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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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ustralian Open'''
매년 1월에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 멜버른 중심가에 위치한 '''멜버른 올림픽 파크'''(Melbourne Olympic Parks)에서 열리는 그랜드 슬램 대회중 하나. 약칭 '''AO'''. 남자 및 여자 단식과 남자 및 여자 복식, 혼합 복식, 주니어 및 시니어 경기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드 코트에서 시합을 치르며 대회 기간은 14일. 남반구이기 때문에 한여름에 대회가 열린다.
2. 역사 및 특징
첫 시작 년도는 1905년. 초기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옆나라인 뉴질랜드에서 치뤄졌으며 1916년부터 1918년까진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대회 개최가 중단되었었다. 1922년에 규모가 커지면서 여성 테니스 선수도 참가하도록 바뀌었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대회 개최가 중단되었기는 하지만 이후엔 중단된 적이 없으며 프로선수들의 참여가 허용된건 1969년[1] 으로 1972년부턴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에서만 경기가 열리도록 세부적인 규정이 확립되었다.
1회 대회가 열린 1905년부터 1987년까지는 잔디 코트에서 진행됐었지만, 1988년부터 메인 경기장을 멜버른 파크로 옮기면서 리바운드 에이스 재질의 하드 코트를 썼고, 2008년부터는 하드 코트 중에서 플렉시쿠션 프리스티지(Plexicushion prestige)재질로 변경했다.
경기 일정도 변경이 좀 있었는데 초창기에는 1월로 하다, 8월로 옮기기도 했고, 이후에는 12월에 열리기도 했다. 그러다 1986년 대회를 건너뛰고는 1987년부터 1월 중순으로 정한 이래 지금까지는 1월이다. 그래서 미국의 마르티나 나브로틸로바가 1983년~1984년에 걸쳐 논 캘린더 이어 그랜드슬램[2] 을 달성할 때에는 1983년에 윔블던-US 오픈-오스트레일리아 오픈, 1984년에 롤랑 가로스-윔블던-US 오픈까지 순서로 6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었다. 오늘날의 대회 개최 순서대로 보면 6연속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에는 연속이었던 것. 다만 1월 중순으로 하는 것에 대해서 크리스마스 연휴와 연말연시가 얼마 안된 때에 개최되는 것이므로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니 2월로 옮기는 게 어떻겠느냐는 선수들의 의견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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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개최되는 정기적인 스포츠 관련 행사중 가장 규모가 큰 대형 이벤트로 꼽힌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의 휴가시즌에 개최하는지라 가족단위의 휴가를 이쪽으로 나와 구경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고 관광객들의 필수 체크 코스로 통한다. 특히 멜버른 파크의 최신식 시설과 더불어 자연친화적인 설계 + 강가에 위치해 있어서 경치도 정말 좋기에 놀러와도 후회안할만 하다.[image]
경기가 열리는 멜버른 파크의 메인 코트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 (Rod Laver Arena)[3] 와 멜버른 아레나(Melbourne Arena), 마가렛 코트 아레나(Margaret Court Arena)는 우천이나 폭염 등 기상상황에 따라 조절이 가능한 개폐식 지붕을 갖추고 있다. 하드 코트라서 클레이 코트 보다는 바운드가 낮고 공이 빠르지만 잔디 보다는 높고 느리다. 클레이 코트와 달리 달려가다가 미끄러질 수 없기 때문에 정확히 노려서 상대방이 되받아칠 수 없는 위닝 샷을 가져가야 매끄러운 경기 운영을 할 수 있다.
참고로 다른 그랜드슬램 대회에 비하여 역사도 짧고 상금도 적어서 과거 90년대 이전까진 유명 선수들이 참여를 잘 안했다. 대표적인 선수로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 6회 챔피언이고 윔블던 남자 단식에선 5회 챔피언인 비외른 보리[4] (스웨덴). 보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남자 단식에 1974년 단 한번 출전해서 본선 32강전(3회전)까지 진출한 이후 전혀 참여를 하지 않았다.[5]
유명 선수들이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에 잘 참여하지 않은 이유로는 멀기도 오지게 멀고, 다른 그랜드 슬램과는 정 반대의 시즌인지라 선수들의 페이스가 안맞춰지기도 하고, 거기에 1월의 오스트레일리아의 기후가 지독한 폭염으로 악명이 높아 선수들의 개인 컨디션 조절이 힘들기 때문. 이런 이유로 다른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보단 경쟁이 약한 대회인지라 역대 최고령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 기록도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남자 단식이 가지고 있는데 1972년에 켄 로즈웰이 만 37세 2개월의 나이로 우승하면서 기록을 세웠다.
