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덕화
1. 개요
유덕화는 홍콩 출신의 영화배우, 가수, 작사가, 작곡가, 영화 연출가, 영화 제작자다. 홍콩배우 중에서도 압도적인 잘생김과 분위기를 담당했다. 그는 과거 대한민국에서 인기를 끈 일명 홍콩 사대천왕 중 한 명으로,''' 홍콩 영화계의 레전드급 배우다.''' 우수에 찬 눈빛, 칼날같이 날카로운 콧날등 역대급 외모의 소유자.
외래어 표기법에 의한 발음 표현은 류더화. 북경에서는 Liú Déhuá라고 읽으나 광동어로는 Lau⁴ Dak¹waa⁴(라우딱와)라고 읽는다. 사실 홍콩 배우들은 모국어로 광동어를 쓰는데, 대한민국에서 중국의 표준어는 북경어 표기법으로 통일해서 표기한다.[4] 일본에서는 홍콩 배우들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사용해서 유덕화는 '안디 라우' 라고 해야 말이 통한다.
2. 생애
2.1. 20세기
1961년 9월 27일 6남매(2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난 유덕화는 홍콩의 방송국인 TVB 연예인 훈련반 10기 출신[5] 으로, 홍콩 TVB 드라마에서 잇달아 굵직한 배역을 맡으며 중국어권은 물론 국내 팬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다. 대표작으로 '83 <신조협려>[6] 에서 양과, '84 <녹정기>에서 강희제를 연기했다. 녹정기는 원작의 스케일 때문에 일부 개작이 이루어졌지만, 위소보 역을 맡은 양조위와 함께 초절한 싱크로율을 보였다. 아직도 많은 중드 팬들이 이 작품을 녹정기 가운데 최고로 꼽는다.
당시 TVB에선 주연을 맡을 만한 남자 배우들이 모두 떠나는 바람에 신인급 배우들을 상당히 많이 띄워주며 기회를 줬고 그 중에서 특별히 유덕화와 탕진업, 묘교위, 황일화, 양조위를 '''오호장'''(五虎將)이라고 하여 TVB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였다.[7] 이들은 모두 TVB 연예인 훈련반에서 배출한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었다.[8]
1982년에 영화 <채운곡>과 <망향(원제목 : 投奔怒海 투분노해)>에 출연하면서 여러 영화에도 얼굴을 비췄고, 1985년에 음반 <지지도차각애니(只知道此刻愛你, 광동어 앨범)>를 내면서 가수로서 활동도 시작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때까진 스타라고 언급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부터 영화 출연 작품 수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 엄청나게 다작을 하며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다만 이런 다작의 배경은 삼합회의 협박 때문으로 찍기 싫은 영화들까지 억지로 찍어야 했다는 말도 있다. 다만 이때까지도 유덕화의 영화 흥행성적은 본인의 원톱 주연보단 주윤발, 성룡 등 스타급 배우와 함께 찍은 영화가 압도적으로 히트를 쳤다.
국내에 카지노 무비 붐을 일으킨 1989년작 <지존무상>은 알란 탐과 유덕화의 공동 주연 작품이지만, 극의 전개 과정 상 알란 탐이 유덕화에 비해 본래적인 주인공에 가깝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알란 탐보다 유덕화의 인지도가 월등히 높고, 유덕화가 연기한 캐릭터가 의리의 상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유덕화의 영화처럼 기억되고 있다.
