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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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 소재의 국립중앙박물관 동개. 위 이미지에서 오른쪽이 동개(첩개)이다. [1]
1. 개요
2. 상세
3. 역사
3.2. 조선 후기


1. 개요


한국의 궁수들이 사용하던 궁구 중에 하나. 활집과 세트를 이루며 화살이나 애기살, 통아 등을 넣고 다니는 중요한 도구이다.

2. 상세


일명 화살통. 다만 서양의 화살통과는 달리 가죽 같은 유연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위 사진에 묘사된 것은 첩개이며 한쪽 모서리 부분에 고리 두 개가 달려 있고 그 고리들은 에 각각 띠돈이 한 개씩 총 두 개 달려있는데 이 띠돈들은 둘 다 광다회에 연결되어 있고(아랫쪽 고리는 긴 끈으로 띠돈과 연결되어 있어서 실제로 광다회를 두르면 동개가 사선으로 쳐져서 걸림) 아랫쪽 고리에 연결된 띠돈 고리에는 전대가 또 따로 묶여있어서 실제로 패용할 때는 광다회에 상술한 띠돈 두 개를 결속하고 두른 다음 그 위에 전대를 두르게 되어 있다.[2] 첩개의 세세한 디테일은 후술.

3. 역사



3.1. 고려 ~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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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초의 동개.
이성계의 동개 복원품
우측의 복원품은 '국궁마루'의 서태식 선생이 복원한 작품이다.
고려~조선기에는 통형태의 시복이 주로 쓰였고, 후기와 비교해서 크기도 매우 크다.

3.2.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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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로 들어가면서 편전을 탑전하기 위해 주머니가 하나 더 늘어나는 형태로 발전한다. 조선 후기에는 활의 중요성이 점점 떨어지고 의례용의 사용목적을 위해 조선 초중기의 동개와는 달리 매우 짧아진다. 이것이 첩개로 형태는 큰 주머니 옆에 작은 주머니가 달려있는 형태이며 큰 주머니에는 일반 긴 화살을 꽂고, 옆의 작은 주머니에는 애기살통아를 꽂게 되어 있다. 한 용자 블로거가 실험한 바에 의하면 큰 주머니쪽엔 25개, 작은 주머니 쪽에 애기살과 통아를 넣지 않고 긴 화살만 넣으면 10개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동개의 길이가 짧아서 움직이다 보면 화살이 잘 튕겨나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위 이미지에도 나와있듯이 지갑처럼 안에 고정해주는 내피가 따로 있어서 오히려 이전의 원통형 동개보다 화살을 안정적으로 꽂아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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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가죽이 아니라 천으로 만든 첩개도 존재했는데 이 경우 내피 대신 새끼줄을 엮어 만든 구멍들에 화살을 꽂아넣는 방식으로 화살들을 고정했다.

[1] 참고로 왼쪽은 활집이고 녹색의 띠는 광다회, 붉은색의 띠는 전대이다.[2] 즉 실제로 패용하면 광다회와 띠돈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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