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로즈
1. 개요
콰이어트 라이엇(Quiet Riot)과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대부분 오지 오스본 밴드에서의 활동으로 알려져 있다.[2]'''섬광보다 강렬한 기타 소리, 불꽃같은 삶[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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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오스본과 함께 'Blizzard of Ozz', 'Diary of a Madman' 2장의 앨범을 만들었으며, 사후에 라이브 앨범이자 추모 앨범인 'Tribute'가 발매되었다.
헤비메탈 기타리스트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작고 갸냘픈[3] 체격에 곱상한 외모의 샌님이었지만(오지 오스본은 그를 처음 보고 여자로 착각했다고 했다.) 무대에서 절대 작지 않은 연주력을 보여주었고, 게다가 짧고 굵게 불태웠던 전성기, 비극적인 요절까지... 드라마틱한 요소란 요소는 다 갖춘 짧게나마 한시대를 풍미한 기타리스트였다.
'I Don't Know', 'Crazy Train', 'Goodbye to Romance', 'Revelation', 'Mr.Crowley', 'Flying High Again', 'Over the Mountain', 'Diary of a Madman' 등 오지 오스본의 실질적인 대표곡들은 모두 이 시기에 집약되어 있으며, 오지의 보컬 멜로디를 따 랜디가 기타 리프를 완성하고 밥 데이슬리,리 커슬레이크와 같이 편곡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냈다.
2. 생애
2.1. 데뷔 이전
랜디 로즈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산타 모니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랜디 로즈는 현재 헤비메탈의 상징이 된 것과는 상반되게 당시 음악 학원을 경영하고 있던 어머니에게 클래식 기타를 배우게 된다.[4] 이때 랜디 로즈는 어머니에게 여러 음악 이론들을 배웠다고 한다.
2.2. 콰이어트 라이엇
랜디 로즈는 이후 클래식 기타에서 벗어나 헤비 메탈 기타리스트로 거듭나게 되는데, 학교 친구와 콰이어트 라이엇을 결성하기 까지 한다. 이후 멤버를 조금씩 계속 모아 완전체 콰이어트 라이엇으로 거듭나게 된다.
콰이어트 라이엇 결성 후 그들은 캘리포니아의 여러 음악클럽을 돌아다니며 활동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때 밴드를 눈여겨 본 CBS 소니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두 개의 앨범을 발매하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2.3. 오지 오스본
콰이어트 라이엇 1기 시절의 1, 2집의 반응이 좋지 않아서 방황하던 랜디 로즈에게 슬로터(Slaughter)의 베이시스트 데이나 스트럼이 블랙 사바스의 오지 오스본이 솔로 밴드 멤버를 모집하는 오디션에 참가해보라고 권유해서 오디션에 참가, 합격했다. 살아생전 랜디의 인터뷰에 따르면 (82년 기타월드) 오디션 당시 앰프에 기타를 꽂고 몇 초간 웜 업을 하고 있는데 오지 오스본이 'OK 잘 치내, 너님 합격요' 해서 랜디 로즈가 '아직 연주도 시작 안했는데?' 하며 당황했다고 한다. 이것이 와전되어 오지가 랜디를 보자마자 뽑았다는 루머가 돌았었다. 이 루머에 대해 오지 오스본은 부인을 하며 오히려 랜디에 대한 첫인상은 호리호리하고 작은 키의 랜디 로즈를 게이같다고 생각했다 한다. 이후 오지 오스본의 랜디 로즈의 오디션에 대한 인터뷰를 보면 당시 데이나 스트럼이 랜디 로즈에게 집요하게 오지 오스본의 오디션을 보라고 부탁했고 오지 오스본에게도 아주 재능있는 기타리스트가 있다고 랜디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당시 블랙 사바스에서 쫓겨나듯 탈퇴하여 알코올 중독에 빠져있던 오지는 평소같이 만취해있었고 집요한 부탁에 화가 나서 '그래 얼마나 뛰어난지 한번 보기나 하자' 하는 생각으로 랜디 로즈의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랜디가 오지 오스본에게 뭘 하면 좋을 지 물었고 오지는 자신있는 거 아무거나 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때 랜디 로즈는 리프 몇개를 연주 했는데 오지의 회고에 따르면 만취상태였음에도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만난 기타리스트들 중 가장 재능있는 기타리스트를 만나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당시 오디션에 지원했던 기타리스트 중에 조지 린치(George Lynch) 같은 당대 유명 기타리스트도 있었음에도 오지가 무명인 랜디 로즈를 선택했다는 것은 오지 오스본의 안목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지가 몇 초의 웜 업을 본 것 만으로 랜디를 뽑은 건 사실이나 단순히 랜디의 외모만으로 뽑은 건 아니라는 것.
