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 78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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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787의 개발
3. 1990년 르망 24시
4. 787B의 개발
5. 1991년 르망 24시
5.1. 예선
5.2. 결선
5.3. 신데렐라 스토리
6.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7. 반켈 엔진은 박해를 받았다?
8. 의미
9. 여담


1. 개요


1991년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 마쓰다가 개발한 그룹 C 프로토타입 레이스카이다.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쉽(WSC)와 전일본 스포츠 프로토타입 챔피언쉽(JSPC) 그리고 르망 24시에 출전하기 위해 FIA의 Group C 레귤레이션과 IMSA의 GTP 레귤레이션에 맞춰 개발되었다. 아시아 및 일본 자동차 제조사중 최초로 르망 24시 종합 우승을 해낸 역사적인 차량이다.

2. 787의 개발


모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787B는 1990년에 개발된 마쓰다 787의 개량형이다. 787 이전에 787의 선행 모델이 되는 767과 767B가 있었다. 1989년에 개발된 767은 757을 대체하는 완전히 새로운 섀시 디자인에 신형 4로터 13J 반켈 엔진을 탑재했지만 출전하는 모든 챔피언쉽에서 아쉬운 성적을 거두게 된다. 그래서 마쓰다는 신형 레이스카 개발에 착수한다. 마쓰다의 레이스카 디자인 치프 Nigel Stroud는 767의 섀시 디자인은 유지하되 600마력 정도를 내던 13J 반켈 엔진은 신형으로 교체하기로 한다. 그래서 4로터 R26B 엔진이 개발되어 787의 엔진으로 탑재되었다. 라디에이터 또한 재배치 되었는데 조종석 옆에 있던 767과는 달리 노즈로 옮겨 가면서 노즈로 들어온 공기가 라디에이터를 타고 윈드실드로 뿜어지도록 레이스카의 전면 디자인이 수정된다. 또한 라디에이터를 재배치하면서 차체의 문과 에어 인테이크를 재설계함으로 더욱 유려하고 부드러운 공기역학 설계를 완성시켰다.

3. 1990년 르망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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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는 1990년 르망 24시에 두 대의 787과 한 대의 767B를 출전 시킨다. 예선전에서 빠른 스피드를 보였던 787은 본선 레이스에서도 새벽이 지날 때까지 안정적인 페이스로 레이스를 이어나갔으나 201번 787의 누유 문제를 시작으로 202번 787 또한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두 대의 787은 300랩을 겨우 넘기고 모두 리타이어하고 만다. 대신 구형 767B가 완주를 하게 된다. 이후 참가한 JSPC에서도 성적은 기대 이하이긴 마찬가지였다.

4. 787B의 개발


1990년을 보내고 마쓰다는 787을 개량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프랑스의 레이스카 전문 업체 Oreca와 손을 잡게 된다. 마쓰다는 우선 1990년 르망 24시에서 두 대의 787 모두 엔진에서 문제를 일으킨 만큼 부족한 속도와 신뢰성을 개선하기 위해 R26B 엔진의 흡기 시스템을 손 보게 되는데 과거에 개발했던 가변식 텔레스코픽 인테이크 러너를 개선해 이전 버전이 RPM 단계에 맞춰 작동하던 것을 연속적으로 작동하도록 했다. 덕분에 6,500 rpm에서 보다 더 많은 토크를 얻게 되었고, 이는 마쓰다의 ECU로 제어되었다. 또한 서스펜션 지오메트리를 재설계함으로 더 큰 휠과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를 장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787B는 최대 900마력까지 낼 수 있었지만 장시간 달리게 되는 내구레이스의 특성을 고려해 출력은 9,000rpm, 700마력 정도로 제한되었다. 엔지니어들은 직선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르트 서킷에서 최고 속도에 중점을 두는 것보다 코너에서의 민첩한 움직임에 집중하는 특이한 결정을 하게 된다.

