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피츠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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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FitzRoy
1805년 7월 5일 ~ 1865년 4월 30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


영국해군이자 지리학자. 찰스 다윈이 탑승한 비글호함장. 제2대 뉴질랜드 총독.

2. 생애


로버트 피츠로이는 1805년 영국 서포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조부는 영국의 제11대 총리였던 오거스터스 피츠로이(Augustus FitzRoy)였다.
1818년 12살의 피츠로이는 포츠머스 왕립 해군 학교에 입학하였고, 이듬해에는 영국 해군에 입대하였다. 그후 1820년 남아프리카로 건너가 사관후보생 자격을 부여받았으며, 1824년 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하고 소위로 임관하였다.
1828년에는 남미 사령관 오트웨이(Otway) 장군의 참모가 되었으며, 당시 티에라델푸에고의 측량 작업을 진행하던 비글호의 함장 프링글 스톡스(Pringle Stokes)가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하면서, 피츠로이가 후임 함장을 맡게 되었다.
이후 1831년 비글호를 이끌고 두 번째 항해에 나서면서 피츠로이는 자신 또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전임 함장처럼 자살을 할까 우려하였고, 이에 그는 항해를 함께 하며 사교적인 관계를 맺을 인물을 찾았는데, 그렇게 발견한 인물이 바로 찰스 다윈이었다. 5년의 항해 동안 피츠로이와 다윈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어느 순간 피츠로이의 심한 성미로 인해 격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1]
1836년 비글호의 두 번째 항해가 끝난 후 영국으로 귀환한 피츠로이는 오랫동안 약혼하였던 젊은 여성과 결혼을 하였고, 1837년 왕립지리학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1841년에는 던햄에서 지역 의원으로 당선되는 등 승승장구하였다. 여기에 더해 1842년 뉴질랜드의 초대 총독이었던 윌리엄 홉슨(William Hobson)이 사망하자 그의 후임으로 임명되어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뉴질랜드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경미한 군사력과 총독부 자금의 부족, 그리고 마오리족과의 갈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1848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현역에서 물러난 뒤 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고, 현재 영국 기상청의 전신인 상무부 기상 국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863년 자신의 기상학 사무소에 어려움이 생겼고, 재정적인 문제와 건강 악화로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 면도날로 목을 그어 자살하고 말았다. 사후 그의 시신은 런던 남부의 올 세인트 교회 앞 묘지에 안장되었다.
후일 다윈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피츠로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하였다.

의무에 충실하고 실패에 관대하고, 용감하고, 의지가 강하고, 불굴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지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열성적인 친구였다 ... 큰 단점으로는 욱하는 성질이 있었지만 그의 성격의 일부는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훌륭했다.


[1] 나중에 다윈은 이 당시를 회상하며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