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

 

''' 주성치 감독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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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홍콩 금상장 시상식'''
[image]
'''감독상'''
'''제20회
(2001년)'''

'''제21회
(2002년)'''

'''제22회
(2003년)'''
이안
(와호장룡)

'''주성치
(소림축구)'''

유위강
(무간도)
'''남우주연상'''
'''제20회
(2001년)'''

'''제21회
(2002년)'''

'''제22회
(2003년)'''
양조위
(화양연화)

'''주성치
(소림축구)'''

양조위
(무간도)


''' 역대 대만 금마장 시상식'''
[image]
'''감독상'''
'''제41회
(2004년)'''

'''제42회
(2005년)'''

'''제43회
(2006년)'''
두기봉
(대사건)

'''주성치
(쿵푸허슬)'''

천커신
(퍼햅스 러브)



''' 주성치 '''
''' 周星馳|Stephen Chow '''
'''이름'''
''' 주성치 (周星馳[1], Stephen Chow Sing-Chi)'''
'''국적'''
[image] 홍콩
'''출생'''
1962년 6월 22일 (61세)
영국령 홍콩 [image]
'''신체'''
174cm | 67kg | O형
'''가족'''
어머니 능보아 (凌寶兒)
누나 주문희 (周文姬)
여동생 주성하 (周星霞)
'''배우자'''
미혼
'''별칭'''
星爺/星爷(씽예)、星仔(씽자이)、阿星(아씽)
'''활동시기'''
배우: 1980년 - 2008년 [2]
감독: 1993년 -
'''영화 데뷔'''
1988년 <벽력선봉>
1. 개요
2. 일대기
3. 성격
4. 일상생활에서의 모습
5. 패러디
6. 개인사 및 소문
6.1. 삼합회와의 관련설
6.2. 열애설
6.3. 그 외
7. 그가 출연/감독한 영화, TV 시리즈
8. 수상내역
9. 기타
9.1. 그가 데뷔시킨 배우
9.2. 대표적인 주성치 사단
9.3. 주성치의 팬
9.4. 주성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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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콩영화감독이자 각본가영화배우. 1962년 6월 22일 홍콩 태생.[3] 본적은 저장성 닝보 시
어딘지 B급 영화 분위기가 풍기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관(作品觀)으로 좋은 의미의 괴작 또는 명작을 출연 혹은 감독하고 있다. 그의 영화에는 언더독 혹은 루저의 미학이 담겨 있다. 김정영(전 인츠닷컴 영상사업팀장)은 씨네21에 투고한 원고에서 '''동북아 루저들의 별'''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가 다루는 작품의 주요 스토리는 주로 둘 중 하나다. 밑바닥 서민으로 시작해 온갖 개고생 후에 인생 꽃 피거나, 성질 더러운 상류층(혹은 악당)이 몰락하고 나서 개과천선하는 스토리가 대부분이다. 특히, 찌질이같은 주인공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성장한다는 플롯이 매번 나온다. 또 주인공은 한부모가정인 배경으로 자주 나온다.[4] 흔히 "주성치 사단"이라고 불리는 조연배우들도 유명하다. 어떤 영화든 간에 등장하는 배우가 거의 같다.(영원한 콤비 오맹달, 중년 황일비, 안경 전계문, 수다쟁이 나가영, 특별한 캐릭터는 없지만 자주 나오는 황일산, 여장(?)의 최고 달인 이건인, 히로인 장민 등)
한국에서는 홍콩 영화 전성기인 90년대 초반까지 도성, 도학위룡 등이 흥행하기는 했으나, 중반 이후 홍콩 영화가 침체기에 이르자, 점차 극장 흥행작은 줄어들고 대부분 비디오용으로 돌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전화위복이 되어 그를 추종하는 컬트 집단이 음지에서 드문드문 생기기 시작한다. 우연히 한번 보다가 어처구니없는 전개에 별 생각 없이 보다가도, 어느새 거기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결국 사람들은 주성치를 신으로 모시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5] PC통신이 유행하던 시절, 주변에서 비슷한 사람을 찾지 못해 온라인에서 찾던 이러한 사람들이 '주성치 전영공작실: 성치넷'으로 옹기종기 모였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매니아 층이 활동하게 되고, 이들을 비롯한 주성치 지지자들에 의해 점차 인터넷을 통해 그의 인기가 전파되게 된다.[6][7]

2. 일대기


주성치는 1962년 6월 22일에 영국령 홍콩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능보아(凌寶兒)는 중국 대륙에서 사범 전문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고[8] 그의 외할아버지는 법관이었다. 하지만 그의 외할아버지가 감옥으로 끌려가고 그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홍콩으로 이주한다. 그후, 그의 어머니는 상해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주성치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고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낳는다. 주성치는 둘째다. 당시 주성치의 가정은 무척 가난했고, 그의 어머니는 하루종일 밖에서 일을 해야했다. 쿵푸허슬에서 나오는 삼면으로 이루어진 빈민가 건물은 실제 주성치가 어렸을 때 살았던 건물을 재현한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말하길, 주성치는 하루종일 창가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멍때렸다고 한다(아마 이때부터 혼자서 상상력을 펼쳤던 것 같다.). 그리고 1970년, 즉 주성치가 8살이 되던 해에 그의 부모는 결별한다.
그전에, 주성치가 7살 때, 내성적이고 말수가 없는 그가 부모와 처음으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하나 보게 되는데, 그 영화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게 된다. 그 영화는 바로, 이소룡의 <맹룡과강>. 그때부터 소심하고 어린 주성치는 이소룡처럼 멋진 액션배우가 되기를 꿈꾸게 된다.[9]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 양성소였던 TVB의 배우 훈련반[10]에 오디션을 보려간다. 이때, 오디션을 혼자 보러 간 것이 아니라, 16살 무렵에 만난 친구 양조위와 같이 간다. [11] 양조위는 오디션을 볼 생각도 없었지만 주성치가 연기 연습을 할때 상대역을 맡는 등 그를 자주 도와주었기에 이 때도 주성치를 도와주기 위해 갔다가 얼떨결에 오디션을 본 것인데 정말 재밌게도, 양조위는 붙고 주성치는 떨어진다...... 오디션을 떨어진 주성치는 1981년 홍콩 RTV(現 aTV)의 드라마인 무협제녀화, 여와행동[12] 등에서 엑스트라라도 잡아서 처음으로 데뷔(?)를 한다. 그리고 1982년, 먼저 합격한 양조위의 도움으로 TVB 야간훈련반이라도 들어가게 된다. 먼저 합격한 양조위는 1년만에 '왕자'라는 칭호를 얻으며 큰 인기를 얻었고, 어렵게 야간훈련반이라도 들어간 주성치는 '''7년동안 엑스트라''' 생활을 하게 된다.[13] 당시 주성치는 자신의 친구들(양조위, 유덕화)이 주연한 영화의 엑스트라 역할을 자주 맡았는데 눈 앞에서 그들이 주연으로 발탁되어 명성을 얻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또 뒤에서도 언급할 내용이지만, 주성치의 '''영화에 개입하려고 하는 성격'''은 엑스트라 시절부터였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맡은 엑스트라 역이 주인공의 공격에 맞고 죽는 역할인데 여기서 주성치는 엑스트라가 눈앞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그냥 보고만 있다가 맞아 죽는 것보다는 두손으로 한번 막고 난 다음 죽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감독[14]에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절당한다.
여담으로, 희극지왕에서 첫 장면은 주인공 사우(주성치)가 바다를 향해 "노력! 분투!"라고 소리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는 그가 엑스트라 시절, 꿈을 포기하고 싶을 때 거울을 보면서 '힘내자!'라고 외쳤다는 말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성치가 성공한후 '임전'이라는 중국 기자가 주성치에게 그의 사진을 내밀면서 기념으로 몇줄 적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때 주성치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참을 생각하더니 초서체로 '''"为什么坚持,想一想当初。(爲什麼堅持,想一想當初)"''' 라고 적었다고 한다. 뜻은''' '왜 버티는가, 처음을 생각하자.' '''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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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게 써줬던 "왜 버티는가, 처음을 생각하자."'''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당시의 주성치'''
이렇게 TVB에서 제작한 드라마의 보조출연자와 단역을 전전하던 주성치는 1982년부터 1989년까지 430천사기(430穿梭機)라는 유명 어린이 교양 프로그램에서 사회자를 맡으며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심지어 이때도 스스로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내면서 어린이 프로그램 방향을 이상하게 꼬아놨다고 한다. 그래서 제작진으로부터 욕도 많이 먹었다고.
그후 1988년, 드디어 감독 겸 배우인 이수현의 눈에 띄어[15] 영화 <벽력선봉>의 조연으로 출연, 금상장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이수현을 은인이라 생각하며 소림축구로 상을 휩쓸었을 때까지도 이수현을 언급하며 감사하다고 했다.[16] 남우조연상을 받은 계기로 주성치는 드디어 TVB 드라마 타래자강호(他來自江湖)와 개세호협(蓋世豪俠)에서 주연을 맡게 된다. 오맹달과의 긴 인연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1990년 도성이다. 도성은 주성치의 첫 주연작이자 첫 코미디 영화로 당시 각본가로 일하고 있던 유진위가 감독을 맡고 지존무상, 도협 등을 감독하며 홍콩 도박 영화의 원형을 제시한 왕정이 직접 제작을 맡아서 당시 유행하던 홍콩의 도박 영화들을 소소하게 패러디한 영화이다. 특히, '라면 먹여주기' 패러디, '등장 시 슬로우 모션' 패러디 등이 압권이다. 이 영화를 계기로 주성치는 7년동안의 무명시절을 극복하고 스타로 일어서게 된다.
도성의 성공 이후, 주성치는 도학위룡, 녹정기 등의 모레이타우 (無厘頭, nonsense talk) 코미디 영화들로 자신만의 맛을 확고히 하며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 당시 주성치의 인기는 정말 대단해서 그는 1991년과 1992년 단 2년 동안 무려 12편의 영화에 출연하였고 주성치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나오기만 하면 역대 홍콩 박스오피스 기록이 갱신될 정도였다. 그러나 주성치가 이처럼 막강한 티켓파워를 가진 스타배우가 됐음에도 그의 영화들이 코미디라는 이유로 항상 홍콩금마장상을 받지 못했다. (주성치는 정말, 금마장상과는 인연이 없다. 그렇게 영화를 많이 찍고 흥행을 해도 후보에만 오르고 도통 상을 주지 않는다.)
주성치가 이처럼 90년대 홍콩영화계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몰락하는 홍콩영화계에서 유명한 홍콩배우들[17]이 할리우드로 떠난 틈을 이용했는 점, 다른 하나는 홍콩 반환이 얼마 남지 않은 홍콩사람들이 겪는 정체성 불안의 시기에 그래도 웃을 수 있도록 해줬던 영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주성치는 홍콩시민들을 웃게 해준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았다.
이렇게 주성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당연히 돈줄인 주성치에 대한 삼합회의 간섭과 협박은 심해져만 갔고, 결국 최정상의 인기를 날리던 중인 1993년, 주성치는 캐나다로 이민을 추진한다. 그러나 삼합회의 협박 및 회유와 캐나다 정부에서 삼합회와의 커넥션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주성치의 비자 발급을 거부하여 출국조차 못하고 실패로 끝난다. 그러자 그는 아예 자신이 직접 영화사를 차려서 감독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 한편, 주성치의 코미디 데뷔작인 <도성>을 감독한 유진위[18]는 그의 이런 상황을 보고 자신의 신작에 주성치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데 이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대화서유>이다. 1994년, 대화서유 촬영과 동시에 주성치는 이력지(李力持) 감독과 공동으로 <007 북경특급 (國産凌凌漆: From Beijing With Love>을 감독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이력지 감독에 의하면 주성치가 감독으로서 크레딧에 이름이 처음 올라간 영화는 007 북경특급이지만 이미 당백호 점추향 때부터 자신과 공동으로 영화를 감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 중국 위키 등에서는 당백호 점추향의 공동 감독으로 주성치의 이름이 올라가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주성치는 엑스트라 배우 시절부터 영화 내용에 개입하여 더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 수없이 다시 찍으려고 했는데 본격적으로 감독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주성치는 특유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더욱더 강해져서, 완벽한 장면으로 찍힐때까지 무한 반복해서 찍는다고 한다. 콤비인 오맹달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성치를 이해할수 없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이렇게 주성치가 영화에 집요하게 완벽을 요구하며 여러번 찍는것에 대해 많은 배우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그를 확실히 천재 감독으로 인정하고는 있다. 실제로 많은 배우들과 감독들 입에서 '주성치는 천재'라는 말이 나왔다.
주성치의 첫 단독 감독 영화인 2001년작 소림축구와 2005년작 쿵푸허슬이 홍콩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 해외에 개봉한 역대 홍콩 영화의 흥행을 갈아치우며, 주성치는 전 세계적인 스타 감독으로 떠오르게 된다. 한국에서는 소림축구가 2002년 5월 한국에 정식 개봉하면서 주성치가 방한하기도 하였다. 당시 주성치는 명보극장에서 열린 5개관에서의 동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각 관을 돌며 팬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축구공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19] 이런 대대적인 시사회는 최근들어 자주 주최되는 헐리웃 스타 등이 내한하여 코엑스 메가박스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레드카펫 행사를 펼쳐서 홍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수 있다.
소림축구쿵푸허슬의 성공으로 주성치는 할리우드에 진출할 기회를 얻었는데, 실제로 영화 그린호넷의 감독으로 발탁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전부 무산된다. 이와 관련해서 여러 루머들이 있는데 그중에 유명한 설로는 몸값 높은 할리우드의 배우들이 주성치 특유의 코미디 연출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과 주성치가 영어를 너무 못해서 무산된다고 하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 영상을 보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쿵푸허슬이 크게 성공을 거두고 할리우드에서는 주성치에게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2편을 찍을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성치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중국에서 다른 영화를 찍는데 그게 바로 장강7호다. 주성치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주성치는 어릴적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지 못했었다. 그런 그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영화를 만들고 심지어 아버지 고향인 저장성 닝보에서 촬영을 한 것을 보면,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한 것으로 추측된다. 장강7호에서 가난한 아버지가 아들이 갖고 싶다 했던 장난감을 사주지 못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자신의 경험과 관련있다고 그가 인터뷰에서 여러번 언급했다. 주성치와 부모님이 장을 보다가 주성치가 엄청 갖고 싶어하는 장난감이 있어서 사달라고 했더니 어머니는 안된다고 했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그냥 하나 사줘' 라고 했다고 한다.
장강7호 이후, 주성치는 자신의 명작 중 하나였던 서유기의 후속편 서유항마편의 제작에 돌입한다. 사실 <대화서유>는 개봉 당시 영화 두편이 한달간의 차이를 두고 연속적으로 개봉한다는 것을 낮설어한 홍콩 관객들 때문에 처참한 흥행성적을 거두었었고 <대화서유>를 제작한 영화사는 파산했다. 개봉 당시, 주성치는 <대화서유>에 대해 흥행할 것임을 확신했는데, 흥행성적이 처참하자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1998년 중국 대륙에서 개봉하게 되고, 비디오로 여러 나라에 전해지면서 다시 화자가 되고 명작으로 꼽히게 된다. 이때 주성치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게 되어 기뻤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흥행성적이 좋지 않은 것에 대한 한으로 다시 서유기 시리즈를 촬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유항마편은 2013년 2월 2일 홍콩에서 개봉하였고[20], 역대 홍콩 박스오피스를 갈아치우며 흥행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중국 베이징시 제3 중급인민법원(지방법원)에 따르면 영화 서유기 흥행수익 배분 과정에서 8,610만 위안(약 151억 원)이 아직 미지급됐다며 주성치가 주주로 있는 와이잉(崴盈)투자에서 영화 제작사인 화이브라더스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2015년 서극과 손을 잡고 서유항마편의 속편 서유복요편을 제작 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주성치는 자신의 신작인 미인어를 감독하느라 바빠서 서유복요편의 제작만 담당하고 감독은 서극이 맡는다고 한다. 2017년 설날 개봉예정 # 당심장 역은 문장에서 EXO 출신의 우이판으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2016년 2월 8일, 주성치의 신작 미인어가 개봉했다. 개봉 4일 만에 10억 위안을 돌파하였고# 역대 홍콩 박스오피스를 갈아치우며 흥행에 성공하였다.

