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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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相祿
1903년 10월 13일 - 1990년 2월 13일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최종 학력은 일본 도쿄제국대학 이학부 졸업(1932년). 일명 북한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유명하며 박사학위는 없으나 양자역학에 대한 최신이론을 접하고 나름의 연구를 실시하였으며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원 및 만주 신경공업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양자역학 관련논문을 발표했다.
해방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나 미군정의 국대안 파동과 북한의 인텔리 모시기 정책에 회유되어 1946년 월북했다. 여담이지만 도상록외에도 한인석, 정근, 전평수, 여철기 등 다수의 물리학자들도 동반월북했다.[1]
북한은 이를 통해 1947년 인원부족으로 실패했던 중앙연구소 설립을 1952년 성공했으며 도상록과 그 동료들의 노력을 통해서 북한은 소련 연합핵연구소 창설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1959년에는 연구용 원자로를 만들고 입자가속기를 제작했다.
이후에도 도상록은 북한내 원자물리학/핵물리학 등 과목의 증설, 원자력연구소의 설립을 통해서 북한내 원자력 학문의 기초를 정립했으며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고 자택에서 연구를 계속하다 86세에 사망.
소련, 중공과의 정치적 분쟁으로 북한은 핵무기 기술이전이 요원해지자 자체적인 기술개발에 나섰는데 도상록 등 1세대 북한과학자들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볼 수 있다.
[1] 이때 물리학과는 물론 이공계 계열 교수들 대부분이 월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