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튼 휴이트

 

오스트레일리아은퇴테니스 선수
Lleyton Hewitt(풀네임은 레이튼 글린 휴이트 Lleyton Glynn Hewi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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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기인 2002년 윔블던 우승때. 이때가 2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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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호주오픈 2라운드 경기중인 34세의 휴이트.
출생 : 1981년 2월 24일
국적 : 오스트레일리아
신장 :180cm
체중 : 68kg
1. 커리어
2. 선수 소개
3. 참고 링크


1. 커리어


  • 개인전 통산 성적 : 616승 262패
  • 단식 타이틀 획득 : 30회
  • 복식 통산 성적 : 125승 96패
  • 복식 타이틀 획득 : 3회
  • 통산 상금 획득 : 20,777,859 달러
'''그랜드슬램 대회''' : '''우승 2회''' / '''준우승 2회'''
  • 호주 오픈 : 준우승 1회 - 2005
  • 프랑스 오픈 : X
  • 윔블던 : 우승 1회 - 2002
  • US 오픈 : 우승 1회(2001) / 준우승 1회(2004)
'''기타 대회'''
  • 마스터스 컵[1] : 우승 2회(2001, 2002) / 준우승 1회(2004)
  • 마스터스 시리즈[2] : 우승 2회 / 준우승 5회