3. 성격


주성치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들이 정말 많다. 인터넷이 없었던 90년대 시절, 루머 퍼뜨리기로 소문난 홍콩기레기들의 '찌라시 퍼뜨리기'로 현재 21세기 인터넷의 보급화에 따라 지금까지 그 루머가 확산되어, 한국에서 인간성이 나쁘게 평가되고 있는 사람. 또한 21세기 이후로도 주성치의 침묵 성격으로 인해 루머들이 사실로 오인되는 등의 이유도 있다.
그렇다면 주성치는 어떤 성격을 가졌는가? 영화에서 그는 말이 빠르고 적극적이며 활발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실제 성격은 영화 속 모습과 딱 정반대다. 주성치는 촬영 중간에 애드리브도 많이 칠 것 같은 즉흥적이고 기분파적인 캐릭터로 보이지만, 사실 그는 촬영 전에 자신이 연기해야 할 역할과 장면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완벽하게 계산된 연기를 펼치는 배우이다. 감독으로서도 배우들에게 애드립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정극 시스템을 지향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21] 영화속 그의 모습들을 보면, 연기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캐릭터를 잘 살려내기 때문에 실제로 그가 이런 성격이라고 오해하게 된다.[22]
주성치의 어머니 능보아는 주성치가 어려서부터 말수가 적고 자신을 잘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성격은 그가 배우가 되고 나서도 이어졌는데, 다음은 <대화서유>의 감독 유진위의 인터뷰를 가져온것이다.

他经常被人误会扮大牌耍酷,其实他是一个非常怕丑(害羞)的人。拍《大话西游》的时候,我见过他拿着扫把跟民工一起扫地。有次收工想跟我谈戏,还偷偷往我酒店房间门下塞纸条。其实星仔平时害怕接触陌生人,不够主动,所以容易被人误会。”

저 문장을 해석하자면, “'''사람들은 주성치를 쿨한척한다고 오해하고 있는데 사실 그는 엄청 부끄러워 하는 성격이다. <대화서유>를 찍을때 나는 그가 빗자루를 들고 다른사람들과 같이 청소하는 모습을 봤다. 언제 한번, 그가 나에게 영화에 대해 말하려고 할때 몰래 내 호텔방의 문 밑으로 쪽지를 건네는 식을 택했다. 사실 그는 평소에 낯선사람과 만나기를 무서워하고, 적극적이지 않아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빚는다.'''” 당시 인터뷰 영상
참고로, 그가 홍보차 내한했을 때, 개그 전문 배우로 편안하게 생각하고 주성치를 보러온 사람들이 날카로운 눈빛에 말도 없고 카리스마 쩔게 무서워서, 다들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 정고전가 홍보로 내한했을때는 전혀 이러지 않았다.(관련 영상은 쉽게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이런 날카로운 눈빛과 카리스마는 감독으로 데뷔한 1994~1995년부터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주성치가 코미디영화로 승승장구하고 난후, 영화속의 그와 현실의 그를 동일인물로 착각해 그를 개그치는 사람이라고 예능으로 섭외한 몇몇 사람들이 있다. (대륙도 있고 홍콩에도 있었고 심지어 일본, 독일에서도.) 당연히, 주성치는 거기서 개그따위는 치지 않는다. 오히려 차분하고 조용하게 있어서 냉기가 흐를정도다.[23] 또, 주성치의 말하기가 주성치 자신의 두뇌회전을 못 따라가서 버벅거리고 속터져서 화내게 된다는 설도 있다. 주성치가 자신의 영화사업을 더 이상 홍콩에서 하지 않고 대륙으로 옮기게 되면서, 안그래도 잘 못하는 보통화로 대륙 배우들에게 설명해야 하다보니 더 답답할지도. 하지만, 미인어라든가, 서유기 항마편이라든가 제작영상을 보면, 엄청 즐거워보인다.#
이처럼 소극적인 성격과 인간관계를 크게 중시하지 않는 성격으로, 친구가 별로 없다. 몇 년전 그는 자신의 생일에 혼자 호텔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주변인물들이 전부 떠나갔다는 소문 또한 그의 말하기 좋아하지 않는, 독단적인 성격과 관련이 깊다. 그리고 그는 남이 뭐라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추가로 최근에 퍼진 유덕화와의 불화설도 근거없는 찌라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극적인 그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그의 인생과 같은 ‘영화’다. 주성치의 많은 영화들을 보면 감독은 다 다르지만 모든 영화에서 주성치만의 느낌을 받는데, 그 이유는 '''주성치가 영화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찍는 모든 영화에 개입하여, 감독이 아님에도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할수 있을까 연구하고 실천에 옮긴다. 그래서 그의 은인이었던 이수현은 그가 영화의 쓸데없는 부분까지 개입한다고 생각해 그의 면전에다 대고 개처럼 일한다고 욕했다. <대화서유> 마지막에 지존보가 손오공을 보면서 개처럼 보인다고 말한것을 떠올릴수 있는데 이 대사는 위 사건과 관련해 볼수 있다.
자신의 우상인 이소룡을 통해 주성치는 영화에 대한 야망을 품었고 영화에 모든 정신을 쏟아부었다. 그렇기에 그는 영화가 완벽해질때까지 찍고 또 찍고, 연구하고 또 찍는것이다. 한 기자가 그에게 주변사람들이 당신이 감독으로서 너무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만약 감독이 찍었던 장면을 계속해서 찍고 또 찍는다면 나였어도 매우 짜증날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도 자신의 이런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영화를 더 우선순위에 두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으로 현재 그는 광둥성정치위원으로 중국영화 발전에 이바지 하고 있다. 주성치가 실제로 어떤 성격이고 어떻게 이기적인지는 영화와 관련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의 영화속 인물들은 항상 사회의 최하층민들이었고 꿈을 가졌으며 노력하고 성공을 했다는 것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처럼, 그는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킨 진정한 동북아 루저들의 별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를 사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첫 줄에서 언급했듯이 주성치는 항간에 떠도는 자신의 소문들에 대해 대응할 가치를 못느껴 ''' 적극적으로 해명한 적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침묵이 곧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소문들을 훑어보면, 항상 다른 사람이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그가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다. 주성치 자신이 나서서 이야기하거나 해명하거나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욕을 먹어도, 근거없는 소문들이 퍼져도 가만히 있는다. 그런 그가 딱 한 번 명예훼손으로 소송까지 건 루머가 있는데, 홍콩 언론《壹周刊》이 보도한 '주성치가 쿵푸허슬 촬영 후 상해에 가서 성매매를 했다'는 기사다. 그는 언론에게 사과를 요청했고 법원은 당연히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관련해 재밌는 사건이 있는데, 이를 통해서도 주성치가 이쪽으로 얼마나 민감하지 알수 있다. 장국영 주연의 19금 영화 색정남녀는 원래 감독 얼퉁성이 주인공으로 주성치를 생각하고 각본을 짰었다. 그런데 주성치가 19금 베드신을 찍는게 무서워서 거절하게 된다. 감독은 부득이 하게 새로운 사람을 찾았고 결국 장국영이 주인공을 맡았다. 하지만 애초에 주성치를 위한 각본이었으니, 영화의 주인공의 이름은 아싱(阿星) 그대로다.

