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구검

 

1. 개요
2. 설명
3. 초식과 검의
4. 독고구검의 창시 시기
5. 기타
6.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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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獨孤九劍
무협소설 《소오강호》에 나오는 무공으로 검마(劍魔) 독고구패가 천하를 돌며 사용하던 검술이다. 소오강호에서는 화산파 검종(劍宗)의 고수 풍청양이 체득했으며 영호충이 그를 사사(師事)하고 전수받는다.

2. 설명


독고구검은 방어 초식이 일절 없는 검술이며 오로지 공격을 통해 적을 압도한다. 적이 강하면 강할 수록 더 강해진다.
신조협려》에서 양과가 독고구패의 검의를 이어받아 터득한 중검술 역시 독고구패의 것이니만큼 독고구검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지만, 양과가 터득한 것은 경력을 수련하여 펼치는 중검 이후의 독고검법이기 때문에 독고구검과는 차이가 있다. 중국 내에서는 딱히 명칭이 나오지 않은 중검 이후 검법을 독고구검이라고 통칭하여 부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두 검법을 모두 지칭할 때는 독고검법으로 불린다. 두 검법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초식이 없다는 점'''으로, 중검 이후는 '''대교불공'''으로, 독고구검은 '''무초승유초'''로 설명하고 있다. 실제 경지에 오른 양과는 중검으로 펼쳐내는 단순한 일검이 여태껏 배워왔던 천변만화하는 화려한 검초보다 우위에 있음을 터득하였고 목검수련을 십수년 수련해 꽤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다만 그 수준이 목검으로 금륜법왕을 이길정도의 완성 된 경지는 아니라서 목검을 이루지 못했거나 목검초입정도로 여겨진다.
소오강호의 영호충이 사용하는 독고구검은 신조협려와는 차이가 있는데 내공이 전혀 없는 폐인 상태에서 15명의 고수를 일검에 장님으로 만들거나 중상을 입은 몸으로 일류 고수를 원턴킬 하는 등 '''사기 무공'''의 절정을 보여준다. 십수년 수련한 것도 아니라 익힌 지 몇 개월 안 된 시점에서 최강캐. 작중에서 영호충이 몸 성할 날 없이 중상을 입는 것도 밸런스패치 때문인 듯.
신조협려와 소오강호의 작가 김용은 양과의 검법을 독고구검이라고 이야기 하였으며, 양과의 검술은 일부분이 부족하여 강하지 못하다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영호충과 비교해서는 강하다고 한 것을 볼때 양과가 익힌 독고구검은 독고구검이라는 구결자체로 정리된 것이 아닌 원본의 것이고 영호충이 배운 독고구검은 이미 완성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1]
독고구검이 방어초식이 일절 없고, 오로지 공격을 통해 적을 압도하며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강해지는 것은 어떠한 초식이든 일말의 조짐이 존재하며 그 조짐을 보고 초식을 짐작하여 먼저 손을 쓰기 때문이며, 초식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초식이 나오기 때문에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강해지는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철중검술의 경우 현철검과 양과의 경력에 의지해야 하며, 무기의 특성에 영향을 받는 것에 비하여 독고구검은 손이 곧 검이라는 신조협려의 독고구검에서 무검승유검과 일치하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건 양과가 본 검총의 깨달음에도 무검의 경지에 대해 적혀있기에 차이는 없다.