물론 지존무상에서의 역할은 원톱이 아니지만, 임팩트로는 주인공보다 더 매력이 있는 캐릭터긴 했다.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순정파 터프가이 캐릭터였으니. 지존무상 초반부 교도소 신에선 유덕화인지 몰라볼 정도로 팅팅 부은 얼굴로 나오지만, 이후 영화가 진행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덕화의 얼굴이 등장한다. 이때 갓 출옥한 유덕화를 마중나온 여인이 관지림으로, 관지림은 영웅본색 2에서 배신자 역할을 맡았던 중견배우 관산의 딸로 유덕화와 영화에서 커플로 나온 적이 많아, 둘은 '스크린 커플'로 불리기도 했다. 여튼 이때부터 유덕화는 한국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다 1990년 오천련과 함께 출연한 두기봉 제작 진목승 감독의 <천약유정>이 히트를 치면서 비로소 흥행 배우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제목이 없어 보였는지 국내에 들어올 땐 <천장지구>로 창씨개명(...)당했다. 그런데 1993년에 유덕화가 진짜 <천장지구>란 제목의 영화를 찍는 바람에 국내에서는 천장지구 속편(천장지구 2 - 속 천장지구)이라는 부제목을 붙여서 수입해야 했다(...). 심지어 내용과 제목 자체가 <천장지구>와 전혀 상관이 없는 영화 <1/2 차동상(1/2次同床)(1996년 홍콩 개봉작)>은 <천장지구 3 - 천장지구 완결>라는 제목으로 1999년에 수입되었다. <천장지구>에서 보여준 유덕화의 청재킷과 오토바이는 당시 청년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켜 한동안 유덕화 흉내를 내는 젊은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국내가수 핑클은 '당신은 모르실거야' 뮤직 비디오에서 이 영화 패러디를 하기도 했다. (이효리가 맡은 역.)
천장지구에서 보여준 유덕화 특유의 캐릭터는, 천장지구와 지존무상보다 이전에 출연한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 <열혈남아[9] >과도 비슷하다. 터프가이 주인공(유덕화)를 정점으로 그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오천련, 장만옥), 어리숙하고 충동적인 친구/후배(오맹달, 장학우), 조직 내부의 갈등, 남자 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결말 등 구성이 비슷한데 유덕화의 대중적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극대화시키고 싶었던 제작자 등광영의 입김이 들어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장만옥, 장학우와 함께 출연한 열혈남아의 성공 이후 왕가위 감독의 후속작인 아비정전에도 출연했는데 유덕화, 장국영, 장만옥, 양조위, 유가령 등을 출연시킨 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내용이, 열혈남아 스타일의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라서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열혈남아에 출연했던 장학우가 이후 왕가위가 연출한 동사서독에 출연하고 아비정전의 장국영, 양조위가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었음에도 데뷔작의 주인공 유덕화는 아비정전 이후로 왕가위 작품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열혈남아와 아비정전을 제작한 사람은 등광영이라는 인물로, 대만 출신이지만 젊은 시절엔 주윤발 못지 않은 훤칠한 인물에 자신이 인기배우이자 홍콩 영화판의 실력자였다. 등광영은 자신이 키우던 풋내기 감독 왕가위가 (흥행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대로) 만든 아비정전의 실패로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만다. 홍콩 영화계의 거물이자 삼합회와도 연이 닿는다는 (아버지가 대만 삼합회 쪽 인물) 등광영이 왕가위를 손봐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소문이 당시 홍콩 연예계에 돌 정도였다.
왕가위 입장에서는 열혈남아 제작 당시 대중적인 입맛에 맞추도록 요구한 제작자 등광영의 압력 때문에 촬영 내내 고생했다고도 하다. 열혈남아가 대중적으로 성공하자 제작자인 등광영은 홍콩 영화계의 톱스타들을 모아서 왕가위의 신작에 왕창 몰방한다. 열혈남아의 성공 이후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머리가 굵어진 왕가위는 대중적인 영화를 원하는 제작자 등광영의 기대와 달리 자신의 스타일대로 영화를 만들고 그 결과물이 해당영화를 상영 중인 극장에 관객의 난동이 일어났더라는 저주받은 걸작 아비정전. 아비정전 시사회장에서 제작자 등광영이 영화가 아직 완성이 덜 되었다고 기자들에게 언질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등광영은 2011년에 사망했는데, 장례식에 유명 홍콩 배우들은 거의 참석했다고.
