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제2대 대통령'''
''' ''مَحْمُود عَبَّاس'' '''
'''이름'''
마흐무드 압바스
مَحْمُود عَبَّاس|Mahmoud Abbas Abu Mazen
'''출생'''
1935년 3월 26일[1] (89세)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제파트
'''국적'''

'''종교'''
이슬람
'''정당'''
'''파타''']]
'''학력'''
다마스쿠스 대학교
러시아 민족 우호 대학교
'''가족'''
배우자 아미나 압바스
슬하 3남
마젠 압바스 (장남)
야세르 압바스 (차남)
타레크 압바스 (3남)
1. 개요
2. 생애
3.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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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레스타인의 정치인. 팔레스타인의 제2대 대통령이자 현직 대통령이다.

2. 생애


1935년 제파트[2]에서 태어났으며,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때는 난민이 되어 시리아로 도망치기도 했었다. 1950년대, 파타를 구성하는 한 사람 중 하나였으며, 1970년대에는 PLO에서 일하였다. 여기서 이스라엘 평화단체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1991년 마드리드 평화회담과 노르웨이에서 이스라엘과의 여러 비밀회의를 통해 팔레스타인 협상전략을 마련하였다.
2003년에는 잠시 팔레스타인 수상에 임명되었지만 아라파트를 제어하려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자신의 처지를 위태롭게 하였다고 생각하여 사직을 했다. 2004년 아라파트 사망 이후 PLO 의장에 추대되어 2005년 1월 선거에서 60% 이상의 지지를 얻어 2005년 1월 15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2005년을 시작으로 2021년 현재까지 '''16년동안''' 장기집권하고 있다.

3. 상세


여담으로 그의 별명은 "아부 마젠(Abu Mazen)"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이 되면서 무능함과 부패함을 보이기도 했는데, 집권 이전부터 파타의 부패함은 더 심해졌다. 그래도 세속주의를 추구하여 정교 분리 등을 했지만 이스라엘에게 여전히 영토도 빼앗기고, 2007년에는 하마스와의 내전으로 인한 치안 악화 등으로 비난을 받았다.
한편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반이스라엘이긴 하지만 극단적인 반이스라엘주의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2000년 7월 인티파다 당시 이스라엘이 제안한 평화제안을 거부했지만, 동시에 팔레스타인 안에서의 일부 극단적이거나 폭력적인 봉기에 대해서도 동의는 안했다. 다만 때때로 반유대주의를 연상시키는 발언으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3] # # ]# 또, 이스라엘 서안지구 합병 가능성이 높아지자 대화의 길을 열기도 했다.#
또한 시간이 지나갈수록 언론 탄압도 서서히 늘어났는데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들, 하마스는 물론 하마스가 아닌 사람 중에서도 파타나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처벌해서 국제 사회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실상 '''팔레스타인의 독재자'''다. 최근에는 팔레스타인의 민주주의 지수가 108위에서 117위로 하락하면서 혼합 체제에서 권위주의로 변했다. 독재자임에도 불구하고 쫓아내기 힘든 이유는 그가 세속주의인 파타당을 이끌기도 하지만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이끄는 수장 역할[4]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운좋게 기적적으로 압바스를 몰아내더라도 리비아처럼 될 확률이 높은데다가[5], 현재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의 통합을 못하게 하려는 꼼수가 있다 보니 언젠가 물러나더라도 쉽지 못할 걸로 예상된다.
외교 성향은 친중, 친러 성향이다.
가족으로는 아내와 3명의 아들이 있으며 8명의 손자와 손녀가 있다. 장남인 마젠 압바스는 2001년에 42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 1935년 11월 15일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2] 이스라엘 북동부의 도시이며, 갈릴리 호 인근에 있다.[3] 1982년 그가 모스크바에서 내놓은 학위논문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한다고 생각되어 유대인 단체들에게 비난받기도 했었다.[4] 2012년 11월 후기부터 팔레스타인이 유엔 국가들 대다수로부터 인정을 받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완전한 독립이라 보기 애매하다.[5] 다만 파타든 하마스든 그 외 이들을 반대하는 주민들이든 이들에게는 이스라엘이라는 숙적이 있는 만큼 이들은 손을 잡을 때도 있다. 이 점 때문에 리비아, 시리아처럼 대규모의 내전이 더 나타나긴 어려운데다, 이미 2007년에 내분이 일어났다가 몇 차례의 합의로 화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