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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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큰롤의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가, 프로듀서, 엔지니어[3] 등 '''로큰롤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이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며 대중음악계에서 '''최고의 영예 중 하나'''로 꼽히는 명예의 전당이다.
2. 역사와 특징
1983년 4월 3일 아틀란틱 레코드 설립자인 아멧 어터건(Ahmet Ertegün)의 주도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재단(Rock and Roll Hall of Fame Foundation)이 설립되고, 3년 뒤인 1986년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가 기념관 위치로 최종 선정되면서 공사를 시작하여 1995년 9월 개관하였다. 기념관은 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들의 사진·음악·비디오·유품 등 다양한 전시물을 소장한 상설 전시관의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갖가지 임시 전시회를 연중 개최하고 대중들을 위한 공공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는데, 음악회·강연회·영화 상영 등을 통해 로큰롤의 역사에 대한 교육에 힘쓰고 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로큰롤’은 우리가 즐기는 대중음악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현재 대중음악의 장르들은 무척이나 다양한데 대중음악이 1950년대 태동된 로큰롤에서 출발했다고 보기에 이것들을 로큰롤이 다양한 형태로 분화된 것이라 보는 것이다.
박물관이 클리블랜드에 생긴 것은 1995년이지만,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역사는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틀란틱 레코드(Atlantic Records) 회장 아흐멧 어터건(Ahmet Ertegun)이 음악잡지 <롤링 스톤> 발행인 잔 웨너(Jann Wenner) 등의 음악계 관계자와 함께 위원회를 만든 것이 그 시초며, 클리블랜드는 필라델피아와 멤피스, 디트로이트, 신시내티, 뉴욕과의 경쟁을 거쳐 박물관 건립지로 낙점되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건립지가 클리블랜드로 발표된 1986년, 많은 이들은 "클리블랜드가 아니라 엘비스 프레슬리가 커리어를 시작한 멤피스야말로 명예의 전당에 어울린다"라고 불평했다. 하지만 박물관 설립에 공공 기금으로 6,500만 달러를 지원한 클리블랜드 시의 머니 파워 앞에서는 아무리 강력한 역사적 상징성이라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3. 헌액 조건과 과정
헌액 부문은 '''공연자(Performers)''' 부문, '''초기 로큰롤 형성에 영향을 미친 인물(Early Influences)''' 부문, '''평생공로자를 위한 아멧 어터건 상(Ahmet Ertegun Award for Lifetime Achievement)''' 부문[4] , '''음악적 우수상(Award for Musical Excellence)''' 부문[5] 으로 이렇게 총 4가지이다.
이중에서도 '공연자(Performers)' 부문이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꽃으로 불리며 굉장히 엄격하고 까다로운 심사 절차를 거쳐 선정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아티스트들은 첫 레코드 발매 후 25년이 지나야 비로소 헌액 대상자 후보군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로큰롤의 역사에 어떠한 공훈을 남겼는지, 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가 주요 심사 기준이 된다. 로큰롤 및 대중음악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로 구성된 재단의 지명위원회가 매년 공연자 부분의 후보를 지명하면, 전세계 500~1000명의 록 전문가들에게 투표지가 발송되어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한 상위 5~7명(혹은 팀)의 공연자가 선발되는데, 이때 선발된 모든 공연자는 반드시 투표자의 과반수 이상을 득표해야만 최종 헌액자로 선정된다. 또 개인이 아닌 그룹이 헌액되었다 하더라도 해당 그룹 내에 속하는(혹은 속해있던) 모든 멤버들이 헌액되는 것이 아니라 그룹 내의 멤버에 대한 심사도 따로 진행된다. 즉, 그룹이 헌액되더라도 해당 그룹이 독보적인 입지에 오르기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되는 멤버만이 헌액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룹이 헌액되면 항상 헌액 대상이 되는 멤버 이름[6] 도 다 따로 명기되어 발표된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라고 해서 '록' 혹은 '로큰롤' 뮤지션만 헌액되는 것은 아니다. 제임스 브라운, 아레사 프랭클린,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도나 서머 등 명예의 전당 헌액자의 커다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전설적인 소울과 펑크(Funk), R&B 뮤지션들의 자리이며, 2010년대 들어서는 N.W.A, 투팍 샤커, Notorious B.I.G 등 힙합 음악가들도 꾸준히 헌액자 명단에 오르고 있다. 이는 헌액자에 한정되는 행보가 아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1996년부터 매년 2월마다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 컨퍼런스 프로그램을 통해 흑인 음악이 로큰롤에 미친 영향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 로큰롤의 시작이 흑인 뮤지션들에 의해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뿌리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특유의 보수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라 힙합에 대한 문호 개방은 유독 늦어졌다.
