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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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Ferdinand Viktor Albert Meinrad von Hohenzollern-Sigmaringen. (페르디난드 빅토르 알버트 미인라드 본 호헨졸렌-시그마린겐)
애칭은 Intregitorul (통일왕).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가문(슈바벤계) 당주 레오폴트[1]와 포르투갈 공주 안토니아의 차남으로 독일 지크마링겐에서 태어났다. 루마니아의 초대 국왕으로 뽑힌 숙부 카롤 1세가 자녀가 없자 1889년에 그 후계자로 정해졌다. 가톨릭 교인으로 남는 대신 그의 자녀들은 루마니아 왕국의 국교인 정교회인으로 키운다는 조건이었다. 1893년 빅토리아 여왕앨버트 공의 차남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겸 에든버러 공작 앨프러드와 알렉산드르 2세의 딸 마리아 공주 부부의 큰딸인 에든버러의 마리와 결혼해 3남 3녀를 두었다.
하필 그가 왕위를 이어받은 시점이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였는데, 루마니아 왕국은 1916년에 연합국 편에 참전했다. 이 소식을 듣고 호엔촐레른 가문의 당주이자 독일 제국의 황제였던 빌헬름 2세는 호엔촐레른 가문에서 페르디난트를 제명시켰다. 또한 1년 만에 동맹군에게 전 국토가 점령당했으나, 동맹국 패전 후 루마니아는 영토를 2배로 늘릴 수 있었다. 1922년 대관식을 올렸다.
가정적으로는 영 안 좋았다. 왕비였던 에든버러의 마리는 몹시 문란한 여자였다. 그의 자녀들 중 가장 어린 두 명은 마리의 애인인 바르부 슈티르베이(Barbu Știrbey) 공의 아이들이라는 설이 무성했다. 결혼 전부터 타고난 성격이었던지, 그녀의 아버지였던 에든버러 공작 앨프레드는 그녀가 루마니아로 시집가는 것을 반대했다. 안 그래도 자유분방한 성격의 마리가 외국으로 가게 되면 바람기가 더 심해져 가정을 내팽개칠까 봐 걱정했던 것(...)
거기다 아내만 그런 것이 아닌, 왕세자 카롤 또한 악명 높은 플레이보이였다. 결혼 전부터 지지 람브리노라는 여자와 동거하며 아들까지 낳았으며, 결혼 후에는 불륜을 하다 부인인 그리스와 덴마크의 공주 엘레니와 이혼하고 유대계인 마그다 엘레네 루페스쿠와 동거하였다. 이 꼴을 보다못한 페르디난드 1세는 왕세자의 왕위 계승 자격을 박탈, 1927년 7월 20일에 왕세손 미하이 1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사망한다.[3]


[1] 카롤 1세 문서에서 얘기했던 '''엠스 전보 사건'''의 핵심인물[2] 상당한 미인으로 유명하다. [3] 그러나 이후 카롤은 루마니아에 돌아온 뒤 아들을 폐위시키고(...) 본인이 1930년에 카롤 2세로 즉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