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 덴노
1. 개요
일본의 제17대 천황. 이름은 오오에노이자호와케노미코토(大兄去来穂別尊). 중국 기록에 나오는 왜5왕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천황이다.
재위기간은 400년~405년으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길게 과장되어 나오는 이전 덴노들과 달리 100년 동안 정상적이다 못해 짧은 치세의 시기를 보이게 되고, 26대 케이타이 덴노를 기점으로 실제 그대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고사기(古事記)에는 그가 '임오년 정월 3일'에 6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는 기사가 있어, 이 기사 내용이 맞다면 그의 재위기간은 427년 ~ 432년이 되고, 추산하면 태어난 해가 369년이 된다.
2. 일생
닌토쿠 덴노의 장자로 어머니는 가쓰라기노 소쓰히코(葛城襲津彦)의 딸인 이와노히메노미코토(磐之媛)이다.
닌토쿠 덴노 재위 87년(399년) 1월, 부친 닌토쿠 덴노가 붕어한 후, 닌토쿠 덴노의 2남 스미노에나카 황자(住吉仲皇子)가 천황이 될 예정인 오호사자키노미코토 황자를 죽이려고 했다. 그는 형의 약혼자인 쿠로히메를 형의 이름을 빌려 강간했고, 일이 발각되는 게 두렵다는 이유로 '''궁궐을 포위한 뒤 형을 불태워 죽이려 했다.''' 이에 오호사자키노미코토 황자는 닌토쿠 덴노의 3남 미즈하와케 황자(瑞歯別皇子, 훗날의 한제이 덴노)에게 명하여 스미노에나카 황자를 주살하게 하고, 이듬해인 400년 2월에 즉위했다.
재위 2년(401년), 소가노 마치(蘇我満智), 모노노베노 이코후쓰(物部伊莒弗), 헤구리노 쓰쿠(平群木菟), 쓰부라노 오키미(円大使主) 등을 국정에 참여시켰다.
재위 4년(403년) 8월, 여러 국에 구니노후미히토(国史)라 불리는 서기관을 설치하여, 국내의 정세를 보고하게 했다.
재위 6년(405년) 정월에 구라노쓰카사(蔵職)와 구라베(蔵部)를 일으켰고, 같은 해 3월 병으로 인해 와카자쿠라 궁(稚桜宮)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나이는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70세, 『고사기』에는 64세,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에는 67세로 적혀 있다.
사후 모즈노미미하라노미나미 능 (百舌鳥耳原南陵)에 묻힌다.
3. 기타
리추와 한제이의 즉위기간은 대단히 짧은 편이었고, 이후 '''와케'''의 시호는 사라지며 케이타이 덴노의 왕조가 수립된 이후 현대로 내려오게 된다.
4. 가족관계
- 황비皇妃 : 쿠로히메(黒媛)
- 장남 : 이와사카오리치노헤노오시하노미코(磐坂市辺押磐皇子, ?~456)
- 아들 : 미마노미코(御馬皇子)
- 딸 : 아오미노히메미코(青海皇女, 440~484)
- 황후皇后 : 쿠사카노하타비(草香幡梭皇女) - 오진 천황의 황녀
- 딸 : 나카시노히메미코(中磯皇女)[1] - 안코 천황의 황후
- 빈嬪 : 후토히메노이라쓰메(太姫郎姫) - 타카츠루노이라츠메(高鶴郎姫)와 자매
- 빈嬪 : 타카츠루노이라쓰메(高鶴郎姫) - 후토히메노이라쓰메(太姫郎姫)와 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