3. 초식과 검의


《소오강호》에 의하면 총 9개의 초식으로 되어 있다.
  • 제1초 총결식 심법총강
  • 제2초 파검식(破劍式) : 천하 각 문파의 검법을 파해하는데 사용한다.
  • 제3초 파도식(破刀式) : 각 문파의 도법을 파해하는데 사용한다. 가벼움으로 무거움을 제압하고, 재빠름으로 느림을 제압한다.[2]
  • 제4초 파창식(破槍式) : 창 계통의 장병기를 제압하는 초식.
  • 제5초 파편식(破鞭式) : 철편 계통의 단병기를 제압하는 초식.
  • 제6초 파삭식(破索式) : 삼절곤, 어망 등의 연병기를 제압하는 초식.
  • 제7초 파장식(破掌式) : 권법, 장법, 조법, 지법, 권각법 등을 맨손이 검과 같은 자를 제압하는 초식.[3][4]
  • 제8초 파전식(破箭式) : 한 자루의 검으로 모든 암기를 쳐서 쓰러뜨릴 수 있으며, 상대의 힘을 빌려 공격하고 암기를 되돌려보낼 수 있다.[5]
  • 제9초 파기식(破氣式) : 정신으로서 상승내공을 가진 적을 제압할 수 있다. "神而明之, 存乎一心" 정신이 맑아야 하고, 한 마음으로 상대해야 한다. 상승 내공을 지닌 적을 제압하는 초식.
독고구검의 검의(劍義)는 선발제인(先發制人)으로, 선발제인은 "먼저 행동하여 남을 제압한다"라는 뜻이며 기선을 제압하여 승리한다는 얘기다. 이는 세상 모든 무공에 초식이 있고, 초식이 시작되는 기수식(起手式) 단계에서 제압해버린다는 것이다. 마치 명함을 내밀기도 전에 내쫓기는 영업사원 꼴로 만들겠다는 말이다. 풍청양 또한 영호충에게 "적의 무공이 아무리 고명해도 초식이 있기 마련이니 초식 중의 빈틈을 찾아내 먼저 공격하면 적을 제압할 수가 있다"라고 하였다.
작중 풍청양은 영호충에게 기존 화산파의 검식을 비롯한 모든 검식을 잊을 것을 주문했다. 영호충은 화산파 입문 초식 '창송영객'과 거기에서 시작되는 여러가지 초식 흐름이 몸에 익어 있어서 굉장히 괴로워했다. 하지만 영호충은 독고구검의 진의가 초식의 형태와 연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우면서 절묘한 흐름에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후로 초식에 신경쓰지 않고 수련한다. 영호충은 본질이 호방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인데다, 화산파와 그 무공에 의문을 품기 시작할 만한 사건들을 겪은 뒤라 어느 정도 가능한 면도 있었다.
독고구검에서 언급하는 무초의 묘는 검에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지 않는 것에 있다. 초식이 기본적으로 조짐이 나타나는 이유는 초식자체에 방향성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자연스럽게 초식을 연결하는 것이 아닌 검 자체에 방향성이 없는 것이 독고구검의 진의인데 이것은 영호충이 봉불평과 대결할때 풍청양이 언급해주는 것을 상기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영호충이 창송영객으로 시작하는 몸에 익은 초식의 흐름으로 괴로워할때는 봉불평과 붙기전이었으며, 아직 독고구검에 대한 검의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시기였으며, 봉불평과의 대결을 통해서 독고구검의 진의를 깨닫게 된다. 대표적으로 봉불평의 급소를 찌르려고 하자 봉불평이 방어를 하려고 할때 검로를 바꾸어 다시 수비하게끔 만들어버렸다.
독고구검의 묘미는 자신보다 빠른 상대를 선발제인의 묘리로 잡는다는 것이다. 초식의 기미를 알아 초식이 시작되는 기수식 단계에서 제압하는 것인데 독고구검에 수비초식이 없는 이유는 상대의 기수식을 파해함으로써 상대를 수비하게끔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풍청양은 영호충이 신체속도로 전백광과 견줄 수 있음과 자신과 같은 노인이 속도를 견주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비유로 하며, 가벼움으로 무거움을 제압하며 독고구검이 부득불 상대를 수비하는 것을 견지시켰다. 초식없는 무초식이든, 유초식이든 검의 방향성이 없기 때문에 초식 자체가 없어 상대에게 파해되지 않는다.