2. 선수 소개


호주의 테니스 선수로 1998년 프로로 전향하였으며 만 16살에 첫 투어 우승을 하며 역대 최연소 기록을 갱신했다. 2001년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 앤디 로딕(미국)을 8강전에서 3-2(6-7<5-7>, 6-3, 6-4, 3-6, 6-4)로 격파하고 4강전에선 예브게니 카펠니코프[3](러시아)를 3-0(6-1, 6-2, 6-1)으로 꺾었으며 결승전에선 테니스 황제 피트 샘프라스(미국)를 3-0(7-6<7-4>, 6-1, 6-1)으로 제압하고 '''통산 첫번째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1년에만 US 오픈 남자 단식 우승,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8강 진출,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우승, 테니스 마스터스[4] 시리즈 남자 단식 4강 진출 5회,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4회를 기록하면서 '''2001년 11월에는 처음으로 세계 랭킹 1위'''에까지 올랐다.
로저 페더러, 앤디 로딕, 마라트 사핀,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 등과 비슷한 나이대의 선수이다. 사핀과 페레로가 80년생, 페더러와 휴이트가 81년생, 로딕이 82년생이다.[5]
로저 페더러가 테니스 황제 자리에 올라서기 전의 2000년대 초반에 로저 페더러와 앤디 로딕, 마라트 사핀, 레이튼 휴이트,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 이 다섯명은 피트 샘프라스안드레 애거시가 지배한 90년대를 이어서 2000년대를 지배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 선수들이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마라트 사핀과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 그리고 앤디 로딕은 2013년 이전에 은퇴했으나 레이튼 휴이트는 2016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하지만 2015년 초반 무렵에 이미 노쇠화로 성적은 많이 떨어져서 세계 랭킹이 100위 정도까지 밀려났었다. 같은 나이에 여전히 세계 랭킹 3위를 하고 있는 페더러가 괴물인 것.
레이튼 휴이트의 전성기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로 휴이트가 달성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과 준우승 및 4강 진출은 모두 이 전성기 시기에 거둔 것이다. 휴이트가 거둔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우승과 준우승 및 ATP 마스터스[6] 시리즈 남자 단식 우승과 준우승도 모두 이 시기에 나왔다. 전성기에서 내려오던 즈음 오랫동안 연인관계였던 당시 여자랭킹 1위 킴 클리스터스와의 이별이 있었는데, 휴이트의 폼 하락이 여기에 기인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상당히 많았다.
레이튼 휴이트는 2006년부터 성적이 하향세를 보였는데 그나마 2006년부터 2009년 사이에는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3회와 ATP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 우승 3회와 준우승 2회를 달성했지만, 2010년부턴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선 16강 진출이 고작이었고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도 최고 성적이 8강 진출일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도 동년배들 중에 현재도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세계 랭킹 10위 안에 들고 있는 페더러를 빼면 사핀은 2009년, 페레로와 로딕은 2012년에 이미 은퇴했음에도 휴이트는 근성으로 꾸준히 출전하면서 2014년에 ATP 월드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2회나 달성하였다. 그리고 휴이트는 2015년 초에 모국인 호주에서 열리는 2016년 호주 오픈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발표하였고, 결국 2016년 호주 오픈에서 은퇴했다. 은퇴할 때까지 휴이트가 기록한 통산 커리어 성적은 역시 은퇴한 앤디 로딕의 통산 커리어 성적과 비슷하다.
하지만 앤디 로딕과 레이튼 휴이트, 이 두사람의 커리어 성적은 이 두사람보다 5살 이상 어린 현재 세계 남자 테니스 빅4 중에서도 가장 커리어 성적이 딸리는 앤디 머레이의 커리어 성적보다도 부족한 수준이다. , 앤디 로딕은 레이튼 휴이트보다 1살 어린 나이인데 앤디 로딕의 경우 2012년에 은퇴하였음에도 통산승률도 74%[7]이고 경기수도 800경기가 넘어가며 타이틀도 32개를 따냈다.
반면 레이튼 휴이트도 부상 및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은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2014년까지는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을 거둔 탓에 통산 경기수도 870경기나 되며 승률은 70%로 로딕보단 낮지만 타이틀도 30개로 로딕과 대등한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을 앤디 로딕은 1회 우승, 4회 준우승을 기록했는데 레이튼 휴이트가 2회 우승, 2회 준우승을 기록한 것을 보면 둘 모두 큰 차이 없다고 보여진다.
레이튼 휴이트는 연말에 세계 랭킹 최고 상위랭커 8명만이 출전하는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에서 2번이나 우승했으나 반면 로딕은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우승 경험이 없고 대신 ATP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을 앤디 로딕이 5번 우승했으나 휴이트는 우승이 2번에 그쳤다. 이렇게 자세히 비교해보면 결국 로딕과 휴이트의 통산 커리어 성적은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된다고 생각된다. 심지어 둘 모두 통산 상금도 2천만 달러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 재미있는 것은 마라트 사핀과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의 통산 커리어도 큰 차이 없이 비슷한 편이다.
대충 위에서 언급된 5명의 커리어를 비교 정리하자면, 로저 페더러 >>> 넘사벽 >>> 앤디 로딕 = 레이튼 휴이트 >> 마라트 사핀=후안 카를로스 페레로.
피트 샘프라스안드레 애거시의 두 라이벌이 지배하던 90년대가 끝나고 절대강자가 없는 수년간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렸는데 이 시기의 선수들은 승률이나 기타 성적이 상대적으로 빈약하여 평가절하 되는 면이 있다. 이 시대는 절대강자 로저 페더러의 기량이 만개하면서 정리되었다. [8]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수년간은 피트 샘프라스와 안드레 애거시의 노쇠화로 이들은 실력이 조금씩 하락하였고 젊은 다크호스들이 치고 올라와서 절대 강자 없이 나이 든 노장들과 젊은 다크호스들이 혼재된 강자들이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을 나눠 가지던 상황이어서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상대적으로는 좀 쉬웠던 시기였다.
플레이 스타일은 '''21세기 카운터펀처의 완성형.''' 일단 이 선수의 경기는 특출나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고 그저 꾸준히 베이스라인을 돌면서 랠리를 주고 받다가, 상대가 자신이 공격할 타이밍이라고 나서는 순간 재빨리 카운터를 준비해 상대가 '위너다!'라고 확신할 공격을 받아쳐서 랠리를 연장하거나 상대를 지치게 만들어 범실을 유도하는 타입. 우주방어로 보일수도 있지만 역습에 비중이 주어진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9]
그리고 하드 코트 및 잔디 코트에서 열리는 대회와 비교하여 클레이 코트에서 열리는 대회에 굉장히 많이 약한 편이었는데 클레이 코트 대회 우승 및 결승 진출을 한 것이 통산 2번에 불과했다. 클레이 코트에서 열리는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통산 8강 진출 2회에 불과하며 매년 9개 대회 중에 3개 대회가 클레이 코트에서 열리는 ATP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도 통산 4강 진출이 4회에 불과할 정도로 약했다.
2016년 은퇴할 때까지 거둔 커리어 통산 성적은 레이튼 휴이트의 통산 주요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은 우승 2회, 준우승 2회, 4강 진출 4회, 8강 진출 7회,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은 우승 2회, 준우승 1회, ATP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은 우승 2회, 준우승 5회, 4강 진출 12회, ATP 월드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24회, 준우승 8회이다. 다만 은퇴한 뒤에도 복식 중심으로 가끔씩 출전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그 자리에 출전할 수 있던 후배의 길을 막는다는 일각의 비판이 있기도 하다.
(사실상) 은퇴한 뒤에는 테니스 강국 호주의 데이비스컵 캡틴을 맡아 지휘하고 있는데, 휴잇도 현역 때에는 모난 성격으로 욕을 많이 먹은 편이라 리더로서 휴잇보다도 더 대단한 멘탈을 자랑하는 버나드 토믹과 닉 키리오스와 연일 씨름해야 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는 평.
성적 외에도 성질머리로 자주 뉴스에 오르던 편. 데뷔 초기부터 이미지 자체가 악동이었고, 뒤로 쓴 야구 모자, 포인트를 딸 때 마다 'Come on!'을 외치던 도발적 퍼포먼스 등으로 테니스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판정에 항의, 욕설 등으로 구설수에 많이 올랐었다. 2001년 US 오픈에서 인종발언, 같은 해 프랑스 오픈에서 심판 상대 '저능아' 발언 등으로 큰 구설수에 올랐었고, 그외 잡다한 설전, 도발 등으로 뉴스에 오르면서 신사적 스포츠였던 테니스에 반항아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만든 편. 2007년엔 아예 오랫동안 함께하던 코치가 성질머리 때문에 도저히 같이 못하겠다며 사임했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성질은 많이 죽은 편인데, 그 성질머리는 같은 호주 출신인 닉 키리오스가 계승했다(...)