<1990년 7월 7일자 KBS2TV 쇼 토요특급에서 십전십미(十全十美)를 부르는 유덕화>
열혈남아, 지존무상, 천장지구의 연이은 히트 이후 영화와 음반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두면서 1990년대 홍콩 연예계에서 절대지존으로 군림, 이른바 홍콩 4대 천왕(유덕화, 장학우, 곽부성, 여명)으로 이름을 떨쳤다. 1990년에는 장국영에 이어 투유 초콜릿의 모델이 되어, 신인 시절의 이영애와 CF에 출연하기도 했다. 광고 촬영 대기 시간 중에, 유덕화는 촬영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며 촬영장의 분위기를 살렸다고 한다. 초콜릿 광고의 주제곡인 영어로 부른 노래 'To you'가 들어간 앨범이 1990년에 한국에서 특별 출시되기도 했다.
<유덕화와 이영애가 모델로 출연한, 투유 초콜릿의 CF 장면 중에 하나>
1991년에 발표한 그의 광동어 노래인 일기주과적일자(一起走過的日子)[10] 는 20세기 홍콩의 대중가요 50곡 안에 선정될 정도로,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 노래가 수록된 동명의 앨범 일기주과적일자(一起走過的日子)[11] 는 역시 1991년에 발매된 광동어 앨범 애불완(愛不完)과 더불어 그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손꼽힌다.
1991년 8월 16일에는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그의 콘서트가 있었다. 투유 초콜릿 주제가인 'To you'를 부르는 장면에서 초대가수로 김민종[12] 이 나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1991년 8월 24일에는 KBS 2TV 토요대행진에서 공연의 실황 일부를 방송해 주기도 했다. 그는 1993년 5월에는 앨범 진정난수(眞情難收)의 홍보차 내한하여, 1993년 5월 23일 코엑스 대서양관에서 신승훈과 조인 콘서트를 했다.# 이 외에도 영화 홍보를 위해 여러 번 내한하여 한국 예능 방송에도 출연하였다.
<1996년 1월 27일자 출발 토요대행진 홍콩특집 - 유덕화편>
1999년 6월 25일에는 잠실 주경기장에서 있던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Michael Jackson & Friends)'에 출연하여, 그의 노래인 일기주과적일자(一起走過的日子)와 분소해(笨小孩)를 불렀다.[14] 그는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의 독일 뮌헨 공연에도 출연하였다.
2.2. 21세기
그는 한국 지면과의 인터뷰에서 발전한 한국 영화 시장에 부러움을 표했다. 참고로 그가 가장 인상깊게 본 한국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여러차례 재감상했을 정도라고 한다.
2002년 무간도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맥이 끊겼던 홍콩 느와르의 부활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이 작품의 주인공인 유건명으로 출연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계속되던 침체기를 벗어나 만능엔터테이너로서 지지않는 태양같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무간도 1편은 아시아는 물론 할리우드에까지 붐을 일으켰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 주연의 디파티드로 리메이크도 했다. 2006년에는 제 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하였다.
2008년에는 그가 부른 'Everyone is No.1'(표준 중국어 곡)이 2008년 하계 패럴림픽의 주제곡으로 선정되었다.
2014년 9월에는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 홍콩 NPC 부회장 자격으로 참가하여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의 관련 영상에서 홍콩, 마카오, 중국의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그의 모습이 여러 번 나오기도 했다. 원래 사비를 들여 개인 자격으로 홍콩의 국가대표들을 응원하려고 했으나, 홍콩 NPC의 요청으로 부회장 자격으로 참가하였던 것이었다.
그는 1992년 패럴림픽 때부터 참관하여 장애인 스포츠 대회가 있을 때마다 선수들을 찾아가 응원하였다고 한다. 그의 관심사 중 하나가 자선활동이라고, 자신의 프로필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홍콩 연예계에서도 자선 활동을 많이 하기로 유명하다.
2014년 12월에는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 시상자로 출연하였다.
2015년에는 대만의 로맨스 코미디 영화 나의 소녀시대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극중 여주 임진심[15] (송운화, 진교은)이 유덕화의 팬으로 나온다. 참고로 제작에 참여한 포커스 필름은 유덕화가 대표로 있는 곳.(...)