랜디 로즈는 오디션에서 채용된 후에 오지와 같이 음반 작업차 영국으로 떠나는데 당시 오지 오스본의 프로듀서나 레코드 관계자들은 미국 출신의 키도 작고 샌님같이 생긴 무명 기타리스트를 처음에는 당연하게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오디션을 다시 보라고 오스본에게 강요했지만 랜디의 끝내주는 리프에 논란은 잠잠 해졌다고 한다.
랜디 로즈가 오지 오스본에 들어 간 이후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고 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
랜디가 하루는 기타를 켜고 손가락으로 한번 쭉 슬라이드 했는데 이를 들었던 오지가 영감을 받아 멜로디를 읊었고 랜디가 그걸 듣고 바로 노래의 코드를 만들어 Suicide Solution이라는 곡이 나왔다. (슬라이드 부분은 곡의 도입부로 쓰였다.) 이 곡의 작사는 오지의 아내이자 매니저인 샤론 오스본, 베이시스트 밥 데이즐리가 공동으로 했는데 가사의 내용은 당시 오지의 알콜 남용 습관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한다.[5] 최근 내한했던 전 오지 오스본 밴드의 드러머 토미 앨드릿지(Tommy Aldridge)는 랜디 로즈가 Over the Mountain을 작곡할 때 드럼 라인에 대한 아이디어까지 제시하면서 곡 작업을 했다고 회고하며, 자신이 같이 작업해본 모든 뮤지션 중 랜디 로즈가 단연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오지 오스본 또한 랜디 로즈와의 만남을 '신이 내 인생에 들어왔다' 라고 하며 최근까지도 그의 추모행사 등에 빠지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오지 오스본은 랜디 로즈를 포함한 밴드 멤버들을 고용된 세션 수준으로 대우했다고 한다. 월급도 매우 짜게 주고...[6]
랜디 로즈는 굉장히 감성적이고 여린 성격의 소유자라고 하는데 때문인지 당시 락 음악계에 퍼져있던 여러 문란한 문화에 굉장히 지쳐있었다고 한다. 또한 오지 오스본과의 굉장한 친밀이 있었지만 당시 오지 오스본이 가지고 있던 알코올 중독 문제라던가 히스테릭한 성격 때문에 잘나가던 시절에도 밴드에서 탈퇴하고 기타리스트로서의 삶을 은퇴하려는 생각을 진지하게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에 다시 클래식 기타 연주가로 돌아가기 위해 투어 중에도 인근의 클래식 기타 강사들에게 틈틈히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밴드 맴버들은 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고 오지가 아끼는 랜디의 탈퇴를 막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결국 투어가 끝날 때 까지는 보류해두기로 했지만 비극적인 사고으로 인해 랜디 로즈의 최후 결정은 영원히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다.
2.4. 죽음
투어 중 이동하면서 경비행장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버스 운전사가 경비행기 운전 면허증이 있다고 하면서 한번 타보자 했었다고 한다. 랜디는 수락했는데, 첫번째와 두번째는 별 문제 없이 비행했지만 세번째 비행에서 이륙하고 나서 굉장히 비정상적으로 낮게 날다 한쪽 날개가 버스에 부딪히면서 떨어져버렸다. 비행기는 중심을 잃고 결국 인근 민가에 추락해버렸고, 젊고 재능있는 기타리스트는 갑작스럽게 허무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7] 이 비행기 사고에 대해서는 운전사가 마약에 취했다거나 자기 아내를 죽이기 위한[8] 계획적인 동귀어진이었다는 등의 여러 설들이 있는데 무엇이 진실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고 한다.
2.5. 사후
오지 오스본과 랜디 로즈는 형제와도 같이 지냈고 영혼의 친구라 해도 무방할 정도 였는지라 오지는 랜디의 죽음에 대해서 계속해서 슬픈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9] 그래서 이미 솔로 3,4집의 성공을 이끈 제이크 E. 리 라는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랜디 로즈의 추모 앨범을 제작하기까지 한다.[10] 87년 발매됐던 이 앨범 커버(###)는 아마 랜디의 가장 유명한 사진이라 할 수 있는 오지가 랜디를 들어올리는 사진이다.[11]
랜디 로즈 사후 그의 전 소속 밴드였던 콰이어트 라이엇은 그의 별명이었던 ''Thunderbird''를 제목으로 한 추모곡을 내기도 했다.[12] 게리 무어(Gary Moore)가 코지 파웰(Cozy Powell)과 함께 한 앨범인 TILT 수록곡 중 Sunset이라는 연주곡도 랜디 로즈 추모곡이다[13] .
