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스키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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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는 올맨 브라더스 밴드와 함께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서던 록 밴드이다.
플로리다 주 잭슨빌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보컬 로니 반 젠트와 기타리스트 앨런 콜린스, 개리 로싱턴은 마이 백야드라는 그룹을 결성하였다. 이 그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베이시스트 레온 윌키슨과 키보디스트 빌리 파웰을 투입하여 더 규모가 커졌는데 이 때 밴드 이름을 레너드 스키너드로 바꿨다. 레너드 스키너드라는 이름의 유래는 한 고등학교 선생의 이름인데, 머리가 긴 학생을 체벌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교사 레너드 스키너(1933 ~ 2010)를 비꼰 것이다.[2] 레너드 스키너드는 밴드 결성 첫 해에는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클럽 등지를 전전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레너드 스키너드의 연주를 본 레코드 제작자인 알 쿠퍼가 그들에게 음반 녹음을 제의하였고 이 때부터 그들의 인기는 조금씩 상승하게 된다. 기타리스트 에드 킹이 레너드 스키너드에 새로이 영입된 이후 레너드 스키너드의 기타리스트는 총 3명이 되었는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데뷔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는 Pronounced Leh-Nerd Skin-Nerd 에서 Simple Man과 Tuesday's Gone, Gimme Three Steps, Free Bird[3] 가 팬들을 사로잡으며 곧바로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특히 Free Bird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와 함께 대표적인 트리플 기타의 명연으로 손꼽힌다. 이후 2집 앨범인 Second Helping을 발표하였는데 이 앨범의 수록곡인 Sweet Home Alabama[4][5][6] , I Need You가 팬들을 사로잡으며 레너드 스키너드는 다시 한번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미국 독립기념일을 즈음하여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홈구장인 내셔널 콜리세움 스타디움에서 했던 공연이다. 약 100여일 후 이들중 3인이 사망하게 된다.
레너드 스키너드가 6번째 앨범인 Street Survivors를 발표하고 3일 후, 투어 도중이던 1977년 10월 20일 멤버들을 태운 전용기가 연료 부족으로 추락하면서 레너드 스키너드의 멤버인 로니 반 잰트, 스티브 게인즈, 스티브의 누나인 백업 보컬리스트 캐시 게인즈가 사망하고 나머지 멤버들도 큰 부상을 입었다. 경비행기 사고로 랜디 로즈가 사망한 사건과 함께 락음악계의 참사중 하나로 꼽힌다 . 이 사고로 팀은 해체하고야 말았다. 이후에도 멤버들끼리 로싱턴 & 콜린스 밴드, 38 스페셜 등으로 활동하다 1987년에는 로니의 동생 조니 반 잰트를 보컬로 영입하면서 활동을 재개하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그동안 기타리스트 앨런 콜린스가 1986년에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다 1990년에 사망하고 레온 윌키슨이 2001년, 빌리 파월이 2009년에 사망하는등 현재 밴드 안에서 활동 중인 원년 멤버는 기타리스트 게리 로싱턴 밖에 없다. 그외 전성기 때 멤버로는 에드 킹과 드러머 아티머스 파일이 활동 중이다.
2018년 8월 22일 기타리스트 에드 킹이 별세했다.
1. 개요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는 올맨 브라더스 밴드와 함께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서던 록 밴드이다.
2. 상세
플로리다 주 잭슨빌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보컬 로니 반 젠트와 기타리스트 앨런 콜린스, 개리 로싱턴은 마이 백야드라는 그룹을 결성하였다. 이 그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베이시스트 레온 윌키슨과 키보디스트 빌리 파웰을 투입하여 더 규모가 커졌는데 이 때 밴드 이름을 레너드 스키너드로 바꿨다. 레너드 스키너드라는 이름의 유래는 한 고등학교 선생의 이름인데, 머리가 긴 학생을 체벌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교사 레너드 스키너(1933 ~ 2010)를 비꼰 것이다.[2] 레너드 스키너드는 밴드 결성 첫 해에는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클럽 등지를 전전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레너드 스키너드의 연주를 본 레코드 제작자인 알 쿠퍼가 그들에게 음반 녹음을 제의하였고 이 때부터 그들의 인기는 조금씩 상승하게 된다. 기타리스트 에드 킹이 레너드 스키너드에 새로이 영입된 이후 레너드 스키너드의 기타리스트는 총 3명이 되었는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데뷔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는 Pronounced Leh-Nerd Skin-Nerd 에서 Simple Man과 Tuesday's Gone, Gimme Three Steps, Free Bird[3] 가 팬들을 사로잡으며 곧바로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특히 Free Bird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와 함께 대표적인 트리플 기타의 명연으로 손꼽힌다. 이후 2집 앨범인 Second Helping을 발표하였는데 이 앨범의 수록곡인 Sweet Home Alabama[4][5][6] , I Need You가 팬들을 사로잡으며 레너드 스키너드는 다시 한번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미국 독립기념일을 즈음하여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홈구장인 내셔널 콜리세움 스타디움에서 했던 공연이다. 약 100여일 후 이들중 3인이 사망하게 된다.
