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촉성국민회

 

''독립촉성중앙협의회''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멸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대한민국 여당'''
'''대한독립촉성국민회
(1948.7~1951.12)
'''

자유당
(1951.12~1960.4)
[image]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공식명칭'''
대한독립촉성국민회 (大韓獨立促成國民會, National Association)
'''약칭'''
독립촉성국민회(국민회)
'''창당일'''
1946년 2월 8일
'''해산일'''
1958년
'''중앙당사'''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통령'''
이승만 / 초대 (1948.7~1951.12)
'''이념'''
보수주의
민족주의
포괄정당[1]
'''당 색'''
파란색 (#1271B5)
1. 개요
2.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선언문
3.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의원들의 이탈
4. 이후
4.1.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출신 제헌 국회의원
5. 역대 선거 결과
6. 관련 정치단체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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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
1946년 2월 8일, 이승만독립촉성중앙협의회김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통합하여 출범한 사회운동단체이자 정치단체. 촉성은 빨리 이룬다는 뜻이다.
신탁통치를 반대라는 공통의 목적으로 뭉친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독립촉성국민회, 국민회, 독촉국민회, 독촉, 대촉국 등의 약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총재는 이승만, 부총재가 김구였다.
1946년 6월 29일 민족통일총본부로 재발족 하였다. 이후 김구, 김규식 등의 남북협상파는 제헌국회 총선에 불참하게 된다.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독자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이들은 이후 제헌국회에 참여하여 이승만이 대통령에 선출되는 과정, 남한 단독정부 수립, 제헌헌법 제정 등에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2.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선언문


① 우리는 대한의 완전자주독립을 위하여 최후까지 싸울 것을 선언함.
② 우리의 운동은 정당·정파를 초월한 순연(純然)한 국민운동임을 선언함.
③ 우리는 남북과 좌우의 통합을 기하여 사상적으로나 지역으로나 통일완수를 위하여 사력을 다할 것을 선언함.

3.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의원들의 이탈


제헌 국회의원 선거 이후 1대 국회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의원들의 이탈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민주국민당
대한국민당(1949년)
일민구락부
무소속
의원직사퇴
납북(...)
4
12
25
12
1
1
1
제헌국회 당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의 의원들은 4명을 제외하고 모두 정계개편 등의 이유로 인해 다른 당이나 무소속 등으로 이탈하였다. 제헌국회에서 최종적으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출신 의원들이 제일 많이 간 곳은 대한국민당(1949년)이었다. 모두 25명이 이동하여서 과반수에 해당하는 의원들이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국민당과 일민구락부로 소속을 변경한 국회의원도 각각 12명 이었다. 약 21.8% 정도의 의원들이 양당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납북, 무소속 등으로 당적이 이탈된 의원은 3명이었다. 일민구락부의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 이동하였으나 다시 '대한국민당' 등으로 이동한 인원이 많아 결과적으로 12명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출신 의원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제헌국회출신 의원 중 12명은 민주국민당(1949년)으로 이동한다. 수치상으로 67.27%의 의원이 민주국민당으로 이동한 것처럼 보이나 독촉출신 의원들 중 신정회, 대한노동당, 일민구락부 소속 의원 25명(1명은 조봉암)이 부활한 대한국민당(1949년)에 전부 합류했기 때문에 상당수의 의원들은 대한국민당(1949년)에 있었다. 그렇게 이동한 의원 중 일부분은 2대 국회에서 낙선하거나 무소속으로 변경되었다.