사후 20년이 지나도 개인 트리뷰트나 커버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조지 린치, 알 피트렐리, 다임백 대럴, 제이크 E. 리, 마크 슬로터, 조 린 터너, 로니 제임스 디오, 잉베이 말름스틴, 세바스찬 바흐, 랍 락 등 참여 뮤지션 면면도 거창하다. Randy Rhoads Remembered라는 추모공연이 2014년 NAMM (National Association of Music Merchants)에서 처음 열린 뒤 매년 열리고 있으며 엄청난 네임밸류의 뮤지션들이 참여하고 있다.
켈리포니아에 랜디 로즈 박물관이 세워진다고 한다. 시간 많은 위키러라면 구글링해보도록 하자.
3. 평가
오지 오스본 솔로 밴드 1기 멤버로, 오랫동안 활동하지 못했지만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모든 걸 불태우고 떠난 불세출의 천재라 평가받는다.[14] 지금 시점에서도 레전드로 추앙받고 있으며, 수많은 후세대 헤비메탈 기타리스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오죽하면 잭 와일드등 랜디 이후의 실력 있는 기타리스트들이 그의 빈 공간을 채우려 했지만 역시 원조만 못하다는 대다수 헤비메탈 팬들의 평만 받았을까.
4. 스타일
플레이 스타일은 기타 플레이만 튀는 '기타리스트'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리프, 곡 전개, 솔로까지 전체적인 어레인지를 고려한 '작곡가' 스타일이었다. 한국 발라드씬에서 유재하가 갖는 존재감처럼, 남성적이고 마초적인 당시 하드록,헤비메탈 씬에서 랜디처럼 대학물은 아니어도 클래식을 제대로 배워서 기본기를 다진 연주자는 그당시 흔치 않았다.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잘 계산된 클래시컬하고 유려한 멜로디 라인 전개가 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이 분야에 있어서는 거의 레전드급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의 기타리스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15] 레코딩시엔 특이하게 대부분의 솔로를 더블 트래킹으로 레코딩해뒀다고 한다.[16] 또한 오지 오스본과 함께했던 투어 기간 동안에는 이미 굉장한 수준의 기타리스트였음에도 리허설 이후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공연하는 지역의 클래식 기타리스트를 찾아가 꼬박꼬박 레슨을 받았다고 하는 등 대단한 노력가였다.
사용한 이펙터는 던롭사의 디스토션+ 와 10Band EQ 이 두개가 다였다.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파워풀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5. 기타
위 영상 'I Don't Know'에서 쓰는 1974년형 Gibson Les Paul(깁슨 레스폴) 커스텀 화이트[17] , 'Mr.Crowley'에서 쓰는 Karl Sandoval이라는 기타 장인이 만든 물방울 무늬 커스텀 플라잉 V 모델 등을 주로 사용했는데 특히 물방울 무늬 플라잉 V가 'Karl Sandoval Polka Dot'으로 불리며 그를 상징하는 기타로 유명하다.[18] 잭 와일드도 이 모델을 가끔 쓰고 있다. 또한 Jackson의 RR1이라는 비대칭형 V자 기타도 사용하였는데, 사실 이건 Charvel 기타 공장에서 만든 것이나 너무 튀는 디자인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에 혼란이 올 것을 우려한 당시 샤벨 사장이었던 그로버 잭슨이 자신의 성을 따서 Jackson이라고 헤드에 써 준 것에서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잭슨 기타의 시작이었으며, 이후 랜디 로즈가 이 기타를 들고나와 인기를 얻자 잭슨 브랜드의 인지도가 크게 올라가게 되어 80년대를 대표하는 기타 브랜드가 된다.
오지 오스본의 첫 앨밤 Blizzard of Ozz가 1980년 9월 발표되었고, 랜디 로즈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게 1982년 3월이니 오지 오스본 밴드에서의 활동 기간이 2년도 채 되지 않으며, 때문에 영상 및 스튜디오 녹음, 라이브 등의 자료가 상당히 빈약하다. 특히 영상 자료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만큼 적다.
랜디 로즈는 작은 체격에 손 크기도 평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010, 011 게이지의 GHS사 Boomers를 즐겨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판테라(Pantera)의 다임백 대럴(Dimebag Darrel)은 어렸을 때 Flying High Again의 솔로를 듣고 감동해서 '헐 시발 나도 기타 쳐야겠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며,[19] 잭 와일드(Zakk Wylde)는 같은 오지 밴드의 기타리스트라 대놓고 랜디 로즈와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위치임에도 진성 로즈 빠돌이로 유명하며 아직도 차고에 랜디 로즈 포스터를 붙여놓고 있으며 인터뷰 때마다 랜디 로즈가 언급되는데 거의 신으로 묘사한다. 이쯤 되면 중증에 가깝다(...). 심지어 아들 이름을 "헨드릭스 헤일런 마이클 '''로즈''' 와일드" 로 지어놓기까지 했다.
