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 시프레디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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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모습
Rocco Siffredi
이탈리아의 포르노 배우, 감독, 제작자. 1964년 5월 4일 생이다. 포르노 배우로써 상당히 유명하고, 입지전적이기도 한 인물. 유럽 포르노 시장에서 얻게 된 유명세를 바탕으로 미국에 진출하였으며, 미국 포르노 시장에 유럽 남자 배우들이 데뷔할 수 있게 파이프 라인을 만든 사람이자 선구자. 2010년대 중후반 기준 미국 포르노 시장에서 유럽 남배우들의 입지는 상당한데, 이렇게 유럽 남배우들이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시발점은 이 사람 덕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 배우 경력
본래 이탈리아의 무명 모델이었다. 그러다가 프랑스의 섹스 클럽(...)에서 포르노 배우들, 그리고 포르노 감독 막 도셀과 알게 된다. 처음에는 포르노를 찍지 않았으나, 결국 돈이 궁해져서 인 지 막 도셀의 작품에 출연. 역시 첫 출연 이후 한동안 모델 일에만 집중하나, 결국 본격적으로 포르노에 뛰어들기로 마음먹고 1989년 경부터 완전히 포르노 배우로 전업한다. 계속 포르노 배우로 일하는 와중 1993년에 역시 포르노 배우인 로사 카라치올로[1] 와 혼인도 하고 아이도 얻으며 가정을 얻는다.
막 도셀은 부드러운 스토리 텔링 기반의 포르노를 잘 찍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실제로 당시 포르노 시장은 이런 스타일이 대세였다. 하지만 로코 시프레디 본인은 워낙 천성이 새디스트기도 했고, 보다 더 자극적인 스타일을 시도해보길 원했다. 그래서 점점 거친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고, 연기도 점점 거칠어졌다. 나중에는 본인이 직접 제작에 나서 점점 연기의 수위를 높여갔다.
그러다가 결국 스토리 텔링을 완전히 집어치우고 그냥 '이건 연기 아니고, 이건 진짜 섹스입니다.' 하고 섹스만 하는, 이른바 곤조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본인이 제작자로 나서 이 곤조 물을 대량으로 찍어낸다. 후에 좀 더 자세히 기술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그의 거친 연기 스타일이 확립된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이거 거의 강간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자를 막 다루는 그의 스타일은 물론 거부감도 많이 샀지만, 반대로 그와 같은 새디스트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았다.
이후 1990년대 중후반 즈음 그는 유럽 포르노의 알아주는 배우 겸 제작자가 된다. 막 도셀이 본인을 키워줬듯이 본인도 될 것 같은 남성들을 배우의 길로 꼬드기는데, 이 때 로코와 함께 활동한 대표적인 제자가 나초 비달, 토니 리바스, 라몬 노마르, 마누엘 페레라. 웃긴 건 막 도셀은 로코의 새디스트적인 면모보다 잘생긴 외모를 보고 캐스팅했는데, 로코가 캐스팅한 배우들은 마누엘 페레라를 빼면 대개 험악하게 생긴 얼굴에 근육질이고 로코와 똑같이 새디스트적인 면모가 강한 사람들이었다.
한편 이 일련의 패밀리와 함께 로코는 좀 더 큰 시장에서 놀아보기로 한다. 바로 미국 진출. 그런데 로코 본인은 미국에 발판이 거의 없으니, 미국 포르노 회사인 이블 앤젤과 협업을 하기로 한다. 이 협업은 2018년 기준 현재 진행형. 어쨌든 이렇게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로코 시프레디 스타일의 거친 남성 배우들이 이블 앤젤을 통해 미국으로 진출한다.
이들은 2000년대 중반 한창 발을 넓히며 활동하는데, 정작 2004년 경 로코 본인은 한차례 은퇴를 결정한다. 은퇴의 이유는 역시 본인의 아이들. 애들이 점점 자라나는데 계속 포르노 배우 일을 할 순 없었다고. 그렇게 애제자 나초 비달에게 회사의 메인 남자배우 바통을 넘기고 조용히 제작자로 지내려 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섹스 중독.''' 심각한 섹스 중독 증상에 점점 삶의 균형이 무너져 갔고 결국 아내의 동의를 얻고 배우로 복귀한다. 사실 아내는 본인도 포르노 배우였던 만큼 딱히 로코의 배우 은퇴를 바랬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 '우리 의견을 듣고 은퇴한 것도 아니었으니, 복귀할 때에도 우리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다' 가 아내의 복귀에 대한 대답이었다고.
