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겐 덴노
1. 소개
일본의 제112대 덴노. 고미즈노오 덴노의 18남으로, 메이쇼 덴노, 고코묘 덴노, 고사이 덴노의 이복동생. 이름은 사토히토(識仁).
2. 생애
1654년에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복형 고코묘 덴노가 그를 양자로 삼았다. 당시 고코묘 덴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로 아들이 없어 형제들 중에 후계자가 될 사람을 선택해야 했는데, 형제들 상당수는 출가해 스님이 되었거나 궁가의 당주가 된 상태였다. 이로 인한 제약이 없는 건 갓난아기인 사토히토 황자뿐이었다.
하지만 그해에 고코묘 덴노가 사망했고, 당시 생후 4개월 밖에 안된 사토히토가 덴노가 될 수는 없으니 또 다른 이복형 고사이 덴노가 덴노로 즉위했다. 고코묘 덴노의 양자로서 1658년에 황태자가 되었고, 1663년 10세의 나이로 고사이 덴노의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레이겐 덴노가 즉위한 후 섭정을 맡은 건 일단 이복누나인 메이쇼 덴노였으나, 아버지 고미즈노오 덴노가 실권을 잡고 있었다. 메이쇼 덴노가 섭정을 그만둔 뒤로도 고미즈노오 덴노가 계속 실권을 갖고 있어, 1680년에 고미즈노오 덴노가 사망한 뒤에야 레이겐 덴노는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막부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막부와 관계가 있는 귀족 섭가들과 대립하기도 하였다. 1687년에 성인이 된 아들 히가시야마 덴노에게 양위하고 인세이를 시작하였다. 1694년에 인세이를 중단했는데, 아버지의 통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히가시야마 덴노는 친정을 하게 된 후 막부와 손을 잡으려고 했고 막부는 이를 환영했다. 이에 레이겐 덴노는 막부 반대파를 이용해 종종 히가시야마 덴노의 통치에 제약을 주면서도, 고립되기를 피하고자 막부노선으로 선회하였다. 이를 위해 손자 히가시야마 덴노 치세 때 자신의 13녀 요시코 내친왕을 에도 막부 7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구와 약혼시켰지만, 1716년에 이에쓰구가 사망하면서 그의 시도는 흐지부지 되었다.
1713년, 레이겐 덴노는 절에 출가하였고, 1732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