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촉성중앙협의회
1. 개요
1945년 10월 23일 이승만의 주도로 조선호텔에서 여러 정당 대표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된 정치단체. 약칭 독촉.
이승만이 혼란스런 정국의 통합을 위해 좌우통합 조직을 생각하고 만들었다. 65개 단체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박헌영의 조선공산당도 그 중 하나였다. 이승만은 10월 31일에 돈암장에서 박헌영을 만나 장장 4시간에 걸친 대화를 나눈 끝에 박헌영의 독촉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갈등 끝에 11월 16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은 독촉에서 탈퇴했다. 그 결과 독촉의 좌우 대통합 이미지는 타격을 입었고,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좌익들도 사람들에게 분열세력이라는 인식이 생김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이 우익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1945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성원들의 1차 서울 귀환을 계기로 중앙집행위원회 구성을 시작했는데 11월 28일부터 시도된 중앙집행위원회 구성에서 갈등을 드러냈다. 여운형은 위원 7명 중 5명이 한국민주당의 당원이라면서 퇴장했다. 이승만은 독촉을 중심으로 임시정부 세력도 흡수하려고 했으나 임시정부 세력들이 이에 반발하였고 이들은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좌·우익을 망라하여 통합 조직을 이룬다는 처음 계획에는 실패했지만 최고지도자로서 이승만이 부각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1946년 2월 8일 김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와 통합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