4. 일상생활에서의 모습


홍콩 기자들과 파파라치들이 가장 찍기 힘든 연예인으로 꼽을 때 주성치는 항상 언급된다. 예전에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해서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까지 자전거를 탔는데, 온갖 파파라치들이 몰려들어서 그만두었다. 당구도 좋아하고 수영도 좋아한다고 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일할 때나 정말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아니면 집 밖으로는 코빼기도 내밀지 않을 정도로 두문불출 중이다.
옷차림은 항상 트레이닝복 세트 혹은 편한 평상복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려서부터 가난한 생활을 했기에 절약하는 습관이 배어 있어서라고. 가장 좋아하는 옷은 흰 티셔츠로, 트레이닝복 안에 항상 흰 티셔츠를 입는다.[24] 그리고 신발도 항상 운동화를 신는다. 심지어 정장에도! 최근 기자들에 의해 주성치가 홍콩의 비용을 절감해 주는 전문 택시를 타는 모습이 찍혔다. 이렇게 보면 그가 마냥 자린고비 같은 짠돌이 스타일 같지만, 주변인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의외로 상술된 나쁜 소문과는 달리 돈에 인색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일 뿐 촬영장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 촬영진들에게 매번 비싼 밥을 대접하는 등 타인에게는 퍼다 주는 타입인 듯.
본인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체질인지는 몰라도, 공/사석에서 찍힌 사진들을 보면 20대 후반부터 일찍이 새치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과거에는 염색을 했는지 어쨌는지 최소한 영화에서는 새치가 안 보이게 커버를 했었는데, 쿵푸허슬 촬영이 끝난 다음부터 머리를 장발로 기름과 동시에 새치도 그냥 내버려 둔다. 본인은 자신의 흰머리가 마음에 드는지, 2013년 1월 15일 마윈과 함께 가졌던 토론 자리에서 자신의 사진을 한 번 보더니 자신의 머리카락은 흰색인데 왜 검은색으로 염색해 놨냐고 물었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마음에 들어하는 듯.
피부가 굉장히 좋은 편이어서, 그와 활영을 했던 사람들 모두 인터뷰에서 그의 피부에 대해 한 번씩은 꼭 언급한다. 나무위키 프로필 사진에도 보이듯 제법 나이 든 현재까지도 엄청 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최근 함께 했던 우이판임윤, 나지상 또한 그의 피부를 언급하며 칭찬한 바 있다.

5. 패러디


이소룡의 열광적인 팬이기에, 홍콩 소룡회라는 이소룡 팬클럽의 명예 회장을 맡고 있다. 홍콩에서 '이소룡 기념관'을 건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존경하는 사람은 이소룡, 동경하고 있는 것은 성룡(...).[25] 아무튼 이 때문에 이소룡을 기리는 패러디를 자주 한다. 첫 주연작인 '도성'에서 이미 이소룡을 연상케 하는 액션을 선보였고 이후 신정무문 시리즈. 천왕지왕에서도 뜬금없는 이소룡 패러디가 나오며, 쿵푸허슬도 이소룡의 오마쥬로 봐야한다. 소림축구, 쿵푸허슬에 출연한 진국곤도 이소룡과 닮은 외모에 꽂혀 배우로 데뷔시킨 바 있다. 심지어 이소룡 주연의 영화 맹룡과강도 '태극'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할 예정이었는데, 취소되었다.[26]
위에서 언급했듯이 주성치는 이소룡을 동경하여 액션배우로 거듭나려고 매우 노력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선생님에게 자신의 강점은 무술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그의 영화 쿵푸허슬에 나오는 꼬마가 책을 보면서 무술을 하는 모습은 자신의 어릴적 모습이라고 한다. 2012년 '''杨澜访谈录'''라는 인터뷰를 보면 그가 무술에 대해 얼마나 큰 열정을 가졌는지 알수 있다. 하지만 그는 무술에 큰 재능이 없었고, 무술보다는 코미디로 인정받았기에 언젠가는 꼭 무술영화를 찍는 꿈을 가졌다. 그 영화가 바로 오랜 기간 꿈꿔왔던 쿵푸허슬, 중국에서 영화세트를 구매하면 수록으로 딸려오는 주성치의 친필편지가 있는데,[27][28] 그 내용이 "쿵푸에 대한 영화를 찍는 것은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많은 훌륭한 분들과 합작하여 영화를 찍고 제 꿈을 이룬것은 저에게 큰 행운입니다. 이 영화가 많은 분들의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이 영화에 심혈을 기울인 많은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중국 쿵푸의 정신을 음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다. 주성치는 이 영화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기에, 더욱 완벽하기를 바랐고, 그와 관련해 여러 사람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홍금보.
김용 소설도 워낙 좋아해서 김용 소설을 자주 패러디한다. 도협(1990)에서는 최면에 걸린 주성치가 소오강호 노래를 직접 부르는 패러디를 하였다. 식신은 일종의 '주성치 판 신조협려'다. 머리가 하얗게 샜다든가 요리를 하는데 뜬금없이 무공들을 사용...;;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본 독자라면 웃으며 까무러칠 정도. 녹정기는 영화 자체가 소설에 대한 패러디인데, 각색의 요소도 있겠지만 '쌍아'를 정말 쌍둥이로 설정한 점이라든가, 신룡교주와 교주 부인을 합쳐서 한 임청하 하나의 인물로 만들었다든가...
녹정기는 촬영 시 주성치 스스로도 즐거워했다고 하며, 일설에 의하면 주성치의 지인들 사이에서 주성치의 최고의 작품을 녹정기를 뽑고 있는데, 그 이유는 위소보와 주성치 특유의 모레이토우 연기의 환상적인 궁합 때문이다. 김용의 녹정기 소설 팬들도 주성치의 위소보를 보면 다른 배우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잘 어울린다고 인정할 것이다. 다만 영화 녹정기는 각색이 많이 되어 있고, 좀 짧고 개그 위주로 진행되는 면 때문에 원작 팬들 맘에 들지 않을 순 있다.
최근작 <미인어>에는 TVB의 1983년 버전 사조영웅전의 주제곡이었던 '세간시종니호(世間始終你好)' 라는 곡을 주제곡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원래는 나문과 견니가 합창하였던 곡인데, 영화에 사용된 곡은 정소추와 막문위가 재녹음을 하였다. 참고로 1983년 버전 사조영웅전에는 주성치가 개방의 거지떼 중 한 명으로 단역 출연하기도 했었다.
쿵푸허슬과 소림축구를 포함해서 그가 감독한 영화 대부분은 일본 만화의 오마쥬 연출이 많다. 초창기부터 주성치 본인이 만화를 즐겨 보기도 하며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일본의 영화감독들도 해내지 못한 일본 만화식 연출을 실사에도 무리 없게 재현해내며, 연출 능력 면에서도 재조명받게 된다. 파괴지왕이라는 영화는 허가를 얻은 건 당연히 아니지만, 좌우지간[29] 내용,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며 상관관계, 결말 등 만화 캠퍼스 파이터와 모든 것이 똑같다.
주성치의 서유기 시리즈는 당시 홍콩 영화들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인상 깊은 대사 몇 가지를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동사서독에서 가지고 왔으며, 음악 자체를 가지고 온 경우도 있다. 유명한 노래 Only You를 삼장이 부르기도 한다.[30] 사실 대화서유는 주성치를 코미디 스타로 만들어준 도성의 감독이자 왕가위 감독과 절친한 사이로 중경삼림, 동사서독의 제작에 참여한 유진위 감독의 역작이다. 주성치는 감독을 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내용을 같이 구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성치만의 느낌이 진하게 묻어나온다.[31] [32]
할리우드 영화를 본 딴 것도 많은데, 홍콩 마스크 같은 경우엔 주성치가 치약, 변기(...)로 변신하기까지 한다. 역시 괴작 중 하나인 홍콩 레옹의 경우엔 레옹의 분장을 하고 귀신을 잡는다.;; 가장 괴작이라고 한다면 역시 홍콩 마스크와 홍콩 레옹. 그렇지만 매니아들은 이들을 최고로 치기도 한다. 정고전가 또는 홍콩 마스크에서는 가제트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의 작품을 패러디하는 경우도 많다. 신정무문 초반부는 대놓고 자신이 나온 도성을 패러디했다.[33] 도학위룡 3에서는 아예 도성, 도협의 악역들이 까메오로 출연해 배우개그를 친다. 주성치의 007 시리즈나 식신에서는 주성치 사단 등을 이용해서 이전 영화에 나왔던 장면을 패러디하는 경우가 있다. 쿵푸허슬 초반부에서는 '축구는 끝났다'는 말을 한다.(...)

6. 개인사 및 소문


주성치는 공사를 불문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렇다 저렇다 추측하거나 그의 주변인들이 주성치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듣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주성치와 관련된 가장 큰 루머는 후술될 삼합회와 열애설일 것이다.

