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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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로빈 슈 (Robin Shou) ,위룡(威龍) [1]
'''본명'''
구운파((仇雲波)
'''국적'''
홍콩 [2]
'''생년월일'''
1960년 7월 17일
'''신체'''
183cm
'''가족'''
배우자 Anne Shou
'''무술 스타일'''
우슈, 켄포, 가라데
'''데뷔'''
1988년 영화 '시티 워'
1. 개요
2. 생애
3. 영화배우로 데뷔
4. 그후
5. 총평
6. 여담


1. 개요


모탈 컴뱃 실사판 영화 주인공 리우 캉으로 잘 알려진 배우.


2. 생애


1960년 7월 17일 홍콩 구룡반도에서 재단사인 부모님 아래 4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 시대에 태어난 홍콩인들 모두가 궁핍한 생활을 했듯이 그의 가족역시 생활고에서 벗어나기위해 1971년 그가 11살이 되던 무렵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무려 방 두칸짜리 저층 아파트에서 여섯식구가 살았으며, 어릴때부터 인종차별을 심하게 당하며 지내왔음에도 그가 본격적으로 무술을 시작한것은 19살되던해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입학하고나서인데 처음 시작한 무술은 켄포였다.
그러나 정작 1년을 넘게 배웠음에도 전혀 실력이 향상 됨을 느끼지 못하여 그만 두었는데, 우연히 북경 우슈팀의 우슈 시범공연을 구경하게 된다.
그는 우슈에 크게 매료되어 " 그래 나는 중국인이다. 중국 무술을 배워야해!"라고 다짐하게 된다.
1980년.결국 학년을 다 마치기도 전에 부모 몰래 차를 팔아 중국난징으로 가게되었는데 유명 우슈팀에 입단했다. 이때 재밌는 에피소드는 그의 부모는 당시 로빈 슈가 행방불명되어 죽은 줄 알고있었는데, 6개월 뒤 난징에 사는 그의 숙모가 부모에게 그의 행방을 알려주었고, 그의 부모는 노발대발 하기는 커녕 오히려 대견하게 생각하며 그의 생활비를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그에 힘입어 1982년~1983년 국제 우슈대회 2년연속 우승. 중국 전국 우슈대회 대련부문 금메달과 은메달, 병장기부문 금메달, 후일 캘리포니아에서 4회 연속 그랜드 챔피온에 이를 만큼 일취월장한다.


3. 영화배우로 데뷔


대학은 졸업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권유로미국으로 돌아와 토목공학과 학업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1987년 토목공학 학사로 졸업하나, 취업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우슈를 배우던 친구들과 고향인 홍콩에 휴가를 갔는데 취중에 우슈 연무를 길거리 한복판에서 시범하게 되고 영화제작사 직원에게 스턴트맨을 해볼 생각이 없냐는 제의를 받고 흥미를 느껴 스턴트 배우로 시작하게 되어 조연과 단역, 주로 악당역을 맡으며 스크린에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출연료가 많지않아 토목공학 전공자답게 목공, 페인트 작업 및 용접공의 부수적인 일까지 하며 배우의 꿈을 열심히 길러 나갔고 원화평 감독에게도 그 실력을 인정받아 위룡이라는 예명도 사사받는다.
하지만 뛰어난 무술실력을 자랑함에도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 무엇보다 개성이 보이지 않는것이 늘 단점이었는데, 그도 그럴듯이 당시 홍콩에는 성룡, 홍금보가 액션영화계를 꽉 잡고 있었고 그무렵 범죄느와르, 액션물보다 장국영을 비롯한 장학우, 유덕화, 여명등은 물론, 떠오르는 신예인 코믹 패러디물의 대가 주성치의 급부상으로 빛을 보기란 불가능했다.
늘 기회를 얻고 싶어했고 노력했지만, 그에게 결국 제대로된 기회는 오지않았고 1994년까지 늘 조연과 단역, 홍콩내에서도 B급배우로 전락하였다.