유덕화는 최근(2013년)까지도 단독 콘서트를 할만큼 엔터테이너로서 전성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결혼 후 출연 작품 수를 줄였지만 주연으로 꾸준히 출연하고,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의 제작, 투자 등을 담당하면서 영화영역에서도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딸이 아직 어린지라(2012년 5월생) 육아에도 시간을 보내느라, 단독 콘서트는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도 했고, 출연 작품 수도 결혼 이전에 비해 많이 줄였지만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ost는 꾸준히 부르고 있다.
2017년 1월 17일, 태국에서 광고 촬영 중 말에서 떨어진 후, 말이 유덕화의 허리를 밟아 척추 부위와 골반 부위에 골절상을 입었다. 관련 기사
2017년 3월에 퇴원하여,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동년 4월에는 제작, 투자에도 참여한 '탁탄전가' 시사회에서 영상으로 관객에게 근황을 전했다. 6월에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2018년에는 중국 대륙에서 콘서트를 연다'는 공식 발표를 하였다.
동년 8월 7일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See you soon."의 내용이 담긴 글을 올려 복귀를 암시했으며, 8월 8일 자신이 주연과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 협도연맹(侠盗联盟)의 홍보차 시나연예와의 인터뷰에서 건강을 회복하였다는 소식을 알렸다.관련기사
이후 8월 10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협도연맹의 상영회에도 참석하였다.관련기사
3. 여담
2007년 연창회 도중 경비요원에게 끌려나가는 자신의 팬을 보호하려고 무대에서 뛰어내려 제지하는 모습이 유명하다. 씨엔블루, 샤이니 매니저 폭행사건이 벌어진지 얼마 안되어, 이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된 탓에 대인배로 더욱 이슈가 되었다.[16]
30대 시절 연예인으로서 잘 나가던 시기일 때 파산 직전까지 몰린 적이 있다. 신세 졌던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성격 때문에 벼라별 인간한테 거액을 빌려줬다가 돈을 떼였는데 거의 " 덕화야 또 속냐! " 수준으로 한번 거액을 떼인 사람한테 또 돈을 빌려 줬다가 떼어 먹히기도 했다고. 워낙 이 때 고생을 해서 40대부터는 금전관리를 철저히 했다고 한다.
미중년이며 동안이다. 이 사람도 어지간히 안 늙는다. 2018년 기준 만 57세로[17] 심지어 <무간도>에서 황 국장역으로 출연하는 황추생[18] 과 '''나이가 같다.'''
2003년에는 포청천 영화판인 어묘애상서[19] 에 황추생과 각각 전조와 포증으로 출연해서 무간도를 본 관객들에게 소소한 웃음 포인트를 선사했다. 드라마 판의 충실한 전조와는 다르게 포증이 이것저것 쪼려고 할 때마다 손날 한번 들어올리며 겁주는 게 백미. 사실 전조는 관부 소속이기 이전에 강호의 협객이라 맘먹고 덤비면 완력으로는 당연히 포증이 밀린다.
사생활 공개를 꺼리기로 유명했는데, 2009년에 '''품절남'''임을 고백해서 팬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20] (사실 대만 매체에서 먼저 유덕화의 혼인신고서를 공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고 유덕화가 이를 인정한 것.) 다만 유덕화의 팬들도 나이 먹을만큼 먹어서(...) 이미 결혼해 애까지 낳고 사는 사람들도 많았던지라, 충격보단 오히려 혼인 사실을 인정한 뒤에 그의 결정을 응원한 팬들도 많았다고 한다. 참고로 아내 주리첸은 말레이시아 미인대회 출신으로 유덕화와 무려 22년간 교제해 왔다고 한다. 양조위만큼이나 유덕화도 엄청난 순정남이다.
