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격대
영어 : Stormtrooper
독일어 : Stoßtruppen/Sturmtruppen
1. 일반적 의미
突擊隊, 군사 용어가 사회로 파생되어 아래의 항목들과 더불어 사용되는 용어. 팬클럽이나 스포츠 동호회 사이에서도 무슨무슨 돌격대니 하는 용도로 쓰인다. 북한에서는 건설노무를 담당하는 인력을 돌격대라고 한다.[1] 주로 정규군으로 복무하기에는 신체조건이 적당하지 않을 때 돌격대로 빠진다고 한다.
2. 제1차 세계 대전 보병 부대,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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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ßtruppen(슈토스트루펜, 충격대)'''
Sturmtruppen(슈투름트루펜, 돌격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한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군이 운용한 돌격부대명으로, 1차대전 초기 발달된 화기와 참호포화 앞에 공격시에 밀집대형으로 큰 피해를 보자 전열보병 시대 척탄병 처럼 본격적인 공격전에 적에 전선에 혼란과 균열을 일으키고 이후 본격적인 공격시에 공격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편성한 특수목적부대이다. 이후 이들은 1916년에 있었던 브루실로프 대공세에서 러시아군이 보여준 전술과 유사한 후티어 전술에 따라 운용되었는데, 기존의 Gew98 볼트액션 소총 대신 MP18을 필두로 한 상당량의 자동화기를 가지고 중포의 허리케인 포격(강렬하지만 종래의 준비포격보다는 짧은 기간동안 이뤄지는 포격)이 끝나기 무섭게 적 참호선의 강점을 우회하고 약점에 침투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최초로 편성된 것은 1915년 3월 독일 제 8 군 산하의 칼조브 돌격대대(Sturmabteilung Calsow)이다. 특이하게도 칼조브 돌격대대는 무거운 철판으로 된 방탄복을 기본 복장으로 하고 심지어는 방탄 방패까지 들고 다니는 부대였다. 하지만 이들을 창설한 칼조브는 이 부대를 지휘하지도 못하고 이들은 원래 임무와는 다르게 일반병들과 같이 대프랑스 전선에 배치되어 연합군의 맹공에 절반에 가까운 병력이 별 활약도 없이 증발해버리고 만다.
이후 빌리 로어라는 사람이 1915년 8월 돌격대의 새로운 사령관으로 부임하는데, 로어는 공격 대대를 개편하면서 분대지원용 기관총 사수와 화염방사기 분대를 추가하였다. 또한 위의 철판 방탄복은 실전 투입 결과 비효율적이며,[2] 스피드가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신형 철모였던 슈탈헬름을 제외한 모든 방탄복들을 제식무장에서 제외시키고 대대적인 경량화에 들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서
- 1. 게베어98 소총에서 기병용 카빈으로 개조되고 더 가벼운 Kar98a를 기본 무장으로 채택했다.
- 2. 작은 크기에 근접전에선 당시의 제식 소총보다 월등한 화력을 내던 MP18기관단총과 권총을 지급했다.
- 3. 거추장스러운 제식 탄입대 대신 특수 가방[3] 을 만들어서 거기에다가 수류탄과 총탄을 넣고 다니도록 했다.
- 4. 냉병기로는 길고 휴대가 불편한 총검 대신 짧은 트렌치 나이프, 짧은 몽둥이로 참호전에서 더 잘 싸울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대대적인 개편 이후 이들은 1916년 베르됭 공세에 투입되어 맹활약을 펼치게 된다. 이후 돌격대로 재미를 본 독일제국은 돌격대의 규모를 점차 늘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후티어 전술이 등장하게 되는데, 여기서 후티어는 제8군을 지휘했던 오스카 폰 후티어 장군을 말한다. 후티어 장군은 돌격대 전술을 정교한 교리로 정립하는데 큰 공언을 한 사람으로 후티어 전술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정의하였다.1) 적진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킬 정도의 짧은 사전포격 실시(다수의 독가스탄 공격도 포함)
2) 이후 포병의 이동탄막 지원 아래 돌격대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 적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면서 유기적인 기동을 통해 적전선의 약한 부분을 뚫고 들어가 적의 사령부와 포진지들을 파괴 및 점령
3) 다음 소규모의 보병 부대가 경기관총, 박격포와 화염방사기를 가지고 돌격대가 지나친 적 강화진지를 공략하며 돌파구를 더욱 확대
4) 공세의 마지막 단계로서 일반 정규부대가 남아있는 적의 저항을 일소
1917년에 들어오면서 독일제국은 물론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과 오스만 제국에까지 돌격대의 아이디어가 퍼지게 되고 동맹국 전체에서의 돌격대의 규모가 점점더 커지게 된다.