6.1. 삼합회와의 관련설


우선, 과거의 홍콩 영화계가 삼합회와 관련이 깊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홍콩의 유명 배우들이 삼합회의 간부였다는 소문은 근거없는 90년대 찌라시에 불과하다.''' 성룡과 주성치 또한 삼합회 조직원이라는 확실한 근거는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이 두 사람들은 당시 영화계에 뻗친 삼합회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 걸고 법적인 대응까지 해 가며 그들에게 저항했던 대표적인 홍콩 영화배우들이다. 하지만 삼합회가 홍콩 영화계에 끼쳤던 영향이 어마무시했던 탓에, 배우들이 계약을 하고 영화를 찍기 때문에 한 배우가 어떤 캐릭터로 뜨면 비슷한 캐릭터로 수십 편의 영화를 찍어야만 했다. 주성치의 경우 용성영화사와 계약하면서 1991년과 1992년 '''단 2년 동안 무려 12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물론 이는 삼합회의 압력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행해진 계약이었고, 주성치 본인도 사람이니 어떻게든 살고자 꾸역꾸역 영화를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삼합회와의 관련설 때문에 미국 입국을 거절당하기도 하였다.

6.2. 열애설


아직 미혼으로, 주성치의 열애설에 관해 중국 바이두에서는 그의 연인으로 4명을 꼽는다. 실제로 그가 몇명과 사귀었는지는 그만이 알겠지만 언론에 잘 나서지 않는 그가 부정했던 연애설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야 한다.
주성치의 첫번째 연인은 그가 명성을 얻기전 3년(88~92)동안 사귄 '''나혜연'''(罗慧娟)이다. '''주성치가 공개적으로 밝힌 첫 연인이자, 결혼이야기가 확실히 오고갔던 연인이었다.''' 당시 유진위 감독과 <도성>을 찍었던 주성치는 유진위감독에게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쉽게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유진위 감독 인터뷰 영상 하지만 그들을 결국 헤어졌다. 왜 헤어지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소문들이 많다. 이와 관련해 나혜연은 인터뷰에서 언급한 말이 있는데, 그녀가 주성치에게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했더니 주성치가 ‘미쳤니?’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한것은 주성치의 영화속에서 그의 첫 연인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을 찾아볼수 있다는 것이다. 억지라고 주장하기에는 너무 잘 들어맞기에 중국의 팬들은 주성치가 아직 나혜연을 잊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먼저 <대화서유>의 유명한 대사인 “ 진정한 사랑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그것을 잃고 난 다음에 비로소 후회를 했소, 인간사의 가장 큰 고통은 후회요, 하늘이 내게 다시 기회를 준다면 난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겠소. 사랑에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는 '''주성치가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면서 생각해냈다고 한다.[34] 그리고 자신의 개인 감정이 들어있다고 언급했다.''' 그 당시 그는 주인과 헤어지고 있는 상태였으니 이 대사는 헤어진지 얼마 안된 주인을 붙잡기 위해 생각해낸 말이거나, 과거 첫 연인이었던 나혜연을 잊지 못해 그때 헤어진것을 후회해 생각해낸 말이거나, 둘중에 하나일것이다.
<희극지왕>에서는 사우(주성치)가 두연아(막문위)에게 애절한 대사를 하는데, “연아”이름을 계속 부르면서 '괜찮아질거야,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고난을 겪었는데 너까지 잃으면 나는 견디지 못할거야.'라고 한다. 이때 부르던 이름의 “연’자가 나혜연의 '''‘娟’'''이다. 1999년, 나혜연은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해 청력을 잃었다. 그리고 2005년 쿵푸허슬의 여주인공은 농아로 나왔다. 영화 소림축구에서 주성치의 번호는 10번, 나혜연의 생일은 10월 10일이다.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이소룡을 닮은 진국곤은 1번 등번호를 달고 나온다.
최근에 개봉한 서유기3-모험의 시작에서 단소저는 현장에게 '''당신과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현장이 했던 말이 “미쳤니?”'''. 마지막에 현장은 결국 단소저를 사랑하게 되고 후회를 한다. 그때 피 흘리는 단소저를 보면서 말한 대사는 서유기의 유명한 대사와 일치한다.
2012년 나혜연이 병상에 있을때 주성치가 몰래 가서 병문안을 하고 왔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나혜연은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만다.
1989년, 주성치는 K100 인터뷰에서 나혜연과 같이 연기하다가 바나나를 밟고 넘어졌는데, 넘어질때 두팔 두다리가 하늘로 향해서 엄청 웃겼다고 즐거워하면서 말한다. 그동안의 모든 인터뷰들 중에 가장 활짝 웃는 모습을 볼수 있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서 바나나를 밟고 넘어지는 장면이 수시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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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의 1989년 k100인터뷰 장면'''
또한, 나혜연과의 결별은 그의 성격변화의 기점이 되는데, 위에 언급한것 처럼,그가 나혜연과 사귀고 있을 당시 인터뷰들을 보면 지금과는 표정이 무척 다르다. 엄청 잘웃고 표정이 다채롭다. 중국어를 할줄 안다면 이곳에 들어가보자, 가보면 여러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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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와 나혜연이 같이 찍은 사진'''
두번째 연인은 92년부터 95년까지 사귀었던 주인이다. 주인과 관련에 주성치는 공개적으로 밝힌바가 없고 열애설을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는데 주인이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강하게 인정했기에 사실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한 신문기자가 주성치에게 왜 주인과 헤어졌는지 물었더니 '''“시작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끝맺음이 있죠?’'''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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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터뷰 기사'''
이와 관련한 인터뷰 내용과 자세한 사건이 있다. 서유쌍기 시리즈가 당시에 큰 흥행을 하지 못했지만 1998년부터 대륙에서 다시 개봉하고 비디오로 여러 나라에 전해지면서 비로소 명작으로 다시 꼽히게 된다. 영화가 명작중 명작으로 꼽히면서 주인공 지존보, 자하선자, 백정정을 맡은 배우들이 다시끔 주목을 받게 되는데, 자하선자를 맡은 주인이 한 인터뷰에서 폭탄 발언을 한다. 내용인 즉, 주인과 주성치는 서유쌍기를 찍으면서 사귀었는데, 어느날, 주인이 주성치를 보러 그의 호텔방으로 찾아갔더니 도통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린후에 방문이 열리고 주인은 제 삼자가 방안에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주인은 주성치가 다른 여자와 바람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그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껴 3년 동안 슬프고 괴로워했다고 진술한다. 당시 주인의 진술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며 언론에서 떠들썩했다. 그도 그럴것이 <대화서유>가 애절한 사랑에 대해 다루며 큰 인기를 끌었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은 인터뷰에서 '제 삼자'가 누군지 말해주지 않았고 홍콩 언론은 주성치의 세번째 여인인 막문위가 그 '제 삼자'라고 생각하며 기사를 퍼뜨린다. 막문위는 이에 대해 강하게 부정했고 주성치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침묵했다. 관련 영상과 인터뷰 내용
파문은 커지고, 그럼에도 주성치는 주인과의 열애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려 하지 않자 홍콩의 기자들은 그에게 집요하게 묻게 된다. 주성치는 결국 주인에 대해 한마디 하게 되는데 이 내용 또한 위 신문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했던 말은 "그녀는 덜 멍청해요.".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는 말인데, 중국팬들은 주인과 주성치의 사랑이 너무 복잡했기에 단순한 사랑을 원한 주성치가 이런 말을 하게 된거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그가 주인과 헤어지고 찍은 영화들 속에서 주인과 관련된 장면이 여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억지 주장이라고 하지만 위의 나혜연처럼 잘 들어맞는다. 첫번째는 주성치와 주인의 첫 영화인 <도학위룡2>에서 주성치가 주인과 유도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주성치가 주인을 안은 장면이 <쿵푸허슬>에서 주성치가 황성의를 안는 모습과 똑같다. 뿐만아니라 일본수출판에 주성치 인터뷰가 들어있는데 거기서 주성치는 <도학위룡2>에 대해 기억나는건 주인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또 <대화서유>ost인 일생소애가 <서유기3>에서도 사용되었는데 가사가 바뀌었다. 특히, “从前直到现在 爱还在”라는 구절이 있는데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랑은 아직 존재한다’'''라는 뜻이다. 이는 주인을 잊지 못한 주성치의 마음이라는 설이 있다.
'''90년대 찌라시가 퍼지고 21세기 인터넷 보급화에 따라 위 사건은 한국에서 엄청나게 부풀려졌었다.''' 그 소문들을 나열하자면, 주성치가 주인과 캐나다로 가서 결혼까지 하려고 했는데 막문위가 중간에 껴서 주인을 배신하고 막문위와 사귀었다거나 주인은 촬영 당시 굉장히 화가나서 촬영을 그만뒀고 유진위가 그만두면 안된다고 주성치에게 사정해 주성치가 사비로 영화를 찍었다거나 주성치는 막문위가 주인이 자신을 괴롭혔다는 말에 주인에게 화냈다거나 주성치와 막문위가 야반도주를 했다거나 처음찍은 주인과의 선리기연 영화를 끝맺기 위해 막문위 주연으로 주성치가 다시 찍은게 월광보합이라는 등의 정말 엄청나게 부풀려진 찌라시들이 퍼졌다.
먼저 주인과 막문위는 처음부터 유진위 감독이 직접 캐스팅해 배역을 주었고, 월광보합에는 막문위가, 선리기연에는 주인이 나오는 내용은 처음부터 시나리오대로 간것이다. 주인이 화나서 촬영을 그만둔 바람에 주성치가 막문위를 데리고 월광보합 내용을 찍어 덧붙인게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주인은 촬영을 그만두고 뛰쳐나오지 않았다.''' 또한 유진위 감독이 <대화서유>에 투자한 제작비가 6000만 홍콩달러인데, 촬영이 중단돼 주성치가 사비로 찍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대응할 가치도 없는 찌라시다. 당시 주성치는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한 배우였고 주성치 집안 또한 무척 가난했으니 그가 사비를 지출해 영화를 찍을려고 해도 그럴만한 돈이 없었을 것이다.[35]
여담으로 주인은 최근 인터뷰에서 그가 자신의 결혼에 대해 아무런 축하도 해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세번째 연인은 정말 깔끔하고 쿨하게 헤어진, 95년부터 97년까지 사귀었던 막문위다. 사실 막문위과의 열애설도 언론에 정확히 인정한바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정보라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다. 주성치는 막문위와 결별하고도 계속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미인어> ost를 막문위가 불렀다. 재녹음 주성치와 막문위가 노래를 부르면서 엄청 즐거워한다.
네번째 연인은 1997~2010년도에 사귄 우문봉이다. 그녀는 ‘홍콩건설’의 창업자 우경보의 딸이다. 그리고 주성치의 영화 사업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좋게 끝난 인연이 아니다.
이렇게 총 4명의 공식적인 연인이 있다. 주성치의 팬들은 주성치가 누구를 가장 사랑했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주성치가 2012년의 인터뷰에서 '''“저는 제가 운이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다시 시작할수 있다면, 바쁘게 살지 않았을거예요. “''' 라는 말이 나혜연을 향한것인지, 주인을 향한것인지에 대한 중국 팬들의 의견은 정확히 5:5로 갈리고 있다. 주성치가 누구를 가장 사랑했는지는 당사자밖에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는 대상이 누구든 사랑을 놓친것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다. 이 점은 확실하다.


