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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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쇠뇌, 철갑탄과의 유사성
3. 특징
4. 조선의 군사기밀
5. 성능
6. 타국의 애기살
7.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조선시대에 군용으로 사용된 화살의 한 종류. 한자어로 편전(片箭)이라고도 한다. 활, 덧살(통아:桶兒)과 한 세트이다. 보통의 화살보다 훨씬 짧은 것이 특징이며, 덧살(통아)을 덧붙여 그것을 가이드레일로 삼아 발사하거나 쇠뇌로 발사하는 화살이다.[1]
발사 후에는 덧살은 사수의 손에 남아 덜렁거리고 화살만 날아간다. 그래서 멀리서 봤을 때 화살이 제대로 발사되어 시위를 떠났는지, 아니면 사수의 실수로 떨어진 건지 알아채기가 매우 힘들다.[2] 이러한 특수한 사격방식 때문에 높은 숙련도와 함께 사격시 극도의 주의를 요하는 화살이기도 하다. 숙련된 사람이 아닐 경우 아무데로나 화살이 날아갈 수 있다. 임란 당시 한 의병장이 쓴 <고대일록>을 보면 편전을 연습하다가 팔목이 꿰뚫리는 심각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3]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대몽항쟁 과정에서 보통 화살을 네개로 쪼개 사용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참고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애기살을 정말 잘 쐈다고 전해진다. 제1차 요동정벌 당시 성 위에 농성 중이던 적군 70명을 애기살로 모두 머리를 맞혀 죽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있다.[4]

2. 쇠뇌, 철갑탄과의 유사성


짧은 화살을 가이드레일에 놓아 발사한다는 메커니즘 자체는 쇠뇌와 유사하지만 그 교리는 다르다. 쇠뇌는 인간이 정상적으로는 활을 당겨 화살을 발사할 수 없는 강력한 위력의 활시위를 사용하기 위해서 개발된 것이고, 애기살은 보다 가벼운 화살을 이용해서 보다 더 멀리 날리기 위한 것이다.
분리철갑탄의 송탄통과는 달리 덧살은 그냥 가이드 역할을 할 뿐이다. 오히려 덧살은 총열이나 포신에 더 가깝다.

3. 특징


애기살은 3장의 화살깃 중 하나의 깃이 통아의 안쪽 벽에 눌리도록 장전한다. 통아에 넣는 화살깃이 일반 유엽전 사법과 마찬가지로 2개가 붙은 쪽인지 아니면 1개가 붙는 쪽인지는 단체마다 의견이 분분하여 아직도 통일이 되지 않았다. 또한, 화살깃에는 꿩의 깃털을 많이 쓴다고 한다. 꿩의 깃털이 탄력이 있어 통아에 눌렸던 화살깃이 날아가면서 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4. 조선의 군사기밀


조선시대에는 군사기밀로 다루어졌다. 왜관에 있던 일본인이 통아에 일반화살을 안에 넣고 따라하는 걸 보고 기밀관리가 해이해졌다고 우려하는 기록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심지어는 북방 국경에서도 함부로 편전을 쏘지 말라고 가르쳤다. 여진족에 의한 기밀 유출을 우려해서였다. 이후 조총의 등장과 조선의 멸망, 궁도의 쇠퇴 등 시대의 풍파에 의해 사법이 실전되었다. 문서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조선에서 기밀로 다룬 것이다. 그러다가 근래에 와서 궁도인들이 다시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허나 특정 단체에서만 편전습사를 하고 있는 까닭에 전 궁도인들이 애기살 쏘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헌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선 쓰지 않는 화살이라 적이 주워도 쓰지 못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한다. 통아가 없으면 못 쏜다. 통아가 있어도 오발사고가 많이 나는 화살이라[5] 이미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쏘기 힘들다.

