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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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Ferdinand Viktor Albert Meinrad von Hohenzollern-Sigmaringen. (페르디난드 빅토르 알버트 미인라드 본 호헨졸렌-시그마린겐)
애칭은 Intregitorul (통일왕).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가문(슈바벤계) 당주 레오폴트[1] 와 포르투갈 공주 안토니아의 차남으로 독일 지크마링겐에서 태어났다. 루마니아의 초대 국왕으로 뽑힌 숙부 카롤 1세가 자녀가 없자 1889년에 그 후계자로 정해졌다. 가톨릭 교인으로 남는 대신 그의 자녀들은 루마니아 왕국의 국교인 정교회인으로 키운다는 조건이었다. 1893년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차남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겸 에든버러 공작 앨프러드와 알렉산드르 2세의 딸 마리아 공주 부부의 큰딸인 에든버러의 마리와 결혼해 3남 3녀를 두었다.
- 카롤 2세: 1893년 10월 15일 ~ 1953년 4월 4일, 루마니아 국왕
- 엘리사베트: 1894년 10월 12일 ~ 1956년 11월 14일, 그리스 왕국 요르요스 2세의 왕비... 였으나 이혼.
- 마리야: 1900년 1월 6일 ~ 1961년 6월 22일, 유고슬라비아 왕국 알렉산다르 1세의 왕비.
- 니콜라에: 1903년 8월 3일 ~ 1978년 6월 9일
- 일레아나: 1909년 1월 5일 ~ 1991년 1월 21일[2]
- 미르체아: 1913년 1월 3일 ~ 1916년 11월 2일
가정적으로는 영 안 좋았다. 왕비였던 에든버러의 마리는 몹시 문란한 여자였다. 그의 자녀들 중 가장 어린 두 명은 마리의 애인인 바르부 슈티르베이(Barbu Știrbey) 공의 아이들이라는 설이 무성했다. 결혼 전부터 타고난 성격이었던지, 그녀의 아버지였던 에든버러 공작 앨프레드는 그녀가 루마니아로 시집가는 것을 반대했다. 안 그래도 자유분방한 성격의 마리가 외국으로 가게 되면 바람기가 더 심해져 가정을 내팽개칠까 봐 걱정했던 것(...)
거기다 아내만 그런 것이 아닌, 왕세자 카롤 또한 악명 높은 플레이보이였다. 결혼 전부터 지지 람브리노라는 여자와 동거하며 아들까지 낳았으며, 결혼 후에는 불륜을 하다 부인인 그리스와 덴마크의 공주 엘레니와 이혼하고 유대계인 마그다 엘레네 루페스쿠와 동거하였다. 이 꼴을 보다못한 페르디난드 1세는 왕세자의 왕위 계승 자격을 박탈, 1927년 7월 20일에 왕세손 미하이 1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사망한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