우 등도 해당한다. 사약인 캐릭터들은 대개 생긴 건 예쁘거나 잘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비중도 없는데 파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는 대부분이 미모 때문이다...
커플링의 경우 사약 작품인 경우 혹은 캐릭터 둘 중 한쪽이라도 사약인 경우는 당연히 해당하며, 충분히 메이저 작품의 메이저 캐릭터라도 접점이라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존재하지 않거나 아예 크로스오버면 충분히 사약이 된다. 당연히 커플링의 경우 사약이 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약이라고 하면 사약 커플링을 말하는 경우가 다수.
물론 이 사약이 질이 좋으면서 인기를 끌면 정말 이쪽 팬층도 생겨나면서 어느 정도 마이너거나 준메이저까지 되기도 하는데, 그 좋은 예가 카미야 유우가 지지하면서 유명해진 레이센 우동게인 이나바 X 콘파쿠 요우무 커플링, 파이널 판타지 11동방 프로젝트의 크로스오버물인 동방음양철과 관련 커플링, 후쿠모토 노부유키 작품의 크로스오버 커플링인 아카기 시게루 X 이토 카이지 등이다.[37] 다만 이 경우 '''걸출한 존잘들이 하드캐리한 경우로 어지간한 경우엔 사약이 메이저가 되는 일은 정말로 힘들다.'''
요즘은 영화, 드라마 등 메이저 장르에서도 이런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작가가 스토리 진행 중 억지 커플링을 밀고 가는 경우 시청자층에서 비공식 커플링을 미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사약길 걷는다"'''라고 한다.
사약이 사약이라고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남에게 먹이려 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약팔이. 사약을 덕질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자주 느끼고, 메이저는 못 되더라도 단 한두 명만이라도 내가 덕질하는 걸 같이 덕질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주위 사람들에게 '이 작품/캐릭터/커플링이 좋다'는 식으로 필사적인 전도를 시도하게 된다.
본인은 그냥 열심히 덕질했는데 그걸 보던 주위 사람이 혹해서 넘어오는 경우도 많다. 대개 존잘. 물론 이런 시도는 불발로 끝날 때가 많지만 어쩌다 성공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도를 한 사람이야 좋겠지만 넘어온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래서 '친구, 지인, 좋아하던 존잘이 나에게 약을 팔았다' → '야 이건 너무 심하잖아. 이건 약도 아니고 사약이네' 이러다가 사약이라는 용어가 고착화하게 되었다. 사실 세상은 넓고 덕질할 만화나 게임, 소설 등은 많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셀 수 없으므로, 사약을 계속 덕질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도 한번쯤 사약에 혹해보는 사람은 상당수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사약이라는 단어는 설령 팬이 많은 메이저를 파는 것일지라도 취존의 의미로써 '강요일지도 모르고 저 혼자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요. 근데 전 진짜 좋음!'이란 겸양하는 표현으로도 자주 쓰인다. 그러나 누가 봐도 메이저가 사약이라는 식으로 지나친 겸양의 표현을 쓰면 눈총을 받을 수 있으니 자제하자. 마치 '나 이번 시험에서 90점밖에 못받음ㅠㅠ' 이라는 소리와 똑같다.
심지어는 이런 것도 열렸다.