5. 성능


보통의 화살보다 짧고 가볍고, 에너지 보존법칙 덕에 화살이 더 빠르고 멀리 날아가며 화살 몸체의 요동으로 인한 에너지 손실도 적다.직진성이 더 높은 탄도 특성을 가진다. 속도가 빠르고 길이가 짧기 때문에 부수적으로 보통 화살에 비해 날아오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이외에도 화살의 짧은 특성 때문에 적진에 떨어져도 주워서 쓰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민승기가 2004년에 출판한 <조선의 무기와 갑옷>에서 편전이 가벼운 무게 때문에 일반 화살보다 관통력이 뒤떨어진다고 서술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는다. 하지만 1619년 심하 전투 당시 조선군으로 참전한 이민환이 후금군에게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면서 한 경험을 기록한 <건주견문록>을 보면, 후금군은 편전이 먼 거리에서도 갑옷을 뚫을 수 있기에 이를 가장 두려워했다는 기록도 있다. 임란 당시 조정 관료였던 정탁은 <약포선생문집>에서 "활과 조총의 위력을 비교하면 활은 조총의 절반에 미칠 뿐이지만, 편전을 쏘면 그 위력이 조총에 비견할 만하다."라고 하여 편전이 일반 화살보다 위력이 좋다는 투로 서술하였다. 실제로 편전과 거의 유사한 무기[6]를 쓴 서남아시아권과 인도에서 받침대를 통해 쏘는 짧은 화살의 관통력을 여러 차례 칭찬하였고 이쪽의 실존 유물을 보면 일반 화살보다 몇 배나 짧은 화살(편전)이 무게는 일반 화살의 4분의 3까지 이른다. 가볍다고 무조건 관통력을 낮게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실례로 스펀지에서 애기살의 관통력을 실험한 결과, 얇은 쇠 쟁반 정도는 뚫고 그 뒤에 세워놓은 마네킹을 관통하여 박혔을 뿐 아니라, 차 유리를 뚫고 건너편 문에 박히는 결과를 보여줬다. 실험 당시 양궁(리커브 보우)보다도 빠른 탄속을 보여줬다. 같이 등장했던 일반 국궁의 경우 속도와 정확성 면에서 현대식 양궁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성능을 보여줬는데, 화살과 발사 방식을 바꾼 것만으로 이 정도로 속도가 향상됨이 밝혀졌으므로 옛 기록의 신빙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관련 글 링크
또한 모 유튜버가 편전을 직접 만들어서(!) 실제로 사격을 하여 그 위력을 시험해 보았는데, 쇠로 만든 냄비오토바이 헬멧기왓장은 편전이 뚫어버렸다. 다만 전경들이 사용하는 폴리카보네이드로 만든 방패는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는데, 사실 전경들이 쓰는 방패는 현대의 무기인 권총도 뚫지 못하고 소총을 가져와야 겨우 뚫리는 수준이니 편전이 뚫지 못했다고 무리는 아니다.편전의 위력
이 관통력 문제 때문에 한 밀리터리 사이트에서 큰 논란거리가 되었던 사례가 있다. 실제론 화살이 쏘아지는 순간엔 에너지가, 화살이 갑옷을 뚫는 순간엔 운동량(충격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화살의 무게를 줄인다고 크게 불리해지는 것은 아니다.
화살의 경우 화살의 질량을 m, 발사 시 화살의 속도를 v라 하자. 활이 가진 모든 탄성 퍼텐셜 에너지가 화살의 운동에너지로 전환되었다고 가정할 때, 운동하는 물체의 운동에너지는 1/2*mv^2이므로 질량이 반으로 줄어들면 속도가 sqrt(2)배가 된다 [7] 다만 초기 속도는 sqrt(2)배가 되었지만, 항력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공기저항이 급속도로 커지게 되어 속도는 빨리 줄어든다. 따라서 그만큼의 거리까지는 못 날아가고, 일반 화살보다 좀 더 날아간다 보면 된다. 반면에 갑옷을 뚫을 수 있는가를 결정짓는 것 관통력은 충격량과 충동시간이 중요하다. 충격량은 운동량의 변화량이므로 질량은 0.5배, 속도는 sqrt(2)배라면 대략 일반 화살의 0.7배 정도의 위력이다. 하지만 이 0.7배의 운동량으로도 일반적인 화살보다 높은 관통력을 지닐 수 있었던 이유는 고속이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전장에서 사용할 경우, 바람에 의한 손실 같은 경우도 고려해야만 한다. 또한 저중량 고속도 발사체의 특성상 장거리를 날아가면 발사체의 에너지 손실률도 클 수밖에 없다. [8] majra나 솔레나리온 같이 편전과 유사한 화살들도 대개 원거리에서 적을 견제하는 것이 주요 용도로 쓰였고, 근거리에서 갑주를 관통하는 화살들은 일반 화살에 화살촉만 달리 한 것들이다. 실제 원균'''먼 거리에서는 편전, 중거리에서는 장전'''을 쏘아 왜군을 물리친다는 말을 한 것을 보면 , 편전류의 화살의 주용도는 원거리에서 적을 교란시키는 것으로 갑주 관통용으로 널리 쓰인 것은 아닐 수 있다. [9] 그러나 '''그 정도로 살상력이 부족해졌다면 이미 유효사거리를 벗어났고, 유효사거리는 편전이 다른 화살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논하는 의미가 없다.'''
상술되었듯 편전은 일반 화살보다 탄속이 빨랐는데, 이는 실전에 있어서 적이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큰 장점이었다. 장전(長箭) 같은 경우엔 적이 무협지 마냥 칼로 받아쳐버리거나, 보고 피해버리기도 하였으나, 편전은 그 속도가 빨라 대응하지 못했다고 하는 기록들이 있다.