2009년 유덕화는 중혼 논란에 휩싸였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85년 12월 30일 당시 여자친구였던 유가흔과 식을 올리고 결혼 증서에 사인은 하는 등의 혼인 서약은 했지만 신고는 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는 미혼이었기 때문이다. 유가흔의 어머니는 유덕화가 인기 상승세를 달리고 있었기에 법적으로 등록하지 않았으며, 식을 올리고 난 후 얼마되지 않아 유덕화와 유가흔은 결별하는데 이들의 결별 원인에 주리첸이 제 3자로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영웅본색에서 주보의가 맡았던 재키 역은 유덕화의 전 여자친구인 유가흔에게 먼저 제의가 들어왔으나, 유덕화의 반대로 출연하지 못하였다. 2009년 유가흔은 중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83년 경 영웅본색 섭외가 들어왔으나 유덕화가 하지 말라고 해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유가흔은 유덕화가 장국영에 대한 라이벌 의식 때문이 아니라 출연하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2014년 주윤발, 양조위, 황추생 등과 더불어 홍콩 우산 시위를 지지했다.# 이 운동은 중국 대륙에서 못마땅하게 본 것은 사실이지만, 홍콩의 내정에 관련된 문제이므로, 간섭을 극히 삼갔으며, 중국이 보장한 홍콩 자치권의 문제였지 독립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 당국측이 문제삼기도 어려웠다. 그러므로 이때문에 기피인물이 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주윤발, 양조위도 대륙에서 문제없이 활동하고 있다.[21]
국내에선 우산 시위에 대한 지지로 유덕화가 중국 공산당에게 탄압을 받고 대륙영화엔 출연이 금지됐다는 낭설이 있는데, 2015년 이후에도 대륙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었으며, 특히 2015년에는 '''중국 공안부의 지원을 받는''' 경찰영화인 <解救吾先生 (해방오선생)> (Saving Mr. Wu)에도 문제없이 출연했고, 중국이 주최하는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그의 영화가 더빙되었을 경우 주로 KBS에서 홍시호가 전담했으며, 간혹 MBC에서 신성호가 맡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홍시호가 더 잘 어울린다는 평이 많다.
뱀발로 그의 영화 중 하나인 도망자에 반 다크홈이 흑호파의 보스 흑호로 등장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그쪽으로 한국에 알려지기도 했다.
4. 디스코그래피
4.1. 광동어 음반
- 只知道此刻愛你 / 지지도차각애니 (1985)
- 情感的禁區 / 정감적금구 (1987)
- 回到你身邊 / 회도니신변 (1988)
- 劉德華 / 유덕화 (1989)
- 共你傷心過 / 공니상심과 (1989)
- 可不可以 / 가불가이 (1990)
- 再會了/ 재회료 (1990)
- 愛不完 / 애불완 (1991)
- 一起走過的日子 / 일기주과적일자 (1991)
- 不可不信...缘 / 불가불신... 연 (1991)
- 愛的空間 / 애적천공 (1992)
- 真我的風采 / 진아적풍채 (1992)
- 答案就是你 / 답안취시니 (1993)
- 愛意 / 애의 (1993)
- 五時三十分 / 5시30분 (1994)
- 情未鳥 / 정미조 (1995)
- 在乎您 / 재호니 (1996)
- 真生命 / 진생명 (1997)
- 你是我的女人 / 니시아적여인 (1998)
- 愛無知 / 애무지 (1999)
- 心藍 / 심람 (2000)
- 如果有一天 / 여과유일천 (2003)
- Coffee or Tea (2004)
- 聲音 / 성음 (2006)
- 希望·愛 / 희망. 애 (2009)
- 我們的劉德華(粵) / 아문적유덕화 (광동어) (2012)
4.2. 보통화 앨범
- 回到你身邊&法內情 / 회도니신변&법외정 (1989)
- 愛的連線 / 애적연선 (1989)
- 如果妳是我的傳說 / 여과니시아적전설 (1990)
- 我和我追逐的夢 / 아화아추축적몽 (1991)
- 來生緣 / 내생연 (1991)
- 謝謝你的愛 / 사사니적애 (1992)
- 真情難收 / 진정난수 (1993)
- 一生一次 / 일생일차 (1993)
- 忘情水 / 망정수 (1994)