10. 관련 문서



[1] MBC 드라마 구암 허준의 장면.[2] 死藥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임금이 내린 것이기 때문에 한자는 '하사할 사', '약 약'이다.# 헌데 死藥이란 한자가 실제로 사전에 있기는 하다.[3] 왕 혹은 권력자가 자살을 명령하고, 그래서 명령받은 사람이 독으로 자살하는 경우 자체는 동서를 막론하고 어느 문명권의 역사에나 꽤 있는 일이었지만 '약을 내리는 형벌'이 공식적으로 있었던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렇다고 다른 문명권에서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도 독약이 든 잔을 마시는 형벌을 받았다.[4] 각 도의 감사나 관찰사들에게 전달되어 '이 자식처럼 했다가 너도 이 꼴 난다? 조심해라.' 하는 경고를 주기 위함이다. 구한말에도 다르지 않아서 김옥균의 시체는 갈가리 찢겨져 썩어 없어졌고 김홍륙은 교형당한 뒤 백성들이 사지를 분해해버렸다.[5] 망나니의 칼솜씨와 칼의 성능에 따라 다르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3번이었다고 한다. 목을 자르는 건 미디어에 묘사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형수의 친족이 목을 단칼에 떨어지게 해달라면서 사형집행인인 망나니에게 돈을 쥐어주거나 사형수 본인이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질 정도(…). 예를 들어 1839년 기해박해때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박희순(루치아)는 자신과 같이 순교할 분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단칼에 목을 베시오"라고 사형을 감독하는 관리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서양에서 기요틴이 발명된 것도 사형수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인도주의를 위해서라고 한다.[6] 앞에 나온 이세좌와 윤필상도 부관참시 후 효수되었다.[7] 일본 에도시대의 사형법은 할복 외에 책형, 화형, 참수형이 있었다. 화형과 책형은 말할것도 없고 참수형도 목만 베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남은 몸통을 타메시기리에 쓰고, 중죄인의 경우 추가로 벤 머리를 효수해 조리돌림하는 등 시신이 멀쩡한 사형법이 아니었다.[8] 원작인 이청준의 소설에서는 의붓아버지가 자는 사이 눈에 염산(!)을 넣어 멀게 했다.[9] 허준이 부자를 쓰라고 처방해주긴 했는데, 열이 심한 약재다 보니 '''반드시 과 함께 먹으라고''' 분명히 지시했는데도 꿀이 비싸다고 부자만 먹였다가 저 사단이 난 것이다. 결국엔 허준이 치료해 주긴 했다.[10] 부자의 독성 성분은 아코니틴이라는 성분인데, 열에 약하기 때문에 가열하면 파괴된다.[11] 부자는 열을 받아야 최고로 활성화되기 때문이란다.[12] 방약합편에 의하면 서리가 내리기 전의 것은 독이 있다고 하며, 그 외 다리나 눈의 갯수가 비정상이면 독이 있다고 보고 있다.[13] 느타리와 비슷하게 생긴 야광버섯.[14] 뿌리가 돼지감자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한 입만 씹어도 혀에 즉각 마비감이 온다. 당연히 생으로 먹으면 매우 위험하다.[15] 수은에 생금을 섞으면 위장구멍이 나는 등의 효과도 있다고.[16] 法製. 약의 성질을 그 쓰는 경우에 따라 알맞게 바꾸기 위하여 정해진 방법대로 가공 처리 하는 일.[17] 야사에 의하면 사약을 마시기 직전 송시열의 유언은 '''약을 더 달여오게''' 였다고 한다[18] 부자는 지금도 쓰지만 비상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다만 한의학은 아니지만 백혈병의 재료로 가공되어 쓰이긴 한다.[19] 이 때문에 사약 먹으면 피 토하고 죽는다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박혀버렸지만, 연출 문제 상 실제처럼 묘사하기에는 극이 늘어질 수도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20] 보통 유배지는 이름 그대로 도심에서 멀고, 오고가는 것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격오지에 있다. 