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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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 해 (베네치아 만) 동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있던 도시로 오랫동안 에피루스 지역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고대 그리스어로 에피담노스 혹은 뒤라키온이라는 이름이었다. 이후 고대 로마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라틴어로 디라키움이 되었고,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중세 그리스어로 디라히온이라고 불렸다. 오늘날 이름 두러스는 디라히온이 알바니아 식으로 변형된 이름이다. 이탈리아어로는 두라초라고 하는데 영어권에는 이 이름이 더 유명하다.
로마 공화정 말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내전 시에 이곳을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결과는 방어 측인 폼페이우스의 승리. 그러나 그 후의 파르살로스 회전에서 역전되며 로마 제국의 초석이 놓이게 된다. 디라키움 공방전 참고.
동로마 제국의 경제를 부흥시킨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의 고향이며, 그의 명으로 현재 남아있는 성벽이 세워졌는데, 두께 5미터, 높이 10여 미터로 다라와 함께 당대 최대의 요새 중 하나였다. 흐른 서기 1071년에는 로베르 기스카르의 노르만 인 군대가 동로마 제국을 침략하여 격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또 그 아들인 타란토의 보에몽이 재침공하기도 하였다. (디라히온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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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세기 시칠리아 왕국의 속령인 알바니아 왕국의 수도였다. 그후 15세기 베네치아령 알바니아의 주도가 되었으나 1501년 오스만 군에게 점령되었다. 알바니아 공국 시절에는 수도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알바니아의 두러스이고, 수도 티라나의 항구 도시 역할을 하며 그 명성을 잇고 있다. 인구는 21만명으로, 알바니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의 아틸라 캠페인에서는 뜬금없이 '''튜턴족'''의 도시로 나왔으나 결정판 캠페인에서는 비잔틴족으로 수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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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대의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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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1. 개요
아드리아 해 (베네치아 만) 동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있던 도시로 오랫동안 에피루스 지역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고대 그리스어로 에피담노스 혹은 뒤라키온이라는 이름이었다. 이후 고대 로마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라틴어로 디라키움이 되었고,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중세 그리스어로 디라히온이라고 불렸다. 오늘날 이름 두러스는 디라히온이 알바니아 식으로 변형된 이름이다. 이탈리아어로는 두라초라고 하는데 영어권에는 이 이름이 더 유명하다.
로마 공화정 말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내전 시에 이곳을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결과는 방어 측인 폼페이우스의 승리. 그러나 그 후의 파르살로스 회전에서 역전되며 로마 제국의 초석이 놓이게 된다. 디라키움 공방전 참고.
동로마 제국의 경제를 부흥시킨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의 고향이며, 그의 명으로 현재 남아있는 성벽이 세워졌는데, 두께 5미터, 높이 10여 미터로 다라와 함께 당대 최대의 요새 중 하나였다. 흐른 서기 1071년에는 로베르 기스카르의 노르만 인 군대가 동로마 제국을 침략하여 격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또 그 아들인 타란토의 보에몽이 재침공하기도 하였다. (디라히온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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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세기 시칠리아 왕국의 속령인 알바니아 왕국의 수도였다. 그후 15세기 베네치아령 알바니아의 주도가 되었으나 1501년 오스만 군에게 점령되었다. 알바니아 공국 시절에는 수도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알바니아의 두러스이고, 수도 티라나의 항구 도시 역할을 하며 그 명성을 잇고 있다. 인구는 21만명으로, 알바니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의 아틸라 캠페인에서는 뜬금없이 '''튜턴족'''의 도시로 나왔으나 결정판 캠페인에서는 비잔틴족으로 수정되었다.
2.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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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대의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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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