6.3. 그 외


2014년에는 주성치가 중화권 영화인들 사이에서 왕따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홍콩과 베이징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수많은 영화인들이 주성치에 대해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그와 친하지 않다.”'''거나 '''“그는 별로 좋은 친구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는 것. 문제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는 동료들이 양조위, 유덕화 등 대부분이 홍콩 영화계의 거물급에 해당한다. 유덕화는 SNS에서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소문이 나도 주성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들은 주성치가 왕년에 양조위, 유덕화와 친구였음에도 현재 왕래를 하지 않는다는 근거와, 주성치의 침묵을 이유로 저런 루머를 사실로 믿는데, 주성치 성격상 친근하게 친구를 맺고 언론에 자신의 인간관계를 내비치는 것을 싫어하기에 저런 소문들은 찌라시에 불과하다. 그리고 유덕화가 아니라고 해명까지 했다.
삼합회 간부의 아들로 태어나 물려받은 조직의 자본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도 영화계 사람들에게 늘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협조를 구하고 비즈니스적으로도 가급적이면 기존 영화인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내세운 덕분에 등광영[36]과 함께 홍콩 영화계의 대부로 불리는 제작자 상화강(向[37]華強; 1948~)의 아내 진람이 올린 글에 의하면 주성치가 최근 주변 이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 것은 '''그동안 주성치가 남편을 포함한 홍콩 영화계 인사들을 맹비난하고 인신공격해왔던 것에 대한 집단 반발'''이라고 한다. 상화강은 홍콩 삼합회 조직 중 하나인 신의안(新義安) 창설자 상전(向前)의 아들로 동생인 상화승(向華勝; 1950.~2014.11.20.)[38]과 함께 주성치가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출연한 거의 모든 영화들을 제작한 영화사 Win's Movie 프로덕션의 설립자이자 제작자였다. 이 상화강의 주장에 장가휘와 임달화가 '주성치와는 잘 아는 사이가 아니지만, 향화강 부인은 좋은 사람이니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 라고 언급했다. 이에 막문위는 주성치는 남을 배려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반박하며 그를 영원히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주성치는 이에 대해 공개적인 언론에서 직접적인 비판을 단 한번도 한적이 없고 상화강 부인의 맹비난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7. 그가 출연/감독한 영화, TV 시리즈




  • 영웅본색 (1986) (단역) - 주윤발의 풍림각 총격전에서 죽는 대만 조직원 중 한 명으로 IMDb 확인결과 주성치 본인이 맞다.캐스팅 목록에 주성치의 영문명인 Stephen Chow를 찾아봐라.
  • 경찰본색 (1988) (刑警本色, The Last Conflict)
  • 포풍한자 (1988) (捕風漢子, He Who Chases After The Wind)
  • 영웅본색 (1988) (英雄本色) - TV 영화. 견자단과 함께 출연했다.
  • 벽력선봉 (1988) (霹靂先鋒, Final Justice)
  • 소자병법 (1988) (最佳女婿, Faithfully Yours)
  • 용재천애 (1989) (龍在天涯, Dragon Fight) - 이연걸과 함께 출연한 유일한 영화
  • 흑전사 (1989) (義膽群英, Just Heroes) - (단역[39])
  • 자웅쌍혈 (1989) (流氓差婆, Thunder Cops II)
  • 망부성룡 (1990) (望夫成龍, Love Is Love)
  • 지존소자 (1990) (一本漫畵天涯, My Hero)
  • 쌍용쟁패 - 용봉가족 (1990) (龍鳳家族, 龍鳳茶樓: Lung Fung Restaurant) - 막소총, 오맹달[40], 진아륜, 진가령 등과 함께 출연한 영화.[41][42]
  • 풍우동로 (1990) (風雨同路, The Unmatchable Match)
  • 성전강호 (1990) (咖喱辣椒, Curry And Pepper)
  • 경시종횡 (1990) (小偸阿星, Sleazy Dizzy)
  • 귀경출사 (1990) (師兄撞鬼, Look Out, Officer!)
  • 도성 (1990) (賭聖, All For The Winner) - 주성치 첫 주연작, 첫 코미디 영화이자 출세작. 주성치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품.
  • 무적행운성 (1990) (無敵幸運星, When Fortune Smiles)
  • 강호 최후의 보스 (1990) (江湖最後一個大路, Triad Story) - 사실상 주성치의 마지막 범죄액션 영화.[43]
  • 도협 (1991) (至尊無上 III - 睹俠, God Of Gamblers II)
  • 정고전가 (1991) (整蠱專家, Tricky Brains) [44]
  • 도성타왕 (1991) (龍的傳人: Legend Of Dragon) [45]
  • 도성 2 (1991) (賭聖 2 街頭賭聖, The Saint Of Gamblers) [46]
  • 신 정무문 1991 (1991) (新精武門 一九九一, Fist Of Fury 1991) [47]
  • 도학위룡 (逃學威龍, Fight Back To School) (1991)
  • 도협 2 (賭俠 II 之上海灘賭聖, God Of Gamblers III: Back To Shanghai) (1991)
  • 신격대도 (1991) (神擊大道, The Magnificent Scoundrels) [48]
  • 호문야연 (1991) (毫門夜宴, The Banquet)
  • 신 정무문 2 (1992) (漫畵威龍, Fist Of Fury 1991 II) [49]
  • 가유희사 (1992) (家有喜事: All's Well, Ends Well) [50]
  • 도학위룡 2 (1992) (逃學威龍 2, Fight Back To School II) [51]
  • 심사관 (1992) (審死官, Justice, My Foot)
  • 녹정기 (1992) (鹿鼎記, Royal Tramp)
  • 녹정기 2 - 신룡교 (1992) (鹿鼎記 II: 神龍敎, Royal Tramp II)
  • 무장원 소걸아 (1992) (武壯元 蘇乞兒, King Of Beggars)
  • 도학위룡 3 (1993) (逃學威龍 三之 龍過鷄年, Fight Back To School III) [52]
  • 당백호점추향 (1993) (唐伯虎點秋香, Flirting Scholar) [53] - 이력지와 공동 연출. 주성치의 감독 데뷔작.
  • 심사관 2 (1993) (審死官續集 - 濟公, The Mad Monk)
  • 파괴지왕 (1994) (破壞之王, Love On Delivery) [54] - 이력지와 공동 연출.
  • 구품지마관 (1994) (九品芝麻官 白面包靑天, Hail The Judge)[55]
  • 007 북경특급 (1994) (國産凌凌漆, From Beijing With Love) - 이력지와 공동 연출.
  • 서유기-월광보합 (1995) (西遊記 第壹伯零壹回 之 月光寶盒, A Chinese Odyssey Part One - Pandora's Box)
    • 서유기-선리기연 (1995) (西遊記 完結篇 之 仙履奇緣, A Chinese Odyssey Part Two - Cinderella) [56]
  • 홍콩 레옹 (1995) (回魂夜, Out Of The Dark)
  • 홍콩 마스크 (1995) (百變星君, Sixty Million Dollar Man)
  • 007 북경특급 2 (1996) (大內密採 零零發, Forbidden City Cop) [57] - 곡덕소와 공동 연출. 앞의 북경특급과는내용상 아무 관련없다.
  • 식신 (1996) (食神, God Of Cookery) - 이력지와 공동 연출.
  • 97 가유희사 (1997) (97 家有喜事: All's Well, End's Well '97) [58]
  • 산사초 (1997) (算死草, Lawyer Lawyer) [59]
  • 럭키가이 (1998) (幸運一條龍, The Lucky Guy) [60]
  • 희극지왕 (1999) (喜劇之王, King Of Comedy) [61] - 이력지와 공동 연출.
  • 빅 타임 (1999) (琉璃樽, Gorgeous) [62]
  • 천왕지왕 2000 (1999) (千王之王 2000, The Tricky Master) [63]
  • 반칙왕 (2000) (The Foul King) [64]
  • 소림축구 (2001) (少林足球, Shaolin Soccer) - 최초의 단독 연출작
  • 쿵푸허슬 (2004) (功夫, Kung Fu Hustle)
  • 장강7호 (2008) (長江7號, CJ7) [65]
  • 서유항마편 (2013) (西遊降魔篇, Journey to the West: Conquering the Demons)
  • 미인어 (2016) (美人鱼, The Mermaid)
  • 신희극지왕 (2019) (新喜剧之王, The New King of Comedy) [66]
한국에서 인지도가 있는 것은 소림축구쿵푸허슬이지만, 이전부터 주성치 팬이었던 이들에게는 오히려 주성치 특유의 맛이 약한 영화다. 그들에게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는 유진위 감독의 '서유쌍기(월광보합 & 선리기연)'이다. 주성치 특유의 웃다가 울게 만드는 영화. 주성치가 출연하지 않은 정전대성이라는 세 번째 시리즈물도 있다. 평은 좋다. 식신도 마찬가지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다 느끼게 만드는 영화이며, 처음 볼 때는 은근히 반전이 있다.
김용 소설을 함께 보는 이들에게는 녹정기 시리즈도 재밌게 볼 수 있다. 개그로만 치면 당백호 점추향도 손꼽을 정도로 웃기다. 구품지마관에서 수다 겨루기 특훈하는 만화 같은 장면도 웃기기로 유명하다. 여성들은 은근히 007 북경특급2를 좋아한다. 거의 유일하게 주성치가 애처가로 나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에서는 과거엔 성우 김환진이 모두(KBS, SBS) 전담했었으나, KBS에서는 정고전가부터 성우 김승준이 그의 전담 성우를 맡고 있다. 소림축구 방영 당시 이를 모르던 일부 팬들 사이에서 김환진이 하는 게 당연한데, 주성치 목소리가 갑자기 바뀌어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주성치의 실제 목소리엔 김승준이 가깝지 않느냐란 평이 많아 이러한 반응도 수그러든 편. 참고로 MBC 서유쌍기에서는 당연하게도(...) 안지환이 맡았다.