제일 가까운 강화도만 해도 당시에는 배 타고 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21] 양반들 가운데서는 어차피 죽는 거지만 그래도 신분 낮은 나졸들의 손에 억지로 죽느니 자기 의지로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22] 사약을 가져온 사람에게 내밀면서 당신도 먹어보겠냐고 했다든가(...)[23] 조금 다른 버전으로 허목이 약을 처방해준 걸 아들이 가져오다가 수상해서 열어보니 독극물인 비상이 있길래 그걸 멋대로 덜어냈고, 그랬더니 송시열의 상태가 나빠져서 결국 사과하고 다시 제대로 된 처방을 받아왔더니 그제야 나았다는 이야기도 있다.[24] 그건 둘째 치더라도 원래 사회적 명망이 있던 인물들은 함부로 교살할 수가 없었다. 원래 남인들은 송시열을 국문해 때려죽이려다가 경로 우대 차원에서 사약으로 바꾸었는데도 당시 노론을 비롯한 소론에서도 반발이 엄청 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부도사가 철판깔고 교살했다치더라도, 정국이 바뀌면 필연적으로 제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복수할 텐데 주 타겟이 누가 될지는 뻔하다. 게다가 송시열은 사약받는 당시에 수제자 권상하를 포함한 수많은 제자와 문인, 추종자들이 그의 임종을 지켰다.[25] 일밤에서 조선왕조 500년 에피소드 중 하나인 인현왕후에서 장희빈에게 사약을 먹이는 장면을 패러디했다. 여기서는 조선시대 문짝 대신 아파트 문짝을 가져다가 몸을 짓눌렀고, 사약을 담은 사발도 거의 가마솥 크기.[26] 강빈의 친정은 풍비박산났다.[27] 다만 이것은 극중에서 얌전(조 귀인)의 술수로 일부러 숨이 단번에 끊어지지 않게 조제된 것으로 묘사된다.[28] 날이 저물어 방 안이 어둑한데 오가는 대화의 분위기는 방금 전에 숨이 끊어진 것 같은 대화다.[29] 사실 맹꽁이 서당에서도 언급하지만 거짓 보고 역시 기군망상죄(임금을 속인 죄)로 역모죄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차피 이거나 저거나 똑같으니 살 가능성이 있는 쪽을 택한 듯 하다.[30]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조태채와 함께 노론 4대신이었던 이이명의 사례가 있기에 전해지지 않았나 한다. 이이명의 집안은 이이명의 손자까지 연루되어 일가가 몰살당할 판이었는데, 이 상황에서 이이명의 아내가 손자라도 살리기 위해서 손자와 나이와 용모가 비슷한 노비에게 부탁해 이이명의 손자인 것처럼 위장해서 죽게 하고 손자는 몰래 빼돌렸다. 나중에 영조가 즉위해 노론 정권이 수립되자 손자는 돌아와서 가문을 이었고 영조는 이 소식을 듣자, 손자 대신 죽은 노비에게 상을 내렸다고 한다. 어찌 보면 조태채보다 훨씬 더 중죄를 진 집안도(사약을 엎는 것을 넘어서, 아예 벌 받을 죄인을 빼돌린 죄) 문제시되지 않고, 도리어 상을 받았으니 조태채의 이야기도 노론 집권 이후에 전해지지 않았을까?[31] 사사 판결은 받았지만 사약을 받지 못하고 엇갈려 산 케이스. 연산군의 폭거에 항거하여 사약을 받을 뻔 했지만 한양으로 올라가던 도중 고양이 한 마리 덕에 사약을 가지고 가던 금부도사와 엇갈려 목숨을 구했다. 이후 중종반정 덕에 사사를 면하게 되었다.[32] 역모죄로 사약을 받게 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어 사면 및 해배되었다.[33] 김주호는 군량미 횡령죄라서 사면되지 못했다.[34] 장동민이 먹지 않고 남긴 사약을 마시게 되었다. 혼자 편하게 있었다고 오해받았기 때문이다.[35] 홍련의 언급에 의하면 홍련의 왕권 찬탈의 영향으로 귀양을 가고도 계속 소란을 피우면서 탈출하려고 하자 사약을 내렸다고 한다. 근데 현 시점에서는 살아있는 모습으로 등장한 것을 보면 몰래 대역을 내놓고 탈출했다던가 체질상 사약을 마시고도 죽진 않아 그 틈에 몰래 탈출한 것으로 추정된다.[36] 실제로 고삼차는 예능에서 사약 대용으로 자주 사용한다. 렛츠고 시간탐험대 시즌1 '양반들의 유배생활' 편에서 군량미 횡령범이라는 설정이 있던 김주호가 이 고삼차 사약을 강제로 마셔야 했다(...). [37] 사실 후쿠모토 만화 파는 팬들은 다른 만화도 같이 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후쿠모토 작품끼리는 크로스오버가 흔하긴 하다. 그냥 후쿠모토 파는 사람 자체가 적어서 그렇지... 그나마 2017년 9월 기준으로는 과거보다 많이 늘어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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