더위 때문에 체력안배가 힘들어 중간에 기권하거나 경기중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선수가 간혹 나오기도 한다. 2014년 대회 때는 30도가 넘는 폭염에 견디다 못한 선수 9명이 1라운드에서 기권하며 한 라운드에서의 기권으로 종래 최다 기록인 2011년 US 오픈의 기록과 동률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주최측은 기온 및 습도가 위험한 수준까지 상승하는 경우 '폭염시 특별 규정(extreme heat policy)'을 적용하여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 중이다. 다만 호주 달러의 가파른 환율상승으로 몇년동안 그랜드슬램 대회 중 최고 상금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래도 90년대 이후엔 많은 탑랭커 테니스 선수들이 참여 중인데, 매년 가장 먼저 열리는 그랜드슬램 대회인지라 해당년도의 테니스계 판도를 예측해보는 기준점이 되기 때문. 다만 다른 그랜드 슬램 대회의 시즌과는 상당한 간격이 있는 편인지라 예전에는 일찍 페이스를 끌어올린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우승자가 다른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는 별다른 재미를 못보는 경우가 많았으나, 페더러와 나달, 조코비치는 그런 거 없다 시전했다.[6]
역대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가장 긴 시간의 결승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대회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빅3의 일원인 노박 조코비치와 라파엘 나달. 호주 오픈 사상 최고의 명경기로 꼽히는 2012 호주 오픈 결승전이다. 6시간 가까이 진행된 혈투 끝에 조코비치가 우승을 차지했다. 공식적인 총 경기 시간은 5시간 53분. 그리고 이 경기 이전의 최장 시간 결승전 기록은 1988년 US오픈 결승전의 4시간 54분이었으니, 종전 기록보다 무려 1시간을 경신한 것이기도 하다. 경기가 종료된 후 폐막식&시상식 장면에서는 두 선수 모두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있지 못하자, 주최 측에서 이례적으로 의자와 물 한 병씩을 가져다 줘 둘이 나란히 앉아서 폐막 연설을 듣기도 했다.[7]
한국선수로는 주니어 선수들의 성적이 좋은 편으로 1995년 주니어 남자 단식에서 이종민, 2005년 주니어 남자 단식에서 김선용, 2015년 주니어 남자 단식 부분에서 홍성찬 선수가 준우승을 기록한 게 최고 성적이다.
정현이 2018년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남자 단식 본선 4강에 진출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에 출전한 역대 한국 선수 중 최고 성적을 세웠다.
2019년 대회부터 남자단식 5세트, 나머지종목 3세트에서 게임스코어 6:6이 되면 10점 타이브레이크로 승부를 가리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
3. 호주 오픈 단식과 대한민국
- 굵은 표시는 현역 선수.
- 2021년 종료 기준
3.1. 남자
3.2. 여자
4. 호주 오픈 단식 주요 기록
2021년 종료 기준, 오픈 시대
4.1. 남자
4.2. 여자
- 최다 우승 - 세레나 윌리엄스(7)[10] [11]
- 최다 결승 진출 - 세레나 윌리엄스(8)[12] [13]
- 최다 4강 진출 - 세레나 윌리엄스(9)[14]
- 최다 본선 승리 - 세레나 윌리엄스(92)
5. 상금 규모
- 2009년~2019년 현재 상금규모의 변화표. 단위는 오스트레일리아 달러(AU$)
AO의 상금 규모는 2009년에서 2021년 사이에 총상금이 '''3.46배''' 정도 증가하였다. 단, 우승상금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인한 하위랭커에 대한 상금 배분정책이 강화됨에 따라 2021년도에 전년도에 비해 크게 줄었다.
6. 역대 호주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
호주 오픈이 프로 테니스 선수의 출전을 허용한 1969년 남자 단식 결승전부터 표시한다. 1977년 호주 오픈은 1월과 12월에 두번 개최되고 반대로 1986년에는 호주 오픈이 개최되지 않았다.