8. 수상내역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88년
제 25회 금마장
남우조연상
벽력선봉
1993년
제 37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남우주연상
심사관
1996년
제 1회 홍콩금자형장
남우주연상
서유기 2 - 선리기연
2002년
제 21회 홍콩금상장영화제
작품상
소림축구
감독상
제 7회 홍콩금자형장
작품상
감독상
2005년
제 42회 금마장
'''작품상'''
쿵푸허슬
'''감독상'''
제 24회 홍콩금상장영화제
작품상
제 10회 홍콩금자형장
작품상
2007년
제 35회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
은까마귀상
미인어

9. 기타


  • 초반 주성치 영화들은 주성치가 가진 게 없는데 열심히 노력하여, 예쁜 여성들과 잘 되는 스토리였으나[67], 중반 주성치 영화들은 여주인공들이 주성치를 사랑하여 그를 개과천선시키는 역할을 한다.[68] 후반부로 가면 여주인공들이 주성치를 사랑하거나 둘이 같이 사랑하거나 한다.[69]
  • 그의 작품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의 또 다른 특징이 일단 나오면 무조건 망가진다는 것.(...) 식신의 막문위나 소림축구의 조미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 흔히 쉽게 접할 수 있는 표준중국어판은 주성치 전문성우인 대만인 성우 석반유가 더빙을 했다고 한다. 왠지 모르게 북경어판이 너무 오버스럽게 들리는 것은 그 때문. 그러나 오히려 그렇게 오버하는 더빙이 주성치 영화의 코믹한 분위기에 더 잘 맞아서, 고전 팬들 중 일부는 (특히 비디오로 주성치의 영화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석반유의 목소리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 참고로 석반유와 주성치는 초기에는 서로 얼굴도 몰랐다가, 90년대 중반 우룽차 CF를 찍을 때 만나서 그 후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김환진, 안지환이 맡았다가 최근엔 김승준이 연기한다. 다시 보니 선녀 같다 짤방으로 유명한 영화 당백호점추향에서는 김환진이 더빙했다. 일본에서는 야마데라 코이치[70]가 맡았다. 광동어는 웬만하면 주성치 본인이 더빙하는데, 이수현 주연의 <흑전사> 등 일부 영화에서는 전문 성우가 더빙 하였다.
[image]
'''영화 쿵푸허슬 개봉 당시의 사인'''
  • 워낙 사인회를 많이 열고 사인을 뿌려대서 사인의 희소가치가 없는 연예인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정찬우, 김태균이 주성치가 내한했을 때 사인을 받았는데 가장 성의 없는 사인이라고 말을 했다. 지렁이 하나 달랑 그려줬다고...나중에는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는 쿵푸허슬 제작기념 편지, 즉 위에서 언급한 수록된 친필 편지에는 똑같은 지렁이 싸인이 그려져 있다. 그러므로, 무작정 성의없게 사인한게 아닌, 자신만의 시그니처라는 것이다.
  • 그와 주윤발과의 관계가 마치 이소룡성룡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마치 이소룡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이소룡 영화에 성룡이 보조출연자로 일했듯 주성치 역시 주윤발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주윤발 영화에 보조출연자로 일했다. 게다가 주성치는 주윤발의 도신의 영향을 받아 도성을 촬영하는 등 마치 성룡이 이소룡의 영향을 받듯 주윤발의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성룡과 주성치 둘 다 코메디 영화를 많이 찍었다. 차이점이라면 여기 언급된 4명 중 이소룡만 유일하게 2020년 현재 사망한 상태라는 점이다.
  • 워낙 재미있는 장면이 많은 주성치 영화다보니 다양한 장면이 유머 사이트에 공유되고, 패러디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당호점추향의 한 장면인 다시 보니 선녀 같다, 식신의 소림사 18동인.

9.1. 그가 데뷔시킨 배우


1975년생으로 단지 이소룡을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림축구에서 없는 배역을 일부러 만들어 출연시킨 것을 계기로 데뷔시켰다. 이 덕분에 진국곤은 이소룡 전문 배우가 되었다.
장강7호에서 데뷔했는데, 배역이 남자아이였다. 더 무서운건 진짜 남자처럼 보인다는 것.
1996년생으로 주성치는 미인어의 여자 주연을 기존의 배우가 아닌 신인 배우로 뽑을 생각에 오디션을 대대적으로 개최했는데 이 오디션의 경쟁율이 12만대 1에 달했다. 그 경쟁을 뚫고 캐스팅된 배우가 임윤이다. 경쟁율이 경쟁율이니만큼 엄청 미인이다.

9.2. 대표적인 주성치 사단


  • 나가영(羅家英): 1946년 광둥성 순덕현 출신. 본업은 오페라 가수로 007 북경특급의 괴짜 달문서(達闻西)[71] 박사, 서유쌍기의 말 지독하게 많은 삼장법사, 007 북경특급 2의 불인(佛印)대사, 식신의 식신대회 사회자 역을 맡았다.
  • 황일비(黃一飛): 1946년 홍콩 출신. 여룡공무, 파괴지왕, 구품지마관, 007 북경특급, 007 북경특급 2, 홍콩 레옹, 홍콩 마스크, 소림 축구에 출연했다. 소림 축구의 대사형 역이 유명하다.
  • 노웅(盧雄): 1947년 홍콩 출신 배우 겸 성우. 구품지마관의 형부상서, 홍콩 레옹의 보안대장을 맡았으며 도협 2와 도학위룡의 황 국장의 광동어 더빙 성우를 맡았다.
  • 진백상(陳百祥): 1950년 광동성 광주 출신 배우. 신정무문 시리즈, 녹정기 시리즈, 무장원 소걸아, 도학위룡 3, 당백호점추향에 같이 출연했다.
  • 전계문(田啟文): 1961년 홍콩 출신. 1994년작 구품지마관에서 주성치와 인연을 맺었다. 시체검시소 촬영씬에서 주성치가 집게로 그의 코를 꼬집는 장난을 쳤는데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고 그를 꾸준히 캐스팅하게 되었다. 소림축구의 삼사형과 쿵푸허슬의 도끼파 비서로 상당히 비중 있는 조연도 해보았다. 구품지마관, 식신, 희극지왕, 소림축구, 쿵푸허슬, 미인어, 신희극지왕 출연. 현재까지도 주성치랑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들중 한명.
  • 서금강(徐錦江): 1961년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출신. 옥보단 출연으로 인해 이른바 홍콩의 이대근으로 유명한 인물. 녹정기, 구품지마관, 홍콩 마스크에 출연했다.
  • 이건인(李健仁): 1961년 홍콩 출신. 코파는 여장남자역으로 주성치 영화의 약방 감초역을 맡았던 배우. 당백호점추향의 여장강도역을 시작으로 구품지마관의 여화, 007 북경특급의 모텔주인, 홍콩 레옹의 공포 교육 조교, 홍콩 마스크에서 주성치에게 괴롭힘당하는 친구, 007 북경특급 2의 후궁, 식신의 여학생, 소림축구의 미용실 주인 등으로 출연했다.
  • 정동(程東): 1961년 홍콩 출신. 도협 시리즈에서 초능력자 대군으로 출연하여 처음 호흡을 맞췄다. 도협, 도협 2, 구품지마관의 척씨네 하인역으로 출연.
  • 원경단(苑瓊丹): 1963년 홍콩 출신. 도학위룡의 양선생, 당백호점추향의 추녀 석류, 구품지마관의 기녀원 마담 삼고(三姑), 007 북경특급 2의 기녀원 마담, 식신의 점쟁이 아줌마 역을 맡았다. 주성치 영화에서 주제 모르는 추녀 기믹을 맡지만 젊을 때는 한 미모 자랑했던 배우. 구품지마관에서는 과정 설명이 생략돼서 그렇지 주성치가 맡은 주인공 포룡성의 아이를 임신한다!
  • 황일산(黃一山): 1964년 홍콩 출신. 황일비와 이름이 비슷하여 형제 혹은 아들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도학위룡 시리즈, 구품지마관, 파괴지왕, 당백호점추향 등에 출연했다.
  • 임설(林雪): 1964년 중국 천진 출신. 15세에 홍콩으로 이주했다. 파괴지왕, 홍콩 레옹, 식신의 불량배 일당, 럭키 가이의 삼합회, 쿵푸허슬의 도끼파 부두목으로 출연.
  • 곡덕소(谷德昭): 1965년 홍콩 출신. 영화 감독,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를 겸업하고 있으며 주성치와의 인연이 깊다. 가유희사의 각본을 맡은 것을 계기로 주성치와 협업을 하게 되었으며[72] 주성치와 007 북경특급 2의 공동감독을 맡았으며 당백호점추향, 파괴지왕, 007 북경특급, 007 북경특급 2, 식신, 장강7호의 각본가였다. 배우로는 당백호점추향에서 당백호와 시 대결을 하다가 각혈하고 쓰러지는 영왕의 부하, 파괴지왕의 아우(阿牛), 식신의 악역 당우, 007 북경특급 2의 의사, 소림축구의 산동두부팀 주장을 맡았다.
  • 장민(張敏): 1968년 상하이 출신. 주성치의 히로인 역으로 제일 자주 나왔다. 도성, 도협, 도협 2에서 주성치를 홀딱 반하게 한 기몽역 및 기몽과 얼굴만 똑같은 바 주인 몽라 역을 맡았으며 여룡공무, 도학위룡 시리즈의 하선생, 녹정기 1편의 가짜 태후, 무장원 소걸아의 여상, 구품지마관의 척씨 며느리 진소련 등으로 나왔다.
  • 막문위(莫文蔚): 1970년 홍콩 출신. 본 문서에 상세히 적혔듯이 주성치의 전 연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본업은 가수. 주성치와는 서유쌍기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었으며 서유쌍기의 첫번째 히로인인 백정정(白晶晶), 홍콩 레옹의 히로인 아군(阿群), 식신의 히로인 화계(火雞)와 관세음보살, 산사초의 여인(呂忍), 희극지왕의 두연아, 소림축구의 준결승전의 장백지와 남장여자 축구선수 역을 맡았다.
  • 풍면항(馮勉恆): 희극지왕에서 장백지가 맡은 류표표를 배신한 첫사랑 역으로 처음 합류. 희극지왕, 소림축구의 불량배 축구단 주장, 쿵푸허슬의 안경잡이 회사원, 장강7호의 체육교사 등으로 출연했다.
  • 임자총(林子聪): 1976년 홍콩 출신. 주성치 사단중 대표 뚱보배우. 소림축구에서 데뷔하였고 쿵푸허슬, 장강7호, 미인어에도 출연했다.