5. 1991년 르망 24시



5.1. 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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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르망 24시에 마쓰다는 두 대의 787B와 한 대의 787로 출전했다. 전통적인 하얀 배경의 마쓰다 리버리를 입은 두 대와 달리 55번 787B는 1988년부터 팀을 지원해온 일본의 패션 브랜드 레나운(RENOWN)의 특별 리버리를 도장했다. 1991년 르망 24시는 두 개의 프로토타입 클래스가 존재했는데 엔진 규격에 제한이 없는 80년대 초부터 있었던 구형 그룹 C 클래스와 FIA가 도입한 새로운 엔진이었던 3.5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한 신형 그룹 C가 그것이었다. 구형은 C2, 신형은 C1으로 불렸는데 C2는 C1에 비해 많은 성능적 제한이 가해지는 것이 1991년 르망 24시의 룰이었다. 이렇게 된 경위는 그룹 C 문서 참조. 때문에 구형 그룹 C 레귤레이션에 맞춰 차를 만들어 온 재규어, 포르쉐, 메르세데스-벤츠는 신형 그룹 C보다 더 무거운 상태로 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FIA의 신형 그룹 C 밀어주기에도 불구하고 1000kg에 육박했던 구형 그룹 C 레이스카들인 재규어와 메르세데스 벤츠가 예선을 휩쓰는 일이 벌어진다.[1] 하지만 마쓰다는 폴 포지션인 메르세데스의 C11보다 무려 12초나 느린 3분 43초를 기록했고 그 마저도 규정에 의하여 신형 그룹 C들이 앞 그리드를 받게 됨으로 세 대의 마쓰다 787들은 각각 19 그리드, 23 그리드, 30 그리드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누가 보기에도 랩당 12초나 느린 마쓰다의 787B는 상위권 경쟁을 하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5.2. 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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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 전날, 팀 감독 오하시 타카요시는 당초 수립했던 보수적인 레이스 전략을 폐기하고 787B 드라이버들에게 마치 스프린트 레이스인 것처럼 공격적으로 운전할 것을 주문했다. 오하시 감독이 이런 주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르망 이전에 시행되었던 폴 리카드 서킷 테스트에서 787B가 보여준 높은 신뢰성과 연비 때문이었다. 레이스 스타트와 동시에 드라이버들은 공격적으로 레이스를 펼쳤고 선두 그룹이었던 푸조와 메르세데스가 피트에서의 사고, 기술적 문제와 드라이버들의 실수를 연발하면서 뒤쳐지는 동안 55번 787B는 레이스 초반 실수 없이 착실히 주행하면서 늦은 오후 즈음에 선두 그룹에 합류하게 된다. 심지어 31번 메르세데스 벤츠가 스핀 후 기어박스 문제로 개러지에 입고되면서 종합 2위로 도약, 여기까지는 마쓰다의 성실함과 몇 개의 행운이 겹쳐진 결과였다. 그러나 선두 차량은 이미 페이스 조절을 위해 연비 주행에 들어간 상태였고 지금 같은 페이스로 선두 차량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산술적으로 6시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오면서 마쓰다는 역시나 우승은 힘들지 않나 하는 분위기가 돌기 시작했다.

