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노 나가야스

 

前野長康
1528년 ~ 1595년
1. 소개
2. 생애


1. 소개


전국시대의 인물로 도요토미 가문의 가신이자 다이묘로 본명은 츠보우치 미츠카게(坪内光景), 통칭은 쇼우에몬(将右衛門).
무공야화에는 오와리국 마츠쿠라 성의 영주인 츠보우치 카츠사다의 사위이자 마에노 무네야스의 아들로 나오지만 관정중수제가보에는 카츠사다의 장남이라고 나왔다. 공식 문서에는 츠보우치 미츠카게, 츠보우치 나가야스, 토가시 나가야스 등으로 서명했다고 한다.

2. 생애


도요토미 히데요시오다 노부나가의 부하로 있을 때 히데요시의 최고참 가신으로 히데요시의 스노마타 성 축성에 협력했다고 하며, 노부나가 사후 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1584년의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1585년의 시코쿠 공격에 참전하였으며, 8월에 히데요시로부터 하리마국 미키로부터 다지마국 이즈시까지의 영지를 받아 5만 3천석으로 증가하여 옮겨졌다.
이후 쥬라쿠다이의 집을 만드는 부교(봉행)의 역할을 맡아 1588년에 고요제이 덴노가 행차하자 덴노를 대접하는 역할을 했으며, 1590년의 오다와라 정벌과 1592년 조선을 공격한 임진왜란(분로쿠 전쟁)에 참전하였다.
1593년 2월 12일에 제4대를 이끄는 우키타 히데이에를 총수를 하여 제1대 고니시 유키나가, 제2대 이시다 미츠나리, 제3대 구로다 나가마사, 제5대 깃카와 히로이에, 제6대 모리 모토야스, 고바야카와 히데카네, 제7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제2대에 소속되어 4만의 군사의 7개의 부대로 행주산성을 공격했다가 도원수 권율의 저항으로 패하면서 가슴에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고 물러났다.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그 공으로 영지가 11만석으로 증가하였으며, 이후 도요토미 히데츠구의 가로가 되었다가 1595년에 히데츠구가 히데요시로부터 모반을 의심받아 자해를 명령받자 히데츠구를 변호한 것으로 연좌로 죄를 추궁받아 나카무라 카즈우지에게 신병이 인도되었다가 자해를 명령받아 자해하여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