[1] 더 기타리스트의 저자, 정일서[2] Mr. Crowley의 기타 솔로 파트에서 오지 오스본이 그를 들어올리는 모습은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잊지 못할 장면이다.[3] 공식적으로는 170cm 48kg, 5피트 7인치 105파운드의 체격이었다. 아래 라이브만 보면 작은 바디로 유명한 플라잉V를 들고도 팔뚝굵기가 기타 넥 정도 밖에 안될만큼 작아보인다.[4] 랜디 로즈 추모 앨범에 수록된 Dee에서 랜디 로즈는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5] 그러나 자살한 청소년의 집에서 이 노래가 담긴 Blizzard Of Ozz 앨범이 나와서 이 곡이 자살을 조장했다고 소송하여 재판이 열린 적이 있었다. 지금도 몇몇 주에서 이 곡은 연주 금지곡이다.[6] 오지 오스본과 같이 활동한 멤버들 중에서 이러한 수익 분배가 문제가 되어 탈퇴한 사람이 여럿 있다. 사실 잭 와일드를 제외한 거의 전부라고 봐도 될 정도.[7] 시체는 산산조각나고 불에 타버려 식별이 어려웠고 당시 랜디가 착용하고 있던 악세서리 등으로 구별했다고 한다.[8] 당시 옆에는 운전사의 아내도 타고 있었다.[9] 오지의 새 앨범 <Ordinary Man>에 실린 동명의 수록곡 뮤직 비디오에서 오지는 자신이 일생동안 여러 곳에서 찍힌 사진의 슬라이드 쇼를 보는데, 자신과 랜디가 같이 나오는 사진이 투영되자 머리를 살짝 싸매고 침통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10] 제이크는 여기에 큰 불쾌감을 느낀데다 평소 오지와의 불화까지 겹쳐 밴드를 탈퇴한다.[11] 공연 중에 체구가 작은 랜디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오지는 자주 그를 들어올리곤 했다.[12] 근데 한국 밴드 부활(밴드)의 "희야"가 이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다.[13] 인기 카피곡이기도 하다. 사실 곡이 처음 발표될때는 랜디 로즈의 추모곡이 아니었다. 에초에 TILT의 발매일은 1981년으로 랜디 로즈가 사망하기 전에 발표된 곡이다. 랜디 로즈 사후에 라이브에서 게리 무어가 랜디 로즈에게 바친다고 말했던게 라이브 앨범에 그대로 실렸고 그 다음부터 이 곡이 랜디 로즈의 추모곡이 되었다[14] 실제로 생전 오지 오스본 밴드 멤버로 참여한 것은 스튜디오 앨범 2장에 라이브 앨범 1장이 다다. 사망 나이도 그렇고 여러모로 지미 헨드릭스의 생애와 유사하다.[15] 잭 와일드, 조지 린치, 마이클 안젤로 바쇼, 믹 톰슨, 폴 길버트, 버킷 헤드 등 레전드 기타리스트들이 영향받은 기타리스트로 랜디 로즈를 언급하고 있다.[16] 보통 더블 트래킹은 솔로보다는 리프를 녹음할 때 사용하는데, 랜디 로즈가 솔로때 더블 트래킹을 고집한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다임백 대럴은 타이트함과 느슨함이 동시에 있는 플렌저 효과가 나타난다며 극찬했다.[17] 흰색 커스텀 모델에 금색 볼륨, 톤 스피드노브와 동 재질의 셀렉터 와셔 및 셀렉터 노브를 장착하여 사용하였다. 또한 장기간 사용하여 흰색이 노랗게 변색되었다. 참고로 74년식 레스폴 커스텀은 Norlin Area라는 깁슨의 암흑기에 나온 모델로서 메이플 탑 밑에 마호가니-메이플-마호가니 목재를 겹친 샌드위치 바디가 사용되었다. 샌드위치 바디를 비롯하여 깁슨 매니아들의 혐오의 대상이자 Fender의 CBS Area에 비견되는 막장 요소가 많이 들어간 기타였고, 나중에 깁슨에서 리이슈한다고 나왔을 때 가격이 정신나간 가격이라 더더욱 까이기도 하였다. 골때리는 점이 쓸데없이 샌드위치 바디까지 재현하였다(...).[18] 정작 오지는 이 땡땡이 플라잉 V의 튜닝이 쉽게 틀어진다며 그 기타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잔소리를 했다고 하니 아이러니한 일이다.[19] 2003년 발매된 Guitar World Presents - Dimebag Darrell's Riffer Madness 에서 다임백 대럴의 멘트에 의하면 기타를 치게된 계기는 KISS의 에이스 프레일리라고 한다. 다임백 대럴이 가장 좋아하는 랜디의 기타 솔로는 1집의 'Revelation Mother Ea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