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폴
1. 미국의 재즈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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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Paul(1915년 6월 9일 ~ 2009년 8월 13일)
미국의 컨트리 및 재즈, 록 음악 기타리스트이다.
본명은 레스터 윌리엄 폴스퍼스(Lester William Polsfuss) 이며, 이것을 줄여서 Les Paul이라는 예명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활동 초기에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당시 재즈 피아노계에서 그야말로 레전설이었던 아트 테이텀의 연주를 듣고는 기타리스트로 전향했다. 이후 전향의 계기가 된 테이텀을 비롯한 재즈 아티스트들과 협연하면서 재즈계에서 입지를 다지게 됐고, 이후 재즈에서 파생된 여러 장르를 섭렵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녹음 기술의 발전에도 관심이 많아 오버더빙, 딜레이, 페이저 등의 사용에 크게 기여했으며, 현대적인 멀티트랙 레코딩(한 테이프에 여러 번 더빙해 녹음하는 것이 아니라, 각 악기별로 트랙을 나누어서 하는 레코딩)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기타리스트로서도 평생 존경받는 아티스트였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또한, 음악사 박물관에서도 가장 중요한 존재로서 전시되고 있다.
1948년에 차 사고를 당해 오른쪽 팔꿈치 뼈가 완전히 부서지고 쇄골, 코, 늑골 등에 골절상을 입었는데, 팔꿈치 골절이 당시 의학기술로는 재건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레스 폴은 외과의사에게 아예 팔꿈치를 기타 연주가 가능한 각도로 고정해 달라고 했다. 그런 상태로 기타에 대한 애정으로 열심히 연습했다고 후에 새로운 부인 메리 포드양과 함께 라이브를 다닌다. 1년 반 동안 재활치료를 거친 후 다시 기타리스트로 복귀했다고 한다.
유명한 Gibson Les Paul은 원래 그의 시그니쳐 모델이었으며, 그것을 개조한 모델이 현재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레스폴이다. 그리고 레스터는 레코딩이라고 하는 54 커스텀에 기반을 둔 디자인에 일렬 노브 혹은 컨트롤 보드와 자칭 블랙박스라는 루퍼 개념의 이펙터를 만들어 자신의 기타에 설치한뒤 라이브를 다녔다. 레스터의 원래 목적은 레스폴 기타를 사용하면서 귀로 듣는 사운드를 레코딩 머신에 다이랙트로 꽂아 재현해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레스폴 유저들과 다르게 청명하고 깨끗한 사운드를 위해 저임파던스 픽업을 장착하였고 레스터 옹이 들고 다니면서 후반부에 라이브 하시는걸 보면 정말 펜더 뺨치는 청명함을 들려준다. 라이브 영상 중 체스터에게 "야 이봐 체스터 이 기타에서 펜더소리도 나지 않냐?"라고 할 정도로 소리가 깔끔하다. [1] 54 커스텀의 바디를 수영장 라우팅을 한뒤 안에 패드를 넣어 마이크로포닉 현상을 방지하고 픽업을 움직이며 스윗스팟을 찾는데 열중하셨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신 분. 후반기 라이브는 그의 거의 마지막 시그니처의 시그니처 레코딩 모델을 빅스비를 장착한체로 사용하셨다. 돌아가실때까지 유명한 거장들과 라이브를 하며 투어링을 하시다가 떠나셨다.[2] 하지만 "깁슨 레스폴"이 발표되기 전에도, 사실 레스 폴(기타리스트)는 이미 1940년에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The Log''라는 솔리드바디 일렉기타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일종의 시제품과 같은 모델이었으며, 현재의 레스폴 형태와는 조금 다른 기타였다. 가운데에는 철도 침목을 재활용한 소나무(...)를 박아넣고 깁슨의 할로우바디 기타 넥을 재활용(...)한 넥을 붙인 뒤에, 위아래에 탈착식 바디를 붙인 형태였다.[3] 그런데 이 바디라는 것이 일반적인 클래식 기타와 비슷한 크기(!)의 호리병 모양 바디에다가 통나무, 그것도 무거운 메이플 목재를 통기타 수준의 두께로 사용하여 엄청나게 무거웠다. 여튼 그 이후 이것을 바탕으로 한 레스폴의 시제품격 모델을 에피폰에서 "Clunker"라는 애칭으로 소수만 내놓았다.[4] 사실 레스 폴은 자신이 디자인한 기타를 가지고 Gibson과 접촉 한 적이 있으나, 깁슨은 원래 매우 보수적인 회사로서, Fender에서 Esquire와 Telecaster를 발표해서 솔리드바디 일렉트릭 기타가 대박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솔리드바디 일렉기타에는 관심이 없었다.[5] 그래서 레스 폴이 가져온 기타를 보고 '''픽업 달린 빗자루'''(...) 같다고 하고는 내쫓아 버린다. 싱글컷 기타는 레스터옹이 시그니처로 발매하기 전에도 존재하던 기타 디자인이다. 다만 이분은 솔리드 (싱글컷)기타의 시대를 연것.
2. Gibson사의 일렉트릭 기타 레스폴(Gibson Les Paul)
[1] 여기서 체스터는 쳇 엔킨슨[2] 여담으로 라이브 영상중 폴 이 자신이 어릴때 레스터옹의 연주를 듣고 감명받아 당신의 곡을 자신들의 커버곡으로 했다고 하며 1달러를 "여기 로얄티비요. ㅎㅎ"라며 건네는 영상도 있다.[3] 이 때의 급조된 모양을 본다면 아래의 깁슨사의 반응도 이해가 간다...[4] 계약 조건이 매우 시궁창이었는데, 홍보 판매 등을 레스 폴이 다 맡아서 하고 제작 비용도 모두 부담하는 조건이었다고...참고로 이 때문에 레스폴은 에피폰이 오리지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에피폰빠들을 깔때도 레스폴의 오리지날 티로 자위하는 거지들이라고 표현한다.[5] 하지만 할로우바디 일렉트릭 기타인 ES(Electric Spanish) 시리즈는 이미 1936년부터 생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