9.3. 주성치의 팬


  • 권교정
  • 김구라 - 파괴지왕을 인상깊게 봤는지, 채널CGV의 영화토크프로 '무비 스토커'에서 주성치의 개그패턴을 설명하며 엄청 웃기다고 칭찬했다.
  • 김남길 - 열혈사제 종영 후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은 주성치의 B급 코미디가 자신과 잘 맞아서 제2의 주성치가 되고싶었다고까지 말했다.
  • 김병만 - 본인의 책에서 주성치나 성룡같은 배우가 꿈이었다고 언급.
  • 김준호 - 1박 2일에서 전자우편으로 그에게 한국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을 보낸 적이 있었다. 해당 문서 참조.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도남선 - 언론인,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문화골목에서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대표작 리뷰를 함.
  • 루나 - 루나파크의 저자
  • 박수홍
  • 스노우캣
  • 요조 - 슈팅스타라는 곡에서 주성치가 등장한다. 중랑천에서 무술연습하던 주성치가 좋은 노래 없냐고 해서 요조가 노래를 들려준다는 이야기. 참고로 곡을 완성한 후 주성치 사무실에 요조가 CD를 부쳤다고 한다...그가 들었는지 아닌지는 별개의 이야기.
  • 유병재 - 페이스북 커버가 식신 스틸 컷. 그의 개그를 보면 주성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느낄 수 있다.
  • 유세윤 - 스포츠조선 기자들이 건넨 '예능고사' 중 '유세윤이 생각하는 세상에서 제일 웃긴 사람'을 선정하는 문제에서 유세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주성치'라고 적었다.
>"저는 주성치가 가장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주성치처럼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유세윤 스타일 영화요. 뭐, 그런 게(유세윤 스타일)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광고백이 좀 안정이 되면 영화도 도전을 하고 싶어요. 2편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허접하더라도 한 편은 만들어 보고 싶어요."
>
>유세윤 "'뼈그맨' 별명, 사실 부담스럽다" (스포츠조선, 2016. 5. 16.)
2015년에 LG U+ 광고에서 주성치를 떠올리게 하는 코믹 연기를 선보인 적도 있다. 심쿵지왕: 헌폰구원기
  • 유희열 - 라디오에서 수시로 언급한다. 가장 좋아하는 주성치 영화로는 희극지왕을 꼽는 듯. 동북아 루저들의 별이라는 표현도 라디오에서 곧잘 한다. 성치님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 아라카와 히로무 - 강철의 연금술사의 원작가로 "실사판 감독은 주성치가 좋겠어."라는 폭탄발언을 한 적이 있다.
  • 양파 - 가수 활동을 쉬는 동안 힘들었던 기간에 주성치의 영화들에서 위로받았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 이현민 - 자신의 만화에 주성치 영화의 느낌이 나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파괴지왕'을 200번 정도 본 거 같다고 한다.
  • 채사장 - "주성치와 떠나는 깨달음 여행" 주제편에서 서유기만 20번 이상을 봤다고 언급했다.
  • 하세 세이슈 - 일본의 하드보일드 소설 불야성의 작가. 필명인 하세 세이슈를 한자로 쓰면 馳星周, 즉 주성치의 이름을 거꾸로 쓰고 이를 일본어로 읽은 것이다.
  • 허팝 - 주성치와 닮았는지 평소에도 주성치를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고 다녔다 하고, 그것도 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자신의 롤모델 이라고 밝혔다.해당 영상
  • 9bul - 그가 리뷰하는 영화중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가 상당히 많다.

9.4. 주성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람들


  • 주인(朱茵): 홍콩의 여배우. 도학위룡2 촬영 중 처음 주성치와 만났고 주성치와 함께 <서유기 선리기연>의 히로인 역으로 출연하였다. 그러나 영화 촬영 중에 주성치가 제 삼자 와 불륜을 저질렀고 자신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또 그를 용서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언급한다.
  • 우문봉(于文鳳): 홍콩 건설협회 회장이자 홍콩의 부동산 재벌로 유명한 우징보 회장의 딸. 홍콩 부동산 업계의 큰손이다. 1997년부터 주성치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주성치의 재테크를 도와주었고 2002년부터는 주성치가 주주로 있는 투자회사인 와이잉(崴盈)의 재정자문과 투자지문을 맡았다. 2010년 3월, 13년의 열애 끝에 주성치와 결별하였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같은 해 5월, 주성치에게 그동안 자신을 통해서 부동산 재벌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그에게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며 8000만 홍콩달러(약 116억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2020년 12월 23일 홍콩 고등법원은 주성치의 손을 들어주며 우문봉의 수수료 지급 소송을 기각하였다.#
  • 만재량(萬梓良): TVB에서 무명 시절 고생할 때부터 보살펴준, 주성치에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배우. 원래 희극지왕에서 오맹달이 연기하였던 역할은 만재량이 연기하기로 했었는데, 주성치가 촬영 스케줄이 바뀐 걸 만재량에게 통보해주지 않는 바람에 만재량은 아무도 없는 촬영장에 혼자 남아 스텝들을 기다리다가 결국 빡쳐서 집으로 돌아갔고 그대로 영화에서 하차하였다. 주성치는 만재량 대신 오맹달을 캐스팅하였고, 오맹달은 만재량의 연기톤을 그대로 따라하였다. 또한 주성치는 만재량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만재량 형님에게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는데, 그것으로 만재량의 화가 가라앉았을지는....
  • 이수현(李修贤): 주성치가 자신을 배신한 배은망덕한 인물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리고 주성치는 영화의 쓸데없는 부분까지 개입한다며 개처럼 일한다고 욕했다. 하지만 주성치는 이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 오맹달(吳孟達): 소림축구까지만 해도 주성치의 페르소나로 거의 모든 작품을 같이 할 정도로 친했던 배우. 쿵푸허슬 전까지의 얘기로 이후로는 결별한 것 같다. 주성치가 쿵푸허슬을 준비할 때 오맹달은 당연히 자신의 배역이 있을 줄 알고[73] 생애 처음으로 단독 주연으로 캐스팅된 드라마의 출연을 거절했는데[74] 쿵푸허슬에 자신이 캐스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는 같이 일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로 보인다. 이후 화해했다고 언론에 회자되었으나 아직 같이 출연한 작품은 없다.[75]
  • 두기봉(杜琪峰): 1992년 크게 흥행한 심사관과 제공을 주성치와 함께 했다. 주성치와의 감독스타일 의견차이, 그리고 이미 짜논 각본을 촬영현장에서 갑자기 바꾸자고 한 주성치에 대해 비판적으로 얘기한적이 있다. 하지만 그후, 주성치가 너무 천재였기 때문에 마찰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 이훼(李卉): 소림축구에서는 바나나를 밟아서 넘어지는 단역을 맡았다. 그런데 이 작품 이후 출연작은 2개뿐이라서 주성치를 원망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불공정한 계약으로 사이가 안 좋아진 듯하다.#
  • 육소령동(六小齡童): 본명은 장금래(章金萊)로, 많은 사람들이 향수를 느끼며 고전 명작으로 인정하는 86년작 드라마 서유기에서 손오공을 열연한 배우로 유명했었다. 워낙 가문 대대로 원숭이극을 해왔는지라 연기 자체는 뛰어났고, 다른 서유기 관련 작품들에서 워낙 손오공의 디자인이 구렸기 때문에 그가 연기한 손오공은 넘사벽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손오공이라는 배역으로 뜨자 거기에 부심이라도 느낀 건지, 정통파를 자처하면서 주성치의 작품이 원작파괴라고 자주 비난했고, 급기야는 가는 곳마다 주성치의 영화를 천편일률적으로 디스하는 퍼포먼스[76]를 선보이는 등, 얀데레스러운 모습을 보인 탓에 결국 한때 그를 옹호하고 존경하던 중국인들도 추해졌다며 등을 돌리는 중. 게다가 소위 정통파라는 것도 당시 보수적인 시대상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만한 파격적인 내용이 없었을뿐이지, 원작 고증에 충실했던 건 아니기 때문에 원작빠들에게서도 배척받았다. 이 사람이 연기한 배역 중에서 손오공을 제외하면 그나마 유명하다는 게 연성결에서 나오는 소인배 악역인 화철간인데, 오죽하면 이 화철간이 육소령동의 본성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
  • 홍금보(洪金寶) : 이쪽은 비판보다도 디스라고 보면 된다. 과거에 배우들 중에서 왕민덕과 더불어[77] 가장 무술에 재능이 없으며, 이소룡을 어설프게 따라하려하는 얼간이라고 깠다.