5.3. 신데렐라 스토리



밤이 지나고 동이 트기 시작할 때에도 마쓰다는 2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3위는 재규어 XJR-14, 선두는 메르세데스 벤츠 C11 1번이었다. 시간은 흘러 오후로 접어들면서 많은 차들이 실수와 트러블에 시달렸고 1번 메르세데스를 제외한 모든 메르세데스는 사실상 선두권에서 이탈, 푸조는 모두 리타이어, 재규어와 포르쉐는 간신히 선두권에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레이스가 21시간을 지날 무렵 1위였던 C11이 엔진 과열로 피트인 하면서 마쓰다 787B는 C11이 피트에 묶여 있는 사이 빠르게 랩 차이를 줄여 나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레이스 종료를 단 몇 시간만을 남겨두고 재규어보다 2랩 더 많은 단독 선두에 등극, 그리고 마쓰다는 무리 없는 주행으로 레이스 종료인 오후 3시를 지나 체커드 플래그를 받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및 일본 제조사의 르망 24시 종합 우승'''이라는 역사적이면서도 명예로운 승리를 쟁취했다. 이때 마쓰다 개러지에선 환호성과 감격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6.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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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의 승리가 선뜻 이해되기 어려운 점은 단연 마쓰다 787B가 선두 차량들보다 랩당 12초나 느린 차였다는 점이다. 아무리 신뢰도가 높고 연비가 좋다 한들 랩당 12초나 느린 차가 꾸준히 선두 그룹에 붙어 있으면서 경쟁을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사실 여기에는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이 있는데 첫째로 마쓰다는 르망 24시 주최측인 FIA에게 C2 클래스임에도 불구하고 레이스카 중량에 대해 배려를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C2 클래스 차량들인 재규어 XJR-14나 메르세데스-벤츠 C11, 포르쉐 962는 1000kg에 근접하도록 밸러스트를 달게 만들었지만 마쓰다 787B는 주최측의 배려로 830kg이라는 매우 가벼운 중량을 승인 받았다.[2] 그리고 이는 당시 마쓰다 787B가 갖고 있던 장점 몇가지를 증폭 시켜주는 나비효과를 낳게 되었는데 먼저 700마력의 출력은 무게 대비로 비교했을 때 벤츠, 포르쉐,재규어의 높은 출력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게 되었고 무엇보다 이 가벼운 무게 덕분에 차는 레이스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이 덜해져 새로 개발한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의 성능을 더욱 살릴 수 있었고 코너에서의 움직임도 민첩해졌다.
또한 재규어, 벤츠, 메르세데스가 무거운 무게 때문에 레이스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의 차에 당시 내구레이스 경험이 별로 없는 신예였던 미하엘 슈마허 같은 어린 드라이버들을 태움으로서 이들이 시간이 흐를 수록 거동이 바뀌는 차에 대응하지 못해 실수를 연발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반면 마쓰다는 F1 출신이면서 르망 우승 경험도 있고 60년대부터 스포츠카 레이싱에 베테랑으로 달렸던 재키 익스를 팀의 고문으로 임명하면서 많은 조언을 받았고, 드라이버들도 내구레이스 경험이 풍부한 이들로 채우면서 24시간의 주행중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는 치밀함을 보였다.

7. 반켈 엔진은 박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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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B의 우승 이후 유언비어처럼 퍼진 루머가 하나 있는데 바로 FIA가 마쓰다의 우승을 시기하여 반켈 엔진의 르망 참가를 금지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루머에 불과하다. 단적인 증거로 최근인 2009년까지 FIA-ACO의 프로토타입 기술 규정에도 반켈 엔진을 위한 규정문은 남아 있었다. 또한 논리적으로도 선두 그룹에 비해 랩당 12초나 느린(...) 787B에 위협을 느껴 반켈 엔진을 금지시킨다는 것은 개연성과 당위성 모두 부족한 것이다. 787B가 레이스에서 강력할 수 있었던 것은 R26B 엔진이 경쟁 제조사들의 터보나 자연흡기 엔진보다 월등한 성능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에 맞춰 가벼운 중량을 허용 받은 것과 그 덕분에 낮은 출력으로도 해볼만 했다는 점, 그리고 마쯔다가 새로 개발한 브레이크 시스템이 제대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점, 그리고 무엇보다 팀이 작은 실수조차 하지 않고 완벽한 주행을 했다는 점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듬해인 1992년에 마쓰다가 반켈 엔진을 포기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닌 단지 구형 그룹 C 레귤레이션이 폐지되는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1991년을 끝으로 엔진 규격에 제한이 없는 무지막지한 엔진 크기와 출력의 그룹 C 차들은 대거 이탈했고 우승 경쟁을 하는 차들은 3.5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한 차들이었다. 실제로 우승도 3.5리터 V10을 장착한 푸조 905 EVO였다. 1992년에 마쓰다는 반켈 엔진과 787 섀시를 포기하고 judd제 V10 엔진과 TWR이 재규어에 제공할 예정이었던 XJR 섀시를 사들여 르망에 출전했다.