먼저 1977년에 호주 오픈이 두번 개최된 이유는 호주 오픈이 1977년까지는 매년 연초에 대회가 개최되다가 1977년부터 1985년 대회까지는 연말 대회로 변경되어서 1977년에는 호주 오픈이 1월과 12월에 두번 열리게 된 것이다.
이후 1985년까지 호주 오픈은 매년 연말에 열리다가 1986년부터 다시 매년 연초에 개최되는 것으로 변경되었는데 이렇게 될 경우 1986년 초에 호주 오픈이 개최되어야 해서 1985년 말에 열리는 호주 오픈에서 1달 정도 후에 다시 호주 오픈이 개최되는 문제가 발생하여 어쩔 수 없이 1986년 호주 오픈은 열리지 않고 1년간의 간격을 두어 1987년 초에 1987년 호주 오픈이 개최되었다.
7. 기타
다른 그랜드슬램 대회와 달리 대회 주최 측이 가지는 본선 와일드카드 8장 중에 일정 부분을 특별한 방식으로 선정된 선수들에게 배정한다. 2019년 기준, 단식의 경우 아시아-태평양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 우승자에게 한 장, 미국 와일드카드 챌린지 1위(해당 선수가 랭킹으로 본선직행하는 경우 본선직행 못하는 차순위 선수)에게 한 장, 오스트레일리아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 우승자에게 한 장 배정한다. 나머지 중 한 장은 다른 대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협회가 내부적으로 고른 한 명에게 배정하고 나머지는 오스트레일리아 협회가 내부적으로 고른다. 복식의 경우 아시아-태평양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 우승팀에게 복식 본선 와일드카드를 배정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 여자 복식 우승팀에게도 복식 본선 와일드카드를 배정하였다.[15] 권순우가 2018년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의 아시아-태평양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 우승하여 남자 단식 본선에 참가하였다. 2020년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아시아-태평양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에서 한나래가 여자 단식 우승하고, 남지성/송민규가 복식 우승하여 각각 본선 와일드카드를 받았다.
참고로 국내 자동차 기업인 기아자동차가 메인 스폰서인 대회이기도 하다. 본래는 계약기간이 2018년까지로 알려져 있었으나, 2018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시상식에서 기아 자동차 오스트레일리아 총괄 담당자의 기념사를 통해 5년 더 연장되어 2023년까지 유지된다는 사실이 언급됐다.
2017 오스트레일리아 오픈부터 새로운 엠블럼이 제정되었는데 새 엠블럼은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의 이니셜인 'A'와 'O'를 형상화했다.
2020년 1월에 개최된 예선 대회가 대형 산불로 인해 이틀 연속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 14일 스모그 현상 때문에 경기 시작 시각이 오전 11시로 한 시간 늦춰졌었고 15일 오전 10시 예정이였던 이틀째 경기도 공기 악화 탓에 오후 1시로 미뤄졌다. 또한 슬로베니아 달리아 야쿠포비치 선수는 15일 기침과 호흡 곤란으로 경기를 포기하고 기권했다. # 이 외에 캐나다 유진 부샤드, 영국 리암 브로디, 오스트레일리아 베르나도 토믹, 러시아 마리아 샤라포바, 독일 로라 지그문트 등이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경기를 중단했고 다수의 선수들이 "도저히 뛸 수 없다. 돈 때문에 건강을 해치기는 싫다"는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1 #2 #3 #4 이후에 산불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이후 경기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2021년 대회는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예년과 달리 2월에 시작된다. 또한 남자 예선은 카타르 도하에서, 여자 예선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리며, 예선 통과자와 럭키루저(후보)를 포함한 본선 진출자는 모두 호주에 도착하여 2주간 자가격리를 한 뒤 활동할 수 있다.[16] 기타 코로나 19 관련 변경사항이 많다.
