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 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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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3]
1.1. 선수 생활
1.1.1. 클럽
펜터는 넵튀니스 로테르담에서 뛰다 1935년[4]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 입단했다. 펜터는 페예노르트에서 총 82회의 리그 경기 출전으로 65골을 기록했다.
펜터 역시 1937년 스타디온 페예노르트의 개장 경기에 출전한 12명의 멤버 중 한 명이며 이 경기에서 첫 골을 넣은 선수이다.
1.1.2. 국가대표팀
펜터는 대표팀 선수로 21경기에 출전, 총 19골을 기록했다.
이탈리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펜터는 아일랜드 자유 주와 벨기에를 상대로 모두 득점에 성공하며 네덜란드의 본선 진출에 힘을 보탰고, 월드컵 개막 2달 전에 열린 벨기에와의 친선 경기에선 혼자 5골을 넣으며 9대2 대승의 주인공이 되었다.
1라운드 스위스전에도 출전한 펜터는 후반 24분에 2대3으로 따라붙는 골을 넣었지만 네덜란드는 더 이상 소득이 없이 1라운드에서 스위스에게 패하고 탈락했다.
펜터는 다음 월드컵 1라운드에도 출전했지만 네덜란드는 체코슬로바키아에 연장전에서 0대3으로 패했다.
그리고 1939년 12월, 스타디온 페예노르트의 첫 A매치에서도 펜터는 벨기에를 상대로 첫 득점을 성공시켰고, 1940년 4월의 벨기에전을 끝으로 국가대표팀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1.2. 은퇴 이후
펜터는 1943년 코치 자격증을 취득했고 3차례에 걸쳐 그의 이름을 딴 카페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2번째의 카페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로테르담의 폭격으로 인해 망했다.
전쟁 이후 잠시 구금되기도 했지만 곧 풀려났고 여러 팀에서 코치로 일했다고 한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골 결정력이 좋은 센터 포워드. 민첩하면서도 헤딩에 능했고 양발 사용이 가능해 어느 위치에서도 양발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을 뽑아낼 수 있었다.
3. 뒷이야기
- 사진에서 보듯 펜터는 특유의 별 모양 헤어스타일로 눈길을 끌었다.
4. 가족관계
펜터는 네덜란드의 작가 로브 펜터(Rob Vente. 1939~2020)의 의붓아버지이며 페예노르트 소속 공격수 달린 펜터[5] 의 종조부이다.
5. 수상
5.1. 클럽
- 네덜란드 축구 챔피언십 우승 3회: 1935–36, 1937–38, 1939–40(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네덜란드 축구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36-37(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4] 트랜스퍼마크트 기준. 위키피디아외 다수의 문서에는 1년의 공백기 이후 1936년에 입단했다고 기록되어 있다.[5] 현재는 RKC 발베이크에 임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