4. 그후


1994년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서 물류 수입,수출사업을 하며 배우의 손을 놓는가 싶었는데 그의 기획사가 1995년 인기게임인 모탈 컴뱃의 실사영화 주인공인 리우 캉역에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다. 이때 동양인 배우로 제이슨 스콧 리가 유력했고,[3] 러셀 웡[4], 더스틴 응구옌이라는 배우로 좁혀지나 싶었는데 제이슨 스콧 리가 결국 스케줄 문제로 하차하고, 러셀 웡과 더스틴 응우옌이 주연엔 부적합하여 탈락되어 폴 WS 앤더슨[5] 감독이 사람을 시켜 7번이나 설득한끝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는데 대박났다!
지금도 로빈 슈를 얘기하면 모탈 컴뱃, 리우 캉을 연상할정도로 그의 인생에 길이남을 작품이며, 후일 한편의 모탈 컴뱃 시리즈에 더 출연을 했다. 차기 출연영화로는 크리스 파리와 공동 주연을 한 '비벌리힐즈 닌자'에서 제법 호평을 받고 상승세를 타나 싶었는데...
헐리우드로 와도 여전히 그는 잘해야 조연, 늘 단역 신세로 배우 활동은 간간히 하며 무술 안무가와 감독, 각본가로 전업한다.
2014년 이후로 영화출연보다 각본, 무술연출에 더 신경쓰고 있는 중.

5. 총평


한마디로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확실히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과 무술이 강조되지 못했지만, 워낙 성룡과 홍금보가 이 방면에 이미 전세계 액션영화팬들을 사로잡아서 돋보이지 못했을뿐이다.

6. 여담


  • 미국에서 오래 살았음에도 표준 중국어와 광둥어가 매우 능숙하다. 그의 아버지가 상해 출신이고, 어머니는 베트남 화교 출신이기 때문인데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아버지 어머니께 모국어를 절대 잊어선 안된다며 엄하게 교육 받았다고 한다. 영화 데스 레이스에서 14K역으로 출연하여 유창한 광둥어를 구사한다.

  • 성룡이나 홍금보에 비해 무술경력은 길지않지만 국대급 우슈, 금메달리스트 출신인만큼 매우 출중하여 원화평 감독에게 무술과 연기를 배웠다고 하며, 이때 '위룡'이라는 예명을 사사받았다고 한다.
  • 폴 WS 앤더슨 감독과 모탈 컴뱃이후로 사적으로도 매우 친하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밀라 요보비치의 트레이너를 맡게 되었으며 무술 안무를 담당했다.
  • 국내엔 잘 안 알려져있지만 50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이 직접 스턴트를 하며 연출한다. 상술한 수많은 무술관련 수상들은 폼이 아니다. 모탈컴뱃을 촬영할 때의 에피소드인데, 어떤 액션씬이 어려워서 감독이 할 수 있겠냐고 걱정했는데 웃으면서 단 한번에 성공시켰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말 그대로 혼이 빠졌다고.
  • 액션게임 영화에 총 4회 출연했는데, 모탈 컴뱃 1편을 제외하고 다 폭망했다. 그중 흑역사는 2011년 안드레이 바르코비악 감독의 '스트리트 파이터- 춘리의 전설'에서 역할이다. 춘리역을 맡은 크리스틴 크룩과 함께 대폭 까였다.
  • 그의 출연작중 최고의 연출을 꼽는다면 '타이거 케이지2: 노호광'이다. 견자단 본인도 역대 출연작품중 베스트 10으로 꼽을정도였고, 당시 원화평 감독이 진짜로 싸우는줄 착각할 정도였다고 언급한적 있다. [6]

[1] 홍콩에서 활동할 당시 예명.[2] 출생은 홍콩이나 현재는 미국에서 거주중[3] 문서를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은 리우 캉의 모티브가 된 브루스 리를 연기한 적이 있는 배우다.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딱 맞는 캐스팅인 셈.[4] 왕민덕의 친형[5]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감독[6] 사실 견자단은 이시기에 격투 장면에 있어 사실감있는 연출에 대한 욕심이 강해서 상대배우들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해 진짜로 때리는 경향이 제법 잦았다. 게다가 로빈 슈 역시 같은 나이대의 견자단에 대한 대우가 남달라 질투심이 있어 대결장면에서 감정이 매우 격했으며, 감정이 실린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로빈 슈와 체급차가 크다보니 견자단이 위급할뻔한 상황이 오기도 했다. 다행히 이를 눈치챈 견자단이 격앙된 감정이 치솟은 로빈 슈를 잘 대해주었고, 로빈 슈 역시 훗날 그때의 견자단의 인간미에 크게 매료되어 감사하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