4. 독고구검의 창시 시기


독고구패가 쓴 무공임에도 불구하고 신조협려와 소오강호에서 보여주는 두 무공은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과연 어떤 무공이 어떤 시기에 창시됐는가는 독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던져진 의문이었다. 이중 신조협려에서 나온 독고구패의 검법은 중검을 쓴 이후라는 것이 명확했기 때문에 독고구검의 창시 시기만 결정하면 자연스럽게 독고구패의 무공이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가도 유추할 수 있었다.
크게 중검 이전에 창시됐다는 설과 중검 이후에 창시됐다는 설로 구분되는데, 중검 이전에 창시됐다는 설은 나오자마자 쓰고 다녔다는 설과 도중에 창시했다는 설이 있으며 중검 이후에 창시됐다는 설은 중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과 독고구패의 최종 절학이라는 설 등이 있다. 오랫동안 중검 이전과 중검 이후라는 토론이 이어졌지만 중검 이후라고 주장하는 독자들은 '''"독고구검만큼 독고구패 무공의 진수인 무검승유검을 표현할 수 있는 절학이 독고구검일 수 밖에 없다"'''[6]라는 것이 중론이며, 중검 이전이라고 보는 독자들은 '''"독고구패는 소설 외부의 인물이기 때문에 굳이 창시 시기를 잡을 필요가 없으며, 중검 이전에도 패배를 몰랐기 때문에 비어있는 중검 이전 단계에 독고구검이 오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주장이 많다.
양쪽 모두 타당성 있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결론이 나지 않지만, 소설의 내용을 기반으로 둔다면 중검 이후에 무검승유검에 이르러 완성됐을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신조협려에서 현철중검을 두고 다른 검법은 필요치 않다라고 언급하는데 소오강호의 독고구검 역시 무초승유초 즉, 초식이 없다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현철중검은 현철중검을 사용할만한 내력이 필요하고 무기에 의지해야 하지만 독고구검은 그런게 필요없다는 것을 보면 독고구검은 현철중검보다는 상위의 경지에 나온 절학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소오강호에는 독고구패가 독고구검을 평생동안 썼다는 발언이 풍청양에게서 직접 나오며 독고구검을 출신입화로 익혔고 평생을 지지 않았다라고 언급한다. 그렇다면 이는 청강장검~무검승유검의 신조에서 나온 검총에 새겨진 시기를 모두 포함하게 된다. 또한 무공이 어느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도 아니며, 무공의 초안을 잡고, 오랜세월동안 꾸준히 연마하여 노년에서 완성 시키는 경우가 존재 하기 때문에 . 신조협려에서 양과의 현철 중검술은 현철 중검이 아니면 사용이 불가능한 검술이고, 파도에서 훈련하여 완성 시킨 검술의 수준은 목검을 철검의 위력으로 끌어 올리는 검술이라기 보다는 내공 심법에 더 가까운 검법. 그리고 이는 소오강호에 나오는 독고구검에서 내공의 중심을 거론한적이 없던것을 살펴보면 소오강호의 독고구검은 결국 무검승유검을 이룬 독고구패가 최종정리한 효율적인 완성형 절학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중검의 무초라는것은 현철중검이라는 강력한 무기에 의존한 무초이지, 소오강호의 무초랑은 거리가 멀다. 또한 소오강호의 무초의 경우 대다수가 상대 병장기와 충돌한 적이 없다는 것을 보면 상대병장기와 부딪혀서 무기에 의존하는 검술이 상위의 무학이 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독고구검을 제외하고는 상대 병장기와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추측으로 독고구패의 검법을 익힌 양과가 독고구패를 기리기 위해 독고구검을 만들었다는 '''양과창시설'''도 존재한다. 신조협려는 남송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소오강호는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이 간격동안의 무공 전수를 비교적 부드럽게 설명하기 위하여 제시된 주장이며 양과에 대한 향수와 양과가 가진 뛰어난 자질도 이 추측에 한 몫을 하였다. 실제로 김용소설 전체를 봐도 소오강호를 제외하고는 독고구패와 접점이 있는 인물은 오로지 양과밖에 없기 때문에 양과를 독고구패와 연관지으려는 시도 자체가 부자연스럽다고 볼 수는 없다.[7] 하지만 이는 팬픽이라는 독자 개인의 상상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리가 있다.
또한 이것은 소오강호의 내용을 본다면 간단하게 부정되는 추측으로, 이미 소오강호에서는 '''독고구패가 독고구검을 창안했다'''라고 명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설 간의 연계를 상당히 중시하는 김용의 성격상 양과에 의해서 창시가 되었다면 직접적인 언급이 없더라도 소설을 읽는 독자들 대다수가 양과에 의해서 독고구검이 창시되었다는 것을 무리없이 연상할만한 언급을 반드시 해두었을 것이다. 소오강호에서 훨씬 이전 인물인 독고구패는 계속 언급되지만 양과는 단한번의 언급도 없는 것에서 양과창시설이 그리 신빙성 있는 추측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8]