3. 사고
레너드 스키너드가 6번째 앨범인 Street Survivors를 발표하고 3일 후, 투어 도중이던 1977년 10월 20일 멤버들을 태운 전용기가 연료 부족으로 추락하면서 레너드 스키너드의 멤버인 로니 반 잰트, 스티브 게인즈, 스티브의 누나인 백업 보컬리스트 캐시 게인즈가 사망하고 나머지 멤버들도 큰 부상을 입었다. 경비행기 사고로 랜디 로즈가 사망한 사건과 함께 락음악계의 참사중 하나로 꼽힌다 . 이 사고로 팀은 해체하고야 말았다. 이후에도 멤버들끼리 로싱턴 & 콜린스 밴드, 38 스페셜 등으로 활동하다 1987년에는 로니의 동생 조니 반 잰트를 보컬로 영입하면서 활동을 재개하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그동안 기타리스트 앨런 콜린스가 1986년에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다 1990년에 사망하고 레온 윌키슨이 2001년, 빌리 파월이 2009년에 사망하는등 현재 밴드 안에서 활동 중인 원년 멤버는 기타리스트 게리 로싱턴 밖에 없다. 그외 전성기 때 멤버로는 에드 킹과 드러머 아티머스 파일이 활동 중이다.
2018년 8월 22일 기타리스트 에드 킹이 별세했다.
4. 디스코그래피
4.1. 앨범
- (Pronounced 'Lĕh-'nérd 'Skin-'nérd) (1973)
- Second Helping (1974)
- Nuthin' Fancy (1975)
- Gimme Back My Bullets (1976)
- Street Survivors (1977)
4.2. 싱글
[1]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5가지 헌액 카테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자 공신력이 인정되는 '공연자(Performers)' 명단에 한하여 기록하도록 함. 나머지 부문의 헌액자들은 따로 문서 내 헌액명단에 수록해주길.[2] 영어로 ~d라고 하면 수동태로 "~되다"란 뜻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purify (정화)와 purified (정화되다). 그런데 구어체에서 문법적으로 말이 안되는 말을 여기에 넣어서 (정확하게 번역하긴 어렵지만) ~당했다는 식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슬랭이고 언어적으론 말이 안되지만 뜻은 통한다. 예를 들어 시트콤 How i met your mother에서 마샬이 상대방을 논리로 발라버리고 "lawyered!"라고 하는게 대표적. 변호사가 말빨로 발라버리듯 발라버렸다는 소리인데,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말이 안되지만 변호사에 대한 미국대중들의 이미지 때문에 이들은 이해가 되는 것. 레너드 스키너드같은 경우 당연히 유명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람을 모르는 대중들은 모르는 인사이드 조크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이 교사가 머리 긴 학생들은 휘청거릴 정도로 종아리를 팼다면 절뚝거리는 학생이 친구들에게 "Dude, I got Lynyrd Skynyrd"라고 하는 식.[3] 2015년도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해리 하트(콜린 퍼스)의 교회 대학살 장면에서 나온 삽입곡, 그 외에 포레스트 검프에서도 삽입되었다. 제니가 마약을 흡입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려 하는 장면에 나왔다.[4] [image]