3. 참고 링크



[1] 2009년에 ATP 월드 투어 파이널로 명칭 변경.[2] 2009년에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로 명칭 변경.[3] 1999년에 세계 랭킹 1위를 올랐었으며 1995년부터 2001년까지가 전성기였는데 2003년 은퇴할 때까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을 우승 2회, 준우승 1회, 4강 진출 3회, 8강 진출 7회를 기록하였고 1997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준우승,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선 준우승 5회, 4강 진출 13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금메달,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 우승 23회, 준우승 13회에 빛나는 세계적인 선수였다.[4] 현재의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대회의 2000~2003년 사이의 명칭.[5] 다비드 페레르도 82년생으로 이들 2000년대 초반 라이벌이었던 5인방과 비슷한 나이대지만 페레르만 유독 전성기가 뒤늦은 2010년부터여서 이들과 전성기가 전혀 겹치지 않기 때문에 이들 5인방 중에 페더러 빼고는 거의 스토리가 엮이지 않는다.[6] 현재의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대회의 2004~2008년 사이의 명칭.[7] 앤디 머레이의 77%랑 거의 차이가 안나는 수준이다.[8] 재미있는 것은 페더러는 휴이트와는 동갑에 로딕보다는 오히려 1살이 많다. 페더러는 첫 그랜드슬램 우승을 2003년 윔블던, 만 22세에 기록했는데 이는 한 시대를 지배했던 선수들 치고는 늦은 편. 대기만성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9] 중국계 미국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쳤던 마이클 창이나, 스페인의 여자투어 전 세계랭킹 1위 출신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가 이런 우방뒤 역습에 강한 타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