[1] 주성치의 이름은 표준중국어로 저우싱츠로 발음하며 그의 어머니가 왕발(王勃)의 시 《등왕각서(滕王閣序)》의 구절 ‘빼어난 고을들이 안개처럼 늘어져 있고, 준걸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활약하는 곳'''이다. 누대와 성 안의 연못은 화하(중원)와 이민족(초나라)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누대를 찾은 손님들과 주인들은 모두 동남쪽의 훌륭한 인물들이다.(雄州霧列,俊彩'''星馳''',臺隍枕夷夏之交, 賓主盡東南之美)’ 에서 따온것이다. 두번째 구절 뒤 두글자.[2] 장강7호를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배우로서는 활동하지 않는다.[3]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6월 22일에 태어난 또 다른 사람 중에서는 우베 볼도 있다. 나이는 주성치 쪽이 우베 볼보다 3살 많다. 물론 이날 태어난 사람 중에서는 엄청난 미남미녀도 있긴 하다.[4] 주성치 부모님이 주성치가 어릴때 이혼하셨기에 이런 설정을 한듯. [5] 여담으로 주성치의 영화들은 B급 코미디 영화가 대부분이어서 쉽게 유치한 영화로 폄하되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유치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의 영화 붐이 일어난 90년대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유덕화, 장국영, 주윤발 등 멋진 배우들을 좋아하지 코미디 영화나 찍는 주성치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또한 그를 좋아해도, 그가 코미디영화나 찍는 사람이라 폄하되었기에 쉽게 나서서 좋아한다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주성치가 소림축구, 쿵푸허슬을 찍으면서 유명해지고, 그의 매니아층들이 드디어 '난 주성치를 좋아해.'라고 당당히 말할수 있게 된다. 참고로 유럽에서는 아시아와는 달리 코메디가 고급예술로 분류되며 그래서 저 유명한 찰리 채플린이 코메디로 귀족 작위까지 수여받았다.[6] 해당 사이트의 메인 배너에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영화가 있다.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와 주성치가 나오지 않는 영화.」'''라는 문구가 명기되어 있다.[7] 다만 사이트는 현재 더 이상 운영을 하지 않고 네이버 카페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8] 그래서 주성치 이름도 시 구절에서 따왔다.[9] 그는 소림축구와 쿵푸허슬로 상을 휩쓸 때, 이소룡 선생께 가장 감사하다고, 그가 없었으면 지금의 내가 없다고 언급한다. [10] 명칭은 배우 훈련반이지만, 원래 홍콩의 연예계 자체가 직금의 우리나라 아이돌처럼 배우들에게 만능 엔터테이너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다양한 부문의 오디션을 진행한다.[11]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했고 가난 때문에 중학교는 15살에 졸업도 못 하고 중퇴해버린데다 삼촌 집에 얹혀 살며 잡일을 해주는 처지에 같이 어울릴 만한 친구 한 명 없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양조위에게 자신도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했다며 주성치가 먼저 말을 걸었고 이후로 절친한 친구가 됐다고 한다. 둘이 동갑일 뿐만 아니라 생일도 고작 일주일밖에 차이가 안 났다.[12] 女媧行動. 거대한 권력에 의해서 시민의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억압, 말살시킨다는 홍콩에서 민감하게 여기는 소재를 여과 없이 담아서, 방영 당시 홍콩에서 상당한 논란을 낳았던 작품이다.[13] 1982년 버전 천룡팔부에서 거란군 병사로, 1983년 버전의 사조영웅전에서는 송나라 병사와 개방의 거지패거리 등을 맡았다.[14] 그 당시 감독이 두기봉이었다.[15] 참고로 주성치가 이수현의 눈에 띈 계기는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인데 나이트클럽에서 너무 잘 놀아서라고 한다(...). 그리고 이수현 주연의 <벽력선봉>에서 나이트클럽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이 재현(?)되었다.[16] 한국에서는 이수현이 '주성치가 나를 배신했다'고 말한 것이 알려져있어서 주성치를 인정없는 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뒤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수현이 먼저 주성치를 '개처럼 일한다'고 욕했다. 따지고보면 주성치가 이수현에게 휘둘리다가 코미디 영화로 성공하여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주성치는 이수현에게 욕을 들어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17] 성룡, 주윤발, 이연걸 등.[18] 유진위 감독은 도성에서 대만 조직 보스로 등장했다.[19] 당시 주성치를 소개하는 mc로는 임하룡과 이경규가 나섰다.[20] 한국에선 '서유기 : 모험의 시작'이란 타이틀로 2015년 2월에 개봉되었다.[21] 그런데! 그런 그가 NG를 한번도 외치지 않은 배우가 있다. 소림축구에서 갑자기 도솔라시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쿵푸허슬에서 엉덩이를 까고 나와 주인아줌마 물이 안나와요 라고 했던, 한번 보면 절대로 잊을수 없는 '하문휘'라는 배우다. [22] 주성치의 평소 말투를 듣고 싶다면 그의 여러 인터뷰를 찾아보면 된다. 영화에서의 모습과 달리 인터뷰때는 엄청 느리고 생각도 많이 하고나서 말한다. 보통화를 하는 인터뷰보다는 광둥어로 된 인터뷰를 찾아보는게 더 좋다. 왜냐면 주성치는 보통화를 잘 못하기 때문에 보통화로 말하면 안그래도 느린 말투가 더 느려지고, 간결한 말이 더 간결해진다.[23] 번외로, 사실 개그맨이나 개그 전문배우들에게 흔히 언급되는 현상으로 유명 개그 전문배우들은 대부분 실제로 보면 동일인물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과묵하다고. 맹구로 유명했던 개그맨 이창훈도 실제로는 아주 점잖고 과묵한 편이었고, 짐 캐리도 그런 케이스. 이건 개그만화가들도 비슷하다고 한다. 짧은 컷 내에서 독자를 웃기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하는 특성상 작가 본인은 굉장히 예리한 경우가 많다고.[24] 심지어 파티에 참석할 때도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주변 사람들은 다 파티복인데... [25] 성룡은 주성치 영화 희극지왕에 반짝 출연한다. 성룡의 영화 빅 타임에 주성치가 카메오로 출연해준 적이 있어서 보답의 의미로 출연한 것이라고 한다.[26] '''잭 블랙'''과 '''앤 해서웨이'''를 캐스팅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취소된 지 한참 뒤에 네이버 영화에서 뒤늦게 영화정보로 띄웠고, 많은 이들이 취소된 줄도 모르고 미치도록 기대하는 덧글들을 달았다.(...) 현재는 네이버 영화정보에서도 지워졌다.[27] [image] [28] 한국에서는 그냥 빈칸이다...... [29] 당시 홍콩에는 저작권 개념이 없어서, 할리우드 영화든 일본 만화든 마구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차용해서 영화를 찍어냈다.[30] 영화에서 삼장이 'Only You를 부른 이유는 삼장이 월광보합을 이용하여 먼 미래, 즉 현대의 세계에도 갔다 왔다는 걸 암시하는 복선이다.[31] 동성서취는 동사서독 촬영 중 왕가위 감독 특유의 촬영 스타일로 인해 촬영 자체가 예정 스케줄보다 늦어지게 되자 제작비도 벌고 배우들의 스트레스도 풀어줄 겸 배우들의 대기 시간을 이용해 게릴라식으로 촬영되었고, 동성서취 촬영을 마친 후에도 동사서독 제작이 배우들 중 일부가 교체되고 녹음과 장비 문제 등으로 계속 지연되자 왕가위 감독이 휴가차 홍콩에서 찍은 영화가 중경삼림이다.[32] 쿵푸허슬에선 중경삼림에 나온 Mamas and Papas의 Californian Dreaming을 개사하여 부르기도 하였다[33]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슬로우모션 개그를 오맹달과 함께 재연한다.[34] 저 유통기한 드립의 원본이 중경삼림이라는 것은 당연한 소리다.[35] 관련 내용은 중국 바이두 사이트에서 찾을수 있다. 링크[36] 왕가위를 발굴한 삼합회 간부 출신의 영화 제작자. 삼합회 간부이지만 영화 애호가로서 삼합회 조직원들이 영화판에 개입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고 한다. 자세한 얘기는 동성서취 항목 참조.[37] 성씨로 쓰일 때 '''상'''으로 발음한다.[38] 형인 상화강과 달리 이쪽은 전형적인 삼합회 스타일로 배우들을 협박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상화강이 동생을 호되게 꾸짖고 배우들을 달래는 노력 끝에 영화 제작을 속행할 수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39] 빚에 시달리고 있던 장철 감독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헌정 영화로 영화의 수익금을 장철 감독이 가져갔다. 오우삼, 서극, 정소동, 이수현, 강대위, 적룡, 오마, 성규안, 진관태 등 장철 감독의 제자들이나 동료들, 그리고 당시 난다 긴다하는 홍콩 영화인들이 이벤트성으로 총출동 했던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오우삼 감독의 이름을 내세웠지만 오우삼의 단독 연출작이 아니라, 오마와 공동 연출을 했는데, 오우삼과 오마는 알려졌다 싶이 장철의 조감독으로 장철에게 영화를 배운 사람들이다. 주성치는 이 영화에서 조직의 부하로 나와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도 영웅본색처럼 엑스트라 수준이 아닌 조금 비중이 늘어난 배역이자 주성치의 멀쩡한(?)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인데 후반에 뜬금없이 죽는 것이 함정.[40] TV 드라마가 아닌 영화에서의 호흡을 맞춘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다.[41] 도성 개봉일이 1990년 6월 10일이고, 쌍용쟁패 - 용봉가족의 개봉일이 1990년 4월 26일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영화는 주성치가 도성을 시작으로 추후에 여러 코미디 영화 및 패러디 영화 전문 배우로 거듭나기 이전 사실상 마지막으로 출연한 웃음기 없는 영화이다.[42] 영화의 OST는 유덕화가 불렀다.[43] 도성의 초대박 흥행으로 이후 코메디 영화 출연으로 방향을 바꾼다.[44] 촬영은 90년, 개봉은 91년 2월.[45] 주성치가 당구천재 촌뜨기 무도인으로 나온다. 무술과 스포츠를 접목했다는 점에서 소림축구의 전신인 셈.[46] 특별출연[47] 이소룡의 정무문 오마쥬..라고는 하지만 도장 이름, 동아병부 현판 깨기 정도 말고는 오마쥬라고 할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도성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48] 90년작인 무적행운성과 함께 보면 더 재밌는 작품. 옥보단으로 유명한 엽자미도 출연했다.[49] 촬영은 91년, 개봉은 92년 1월.[50] 촬영은 91년, 개봉은 92년 1월. 인기스타 라디오 dj로 나온다.[51] 주인과 함께한 첫 영화[52] 촬영은 92년, 개봉은 93년 1월.[53] 다시 보니 선녀 같다로 유명한 짤방의 원작. 여기서 추향 역을 맡은 배우는 공리.[54] 촬영은 93년, 개봉은 94년 2월.[55] 촬영은 93년, 개봉은 94년 3월.[56] 94년 동시 촬영. 월광보합은 95년 1월, 선리기연은 95년 2월 개봉.[57] 촬영은 95년 11월 23일에 개시하여 96년 1월에 완료. 개봉은 96년 2월.[58] 촬영은 96년, 개봉은 97년 2월.[59] 법정물로 주성치는 변호사로 나온다.[60] 원제는 '행운일조룡'.촬영은 97년, 개봉은 98년 2월. 한국에서는 <식신2>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 극중 주성치가 빵잡의 요리사로 등장하며 연애에 박식한 사람으로 나온다. 식신의 정식적인 후속작이 아니여서 초능력을 쓴다거나 그런 거 없다.[61] 촬영은 98년, 개봉은 99년 2월.[62] 특별출연[63] 링을 패러디한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다.[64] 홍콩 개봉판 대호 목소리 역[65] 본작을 마지막으로 배우보다는 감독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66] 장백지가 내레이션으로 참여.[67] 도성, 도협, 신정무문, 당백호 점추향.[68] 서유기, 식신, 홍콩 마스크.[69] 희극지왕, 소림축구, 쿵푸허슬.[70] 소림축구, 쿵푸허슬, 장강7호를 더빙했다.[71] 광동어로 읽으면 대충 다빈치가 된다.[72] 당시 곡덕소가 쓴 각본에 대해 감독은 이 정도면 괜찮다고 했으나 주성치가 불만족스러운 의견을 내어서 곡덕소는 가유희사 각본가에서 강판될 위기에 처했고 이에 오기가 생긴 곡덕소가 당시 주성치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을 밤을 새서 모두 보고 분석해서 에펠탑 키스 등의 명장면이 담긴 새 각본을 들고 왔다고 한다. 주성치는 이 각본을 보고 매우 만족해했다고.[73] 쿵푸허슬에서 돼지촌 주인부부의 남편으로 캐스팅 예정이었다고 한다. 결국 스턴트맨으로 유명한 원화가 배역을 맡았다.[74] 사실 이전에도 한 번 단독 주연으로 드라마 제의가 왔었지만 자신의 지병 때문에 거절했었다고 한다. 이후 다시 들어온 제안을 쿵푸허슬 출연 문제로 거절한 것.[75] 결국 2021년 2월 오맹달본인이 사망하여 영원히 출연할수 없게되었다[76] 주성치의 영화에서 손오공이 아주 건방진 자세로 여의봉을 목 뒤에 얹은 포즈.[77] 이쪽 역시 홍금보를 대놓고 싫어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과거에 홍금보에게 무술을 배울 때 엄청나게 인격모독을 당했다고. 알다시피 홍금보의 성질머리는 예전부터 더럽기로 악명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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