앨라배마주의 공식 슬로건으로 채택되어 2009-2013년 자동차 번호판에 인쇄될 정도로 유명하다. 재밌는건 앨라배마를 상징하는 곡이지만 백야드 시절 멤버들은 모두 플로리다 잭슨빌 토박이고, 이후 합류한 멤버들도 글렌데일, 버몬트, 휴스턴 등 출신이 다양하지만 앨라배마 출신은 단 한명도 없다.[5] 이 곡은 사실 캐나다 출신 아티스트 닐 영이 남부 지방의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를 저격한 노래 "Southern Man"과 "Alabama"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도 있었다. 비록 앨라배마 출신은 아니지만 남부 지방 밴드란 인식이 강했던 이들이 맞받아치는 곡을 발표한 것.(다만 공동작곡가 중 에드 킹은 글렌데일 출신이다) 실제로 가사 중에도 닐 영을 저격한는 내용이 있는데 "미스터 씨가 그녀 (앨라배마)에 대해 노래하는 걸 들었죠. 그녀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더군요. 닐 영이 알라줬으면 좋겠네요.어차피 '''남부의 남자(southern man)'''는 그가 필요없단 걸요"라고 한다. 닐 영은 훗날 자서전에서 이런 이들의 대응에 대해 "내 곡은 그런 반응을 받아도 싸다"면서 자신의 곡의 가사가 자기가 들어도 맘에 안 들었으며, 너무 "추긍하는 말투인데다 깔보는 말투 (accusatory and condescending)"고 깊은 생각없이 쓴 것이라 반성의 태도를 보였다.[6] 대중적인 인지도로는 사실상 압도적인데, 특유의 기타 인트로, 그리고 후렴구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미국에서는 세대를 관통하는 히트곡으로 인트로만 나오면 바로 미국 남부 깡촌이 떠오르는 마성의 BGM 수준. 콘에어 등 영화에서도 여러번 나왔고 심지어 8 마일(영화)에선 주인공 래퍼 지미가 친구 퓨처에게 이 곡을 재치있게 변주해 불러주기도 한다. 모델 겸 배우 카라 델러빈은 방송에서 개인기로 기타를 목 뒤로 거꾸로 들고 이 곡을 치는 묘기를 보여줬다.
앨라배마주의 공식 슬로건으로 채택되어 2009-2013년 자동차 번호판에 인쇄될 정도로 유명하다. 재밌는건 앨라배마를 상징하는 곡이지만 백야드 시절 멤버들은 모두 플로리다 잭슨빌 토박이고, 이후 합류한 멤버들도 글렌데일, 버몬트, 휴스턴 등 출신이 다양하지만 앨라배마 출신은 단 한명도 없다.[5] 이 곡은 사실 캐나다 출신 아티스트 닐 영이 남부 지방의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를 저격한 노래 "Southern Man"과 "Alabama"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도 있었다. 비록 앨라배마 출신은 아니지만 남부 지방 밴드란 인식이 강했던 이들이 맞받아치는 곡을 발표한 것.(다만 공동작곡가 중 에드 킹은 글렌데일 출신이다) 실제로 가사 중에도 닐 영을 저격한는 내용이 있는데 "미스터 씨가 그녀 (앨라배마)에 대해 노래하는 걸 들었죠. 그녀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더군요. 닐 영이 알라줬으면 좋겠네요.어차피 '''남부의 남자(southern man)'''는 그가 필요없단 걸요"라고 한다. 닐 영은 훗날 자서전에서 이런 이들의 대응에 대해 "내 곡은 그런 반응을 받아도 싸다"면서 자신의 곡의 가사가 자기가 들어도 맘에 안 들었으며, 너무 "추긍하는 말투인데다 깔보는 말투 (accusatory and condescending)"고 깊은 생각없이 쓴 것이라 반성의 태도를 보였다.[6] 대중적인 인지도로는 사실상 압도적인데, 특유의 기타 인트로, 그리고 후렴구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미국에서는 세대를 관통하는 히트곡으로 인트로만 나오면 바로 미국 남부 깡촌이 떠오르는 마성의 BGM 수준. 콘에어 등 영화에서도 여러번 나왔고 심지어 8 마일(영화)에선 주인공 래퍼 지미가 친구 퓨처에게 이 곡을 재치있게 변주해 불러주기도 한다. 모델 겸 배우 카라 델러빈은 방송에서 개인기로 기타를 목 뒤로 거꾸로 들고 이 곡을 치는 묘기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