'초기 로큰롤 형성에 영향을 미친 인물(Early Influences)' 부문에는 말그대로 로큰롤이라는 음악 장르의 형성에 기여한 로큰롤 이전 시대의 음악가 혹은 무수히 많은 로큰롤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준 음악가를 선정한다. 그렇기에 주로 컨트리나 포크#s-3.1, 블루스, 재즈 계열의 아티스트들이 헌액되는 부문이다.
본래 명칭이 '비공연자(Non-performer)' 부문이었던 '평생공로자를 위한 아멧 어터건 상' 부문에는 로큰롤의 발전에 기여한 음악업계 종사자가 헌액되는데, 작곡가부터 음반 제작자, 음반회사 임원, 디스크 자키, 콘서트 기획자, 음악 평론가 등 다양한 업종에서 활동한 사람들이 선정된다.
또 '음악적 우수상(Award for Musical Excellence)' 부문은 2000년도에 '배후 활동자(Sideman)' 부문으로 새로 생겼다가 명칭이 정정되었는데, 해당 부문에서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유명 아티스트들을 뒤에서 탄탄히 뒷받침해준 베테랑 세션 및 보조 연주자를 헌액한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동결되어있다가 2008년부터 다시 재활성화된 부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헌액자로 선정되면, 그 해 열리는 헌액축전(induction ceremony)에서 축하공연을 하게 된다. 이때도 과정이 정해져 있는데, 우선 해당 헌액자의 음악적 공로와 평생의 업적을 간추린 영상이 헌액자를 소개하고, 그 헌액자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후배 아티스트나 친밀한 동료 음악업계 종사자가 헌정 연설을 통해 해당 헌액자를 무대 위로 불러내며, 헌액자가 수상소감을 다 말한 후에는 직접 기념 퍼포먼스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헌액축전을 마치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자의 사진·음악·비디오·유품 등 다양한 기록과 물품들이 상설 전시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또 다음 축전이 열릴 때까지 기념관의 특별 전시실에 헌액자의 모든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기가 설치되고 3개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헌액자의 활동상과 음악을 소개하는 영화가 항시 상영되며, 헌액자의 서명이 새겨진 유리잔과 각종 기념품이 전시된다.