별시위(別侍衛) 강효복(姜孝福)이 아뢰기를,

"신이 연대(煙臺)에서 후망(候望)하였고, 금번에 또한 더불어 싸우면서 그 일을 목도(目睹)했습니다. 저쪽 사람은 1백여 명이 있었는데 기병(騎兵)과 보병(步兵)이 서로 반반(半半)이었고, 철갑(鐵甲)을 입은 자가 그 반(半)이었으며, 갑옷을 입은 자는 모두 쇠로 영수(領袖)를 만들었습니다. 또 그 얼굴을 가려 싸서, 드러나 있는 것은 두 눈뿐이었으며, 혹은 몽둥이를 잡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우리 쪽 사람이 처음에 장전(長箭)으로 쏘았더니, 저들 중 갑옷을 입은 자는 뛰면서 휘두르기도 하고, 혹은 〈그 화살을〉 주워서 도로 쏘았습니다. 그래서 편전(片箭)으로 쏘았더니 저 사람들이 피할 수가 없어서 두려워했습니다.''' 다만 변읍(邊邑)에 소장(所藏)되어 있는 편전(片箭)의 수효가 적은 것이 염려스럽습니다." 하니,

유의(襦衣) 1령(領)과 별조궁(別造弓) 1장을 하사하도록 명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편전(片箭)을 들여보내도록 하라." - 성종 22년(1491) 1월 24일

그 이튿날 왜적들이 모두 동문(東門) 밖에 모여 칼을 빼들고 날뛰며 위세를 보이므로 주장이 용맹스럽고 건장한 활 잘 쏘는 사람 15명을 뽑아 적들의 기세를 살펴보며 접전(接戰)하게 하려 하니 왜적들이 되돌아 서서 서로 희롱하는 짓을 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을 보이었습니다. '''우리 군사가 장전(長箭)을 쏘자 칼로 받아쳐 맞히지 못하게 하다가 편전(片箭)을 쏘자 왜인(倭人)들이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 명종 10년(1555) 5월 30일

단점은 역시나 특유의 난해한 사용방식. 가뜩이나 활 자체가 손쉽게 익힐 수 있는 무기도 아닌데 통아에 작은 화살 사용하는 기술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정예 중 최정예나 감내할 수 있는 난이도가 된다. 또한 시위를 길게 당겨야 하는 일반적인 장궁으로도 쓰기 어려웠는데 살이 통과해야 하는 통아가 길수록 오발확률도 높기 때문이다. 고려와 조선은 전투력의 상당 부분이 활의 위력에 의존하여 궁병이 꽤 잘 양성되어 있었고, 사용하는 활도 작고 강력한 복합궁이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활용 가능할 정도로 다수의 애기살 숙련자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 타국의 애기살


서양과 서남아시아, 인도에도 솔레나리온##,##[10],마즈라[* 출처 : http://defense-and-freedom.blogspot.com/2011/04/exotic-ancient-weapons-i-majra.html ##] 같이 가벼운 화살을 통아에 넣어서 발사하는 방식이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효과도 비슷해서 먼 거리에서 빠른 화살을 날려서 적을 교란시키는 용도였다. 우리나라에서 애기살은 몽골 침입 이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저쪽은 훨씬 전인 6세기 경부터 기록이 등장한 바 있다.
참고로 조선에서는 당나라 때 중국에 존재한 통전(筒箭, 통사(筒射))가 애기살과 유사한 무기라는 관념이 조선시대에 존재하였다. 때문에 애기살과 유사한 무기가 고려 말 이전부터 동아시아 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에는 컴파운드 보우용으로 나오기도 했다.

