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돌프 처칠

 


이름
랜돌프 헨리 스펜서처칠 경
Lord Randolph Henry Spencer-Churchill
생몰년도
1849년 2월 13일 ~ 1895년 1월 24일
출생지
1849년 영국 런던
사망
1895년 1월(45세)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직업
정치인
자녀
슬하 2남
윈스턴 처칠
존 처칠
배우자
제니 제롬
국적
영국 [image]
정당
[include(틀:보수당(영국))]
역임지위
영국 국회의원
재무부 장관
하원 의장
인도 국무장관
학력
이튼 칼리지
옥스퍼드 메르톤 대학

1. 개요


영국의 정치인이자 그 유명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아버지이다. 1849년 런던에서 7대 말버러 공작 존 스펜서 처칠의 아들로 태어나 1895년 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 생애


1849년에 태어났다. 이튼 스쿨에서 수재로 이름을 날리고 옥스퍼드 메르톤 대학을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주재 영국대사로 근무하던 중, 미국의 투자 사업가 레너드 제롬의 차녀인 제니 제롬을 만나 3일만에 약혼하고, 6개월 후인 1874년 4월 15일 파리의 영국대사관에서 결혼했다. 당시 서양에서는 미국 출신의 신흥부자와 유럽 귀족 간의 혼사가 잦았다. 신분상승을 위한 금수저들과 재정적으로 궁핍한 귀족집안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자식으로 윈스턴 처칠, 존 스펜서처칠을 뒀다.
그 후 재무부 장관, 인도 국무부장관, 하원의장 등을 역임했다. 아들인 처칠처럼 그도 영국 보수당에서 활동했는데, 인도에서 국무부 장관을 역임할 당시 영국과 버마와의 전쟁에서 버마를 합병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으며 인도에서 영국 수입품을 쓰는 것을 장려하는 무역정책을 추진했다. 재무부 장관 시절 군 예산 감축을 두고 육군장관 W. H. 스미스와 대립한 끝에 1886년 사표를 제출했고 정치 경력을 마감했다.
1895년 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매독이었는데, 대학생 시절에 늙은 창녀와 성매매를 해 매독에 걸렸으나 치료를 받아 호전됐지만, 다시 재발해 사망하고 말았다. 랜돌프 처칠이 걸린 매독은 잠복형 매독으로 보인다. 잠복형 매독은 2기 매독 증상을 보이다가 갑자기 모든 증상이 사라지면서 자연치유된 것처럼 보이는데 짧으면 3년후, 길게는 30년 후에 3기 매독 증상을 보이며 돌연 발병한다.

3. 여담


  • 랜돌프 처칠의 아내 제니 제롬은 남편이 사망한 후 1900년에 20세 연하의 근위대 대위와 재혼하고, 이후 재혼 14년만에 다시 이혼했다. 이후 63세의 나이로 나이지리아에서 영국 관리로 일했던 40세의 몬태규 피펜 포치와 결혼했다. 다만 재혼했음에도 레이디[1] 칭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 윈스턴 처칠에게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었는데, 정계 생활을 하느라 아들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2] 처칠이 기숙사립학교에 있을 당시 아버지 랜돌프는 4년동안 4번 찾아왔고, 어머니 제니 제롬은 1번만 찾아왔을 정도였다. 그래도 아버지를 미워하지는 않았는지 윈스턴은 자신의 아들에게 아버지 이름인 랜돌프를 붙였다.
[1] 귀족이 아닌 여성이 귀족과 결혼할 때 '레이디'란 칭호가 붙는다.[2] 어머니 제니 역시 남편의 정계생활 내조로 인해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