4. 헌액자 명단
4.1. 공연자(Performers)
4.1.1. 1980년대
4.1.2. 1990년대
4.1.3. 2000년대
4.1.4. 2010년대
4.1.5. 2020년대
4.2. 개척자(Early Influences)
5. 비판
영어 위키의 로큰롤 명예의 전당 비판, Criticism 부분 참조
일반적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뮤지션들에게나 일반 대중들에게나 영광스러운 자리로 기억되지만 일각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로는 첫째, 헌액된 인물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7년도 당시 투표권을 가지고 있던 전문가 중에서는 아예 투표를 포기한 경우도 있었는데, 기권표를 낸 이유는 '더 이상 헌액될만한 클래스의 뮤지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헌액 리스트를 보면 뒤로 갈수록 점점 상업성에 비해 비평 쪽으로 평가가 박한 음악가들이 늘어난다. 특히 70~80년대에 인기를 얻은 영미권 록, 팝 뮤지션들은 비교적 헌액되기가 쉽다. 물론 대중성 역시 음악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지만 현재 위원회 쪽에서 지나치게 대중을 의식한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렇다보니 헌액 초창기엔 역사적인 뮤지션이라는데 이견이 없는 멤버들이 알짜배기로 채워져있고 시대가 일관성있게 분포되어 있는 점이 보이는데 반해 시간이 지날수록 헌액에서 다소의 논란거리가 생겨나는데다 뮤지션들의 시대도 중구난방으로 펼쳐져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0년대 후반들어 헌액된 멤버들을 둘러보면 25년전 데뷔 기준이니 80, 90년대를 누비던 뮤지션들이 다수 선정될 법도한데, 여전히 60~70년대 뮤지션들이 선정되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딥 퍼플(69년 데뷔, 15년 헌액), 조안 바에즈(61년 데뷔, 17년 헌액), 더 좀비스(65년 데뷔, 19년 헌액), 티렉스(67년 데뷔, 20년 헌액) 등이 대표적. '저런 거물을 이제서야 헌액지켜 주나'와 '헌액받을 클래스가 아닌데도 뜬끔없다'라는 논란이 공존하고 있다. 후대에게 뒤늦게 재조명받은 뮤지션들로도 해석될 수야 있지만, 후술할 논란들로 여지껏 등록도 못하다가 후대의 뮤지션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도 않고 구시대 밴드들끼리 나눠먹는데 불과한 헌액이라 볼 여지도 충분하다. 때문에 구시대적 가수들만을 고집한다는 측면에서 최근의 트렌드에서 도태되는걸 자초하고 락의 노령화만 부추긴다는 비판도 제기되기도 한다.
둘째, 헌액 대상 선정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 위원회에서는 후보 선정과정이나, 투표 결과 등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는 투명성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후보 공개 이후 전문가 투표와 별개로 일반 대중들도 별도의 투표를 하는데 대중들의 투표와 실제 헌액대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밴드의 경우 단순히 밴드만이 아니라 멤버들까지 일일히 선정한다는 것도 문제. 교체 없이 같은 멤버들로 쭉 간 밴드라면 몰라도 멤버 교체가 많았던 경우에는 크게 논란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멤버 교체가 잦았던 밴드의 경우 헌액 대상에 오른 멤버의 자격 논란 뿐만 아니라 멤버들과 팬들 사이에 큰 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떄문인지 멤버 교체가 잦았던 밴드는 쉽게 헌액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34]
이러는 선정 과정에서 크게 무게감이랄것도 없는 멤버까지 헌액된다든지 정말 중요한 멤버임에도 헌액에서 떨어져 나간다든지 이와 관련해서도 말이 있는 편이다. 롤링 스톤즈의 초창기 건반담당 멤버로 활동하다 메이저 데뷔 직전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매니저에게 강판당하고 로드 매니저가 되어 밴드의 뒷바라지만 착실하게 도맡던 '이안 스튜어트', 야드버즈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남긴거라곤 싱글 몇장에 라이브 앨범 한장이 고작이었던 '에릭 클랩튼'이 선정되질 않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경우도 모종의 사정으로 요절하고 밴드에서 나갔던 창설 멤버들이 중요한 활동이 없었음에도 예우 차원으로 선정된건 그렇다 치더라도 밴드에 가입한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은 '조쉬 클링호퍼'까지 헌액되는 등 이해하기 힘든 사례들도 발견되곤 한다. 게다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3,4집에 일조하던 '더그 율', AC/DC에서 비록 황금기는 아니었지만 중흥기를 함께하고 적잖은 공헌을 하던 '크리스 슬레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서 1집과 6집에 각각 참여하던 '잭 셔먼'과 '데이브 나바로', 펄 잼의 전성기를 함께하던 드러머 '데이브 애브러지스'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헌액에서 나가리 되어버리는 납득할 수 없는 경우 또한 발생하고 개중에는 실제로 본인이 탈락에 항의하는 사례도 발생하기도 한다. 헌데 밴드와의 불화 끝에 밴드 차원의 거부로 선정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는 밴드 내부의 사정도 고려해야할 일.