5. 기타


  • 웹툰 와탕카에서 던진 독고구검 vs 금강불괴의 떡밥으로도 유명하다.
  • 라이트 노벨 《로그 호라이즌》에서는 서브 직업 〈무협〉이 얻는 특기 중 하나로 나온다.
  • 이자웅, 이가흔 주연의 영화 <협녀전기(1992)>가 국내 개봉시 <독고구검>이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물론 김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6. 관련 항목


[1] 다만 애초에 양과는 상세한 구결이나 그런거 없이 그저 검총에 있는 독고구패의 깨달음을 쫓아 비슷한 경지에 이르렀고 영호충은 풍청양에게 상세한 구결이나 검식을 직접적으로 배웠다는 차이가 있다. 대신 내공과 수련기간 쪽은 양과쪽이 월등히 길다.[2] "以輕御重, 以快制慢"[3] 영호충은 이 파장식의 제 일초식도 이해하지 못했다. 작중에서는 <영호충은 장법에 대한 조예가 심히 얄팍했다.>는 이유가 붙어 있다.[4] 커뮤니티에서 일양지나 탄지신통을 상대할 수 없다고 언급하거나 헷갈려 한다고 이전의 리그베다 위키에 수록되었으나 본문을 살펴보면 지법을 파해한다고 적혀져있으며, 일양지나 탄지신통이 검과 같다는 반론이 존재하는데 애초에 파장식을 풍청양이 가르칠때 맨손이 곧 검과 같은 자를 상대한다고 언급하였다. 지법, 장법등을 포함한 모든 맨손무공을 상대하는 것이 파장식이다. 영호충은 임아행과 방증대사의 장법을 거두는 것을 보고 자신이 파장식의 구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시인한다.[5] 약왕묘에서 내공이 없던 영호충은 수십명의 적을 파전식을 활용하여 수십초를 한꺼번에 펼쳐 수십명을 장님으로 만들어버렸다.[6] 사실 독고구검이 무검승유검을 표현할 수 있는 절학이라고 볼 수 있는 점은 신조협려에서 나타나는 독고구패의 성격과도 연관있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독고구패는 의인을 실수로 죽여 자미연검을 버렸고 그것이 중검무봉 대교불공이라는 것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독고구패의 이후 수련과정은 무학의 강함은 추구하되 살상은 최대한 자제하는 쪽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소오강호에서의 독고구검은 상대의 무기나 장력과 직접적인 충돌은 거의 없이 상대와의 대결이 진행된 점으로 볼 때 무검승유검과 잘어울리는 묘사라 볼 수 있으며 결국 자미연검에서 날이 없는 중검으로 살상력을 대폭 약화시키고 현철로 된 중검에서 목검으로 살상력을 낮추었고 목검에서 맨손으로 살상력을 낮추었다라고 추론해볼 수 있다. 사실 단순한 강함을 추구했다면 내공상승만을 추구했다면 해결 될 문제였다. [7] 독자에 따라서는 양과와 영호충이 각기 익힌 독고구패의 검법의 비교우위를 논하기 위해서 양과가 독고구검을 창시했고 그것을 영호충이 익혔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한다.[8] 단적인 예로 김용은 인터뷰에서 양과와 영호충의 검법 수준에 대해서 양과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그 이유를 양과와 영호충의 수련기간과 깊이로 규정하였다. 만약 양과가 독고구검을 직접 창안하거나 자기 나름대로 정리해서 후대에 전했다고 설정했다면 이것을 반드시 언급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소봉과 곽정에 대한 인터뷰에서는 항룡십팔장의 전수를 정확하게 언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