7.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판타지 소설 피를 마시는 새에서 니어엘 헨로가 애기살의 명수로 나온다. 애기살 쏘기를 가르치는 것도 잘해서 휘하의 헨로 중대는 애기살 쏘기가 특기이다.
  •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잠깐 등장한다. 등장하는 장면은 임진왜란 초기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서 고니시 유키나가를 막는 장면(...) 고니시가 내보낸 돌격대를 저지하기 위해 편전을 쏘는 병사의 모습이 잠깐 등장한다. 다만 자세가 고증과는 거리가 먼 편이라고 평가받는다.
  •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는 주인공 남이가 사용한다. 최후반부 자신을 추격하는 청의 특수부대 니루와 싸울 때도 사용하는데 그때 사용한 건 가지고 있던 게 아니라 직접 산에서 작은 대나무를 꺾어다 자르고 다듬고 구멍을 뚫어서 통아를 만든 뒤 니루가 쓰던 육량시를 부러뜨리고 뒷날개 부분을 활용하여 칼로 날카롭게 깎아 만든 것이다.[11]
  • 영화 신기전에서 극 초반 주인공 상단에 속한 방옥(류현경)이 애기살을 쏴 수박 관통하기 경연에서 매달린 수박을 모두 관통하며 우승한다.
  • 영화 역린에서 정조가 거의 저격총 수준으로 쏜다. 이를 두고 과장이나 주인공 버프(...)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으나, 사실 이는 절대 과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조는 조선 역사상 유이한 신궁으로 역사에 기록된 왕이기 때문이다.[12] 실제로 정조는 영화에 나온 것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손가락만한 호리병을 쏘아 맞히는 어마어마한 활솜씨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13] 심지어 장수들과 함께 활을 쏠 때는 장수들이 지나치게 기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해 50발에 한 발씩 일부러 빗나가게(다시 말해, 일부러 그러지 않는 이상 빗나가지 않을 정도였다) 할 정도였다.[14]
  • KBS 스펀지에서도 등장한 적이 있다. 그 위력이 자동차 유리까지 관통할 정도.[15]
  • 마찬가지로 네이버 웹툰 블레이드 노트에서 김달섭이라는 인물이 주인공 유진 라이너스를 제압하기 위해 사용했다.

[1] 조선 후기 쇠뇌 관련 병서 <노해>에는 쇠뇌로 편전(애기살)을 쏘는 것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2] 당하는 입장에선 '분명 저 녀석이 실수해서 화살이 발사되지 않았는데 '''내 가슴팍에 꽂힌 이건 뭐지?'''' 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3] 화살이 짧을수록 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 레일에서 탈선한 화살을 보지 못하고 발사해서 눈먼 화살이 되는 것. 이로 인해 화살의 길이가 계속 길어졌다. 초기와 후기의 편전의 길이를 비교해보면 심하게 차이가 난다. 근래에 복원한 애기살들 중에는 총의 약실과 총탄의 관계처럼 덧살과 애기살이 꼭 맞물리게 제작하여 오발 위험을 크게 줄인 물건도 있다.[4] 원사나 중국 쪽 기록으로 교차검증을 했을 때도 이성계의 무예 실력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은 거짓이 아니니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단 1000명으로 나하추의 좌, 우, 중군을 상대로 버틴 전력이나 나하추의 장수 5명을 한번에 해치운 것을 보면... [5] 딱 봐도 느낌이 오겠지만, 통아의 열린 면으로 편전 머리가 덜렁덜렁 튀어나오기 일쑤다.[6] 아랍권에서는 majra라고 부른다.[7] 다만 탄성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애기살에 전달할 때 너무나 당연하게도 활몸과 시위,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살끼리의 무게만 비교해도 '''통아'''를 움직이는 데에 필요한 운동 에너지가 손실되는 만큼, 무게가 화살의 무게가 절반이라고 '''절대로''' 그 속도가 sqrt(2)배가 될 수는 없다.[8] 포탄으로 바꿔서 얘기해보자면, 2차 대전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의 주포는 동급의 경쟁국 주포와 비교해서 경량의 포탄을 사용하였다. 이는 상당히 빠른 탄속으로 포탄을 쏠 수 있었지만, 경량탄이었기 때문에 공기저항과 바람의 흐름에 영향을 더 많이 받았기에 원거리로 멀리 갈수록 위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다.[9] 단 병인양요 당시 실록 기록으로 애기살이 선저를 반 이상 관통했다는 언급이 있는 거 보면 관통력도 상당해 보이기는 하다. 단 어느 정도 거리에서 쐈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불명[10] 출처 : http://www.kjclub.com/kr/exchange/photo/read.php?tname=exc_board_14&uid=6413&fid=6413 ##[11] 근데 이게 아주 근거 없지 않은 게 애기살의 기원이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앙엽기"에 따르면 몽골 제국고려를 침입할 때 화살이 부족하여 적의 화살을 4등분하여 사용했던 데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편전의 길이가 초기에는 보통 살의 1/4 길이였다가 현재 전해져 오는 길이인 1/2정도의 길이로 변했다.[12] 나머지 한명은 당연히 태조 이성계. 하지만 그 외에도 조선의 국왕들은 대체적으로 명궁이었다.[13] 그리고 윌리엄 텔이 쏜 건 일반적인 활이 아닌 쇠뇌다.[14] 실제로 '20순(100발)중에 98발, 10순(50발)중에 49발을 과녁에 명중시켰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다.[15] 이거 김성모가 만화 왕수에서 일부 써먹었다. 명중한건 자동차 윗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