셋째, 명예의 전당 위원회가 과연 뮤지션을 평가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위원회는 소규모의 인물로 돌아가는 데다가, 위원회 구성원 중에선 비뮤지션 출신의 위원들이 많다는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위원회가 소수의 규모로 돌아가는 것은 위원회 개인의 성향이 강하게 표출되기에 충분한 조건이 될지도 모른다. 투표를 하는 것은 다수의 전문가들이지만 투표할 후보를 선정하는 것은 위원회 권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명예의 전당 리스트를 보면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킹 크림슨, 제쓰로 툴이 있다.[35] 종종 전문가 투표로 선정된 아티스트 이외에 득표수는 낮았지만 음악적으로 충분히 헌액될 만한 아티스트를 위원회 재량으로 헌액시키기도 하는데, 취지야 좋지만 이 역시도 권리 남용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먼저 들어가야 할 5, 60년대 각 장르의 개척자들보다도 70년대 이후의 판매고와 네임밸류가 높은 뮤지션들이 먼저 헌액되는 등의 이유 등으로 비판받고 있다. 또 미국에서 만들어진 명예의 전당이다 보니 영국 아티스트, 밴드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내지 유럽에서 상업적으로 히트를 쳤거나, 음악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어도, 미국에서는 히트를 못 친 밴드들은 헌액되기가 힘들다. 대표적으로 킹 크림슨, 모터헤드, 더 스미스, 제쓰로 툴, Boney M. [36] , 주다스 프리스트, 아이언 메이든, 케이트 부시, 조이 디비전[37] , 스톤 로지스, 브라이언 이노[38]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7080 시절의 영미권 주류 록과 팝에 지나치게 편중된 경향을 보인다. 재즈나 흑인 음악, 실험 음악은 대접이 박하다. 재즈에서는 '''존 콜트레인'''조차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39] 흑인 음악은 고전 소울/펑크는 후한 평가를 받지만 80년대 이후의 뮤지션들은 극히 드물다. 힙합은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2000년대 이후로 가뭄에 콩나듯이 헌액되고 있다. 실험적인 음악은 당연히 푸대접받는다. 메인스트림에 가까운 장르를 선호하기에 얼터너티브 록과 모던 록 또한 은근히 대접이 좋지 않다. 인디 씬의 거물인 픽시즈,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소닉 유스가 명예의 전당의 외면을 받는다는 사실은 명예의 전당에 대한 주 비판점 중 하나이다. '''일렉트로닉 뮤직은 전멸했다.''' 뉴 오더, 펫 샵 보이즈 같은 신스팝 밴드들, 심지어 그 크라프트베르크조차 헌액되지 못했다.[40] 이런 비선호 장르의 음악가들은 음악적 업적은 기본으로 깔고, 거기에 상업적 성공과 유명세까지 따라와야 헌액될까 말까 하다. 그에 반해 본 조비, 저니, 시카고 등의 그 음악적 평가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위원회가 선호하는 장르의 음악가들은 비교적 후보 입성과 헌액이 쉽다.