- 天意 / 천의 (1994)
- 真永遠 / 진영원 (1995)
- 因為愛 / 인위애 (1996)
- 相思成灾 / 상사성재 (1996)
- 愛如此神奇 / 애여차신기 (1997)[22]
- 愛在刻骨銘心時 / 애재각골명심시 (1997)
- 人間愛 / 인간애 (1999)
- 男人的愛 / 남인적애 (2000)
- 天開了 / 천개료 (2001)
- 美麗的一天 / 미려적일천 (2002)
- 再說一次我愛你 재설일차아애니 (2005)
- 一隻牛的異想世界 / 일척우적이상세계 (2007)
- 我們的劉德華(國) / 아문적유덕화(표준중국어) (2012)
4.3. 보통화+광동어 앨범
- Memories (1995)
- 笨小孩精选 / 분소해정선 (1998)
- 回家真好 新曲 + 精选 / 회가진호 신곡 + 정선 (1999)
- Just For You (2000)
- 夏日Fiesta / 하일 Fiesta (2001)
- 繼續談情 / 계속담정 (2005)
- Everyone is No. 1 (2007)
- 長途伴侶 / 장도반려 (유덕화의 '도지녹차' 광고 주제곡 수록앨범) (2009)
- 忘不了的 / 망불료적 (2010)
5. 영화
5.1. 1980년대
5.2. 1990년대
5.3. 2000년대
5.4. 2010년대
5.5. 2020년대
6. 제작
7. 수상
7.1. 영화 부문
[1] 본명이라고 알려진 '유복영'은 학창 시절에 쓰던 '학명(學名 혹은 訓名)'으로 유덕화의 본명은 유덕화가 맞다. 유덕화는 대만의 TV 예능 강희래료(康熙来了)에서 자신의 본명은 유덕화라고 이야기하였다. 자혜는 작사시 필명, 혜과는 불교식 법명이다.[2] 유덕화는 홍콩의 '黃大仙天主教小學(Wong Tai Sin Catholic Primary School/ "WTSCPS")'와 '可立中學五年級畢業 - 嗇色園主辦 (Ho Lap College - Sponsored by the Sik Sik Yuen)'을 졸업했다. 한국의 교육과정으로 환산하면 고졸에 해당한다.[3] 그의 근황, 프로필, 출연 작품 등 그에 대한 공식 자료가 올라오는 그의 홈페이지 겸 공식 팬클럽인 화자천지 (華仔天地, Andy World Club)의 공식 홈페이지다. 화자천지를 1988년 6월 18일에 창단했기 때문에 홈페이지 주소가 awc618이다.[4] 한국에서 중국 인명의 경우 신해혁명 이후 출생자들은 출생지역에 상관없이 표준중국어 발음으로 된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홍콩 출신 인물들은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자신의 이름이 모국어나 다름없는 광동어가 아닌 표준중국어 발음로 불리는 것을 전혀 선호하지 않는다. 광동어는 중국어의 방언 중 하나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표준중국어와는 통역 없이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며, 홍콩 사람들에게 표준중국어는 그냥 중요한 외국어 정도로 취급된다.(요녕성 출신 장위안이 혜림의 광동어를 아예 못 알아들은 것도....) 어느 누가 자기 이름을 자기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소개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원음 중심의 중국어 표기 체계를 고치던가 광동어의 한글 표기 체계를 마련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5] 배우 양가휘(梁家輝, 영문명 Tony Leung Ka-fai)와 훈련반 동기다.[6] 우리나라에서 VHS 출시때 '신조영웅문'이란 제목으로 나왔다.[7] 1991년에는 이들 다섯명을 주연으로 하여, 증지위 감독의 '오호장 (원제목 : 五虎將之決裂, The Tigers)'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7년엔 양조위를 제외한 4명이 영화 '형제'에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8]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연예인들 중에서 TVB 연예인 훈련반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당시 TVB 연예인 훈련반은 많은 연예인들을 배출했으나 지금은 예전 같지 않고 이름만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9] 1988년에 홍콩과 대만에서 개봉된 영화로, 대만과 국내에서는 '열혈남아'로 제목이 바뀌었다. 