8. 참고 링크
[1] 다른 그랜드 슬램 대회들은 1968년부터 개방[2] 국제 테니스 연맹이 상을 줄 때는 4개 연속이면 2개 연도에 걸쳐서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한 경우에도 1개 연도 4개 대회를 모두 우승한 경우와 동일한 상금을 주지만 1개 연도 4개 대회를 모두 우승한 캘린더 이어 그랜드슬램과는 명칭상 구분된다. 그랜드슬램(테니스)참고. [3]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로드 레이버의 이름을 딴 경기장이다. 로드 레이버는 테니스 역사상 남녀 통틀어 두차례나 한 해에 그랜드슬램 타이틀 4개를 모두 따낸 유일한 선수이며, 오픈 시대 이후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남자 선수이다. 아직도 정정하신터라 남자&여자 단식 결승 경기에선 항상 초청되어 관전을 하신다.[4] 비외른 보리는 197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테니스 레전드인데 1973년에 프로에 데뷔하여 1983년에 은퇴했다. 하지만 사실상 1981년까지만 주요 대회에 나왔고 성적이 조금 떨어지려는 기미를 보이자 바로 대회 출전을 거의 하지 않다가 1983년에 은퇴한 것이라 사실상 1981년까지만 테니스 단식 선수 생활을 했다고 볼수 있다. 전성기 시절엔 엄청난 기량을 보인 선수로 통산 커리어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11회 우승, 준우승 5회, 4강 진출 1회, 8강 진출 4회, 마스터스 컵 우승 2회, 준우승 2회,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51회, 준우승 17회를 기록했다. 특히 비외른 보리는 프로 테니스 선수도 사람인데 연말과 연초에는 좀 쉬면서 인생을 즐겨야 한다고 멀고 먼 호주에서 열리는 그랜드슬램 대회인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엔 1974년에 평생 단 한번 출전하는 등 1년에 4회가 열리는 그랜드슬램 대회 중 하나의 대회는 사실상 불참하면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무려 통산 11회나 우승한 선수이다. 게다가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우승하지 못했으나 결승에는 4번이나 진출했는데 두 번은 지미 코너스, 두 번은 존 매켄로와 맞붙어서 패한 것이다. 이것이 회자되는 이유는 지미 코너스와 존 매켄로 두 선수 모두 미국 선수라서 US 오픈 대회에서 홈코트인 미국선수가 이기게 해주기 위해 심판들이 편파판정으로 비외른 보리에게 불리하게 판정하는 핸디캡을 무릅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11회나 우승한 것이다. 하지만 선수 생활 중에 호주 오픈에 거의 출전하지 않은 것이나 1981년에 여전히 연말 세계 랭킹 순위에서 4위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었음에도 노쇠화로 약간 기량 저하가 보인다는 스스로의 판단하에 바로 대회 출전을 거의 포기하고 사실상 은퇴한 행동 등을 보면 요즘 기준으로 보면 프로 의식이 조금 부족한 선수였다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면에선 철저한 자기관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현재와 달리 과거의 낭만을 상징하는 선수라고 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어떤 평가 기준으로도 역대 남자 테니스 선수 중에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이며 평가 기준에 따라서는 역대 남자 테니스 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경우도 있는 테니스 레전드이다.[5] 근데 비외른 보리만이 아니라 라이벌이었던 지미 코너스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는 1974년과 1975년, 두 번만 참가하기는 했다. 존 매켄로도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남자 단식엔 딱 5번만 참가하는 등 80년대에도 잘 참가하지 않는 유명 선수들이 있었고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유명 선수들이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에 잘 참여하지 않는 분위기가 없어졌다.[6] 이들이 과거의 테니스 선수들과 다르게 호주 오픈 이후에도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된 것은 과거의 선수들과 달리 엄청난 자기관리와 더불어 여러 스포츠과학 스탭들의 전문적인 관리를 집중적으로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선수들은 현재처럼 전문적인 스포츠과학을 토대로 한 집중관리를 받지는 못했다.[7] 신사의 스포츠라고 불리며 격식을 중요시하는 테니스인만큼 보통은 행사 내내 서있는 것이 기본이다.[8] 2위는 로저 페더러(6)[9] 2위는 노박 조코비치(82)[10] 공동 2위 마거릿 코트, 슈테피 그라프, 모니카 셀레스, 이본 굴라공(4)[11] 오픈 시대 이전을 포함 시 1위는 마거릿 코트(11)[12] 2위는 이본 굴라공(7)[13] 오픈 시대 이전 포함 시 1위는 마거릿 코트 (12)[14] 오픈 시대 이전 포함 시 1위는 마거릿 코트 (12)[15] 프랑스/미국의 경우 프랑스오픈, US Open때 오스트레일리아 선수에게 와일드카드를 주고 서로 교환하는 것이다. 대회 주최국에서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건 종종 있는 일이고, 아주 특별한 건 아시아-태평양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 정도.[16] 물론 원래 빅토리아주에 살던 선수들은 해당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