첫 음반 발매 후 25년이라는 기준 역시 논란거리. 명예의 전당이라는 이름에 맞게 하려 정한 규칙이지만 오히려 록 음악의 노령화만 부추긴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근본적으로 25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며, 25년 동안 꾸준하게 활동할 수 있는 음악가들도 많지 않다. 아티스트들의 창작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대부분이 10년 내외, 심하면 정규 음반 한 장만에 그 전성기가 끝나버린다. 폴 매카트니, 밥 딜런, 닐 영,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레전드급 아티스트들도 전성기가 지나고는 예외 없이 음악적으로 슬럼프를 겪었으며, 대중의 관심도 서서히 떨어졌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즉 데뷔 후 최소 25년이 지난 아티스트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전성기가 지나도 한참 지난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찬반이 갈리는데, 헌액자 선정의 변별력을 위해서 꼭 필요한 규칙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부정적인 비판도 제기된다. 이는 초창기부터 논란이 되었던 문제로 1988년 밥 딜런이 헌액될 당시 이미 몇몇 음악 잡지에서 "명예의 전당에서 공식적으로 딜런의 커리어를 끝내주었다", "밥 딜런의 은퇴식"이라는 조소어린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41] 밥 딜런이나 데이비드 보위, 에릭 클랩튼처럼 노년에 음악적 커리어가 부활하는 케이스가 있으나 이건 희귀 케이스고 거의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아무리 전설로 추앙받아도 후기 커리어들은 대부분 슬럼프에 빠져있거나 화제의 중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 때문에 커리어가 현재진행형이라기보단 어느 정도 마무리된 아티스트가 주로 헌액된다.
이래저래 설명이 길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2010년 이후 그래미와 롤링 스톤의 문제점을 똑같이 공유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뮤지션 중에서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비판적 입장을 보인 경우가 있는데 바로 런던 펑크의 대표적 밴드인 섹스 피스톨즈였다. 섹스 피스톨즈의 경우 2006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 섹스 피스톨즈의 멤버들은 '이 상에선 오줌 냄새가 난다'는 말을 남기며 수상을 거부하였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드러머 모린 터커는 “Hall of Lame”이라고 까기도 했다.
위의 비판과는 조금 다른 얘기지만, 로큰롤 명예의 전당 축전의 음향도 비판이 많다. 공연 자체에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보컬이 악기 소리에 묻힌다거나, 악기 튜닝이 잘못되었거나 하는 자잘한 미스가 매번 나온다.아무리 생방송에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음을 감안해도 음향의 수준이 이름값을 못 하는 건 사실. 재방송하거나 유튜브 등에 영상 클립을 올릴 때 이런 실수들은 수정된다. 그런데 음향 실수를 고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목소리에 오토튠을 떡칠한다거나 멀쩡한 악기 소리를 빼버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오히려 음향을 개악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연 퀄리티 자체도 미묘한데, 일단 데뷔 후 최소 25년이 지난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당연히 전성기의 기량은 기대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미 해체한 지 오래거나 멤버가 작고한 경우 축전을 위해 일시적으로 재결합하거나 대체 멤버를 영입하기도 하는데, 아무리 전설적인 밴드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완벽한 라이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거기에 부족한 연습과 촉박한 시간, 음향 실수까지 결합하면 팬들의 기대를 산산이 부숴주는 최악의 공연이 튀어 나오기도 한다.
6. 기록
출처
후보 자격이 주어진 후 첫 해, 두번째 해, 세번째 해, 네번째 해, 다섯번째 해, 여섯번째 해, 일곱번째 해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 퍼포머 부문에 헌액된 아티스트들. 명예의 전당이라는게 야구나 농구도 그렇고 몇수를 해서 들어갔느냐가 명성에 비교의 잣대가 된다. 특히나 록 아티스트들에게는 이 곳에서 몇 년만에 헌액이 되었는가는 상당히 중요한 기록이다.