4. 이후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2년 지방선거, 1956년 지방선거에서 소수의 당선인들을 배출시키며 명맥을 유지해나가고 있었으나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 진출의 실패했다. 이후 자유당으로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4.1.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출신 제헌 국회의원


이름
지역구
소속 후 이동[2]
권병노
경상북도 의성군 을
일민구락부[3]
김경도
경상남도 함양군
일민구락부
김문평
전라남도 여수군 갑
민주국민당
김영기
경기도 안성군
무소속 > 대한국민당
김용재
전라남도 무안군 갑
신정회 > 대한국민당
김익기
경상북도 안동군 갑
민주국민당
김진구
강원도 삼척군
민주국민당
김철
경상북도 경주군 갑
일민구락부
김철수
충청남도 부여군 을
일민구락부
김태수
경상남도 창원군 갑
민주국민당
김효석[4]
경상남도 합천군 을
한국전쟁납북
남궁현
충청남도 부여군 갑
신정회 > 대한국민당
민경식
경기도 용인군
민주국민당
박종환
경상북도 청도군
민주국민당
서성달
경기도 고양군 갑
민주국민당
성낙서
충청남도 대전부
무소속
손재학
충청남도 홍성군
대한노농당 > 대한국민당
송봉해
전라남도 해남군 갑
일민구락부 > 대한국민당
송진백
충청남도 대덕군
신정회 > 대한국민당
송창식
경기도 이천군
일민구락부 > 대한국민당
신광균
경기도 개풍군
일민구락부
신익희
경기도 광주군
잔존
신현돈
전라북도 무주군
잔존
오석주
전라남도 고흥군 갑
신정회 > 대한국민당
오택열
경상북도 영덕군
일민구락부 > 대한국민당
원용균
강원도 횡성군
일민구락부 > 대한국민당
유준상
전라북도 완주군 갑
대한노농당 > 대한국민당
유진홍
충청남도 논산군 갑
민주국민당
류홍렬
충청북도 제천군
일민구락부 > 대한국민당
육홍균
경상북도 선산군
신정회 > 대한국민당
이남규
전라남도 목포부
잔존
이범교
경상북도 영천군 을
일민구락부
이병국
충청남도 천안군
잔존
이석
경상북도 경주군 을
일민구락부
이승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갑
1948년 7월 20일까지
이요한
전라북도 옥구군
일민구락부 > 대한국민당
이원홍
경상남도 합천군 갑
민주국민당
이유선
경기도 부천군
일민구락부 > 대한국민당
이의상
충청북도 음성군
일민구락부 > 대한국민당
이종근
충청남도 청양군
신정회 > 대한국민당
이종순
강원도 춘성군
일민구락부 > 대한국민당
이주형
경상남도 밀양군 갑
일민구락부
장병만
경상북도 칠곡군
일민구락부 > 대한국민당
정구삼
충청북도 옥천군
일민구락부
정해준
전라북도 금산군
민주국민당
조봉암
경기도 인천부 을
대한국민당
조옥현
전라남도 순천군 을
대한노농당 > 대한국민당
조재면
전라남도 무안군 을
일민구락부 > 대한국민당
조중현
경기도 장단군
신정회 > 대한국민당
진직현
전라북도 임실군
민주국민당
진헌식
충청남도 연기군
일민구락부 > 대한국민당
최규옥
강원도 춘천부
일민구락부
최헌길
강원도 강릉군 을
대한노농당 > 대한국민당
표현태
경상남도 거창군
일민구락부
한암회
경상북도 상주군 갑
일민구락부
홍순녕
제주도 북제주군 갑
민주국민당

5. 역대 선거 결과



6. 관련 정치단체


  • 제헌총선 전
  • 제헌국회 후
    • 3.1 구락부[5]
    • 이정회[6]
    • 일민구락부
    • 대한부인회
    • 대한여자국민당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1] 이 시기 제헌헌법이나 보수의 경제정책을 살펴보면 자유당 이후처럼 엄격하게 자유시장경제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했다기보다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가미된 혼합경제체제였다.[2] 대한민국 제1대 국회의원 목록[3] 일민구락부[4] 김효석(1893년)[5] 비한민당계 우파성향으로 이승만을 지지했던 무소속 국회의원들이 독촉계열 등과 뭉쳐서 만든 원내교섭단체로서 6.1구락부와 함께 제헌국회 거의 최초의 원내교섭단체라고 보면 된다.[6] 3.1 구락부의 실질적 후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