8.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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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및 일본 컨스트럭터 최초의 르망 24시 종합 우승.'''
80년대 초부터 시작된 마쓰다의 르망 프로젝트는 여러모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수준이 높은 유럽의 제조사들은 물론 버블 경제를 등에 엎고 엄청난 자본력으로 밀어붙였던 같은 일본토요타닛산 또한 강력한 경쟁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쓰다는 적은 출력의 787B를 내구레이스라는 자신의 전쟁터에 맞춰 신뢰도를 대폭 상승시켰고 현명하고 성실한 작전 수행 덕분에 다른 일본 제조사들보다 앞서 르망 24시 정상에 서는 기쁨을 맛봤다. 마쓰다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돈을 때려박았던 토요타닛산열폭말할 것도 없었다.[3]
여하튼 787B의 성공 이후 일본 내의 스포츠 프로토타입 레이싱의 인기는 대폭 상승해 JSPC 같은 일본의 독자 프로토타입 레이싱도 매우 큰 인기를 누렸으며 일본의 모터스포츠 문화와 시장이 더욱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 787B는 이후 그룹 C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으며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매우 큰 사랑을 받는 레이싱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9. 여담


  • 787B를 타고 피니쉬 라인을 통과한 조니 허버트는 이후 탈수 증세로 실신해서 포디움 정상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후 밝혀진 바로는 전날 식사로 먹은 스파게티 때문에 배탈이 났다고(...)
  • 이제는 양산차나 레이스카에서나 보기 힘든 반켈 엔진이면서 그걸 4로터로 엮은 당시에나 가능했던 무지막지한 엔진이기도 하지만 엔진 사운드가 무척이나 아름답기로 유명한 차다. 인터넷 기사나 유튜브 등지에서도 엔진 사운드가 아름다운 레이스카 TOP 10 같은 걸 하면 꼭 들어가는 차. 그만큼 모터쇼나 쇼런 행사에서도 자주 초대 받는다고 한다.
  • 놀랍게도 반켈 엔진은 르망에서 부활할 예정이다! FIA는 2021년 이후로 도입 예고된 하이퍼카 레귤레이션에서 반켈 엔진의 참가를 허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하이퍼카 클래스에 참가하는 제조사들중 반켈 엔진을 쓰는 제조사가 있을지는... 마쓰다는 자사의 하이브리드 모델에 보조 동력 장치로 반켈 엔진을 부활 시킬 계획이 있다고 했지만 아예 이 엔진을 써서 다시 레이싱에 참가할지 현재 로서는 알 수 없다.
  • 현재 마쓰다는 IMSA LM-DPi 클래스에 RT24-P로 꾸준히 참가중이다.[4] 최근에는 시즌 3승을 기록했다.
  • 히로시마시에 있는 마쓰다자동차박물관에는 우승 당시의 787B 실차와 탑재되었던 로터리 엔진이 전시중에 있다. 입장은 무료이나 사전예약제. 세계최초로 차종 혼류생산 시스템이 적용된 공장 생산라인도 덤으로 견학이 가능.

[1] 재규어와 포르쉐, 벤츠의 그룹 C들은 무겁긴 했지만 출력도 1000마력을 가뿐히 넘어서고 뮬산느 스트레이트에서 400km/h에 근접하는 스피드를 내는 괴물 머신들이었다...[2] 어떻게 마쓰다만이 그런 중량을 승인 받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이유가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당시 모터스포츠 매체에서는 그것에 대해 '배려'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3] 이후 20년이 더 지나서야 토요타는 2018년에 그토록 꿈에 그리던 르망 24시 종합 우승을 해낸다.[4] 반켈 엔진은 아니지만 2.0리터 직렬 4기통 터보라는 요즘 기준에는 특이한 엔진을 사용하고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