6.1. 첫 해 헌액
- 1986년
- 1988년
- 1989년
- 1990년
- 1991년
- 1992년
- 샘 & 데이브
-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 1993년
- 1994년
- 1995년
- 1998년
- 1999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U2
- 프리텐더스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7년
- 2020년
6.2. 둘째 해 헌액
6.3. 셋째 해 헌액
- 1988년
- 드리프터즈
- 슈프림즈
- 1989년
- 1990년
- 포 시즌스
- 1991년
- 윌슨 피켓
- 임프레션즈
- 1992년
- 1995년
- 1997년
-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앤 영
- 1999년
- 2001년
- 2003년
- 2007년
- 2012년
6.4. 넷째 해 헌액
6.5. 다섯째 해 헌액
6.6. 여섯째 해 헌액
6.7. 일곱째 해 헌액
- 1992년
- 조니 캐쉬
- 아이즐리 브라더스
- 바비 블랜드
- 1995년
- 마사 앤 더 밴덜러스
- 1997년
- 1998년
- 1999년
- 2000년
- 제임스 테일러
- 2004년
- 잭슨 브라운
- 2007년
- 2008년
- 존 멜런캠프
- 2015년
- 스티비 레이 본 & 더블 트러블
7. 여담
- 2018년 유명 대중문화 언론 ‘Vulture’ 매거진[42] 이 최고의 헌액자, 최악의 헌액자 순위를 매겼다. 리스트는 각 아티스트의 기본적 재능이나 해당 아티스트에 대한 개인적 호감이 아닌, 각 예술가의 대중음악사의 영향력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1위는 척 베리, 2위는 비틀즈, 3위는 밥 딜런, 4위는 엘비스 프레슬리, 5위는 제임스 브라운, 꼴찌는 본 조비였다.#
[ 리스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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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팬들이 가장 증오하는 장소다. 연고이전 사태의 결정타를 날린곳이라. 자세한건 브라운스 항목과 볼티모어 레이븐스 항목 참고.
- 가장 많이 후보에 오른 아티스트는 R&B 가수 솔로몬 버크와 밴드 시크의 타이 기록으로, 무려 11회 노미네이트 되었다. 솔로몬 버크는 그래도 2001년자로 헌액이라도 성공했지만, 시크는 여전히 선정되지 못했을 뿐더러 2017년 마지막 노미네이트 이후로 감감무소식.
8. 관련 문서
[1] 2015년 누적방문객 1,000만명이 넘었다.[2] 명예의 전당 헌액자 목록은 'Inductees' 카테고리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3] 여기서 말하는 엔지니어는 '레코딩 엔지니어(Recording Engineer)'로 녹음 스튜디오에서 음반에 들어갈 다양한 소리를 녹음·믹싱·마스터링 등의 작업을 통해 하나의 음악 및 음반으로 완성시키는 음반 디렉터를 말한다.[4] 본래 명칭은 '''비공연자(Non-performer)''' 부문이다. 그러다가 2008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 공동 설립자인 아멧 어터건이 타계하면서 부문 이름이 개칭되었다.[5] 본래 명칭은 '''배후 활동자(Sideman)''' 부문이다. 2010년에 정정되었다.[6] 헌액되는 이름도 실명(혹은 예명)으로 다 통일되어 있지 않고 헌액자마다 다르다. 실명과 예명이 같으면 상관없지만, 대중들에게는 예명으로 더 유명한데도 실명으로 헌액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7] 행크 윌리엄스의 아들[8] 존 레논의 두 아들. 이복형제이다.[9] 미국/영국의 밴드 포리너의 기타리스트. 밴드 더 클래시의 기타리스트 믹 존스와는 동명이인이다.[10] 클라이드 맥패터는 개인 자격에 이어 2번째로 입성.[11] 냇 킹 콜의 딸.[12] 미국의 록밴드 에어로스미스의 보컬, 기타 주자. 두 밴드는 동시기에 활동하며 친구인 동시에 라이벌 관계였다.[13] 루와 프랭크가 생전에 서로 설전을 주고받는 사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하지만 헌액식에서 루는 프랭크의 음악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극찬해 더 이상 악감정이 없음을 보였다.[14] 록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의 드럼, 베이스 연주자. 