영화의 원래 제목은 몽콕 카르멘(旺角卡門;한국어로 읽으면 왕각가문이나, 卡(지킬 잡)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왕각잡문 혹은 몽콕잡문으로 제목을 쓴 사람들이 많다. 중국어에서 '卡門(간체자로 卡门)'이라는 단어는 카르멘(Carmen)을 음차한 단어기에 '잡문'이 아닌 '가문'으로 읽어야 한다. 卡이 음역자로 쓰일 때는 '잡'이 아니라 '가'로 읽는 것이 맞다.[10] 그가 왕걸과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지존무상 2 - 영패천하'의 주제곡으로, 표준 중국어 버전은 영화 '91 신조협려'의 OST인 내생연(來生緣)이다.[11] 유덕화가 부른, 드라마와 영화의 OST들만 들어있는 광동어 앨범으로, 그의 앨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앨범이기에 여러 번 발매되었다.[12] 장국영, 유덕화에 이어 투유 초콜릿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13]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저렇게 다수의 연예인들이 수평선으로 서서 스튜디오 녹화를 하는 예능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모았다. 코너 3개 정도로 구성되었고 촬영한 비디오를 감상 후 수다를 떠는 스타일로 방영되었고 영상 속 MC인 임백천을 비롯하여 최수종 역시 메인 MC로 프로그램을 이끌었다.[14] 공연 실황 영상에서는 Andy Lau로 소개되어 나온다. 일기주과적일자(一起走過的日子)는 한국에서 열었던 그의 콘서트(1991년과 1993년)에서도 불렀던 노래다.[15] 중국어로 린전신.[16] 이 영상은 2007년 당시에도 한국의 TV 뉴스와 인터넷 기사에도 소개된 사례지만, 씨엔블루 매니저와 샤이니 매니저의 폭행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도 다시 주목받았다.[17] 동갑내기 한국 연예인은 배우 이한위, 김응수, 양미경 등과 개그맨 김한국, 가수 주현미가 있다.[18] 본명은 Anthony Perry로, 영어 활동명인 Anthony Wong은 예명이다. 참고로 아버지가 영국인이고 어머니가 중국인.[19] 한국판 제목은 천방지축.[20] 사실 2009년에 부인 주려천(朱麗倩, 영문명 : Carol Zhu)과의 결혼을 고백하기 이전부터 유덕화와 부인 주려천 사이에 자식이 있다는 기사가 여러 번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파파라치 컷에 공개된 어린이 사진 중 일부는 유덕화 친누나의 손자였으며, 유덕화 본인은 숨겨진 자식이 있다는 기사를 모두 부인하였다. 난임부부였던 터라 홍콩에서 인공수정을 하기 위해선 혼인 신고가 전제 되었기에 2008년에 혼인 신고를 했지만, 이를 대중에게 바로 공개하기가 두려웠다고 2009년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밝혔던 것이었다. 유덕화의 공식 홈페이지인 www.awc618.com 에서 기록한 가족은 유덕화의 부모님, 누나 셋, 남동생 유덕성(劉德盛), 여동생, 그리고 부인 주려천, 2012년 5월 9일에 태어난 딸 유향혜(劉向蕙, 영문명 : Hanna Lau) 뿐이다. 딸 유향혜의 얼굴은 2015년에 일부 언론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 9월 유덕화의 생일 파티 때 부인과 딸도 참석했으며, 유덕화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딸과 찍은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21] 주윤발은 2015년 대륙영화 <화려상반족>을 출연했다. 다만 양조위는 2014년-16년까지 활동이 없는데 대륙뿐만 아니라 홍콩에서도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당국이 기피해서 활동을 못했다는 것은 낭설이다.[22] 신곡과 리메이크 곡(예 : 장학우의 문별을 리메이크 했다.)이 같이 들어간 앨범이다.[23] 광동어 녹음 판본에서는 와디로 발음되며, 자막에 따라 아화로 나오는 곳도 있다.[24] 상의 정식 명칭은 最受歡迎男主角獎로, 남우주연상으로 번역되는 最佳男主角과는 다른 상이며, 2006년과 2007년에만 존재했던 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