1918년 러시아가 혁명으로 인해 전쟁에서 빠지고 난 뒤 독일군은 동부전선에 배치된 병력들까지 싸그리 모아 서부 전선에서 미카엘 공세를 펼치고 당시 날씨, 돌격대의 기습공격 및 탱크를 통해 초반 성공을 거두지만 결국 목표달성에는 실패하게 되고 이후 바로 벌어진 연합군의 100일 공세에 독일제국이 패퇴하게 되면서 전쟁은 곧 끝나게 된다.
여담으로 돌격대하면 독일의 고유의 병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연합군도 이와 비슷한 교리를 개발, 실전에 투입하려는 시도를 했었고 특히 제정 러시아 제국군 같은 경우는 독자적으로 돌격대를 양성해서 브루실로프 공세 당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참전한 것으로 유명한 중동 전역에도 독일 제국의 돌격대가 투입되었는데, 당시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선전을 하던 연합군의 이집트 원정군을 개발살내어서 요르단 강 이남으로 후퇴시켜버리기도 하였다. 이탈리아 군에선 주 전장이던 알프스 지리에 익숙한 산악부대를 '아르디티'로 편성해 운용했는데 전체적인 개념은 돌격대와 비슷했으나 아르디티의 목적은 돌격대처럼 적 방어선의 약한 부분을 치고 나가 아군 본대의 진격로를 뚫는 것이 아닌 적 방어선 전체에 타격을 주어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르디티가 돌격대보다 마냥 우월했던 것 아니고 아르디티가 싸웠던 알프스 전선은 스위스~북해까지 이르는 기나긴 참호선이 복잡하게 늘어지고 그 안에 식민지 전쟁으로 잔뼈가 굵은 영국군과 프랑스군, 독일 제국군이 꽉꽉 들어차 있던 서부전선보다 짧고 참호 건설이 어려웠으며 오헝 제국군의 숙련도도 비교적 낮았기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빠른 기동을 위해 단검과 수류탄만 휴대한 채[4] 아군의 지근거리 포격에 오폭되는 것도 감수하고 포격 와중에 돌격한 뒤 적 참호에 수류탄을 투척해 적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은 직후 근접전에 뛰어드는 위험천만한 전술을 즐겨 사용하면서도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의 비중이 높았고 정예부대라는 자부심이 강했기에 전투의지 역시 왕성해 오헝 제국군에게 악명이 높았다.
독일에서 성공적으로 운용되자 연합국에서도 비슷한 전술과 부대가 만들어졌고 보통은 대대단위로 편성돼서 돌격대(Sturmabteilung, SA)로 불렸지만 훗날 이 이름을 이상한 조직이 물려받았다. 덕분에 SA라는 표현은 사멸하고 위에 나온 두 표현이 주로 쓰이게 되거나 정 대대단위를 지칭하려면 Sturmbataillon이라는 표현이 쓰이게된다. 그런데 정작 영미 문화권에선 물려받은 녀석들 때문에 3번 항목이 형성되는 결과가 나왔다. 나치가 돌격대라은 이름을 붙인것도 돌격대의 특수부대 이미지로 정예군인이라는 이미지를 같이 엮어보려는 의미였지 본래 부정적인 용도는 아니었다.
SA와 함께 영어사전에 '나치 돌격대'로 들어갈정도로 유명해져서 본래 의미를 가뿐히 초월한 인지도를 지니게 되었다. 원래 의미는 정예 돌격병에 가까운데 유명세는 이쪽이 더 얻어버린 것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캐나다군과 미군 부대에 대해서도 전투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독일에서 돌격대라는 명칭을 붙여 줄 정도 였다.
3. 나치 독일 돌격대
- SA 문서 참조.
[1] 북한 경수로 건설에 참여한 오영진씨의 만화 <남쪽손님> 참조[2] 2차대전까지 존재했던 이런 철판 방탄복은 사실 중세 시대 기사의 철갑옷을 그대로 가져온 것에 가깝다. 즉, 중세 말기의 화승총에도 숭숭 뚫렸던 것이니 전혀 쓸모가 없을 수밖에. 소총탄을 막을 수 있는 방탄복은 1990년대에 가서야 보급되기 시작했다.[3] 위 사진의 수류탄을 든 대원처럼 옆구리 부분에 한 개씩 찬다.[4] 물론 점령한 참호를 수비하기 위한 기관총과 포병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