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 개요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소설가 구효서의 <낯선 여름>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나 많은 부분이 다르다. 개봉 전에는 생소한 신인 감독이었던 홍상수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시사회에 참석한 영화평론가들의 극찬과 함께 [1] 일약 한국 영화계의 주목받는 감독으로 발돋움한다.
처음에 영화사의 제작 컨펌을 받기 위해서 원작 소설의 판권을 획득했으나, 각색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아예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썼다고 한다. 또한 홍상수 영화들 가운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른 시나리오 라이터들과 협업한 작품이다.
2. 줄거리
소설가 효섭은 변변한 작품 하나 출간하지 못한 처지다. 후배의 출판사로 가서 자기 원고가 먼지만 쌓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효섭은 저녁 술자리에서 평론가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철창 신세를 진다. 그는 삼류 소설가로 취급받는 것에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리면서 유부녀인 보경과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결벽증이 심한 보경의 남편 동우는 업무차 전주로 출장을 가지만 보경이 영 미덥지 못하다. 한편 적당한 허영심과 허상을 갖고 소설가 효섭의 아내를 꿈꾸는 극장 매표원 민재가 효섭의 소설 원고 교정을 봐주며 행복을 느끼지만, 효섭은 민재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보경과의 불륜에만 탐닉한다. 보경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버린 자기를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고 믿으며 효섭과 탈출을 감행하기로 한다
3. 의의
- 홍상수 초창기 작품의 특징인 무미건조한 묘사,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 사실적인 정사 장면, 속물적인 지식인 계층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돋보이며 전매특허인 술자리 장면 등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 현대 한국인들의 내적 갈등을 탁월하게 드러냈고 동시에 서울의 시대상을 건조한 미장센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여러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교차해가는 신선한 구조로 영화를 전개시켜나가고, 불륜과 살인이라는 통속적인 이야기 위에서 어떠한 장르적 쾌감이나 심지어 명확한 기승전결이 없이도 전혀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는다. 특히 유명 영화평론가인 정성일이 매우 좋아하는 영화다. 정성일은 1996년이 한국영화와 정성일 자신에게 특별한 한 해였다는 평론을 썼는데, 그 이유가 달랑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김기덕의 악어, 임순례의 세친구가 나온 해이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 세 작품만으로 정성일 본인에게 가장 뜻깊은 해였다고 말했을 정도로 이 작품을 엄청나게 극찬했다.
- 김의성의 주연 데뷔작이며, 본인이 말하길 이 영화를 인상깊게 본 영화 지망생들이 중견 감독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베트남에서 돌아온 이후 영화계로 복귀하는 데 상대적으로 수월했다고 밝혔다.
- 단역이지만 의외로 송강호의 데뷔작[2] 이기도 한데, 훗날 그가 유명해진 뒤 송강호가 갖는 이미지와 다르게, 세속적이고 가벼운 느낌의 주인공 친구 역할이며, 사투리 말투도 없는, 주인공 김의성의 같은 영화전공 출신 친구인데 영화와 무관한 사업을 해서 돈 많이 번 친구 역할이었다. 오랜만에 주인공과 만나는 설정으로 잠깐 나오는 역할이라 배우 구하기가 애매했는데, 주인공 김의성이 극단 선배라 홍상수와 제작자 쪽에 후배 송강호를 추천했다고 한다. 지금의 송강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사투리 억양도 없고 얌체느낌도 나는 서울사람 역할이나 무난히 소화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