이렇듯 그냥 영상으로만 보면 세계 돌아다니면서 섹스하고 돈 버는 세상 편한 아저씨로 (...) 보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삶은 은근히 복잡하고 위태위태한 아저씨다. 이미 섹스 중독 증상은 젊을 때 부터 있었던 모양. 이를 가톨릭 신앙으로 억누르려 했던 모양인데, 결국 신앙으로 해결하진 못하고 아예 직업으로 삼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신앙심을 버린 것도 아니어서 이런 대립에 의해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피곤하고, 또 가정을 만들었는데 키이런 리처럼 '이게 내 직업인데 뭐가 부끄러워?' 같은 당당한 정신 상태도 아니고 '내 아이한테 포르노 배우라고 말하긴 그렇지' 라고 생각하는 아저씨. 어떻게 보면 참 위태위태한데, 어떻게보면 절묘하게 균형이 맞아떨어져 일상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2016년 티에리 데마이지에르, 알반 테우를라이가 연출한 로코 시프레디 다큐멘터리 로코(Rocco)가 나왔다.
3. 특징
이 사람 이전까지 대부분의 포르노라는 것은 우리나라 에로비디오처럼 최소한의 스토리 텔링을 가진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로코 시프레디를 발굴한 감독인 막 도셀 역시 그런 영상으로 유명했고. 그런데 이 사람 이후 그런 스토리 텔링이나 연기를 걷어 카메라 앞에서 '저는 로코 시프레디고 우리 섹스합니다. 그냥 섹스할 거에요.' 라는 식으로 리얼함을 강조하는 영상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엄청 거칠다.''' 나초 비달, 라몬 노마르, 토니 리바스, 마누엘 페레라 등으로 이어지는 거친 유럽 남성 배우 계보의 시조이자 조상님. 연기하는 여배우를 정말 온갖 방법으로 희롱하고 통제하고 지배한다. 뺨을 때리는 것은 일상에, 머리를 발로 밟기도 하고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딥 스로트로 고속 피스톤 (...) 을 해대고 침을 뱉고 목을 조르고 변기에 머리를 넣고 물을 내리고 목에 끈을 묶고 끌고 다니고... 본격적인 BDSM 영상을 자주 찍는 편은 아닌데, 거의 그 수준에 육박하는 거친 영상을 찍어댔다.
아니 어쩌면 이 사람이 더하다면 더했을 수 있는 게, 킹크류의 본격적인 BDSM 은 본인들도 '이거 까딱하면 다친다' 는 걸 알고 있어서 상당히 통제된 환경에서 정해진 요소들로 촬영하는 반면, 이 사람은 영상만 봐도 상당히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기도 했다. 거기에 본인 취향이 완전히 새디스트였다. 인터뷰에서 '상대 여배우가 두려워하고, 감정적이 되는 게 좋다. 그 눈에 경악과 두려움이 깃드는 걸 보면 흥분된다.' 라고 말했을 정도.
감정적으로도 여자에게 굴욕감을 주는 연출을 많이 해댔다. 대표적인게 한참 섹스를 하다가 여자를 들어서 눕히고 여배우 얼굴에 페이스 시팅을 하고 앉아서 리밍을 받으며 '넌 내 변기야' 라고 굴욕감을 준다던지, 한창 끈적한 정사를 연출하다가 머리 끄덩이를 잡고 여배우를 개처럼 끌고다니며 '넌 내 애완동물이고 창녀에 불과해' 라고 외쳐댄다던지...
이 사람의 전성기 영상은 90년대 중반~ 2000 년대 초중반이다. 그 이전 영상은 이런 스타일을 확립하기 전이라 그냥 평범한 스토리텔링 포르노가 대부분이고 그 이후는 포르노에도 정치적 올바름 문제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많아져 예전처럼 막나가는 영상을 찍진 못했다. 본인이 에너지가 떨어진 것도 있을 테고.
또 2010년대 이후에는 어느 정도 유명세가 있는 여배우들과 작업하며 '거친 섹스' 의 느낌만 나고 전성기처럼 막나가는 영상을 찍진 않는데 이건 아무래도 결국 여배우가 갑인 포르노 시장의 특징 상 유명한 여배우와 연기를 하게 되면 전처럼 사정 안 봐주고 막나가기 힘든 것도 있을 것이다. 전성기 로코 시프레디는 유명 여배우와의 작업을 웬만해서는 지양하고 동유럽의 아마추어 포르노 배우들과 작업하며 여배우의 입김을 최대한 줄이고 자기 스타일대로 막나가는 영상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