두 밴드는 60년대 중후반 사이키델릭 록 전성시대를 같이 보낸 친구들이었다.[15] 야드버즈, 크림에 이어 3번째 입성이자, 현재까지 유일무이하게 개인과 팀을 포함한 최다헌액자.[16] 잭슨 5에 이어 2번째 입성.[17] 록 밴드 푸 파이터스(밴드)의 보컬(&리듬기타), 드럼 주자[18] 사이먼 앤 가펑클에 이어 두번째 입성.[19] 밥 딜런의 아들.[20]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보컬.[21] RATM의 보컬리스트.[22] 야드버즈에 이어 2번째 입성.[23] R.E.M의 보컬리스트.[24] 참고로 존은 스티비의 광팬이다.[25] 이 헌액식 진행은 라스에게도 굉장히 영광스러운 것이, 라스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72년 딥 퍼플의 덴마크 공연 관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공연 관람 이후 라스는 음악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길로 메탈리카를 결성하게 되었다. 즉, 자신의 우상을 헌액하는 사람이 된 것.[26] 조지 해리슨의 아들.[27] 이후 예스가 Roundabout 공연을 시작했을 때, 게디는 2015년 사망한 예스의 전 베이스 연주자 크리스 스콰이어를 대신하여 베이스를 잡았다.[28] 과거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베이시스트였다.[29] '라디오헤드'라는 이름도 토킹 헤즈가 발표한 동명의 곡으로부터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그에게는 직계 후배뻘 되는 셈.[30] 플리트우드 맥에 이어 두번째 입성, 여성 최초 2중 헌액.[31] 사상 초유의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5월 2일로 예정되었던 시상식은 11월 7일로 연기되었다. 링크 원래는 11월 7일에 콘서트가 예상되어 티켓 예매를 시작했으나, 결국 콘서트는 취소되고, 2020년 입성자들을 위한 특별 행사를 방영하는 것으로 갈음하기로 가닥이 잡혔다. 이미 판매된 티켓은 환불해 주기로 했다고 한다. 링크[32] 탈퇴한 멤버인 빈스 클라크와 앨런 와일더도 디페시 모드의 멤버로서 헌액되었다.[33] 2020년 1월 헌액 발표 당시에는 트렌트 레즈너만 헌액되었으나, 이후 애티커스 로스를 포함해, 투어 멤버들까지 퍼포머로서 추가 헌액되었다.출처[34] 2016년자로 딥 퍼플이 정말 뒤늦게 헌액되었을 정도.(동년배였던 레드 제플린은 1995년 헌액) 실제로 헌액 과정에서 멤버 선정 때문에 팬덤끼리는 물론 멤버간에도 마찰이 발생한 바 있었다. 이것 때문에 킹 크림슨이 헌액되지 못한다는 루머가 있다. [35] 그나마 2010년대 들어 예스, 무디 블루스,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등이 뒤늦게나마 연달아 헌액되는 중이다.[36] 다만 보니 엠은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밴드는 아니고 (시작 자체가 기획 그룹에 가까웠고 시크랑 달리 디스코 열풍에 편승한 쪽에 가깝다.), 미국 활동이 전무할 정도로 처참해서 헌액될 일은 없다. 밀리 바닐리 립싱크 건으로 프로듀서 평판이 제명급으로 안 좋다는 점도 있고.[37] 이들의 후신인 뉴 오더 역시 여러 차례 영국 차트 상위권에 드는 등 상업적인 히트와 평단의 찬사를 모두 이루었는데도 아직까지 명예의 전당의 외면을 받고 있다.[38] 그나마 록시 뮤직의 멤버 자격으로 뒤늦게 헌액되었지만, 음악사적인 업적이나 영향력은 솔로 시절이 압도적으로 크다.[39] 재즈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존 콜트레인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재즈 사상 최고의 아티스트 5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그야말로 재즈의 신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본좌이다.[40] 그래도 19년자로 라디오헤드, 20년자로 나인 인치 네일스, 디페시 모드 등 일렉트로닉 성향 밴드가 헌액되며 가능성은 생겨나는 중.[41] 아닌게 아니라 1980년대 중반 딜런의 커리어는 침체기에 빠져있었다. 그러다 1990년대 다시 Time out of mind를 내놓으며 커리어가 부활하며 50대 후반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다.[42] 뉴욕 매거진의 산하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